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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뉴스와사람들] 김상훈 봉은사 신도회장 “21세기 문화와 불교 접목한 문화포교 1번지 될 것”
김봉래 기자 | 승인 2019.12.23 14:35

 

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전법후원국장

출연 : 김상훈 서울 강남 봉은사 신도회장

방송 : 12월 22일(일요일) 저녁 6시(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의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인데요.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전망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문화의 시대라고 하죠. 그래서 포교에서도 문화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글로벌을 지향하는 도심 포교에서도 문화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는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전통사찰로서 글로벌한 세계적인 포교 역량을 발휘해 나가고자 애쓰는 곳이죠. 강남 봉은사의 김상훈 신도회장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말씀 드린 대로 강남 봉은사에 김상훈 신도회장님 스튜디오에 나오셨습니다. 김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김상훈 : 안녕하십니까. 봉은사 신도회장 법장 김상훈입니다.

 

김봉래 : 네. 우리 서울 도심 포교에 어떤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남 봉은사 신도회장으로 한 2년 째 활동하고 계신데, 먼저 봉은사가 어떤 곳인지 자랑을 좀 해주실까요.

 

김상훈 : 저희 봉은사는 1,225년 되었습니다. 개산 이래 지금 현재 봉은사 신도회 회원 수는 정확하게 38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예. 신도수가 38만 명.

 

김상훈 : 네. 저희가 임원진들이 약 30명이 있습니다. 부회장단하고 해서. 그래서 저희가 이제 38만 신도를 잘 화합하고 잘 이끌고 가고 있습니다. 현재 봉은사는 위치적으로 강남의 중심지에 있으므로 교통과 여러 가지 경제적 중심에 있음으로 인해서 우리 불교 터전의 중요한 지역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습니다. 교통의 요충지, 경제의 요충지 그리고 사상적으로 종교적으로는 어떻게 보면 불교의 요충지라고 이제 봐야겠습니다.

 

김상훈 : 예.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김봉래 : 그래서 봉은사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여쭙기 전에, 먼저 우리 김상훈 회장님의 불교와의 첫 만남 궁금해요.

 

김상훈 : 저도 뭐 태어나기 전부터 불자 집안이었습니다. 물론 뭐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불교가 저희 종교였었기 때문에 누구나 불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집안에 태어났지만 저희 조부모님들께서는 아주 각별한 제가 볼 수 있는 것은 이제 그분들이 불심이 강하다는 것을 제가 어렸을 때부터 느꼈죠. 5살 때 제가 해평면, 선산군 해평면에 도리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아도화상께서 창건하신 절인데.

 

김봉래 :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했던.

 

김상훈 : 그렇죠. 신라가 이미 불교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이미 거기에 절이 세워졌죠. 국교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그랬던 지역인데, 저희는 사실 몰랐습니다. 그냥 절이려니 생각하고 다녔는데, 나중에 보니 그렇게 유서 깊은 절이었고 거기에 보면 원효대사께서 왔다 가셨다 하는 전설도 있고, 그래서 굉장히 오래된 절이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요.

 

김봉래 : 그러면 이제 아주 어릴 때부터 모태 불자였고, 이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쭉 선산지역에서 활동하셨던.

 

김상훈 : 중학교까지 그 쪽에서 쭉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어렸을 때 보면 5살 때 30리 길 정도 걸어갔었어요. 도리사까지 그러니까 산 밑에 도달해서 올라가는 게 10리 됩니다. 옛날에 산 꼭대기여서. 5살 때 고무신을 신었던 것 같아요. 눈길에 할머니하고 가는데, 할머니가 버스를 못 탔어요. 원체 멀미를 심하게 하셔서 걸어가시는데 그 반은 업히고 반은 걷고 이래갔는데, 춥다, 발 시리고 귀가 참 차가웠다는 그 생각은 났고. 올라가면서 돌 위에 탑을 쌓는 기억이 나고, 그 다음에 법당이 산 속에 있으니까 할머니 기도하러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방에 혼자 있으려니 동물소리가 나오면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치맛자락을 붙잡고 법당에 따라 들어갔죠. 갔더니 촛불 켜놨지만 그 당시에 전기가 들어옵니까. 촛불 켜놨는데 거의 뭐 사천왕 같은 탱화가 있으니 무섭더라고요. 밤에. 그래서 다시 또 방으로 혼자 돌아가려니 가지도 못하고. 천배를 하신데요. 밤새도록. 그래서 거기서 제가 한 100배 200배 따라한 것 같아요. 그게 최초로 아마 100배를 했지 않느냐 5살 때. 무서워서 한 거예요.

