"절박한 마음이 국민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광주로 내려가다 들른 휴게소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안 전 대표의 복귀 후 첫 공식일정인 현충원과 5.18민주묘역 참배를 동행했습니다. 이날 안 전 대표가 유독 강조한 말은 ‘절박함’이었습니다. 새벽부터 현충원을 참배하고 광주로 이동하는 빡빡한 일정을 짠 것도 절박함에서 나온 선택이었다고 했습니다. 

그의 절박함에 동감했습니다. 9개월 동안의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여야가 그린 정쟁의 도돌이표를 보고서는, 저같은 초년의 정치부 기자도 정치가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절박함 너머 무언가를 느끼기는 힘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향후 거취에 대해“국가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그 방향이 어딘지는 알아채기 어려웠습니다. 안 전 대표는 5.18 민주 묘역을 참배한 뒤 지지자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했습니다.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영호남 화합, 그리고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호남에 기반을 한 국민의당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역사의 고비마다 물줄기를 바로 잡는 역할을, 옳은 길을 가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해주시는 많은 분들 마음을 미처 제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서운해 하셨을 겁니다. 늦었습니다만, 다시 한 번 더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호남은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의석 28석 가운데 23석을 안 전 대표의 국민의당에 안겨줄 만큼 그를 압도적으로 밀어줬습니다. 등 돌린 호남에 대한 사과는 응당 필요했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 만들 실용적 중도 정당을 호남 기반으로 할 건지에 대한 질문에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대안신당이나 민주평화당과 노선과 방향이 맞다면 힘을 구할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안 전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이 오버랩됐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입장을 묻는 BBS 기자의 질문에 “마음의 빚을 크게 졌다”며 속마음을 꺼내보인 문 대통령. 국론이 분열돼 송구스럽다면서도, 이제 그만 놓아주자고도 했습니다. 충분히 에둘러 피해갈 수 있는 말들 대신 정면돌파를 택한 겁니다. 발언의 옳고 그름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정치 지도자는 뚜렷한 소신으로 지지자들에게 확신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귀국 일성으로 밝힌 ‘실용적 중도 정당’도 비슷합니다. 프랑스의 실용적 중도 정치에서 많은 걸 느꼈다고 했지만, 안 전 대표가 중도를 외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017년 ‘극중주의‘라는 말을 하며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에 매진하는 것이며 '중도'를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당시의 극중주의는 결국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 건지 설명이 필요해보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어떤 이들은 죽은 후에야 비로소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두 번 죽은 안 전 대표에게 이번 선거는 다시 태어날 기회입니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라진 이념의 끝장대결에서 여도 야도 싫다는 중도층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을 ‘어떻게’가 없다면 선거에서 불 ‘안철수 바람’은 미풍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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