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조계사에서 열린 2020 한국불교지도자 신년 하례법회. 왼쪽부터 강창일 의원, 김정숙 여사,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물갈이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지난주 한 불자 정치인의 퇴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주시갑 선거구에서 내리 4선을 한 더불어민주당의 강창일 의원입니다. 탄탄한 지역 기반에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흠이 없었고 게다가 한일의원연맹 우리측 회장을 맡아 대일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해 온 터라 의아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강 의원은 '정치개혁의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불출마의 변을 내세웠습니다. 지난 20대 국회를 돌아보면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낀다며 국민에게 탄핵을 받아야 할 국회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성 정치인들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을 대신한 비판이었습니다. 실제로 강 의원은 창피함을 느낀다며 평소에 의원 뱃지를 안달고 다녔습니다. 강 의원은 "소신있고 무탈하게 지내온 중진 의원이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며 동료 의원들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강 의원의 불출마는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불교계로서도 엄청난 손실로 여겨집니다. 강 의원은 국회 불자의원 모임인 정각회를 재건시킨 장본인이자 정각회장을 두 차례나 역임할 정도로 대표적인 여권내 불교통으로 꼽힙니다. 국회 포교활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적극적이었습니다. 국회내 법당인 정각선원을 확장시켰고 부처님오신날 국회 앞마당에 봉축탑을 세울 수 있게끔 총대를 메고 앞장섰습니다. 입법활동에서 불교계 목소리를 대변한 점은 두 말할 나위없습니다.

무엇보다 대외활동에서 자신이 불자임을 떳떳하게 밝히고 다닌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강 의원은 과거 불교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표가 안된다는 이유로 불자임을 안밝히는 정치인이 한심스럽다"며 한탄했습니다. 필자는 모 불자 국회의원의 경우 자신의 종교가 불교라는 걸 기사에 다루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어 강 의원의 분노에 공감한 적도 있습니다.

그의 빈자리를 앞으로 누가 메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강 의원이 불교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9대가 공덕을 쌓아야 큰 스님이 될 수 있다는데 우리 집안은 9대가 덕을 못쌓은 것 같다"라고요. 늘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었습니다. 강 의원은 학창시절에 출가하려다 뜻을 못 이룬 뒤 서울대 불교학생회 활동으로 미완의 꿈을 달랬습니다. 탄허스님의 유발상좌 역할도 했고 법정 스님과도 교류를 가졌습니다.

우리 사회는 원로 중시 풍토가 비교적 강했는데 어쩌다 정치판에서는 원로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물갈이' '판갈이' 얘기가 나오는 지 안타깝습니다. 본분을 망각하고 사리사욕만 채우는 정치인이 많아지다보니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강 의원 같은 분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른 게 어이없습니다.

다만 강 의원이 정계은퇴를 선언하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불교계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여깁니다. 앞으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할 지 기대되기도 합니다. 정치개혁이란 거대한 불길을 지피겠다는 강 의원의 염원이 실현되기를 응원합니다. 덧붙이자면 인적쇄신이 정계 뿐만 아니라 불자 정치인에서도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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