 

김봉래 : 그런 인연으로 불교에 차츰 인연이 깊어지면서 젊은 불자로서 성장을 했고. 그렇군요. 그럼 봉은사하고는 어떻게 또 인연이 된 건가요.

 

김상훈 : 봉은사는 사실 제가 신도회장을 맡기 전에 제가 전임회장이 친구 형님하고 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부회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다 이분이 갑작스럽게 병이 있고 그래서 치료도 좀 받고 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해서, 제가 다시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맡는데 거기에 여러 그 선거하는데 선거단에서 봉은사에 너무 오래 불사를 하지 않았던 분이 회장 할 수 있느냐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김봉래 : 그렇죠. 그럴 수 있겠죠.

 

김상훈 : 그래서 내가 그렇게 따지면 내가 원래는 개포동에 쌍용아파트 미도아파트 짓기 전에 제가 거기서 주유소 사업을 했었어요. 70년대 후반에 그 때 제가 봉은사에 보일러, 기름을 제가 공급해주고 그때부터 인연이 있지 않느냐, 봉은사가. 80년대 초에 봉은사를 드나들었습니다. 그 때 인연으로 따지면 벌써 3,40년 되었죠.

 

김봉래 : 그렇죠. 그래요. 봉은사가 어떻게 보면 단일 사찰로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신도 숫자를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리고 또 엘리트 신도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런 평가가 있거든요.

 

김상훈 : 참 대한민국에 기라성 같은 분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김봉래 : 그래서 그런 분들을 한 마음으로 잘 아울러서 한곳을 지향해야지 않습니까. 그런 과정에서 어려운 점 같은 것은 없으신지.

 

김상훈 : 아무래도 사는 방법이나 여러 가지 직업이 다르더라도 부처님을 믿는다는 그 한 가지 힘으로 봉은사를 찾는 분이라서 상당히 그 화합은 잘 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스님들과 같이 이렇게 재가자들이 힘을 모아서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펴는 그런 역할을 신도회가 중심이 되어서 할 텐데, 봉은사 내에는 신도회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조직과 인원들이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조직들이 있나요.

 

김상훈 : 저희가 특히 또 문화 행사 쪽에도 참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도라든가, 꽃꽂이 그 다음에 뭐 붓글씨, 그 다음에 제일 큰 게 이제 포교가 저희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데입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 불우이웃 돕는 그런 노인회관, 노인병원, 소년들 보호해주는 그런 장소를 저희가 12군데를 갖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게 정식 명칭이 어떻게 되나요.

 

김상훈 : 명칭이 봉은행복나눔이라고 해서 사단법인을 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아 사단법인 봉은행복나눔 거기서 곳곳에 시설들을 유치를 해서.

 

김상훈 : 제일 큰 게 판교에 노인복지회관이 제일 큽니다. 거기 1년 예산이 한 5,60억, 한 곳에만 되고 있고, 전체 120억 정도 1년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복지회관 쪽으로.

 

김봉래 : 예.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이 이제 우리의 미래라고 볼 수 있는 어린이 청소년 포교가 중요한데, 젊은 불자 육성을 위한 활동 내지 조직 있으면.

 

김상훈 : 청년 불자를 위해서 학교도 운영하고 있고. 기초학당, 불교대학, 불교대학원, 거기에 20대 30대 젊은 청소년들이 이번에도 한 250명 정도 입학을 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김상훈 : 해마다 졸업생이 한 2,300명 됩니다.

