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에게 최고의 찬사가 되어버린 ‘공기반 소리반’.

지난 2016년 제주 불자들과 함께 제주 출신인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을 참배했다. 돌아오는 길, 스님 법문에 대한 소감을 묻는 말에 한 불자가 ‘공기반 소리반 같았다’라고 한 소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선(禪)과 교(敎)를 겸비한 스님이셨기에 불자가 그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본 기자와 적명 스님의 인연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주가 배출한 큰스님’이라는 제목으로 기획 시리즈를 쓸 무렵이었다.

제주출신 큰 스님은 다른 지역보다 많다고 자부한다. 일붕선교종을 창종한 서경보 스님을 비롯해 7가지가 없다하여 청빈한 삶을 살다 간 무진장 스님, 약천사 창건주 혜인 스님 그리고 걸레 스님으로 유명한 중광 스님 등이 모두 제주가 고향이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 선승으로 유명한 혜국 스님, 생명평화 운동의 도법 스님 그리고 여기에 문경 봉암사 적명 스님을 취재하다 스님의 고향이 제주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적명 스님의 할아버지는 근데 제주불교의 어둠을 밝힌 김석윤 스님으로, 스님은 1909년 의병항쟁 당시 격문까지 쓰셨던 독립운동가이다.

김석윤 스님은 1934년 제주 최초 선원이었던 제주포교소 월정사를 창건한다. 해방 후 스님은 제주불교혁신회 고문으로 위촉, 남은 생을 불교의 정통성 회복에 힘쓰다 지난 1949년 8월 입적한다.

일제의 눈을 피해 제주불교 발전에 헌신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한국불교의 정신을 오롯이 지키고자 했던 적명 스님이 투영된다.

김석윤 스님의 뜻을 받든 3명의 자식들은 출가를 하게 된다. 둘째 김성수 스님, 셋째 김인수 스님, 넷째 김덕수 스님이다. 그리고 김성수 스님의 후손이 바로 봉암사 수좌인 적명 스님이다.

이렇듯 적명 스님의 집안을 보면 제주불교 100년의 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다.

본 기자는 이 같은 사실에 환희심이 일어났고, 적명 스님을 꼭 찾아뵈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지난 2015년 겨울, 적명 스님의 속가 동생 분을 조르고 졸라 비행기, 버스, 택시를 타고 4시간에 걸쳐, 문경 봉암사에 닿았다.

적명스님이 머무는 동방장(東方丈)에서의 첫 대면은 스님 얼굴의 윤곽선따라 후광이 어린 듯했다. 스님의 웃음진 얼굴이 정말 포근하게 다가왔다.

스님은 손님을 대접하겠다며 스님의 전매특허인 ‘커피’를 내놓겠다고 했다. 이미 알만한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에겐 소문이 자자한 듯했다.

일회용 커피믹스도 아니었다. 커피와 프림, 설탕 통을 꺼내 들더니 커피 2스푼, 프림 2스푼, 설탕 3스푼을 커다란 머그잔에 따른다. 그야말로 스님께서 예전부터 좋아했던 달달한 커피였다.

주변에선 큰스님의 체면에 맞지 않다며 ‘좋은 차’, ‘핸드드립커피’를 권했지만 스님은 수행도 자신의 맞는 방편이 있듯이 자신에게 맞는 달달한 커피를 사랑한다고 했다.

요즘 사치스럽게 몇 백만 원의 찻상에 차를 마시는 스님보다 아직도 손수 손빨래를 하시는 적명 스님이 머그잔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에 소탈한 느낌마저 들었다.

필자는 이같은 모습에 대해 그동안에 몸에 배인 수행의 습일 것이라고 여겼다.

모든 욕망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욕망에서부터 온다고 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편안하고 허례허식을 버리라는 가르침을 전한 적명 스님, 지난 24일 세연을 접었지만 참 수행자로서의 그윽한 풍모는 영원히 가슴속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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