 

김봉래 : 불교대학이요.

 

김상훈 : 네.

 

김봉래 : 그렇군요.

 

김상훈 : 기초학당도 한 2,300명 씩 매년 들어옵니다.

 

김봉래 : 기초학당하고 불교대학하고의 차이는 뭘까요.

 

김상훈 : 차이는 기초학당은 이제 불자로서의 기본적인 참선하는 방법, 여러 가지 기초를, 말씀 그대로 기초를 가르치는 데고.

 

김봉래 : 기초학당을 졸업하고 나서 불교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거죠.

 

김상훈 : 예. 졸업하고 나서 불교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김봉래 : 아까 문화의 시대라고 저도 이야기를 했고 또 문화포교가 중요하다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사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포장이 시원찮으면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좋은 내용이라도 또 신도들에게 잘 만족을 시켜줄 정도로 이렇게 접근을 해야 하는데, 봉은사가 아까 말씀하신 대로 법회뿐 아니고 각종 문화행사들도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다양한 문화 체험거리가 있다면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김상훈 : 저희가 지금 불교무형문화재로서 생전예수재라고 저희가 이번에 무형문화재 등록 받았습니다. 서울시하고 문화재청 쪽으로 그게 아마 우리 봉은사의 가장 보여줄 수 있는 큰 문화행사가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쭉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생전예수재. 네. 생전예수재 말고도 다른.

 

김상훈 : 말고 저희가 전체적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산사음악회를 합니다. 봉은 합주단에서 그래서 그런 음악회, 그 다음에 저희 보우당에서 각종 전시회, 그래서 올해도 그림이라든가 조각이라든가 그런 전시회를 많이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먹거리 풍물장터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요즘에는 그 명상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요즘은 수행시대다, 수행을 하지 않고는 행복을 담보할 수 없다 그런 인식 속에서 아주 명상이 유행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사실 우리 불교에는 동안거 하안거라고 하는 또 오래되고 아름다운 안거 수행 전통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전통을 우리가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지금 봉은사 신도회에서는 조계종 전 총무원장 스님이시죠, 자승스님 등 9분이 참여하고 있는 상월선원의 천막결사수행, 이것을 외호하는데 아주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김상훈 : 저희 봉은사가 주관이 되어서 치루고 있습니다. 저희 그 자승스님께서 봉은사에 회주님으로 계시고 또 총무스님인 진각스님이 거기 같이 동안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7분을 저희 봉은사에서 모든 것을 다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토요일 이틀 간 전 신도들이 거기 가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정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새로운 안거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김상훈 : 예. 어저께 오후에 잠깐 상월선원 갔더니 저희가 이제 봉은사 신도뿐 아니라 전국 불자님들이 오셔가지고 마당이 아주 꽉 찼더라고요. 그래서 여기가 앞으로 새로운 불교의 포교의 중심지가 될 수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또 듭니다.

 

김봉래 : 그렇죠. 다른 종교 같으면 신도시 포교에 역점을 두고 신도시마다 좋은 성당이나 교회들이 즐비하지 않습니까. 상대적으로 저희는 없는 곳이 많아요. 위례 신도시도 굉장히 중요한 곳이고.

 

김상훈 : 그렇죠. 거기도 서울 외곽 지역이지만, 경기도 북단이면서 남한산성 줄기의 끝입니다. 끝자락입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저희 9분 스님께서 고행을 하고 계시는 게 지금 현재 국민들이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들고 그런 상황이지만 부처님 힘으로 어떻게든 잘 극복이 되기 위해서 9분이 정진수행 하는 것에 대해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불자로서 감사하게 느끼고.

 

김봉래 : 예. 그렇습니다. 불교의 제반 영역들이 다 골고루 발전을 해야 되는 거기 때문에 수행 분야, 또 포교 분야, 교학에 대한 해석, 경전 번역, 기타 분야가 모두 발전을 해야 하는데, 봉은사가 강남포교 1번지라고도 많이 불립니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많이 오고 하기 때문에 강남 봉은사가 템플스테이 그런 부분도 굉장히 역할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외국인을 불교로 안내하는 데 있어서요.

 

김상훈 : 네. 지금 저희 절에 낮에는 거의 반 정도가 외국인들이 드나듭니다. 그 다음에 템플스테이도 외국인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고 저희 봉은사가 위치적으로 참 불자들이 앞으로 21세기형 맞춤형 포교를 봉은사가 일궈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위치와 그러한 선조님들이 물려준 이 지역을 터전을 활용 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강북에서는 조계사가 앞장서서 포교활동 하는 데 가장 선행을 했습니다. 앞으로 21세기에는 우리 강남의 봉은사가 앞으로 전 세계의 불자들을 위해 자리매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걱정이 많습니다.

 

김봉래 : 이제 걱정이 많다 이렇게 말씀 해주셨습니다만 38만 신도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하면 못 이룰 게 있겠습니까. 나라를 바꾸고 아마 세상을 바꾸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지금 봉은사가 내년에 어떤 주요 사업을 가지고 불자들을 맞이할지 또 궁금해요.

 

김상훈 : 저희가 제일 큰 사업이 앞으로 삼성로가 전체가 다 지상이 공원화가 됩니다. 현대자동차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래서 저희 봉은사도 앞으로 그 길이 다 공원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가 주차장이 대주차장 쓰고 있는데 거기를 지하주차장화하면서 위에는 문화공간으로 3000석 이상이 되는 그런 문화 관람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처럼, 서초구에 예술의 전당이 있고, 중앙청 앞에 있고 그 다음에 강남에 이제 삼성동에 저희 봉은사에서 가장 훌륭한 문화센터가 건립이 됩니다. 그럼으로 해서 정말로 우리 불교가 천년 고찰에 21세기형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불교의 문화와 21세기의 문화가 같이 어울려서 불교의 중흥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저희 봉은사는 기대가 큽니다.

 

김봉래 : 그런 면에서 이제 오늘 봉은사 신도회장님 모신 것은 그러한 봉은사의 발전에 저희 BBS 불교방송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방안을 찾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서.

 

김상훈 : 아무래도 그 쪽에 많은 문화나 행사나 그런 행사를 자동적으로 거기에서 하기 때문에 불교방송국이 거기에 분교라고 하나 방송국 지점을 그 쪽에 파견을 하나 만드셔서 생중계를 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하면 우리 전국의 우리 불자님들이 봉은사에서도 이런 아주 좋은 프로그램을 바로 받아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

 

김봉래 : 그렇죠. 이동 스튜디오 같은 게 설치가 되어서 바로 바로 생방송으로 불자님들께 생생한 내용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면서, 불교 발전과 또 회장님 개인의 신행 활동을 위한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 뭐 그런 것도 계시지 않을까요.

 

김상훈 : 저는 뭐 그냥 불자로서 하심(下心)하는 마음으로 항상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우리 불자들이 항상 신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히고 확장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자 지금부터는 이제 회장님 개인에 대한 말씀도 좀 더 여쭤보고 싶은데요. 우선 사업가로서 일가를 이룬 것으로 알고 있고요, 또 국민생활체육 전국택견연합회 회장직도 맡으신 것도 알고 있고, 또 기본적으로 고향이 경북 구미이신데 정치권에 대한 관심도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앞으로 내년 4월 총선이 있는데, 혹시 뭐 정치인으로서의 꿈도 있으신지요.

 

김상훈 : 예. 저는 뭐 원래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얼바인시티라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제가 이제 두 애들을 거기서 공부를 가르치면서 12년을 거기서 살았습니다. 다시 들어오게 된 동기는 정치 때문에 들어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출마하면서 미국 쪽에 제가 그 조직을 처음 맡았었습니다. 그런 계기로 내 고향에서 한 번 봉사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다시 역이민 한 거죠. 서울로 다시 들어와서 제 고향에서 정치를 했습니다. 뭐 여러 가지 그 당시에 사정이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하고 다시 이제 서울로 와서 봉은사 쪽이 강남이라서 제가 봉은사가 앞으로 커야 우리 불교도 뻗어나갈 수 있고 정말 국제적으로 이런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봉은사 신도회장으로서 강남권에 도전하는 게 맞다, 이래서 강남 을 쪽으로 제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습니까. 불자들이 이 방송을 잘 들어야 될 텐데요.

 

김상훈 : 감사합니다.

 

김봉래 : 또 사업가로서 일가를 이루신 것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한국석유유통연구소 이사장 직책을 맡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김상훈 : 제가 20대 후반 때 자수성가를 했습니다. 자본금 3000만 원 회사를 창립해서 자본금 500억 짜리 회사를 만들었죠. 그러니까 20년만에 코스닥 상장을 시켜서 10위권 안에 제가 저희 회사를 진입시켰습니다. 물론 저 개인도 에퀴타블에 100위 안에 들어가는 돈을 벌었지만, 돈이라고 하는 것은 뭐 공수래공수거입니다. 있고 없고 다 바람과 같은 건데, 그런 사업을 해봤고. 또 그래서 사업이라는 게 얼마나 힘들다, 또 창업이라는 것도 힘들다. 그리고 젊은 불자들, 젊은 청년 실업가들 볼 때 사업 정말 힘들다. 그러나 지극한 정성과 자식 돌보듯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제가 볼 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봉래 : 그 석유유통을 연구하는 곳이.

 

김상훈 : 제가 마지막 사업을 제가 석유화학제품을 운송하는 특수화물로서 대한민국에서 제가 제일 큰 회사를 운영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바닷가에 보통 부두에 창고업을 저희가 액체, 기체를 관리하는 창고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평택이나 목포, 여천 쪽에 저희가 기지를 확보해서 부두를 확보해서 창고를 하면서 수송을 했습니다. 그러다 저희가 DJ정부 때 석유가 이제 수입 자율화를 했습니다, 최초로. 기름이라는 게 사실 국산이 없지 않습니까. 다 해외에서 수입해 들어오는데, 결국 이제 석유, 휘발유, 경유 바로 쓸 수 있는 그런 부분을 자율화했는데. 저희가 최초로 석유 전자상거래를 정부에서 인정을 받아가지고 산업 자원부에서 예산도 받아서 사이트를 구축했고, 그래서 앞으로 기름을 전체가 다 모바일 시대로 오기 때문에 전자상거래로 모든 것이 이뤄질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미리 25년 전에 사이트를 깔고 석유수입을 했는데, 1년도 안돼서 수입 자율화를 막아버렸습니다. 결국은 비투비 구축한 것도 스톱하게 되고, 석유저장시설, 부두시설 해놓은 것도 거의 다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제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봤습니다. 그 여파로 국민들이 기름을 공급받는 데 싸게 살 수 있는 그런 기반을 잃어버리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된 걸로 봅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때 기름과의 전쟁이 터진 게 결국 그렇게 된 겁니다.

 

김봉래 : 그렇게 해서 어려움을 상당히 겪으면서 그 시절을 어떻게 극복을 하셨는지.

 

김상훈 : 제가 이제 미국으로 떠나면서도 많은 우리나라의 석유시장 구조 그러니까 유통구조가 매우 불확실하고 획기적으로 이렇게 일방적인 시장이 되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에너지 쪽에서 상당히 불편을 겪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비투비 시장으로 전자상거래로 전환시키고, 수입자율화를 활성화 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막혀지는 바람에 참 지금까지도 우리 국민들은 우리 기름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유스럽지 못하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고, 그래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 전자상거래라든가 유통에 대해서는 유일한 전문가가 제가 맞지 않겠느냐, 운송과 전자상거래와 창고보관업과 수입업을 병행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제 계속적으로 에너지 시장에 대해서는 연구 검토 해야 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전국택견연합회 회장직을 맡으신 적이 있는데, 요즘에도 뭐 개인적으로 택견을 수련하고 계신가요.

 

김상훈 : 택견은 사실상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유일하게 무형문화재로. 이게 왜 무형문화재로 되었느냐 하면 소림사의 무술, 일본의 가라테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택견이 되었다 하는 것은 역사적 증명이 확실합니다. 고구려의 벽화 중에 무용총이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옛날에는 무용총이라 했는데, 그게 택견의 품새입니다. 그래서 호국, 말하자면 우리 전쟁을 하기 위해서 아마 택견이 우리나라에 전래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호국무예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무예로서 왔는데, 일제시대 때 완전히 가라테한테 거의 멸종당하다시피 맥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김봉래 : 문화를 많이 파괴했죠. 일제시대에.

 

김상훈 : 그런데 체육 문화 중에서는 저희가 유일하게 택견이 고유무술이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무예라고 하고 일본은 무도라고 하고 중국은 무술이라고 합니다. 예자라고 하는 게 전 국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택견을 할 수 있는 게, 예술적인 것도 있습니다. 무술이지만 특히 유아 여성들한테 굉장히 좋은 운동입니다.

 

김봉래 : 아. 여자에게도 좋은가요.

 

김상훈 : 어떻게 보면 춤추는 형태인데, 원을 그리는 거지 직선을 긋는 게 아니거든요. 가라테는 직선으로 하지만 우리는 다 곡선을 가지고 이루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무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굉장히 무서운 무예입니다. 서재필 박사 같은 경우는 아주 고수입니다. 독립군 중에서도 그래서 독립군들도 만주에서 택견을 가지고 수련을 했습니다.

 

김봉래 : 그런데 이제 전통무예인 택견하고요, 마음수행을 강조하는 불교 간에 뭔가 좀 닮은 점이.

 

김상훈 : 그게 좀 합쳐지면, 옛날에는 합쳐졌었어요. 합쳐졌었는데, 갑자기 이제 심법이 끊어졌어요. 택견도 일제 36년 때 그리고 그 뒤에 일본의 검도, 유도, 합기도, 이런 게 들어오면서 우리의 고유인 택견이 사라졌죠. 징병, 징용 제일 먼저 끌려갔죠.

 

김봉래 : 그런 점에서 우리 문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김상훈 옛날에 다 군사들이 장군들이 그것을 이수를 했어야 하는 과목들 이었습니다.

 

김봉래 : 요즘 지덕체 교육 가운데 너무 덕이나 체 부분을 좀 경시하는 것에도 경종을 울리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마침 오늘이 동지거든요. 그래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는 시점인데, 또 지난 올 한 해를 돌아보시면서 또 내년에 계획을 세우실 텐데, 어떤 올해의 감회, 내년에 어떤 포부가 있다면 간단히 소개를 해주실까요.

 

김상훈 : 올해는 한 해가 어지럽게 지나갔습니다. 지나갔고, 앞으로 내년에는 좀 더 활기찬, 희망이 있는 우리 불자님들이 다 잘 살고, 마음의 건강과 가정에 모든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서 성취하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한 해는 우리 불자님들 더 좋은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봉래 : 특별히 종단이라든가 저희 불교방송 같은 언론, 그 밖의 단체 사부대중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김상훈 : 저희는 뭐 종단은 정말 우리 불자님들이 좀 더 신심을 확보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좀 더 넓고 오픈된 상황으로 가져가야 될 것이고, 그 다음에 포교하는 데 있어서 스님들은 좀 더 고차원적인 21세기형 그런 포교를 지향하는 그런 교육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고. 불우한 이웃 이런 부분에 있어서 종단 차원에서도 적극 다가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상훈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봉은사 김상훈 신도회장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오늘 김상훈 강남 봉은사 신도회장님과 함께한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1세기 문화 포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 주목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시간, 문화와 포교를 접목한 것을 화두로 해서 우리 사회의 밝은 앞날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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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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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y 2019-12-28 22:20:46

    여러 문제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택견일은 정리 잘 되셨는지요? 그리고 원래 불자신지, 정말 그런 길을 걸어 오셨는지 상당히 의문입니다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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