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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김호석 화백 “전통 한지(韓紙) 계승은 우리의 정체성(正體性)과 국부(國富)의 원천”
김봉래 기자 | 승인 2019.12.09 17:27

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선임기자

출연 : 김호석 화백

방송 : 12월 8일(일요일) 저녁 6시(BBS 라디오)

 

김봉래 : 네.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우리 전통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 누가 물어보면 어떤가요. 제대로 아는 것이 적어서 참 부끄럽다 이런 생각을 해본 일은 없으신지요. 전통 한지 분야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알고 있던 한지는 한지가 아니다, 한지의 원형을 밝히고 국가에서 어떻게 정책을 펴야 하는지 정책 과제도 제시하고 있는 연구 성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전통 한지>라는 책인데요.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는요, 평생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면서 그림의 밑바탕이 되는 한지 연구에도 전문가이신 김호석 화백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김봉래 : 예. 앞서 말씀드린 대로 김호석 화백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호석 : 안녕하세요.

 

김봉래 : 네. 교수님은 평생을 동양화를 그리셨죠. 수묵화가로 이렇게 활약하고 계시는데, 전통문화대학 교수도 지내시면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는데, 오늘 화백님을 모신 것은 전통 한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40여 년 간 이 수묵화의 재료인 전통 한지를 연구해 오신 것으로 아는데, 최근에 <한국의 전통 한지>라고 하는 책의 공동저자로도 참여를 하셨는데 먼저 이 책은 어떤 책인지, 다른 책자와 다른 특징은 어떤 것인지 그것 먼저 말씀을 주실까요.

 

김호석 : 예. 한지의 원료는 닥나무입니다. 닥나무 껍질인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닥나무 껍질은 조선시대 후기를 거치면서 일제시대 때 심하게 변형되어서 유전자적 요소들이 상당히 변질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종이와 지금 만든 인간문화재가 만든 종이를 비교해보면 물리화학적 특징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그 성과가. 그것이 이게 왜 그런가 하니 그 유전적인 요소부터 공부해보자 그래서 닥나무의 원형을 찾고. 두 번째는 제조 방식이 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 일본화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본화 되어있는 부분을 원형을 찾아서 국가에서 찾았으면 사용해야 되는데, 국가에서는 정책이 없고 사용하려는 의지도 없어서 이것은 문제가 있다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네 사람이 집필한 것입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 기록용 한지 연구모임 그 모임이 그런 건가요.

 

김호석 : 네. 그렇습니다.

 

김봉래 : 그래서 우리 화백님을 비롯해서 정부의 한지 전문연구기관이죠 전통문화전당 한지산업지원센터의 임현아 연구개발실장님, 닥나무 연구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이신 산림청 국립수목원의 정재민 박사님 그리고 공공정책분야에서 한지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박후근 행정지원과장님 이런 분들하고 이렇게 같이 스터디를 하신 것 같아요.

 

김호석 : 이제 원형을 찾다보니 같은 목적을 가지고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었는데요. 닥나무 연구에 그래도 학술적인 연구 성과를 가진 정재민 박사가 전국 각지에 있는 닥나무의 분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분포대로 몇 년 동안 답사를 같이 했고, 열매를 구하고 그리고 이파리를 가지고 엽록체 검사를 하고 유전자를 검사를 해서 결국 토종의 닥나무가 이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던 사람이고요. 그리고 종이를 만들었는데 이 종이가 조선시대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실험했던 사람이 임현아 실장입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국가에서는 어떻게 수요처를 창출하고 정책을 이반할 것인가는 국가기록원에 있는 박서기관이 가장 전문가여서, 그래서 제가 볼 때 저 빼고 세 사람은 사실은 직업적으로 최고의 정점에 서 있는 전문가들입니다.

 

김봉래 : 그럼 그 속에서 우리 김호석 화백님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김호석 : 저는 종이를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전통 한지만 사용하는 사람인데, 한지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던 역사가 조선 회화의 역사잖아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겸재 정선, 이런 분들이 조선 한지를 가지고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일제시대로 들어서면서 화선지로 바뀌어요. 화선지로 바뀌는데, 화선지라는 이름자체부터가 자존심이 상했어요. 화지, 일본 종이를 말합니다. 선지, 중국 종이를 말합니다. 화와 선을 따가지고 우리나라 종이라고 이름되어 있는 이 부분이 민족적인 자긍심에 흠집을 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봉래 : 화(和)는 일반적으로 일본을 뜻하는 화할 화자 조화할 때 화자죠.

 

김호석 : 예. 화할 화자.

 

김봉래 : 선은?

 

김호석 : 펼 선자.

 

김봉래 : 그것이 중국을 뜻하는 겁니까?

 

김호석 : 아니 중국에서는 이 선지(宣紙)라는 것 자체가 번지는 종이거든요. 그래서 삼수변에 펼 선을 쓰는데, 이것은 우리나라하고 달라요, 만드는 재료가. 짚을 사용합니다.

 

김봉래 : 아 짚.

 

김호석 : 그래서 질기기에는 조선 한지와 비교가 안 되죠.

 

김봉래 : 저희 학교 다닐 때는 한지보다는 화선지가 익숙하고 학교에서 숙제를 내줘도 화선지에 붓글씨도 써오고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한 마디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한지는 한지가 아니었다 하는 내용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된 거죠.

 

김호석 : 우리의 종이는 본질 자체가 엄청 질기고 다음에 두껍게 만들 수 있고, 희게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 특징이 있어요. 이 종이 위에 찬란한 역사를 유지했고 특히 한지와 관계 되어서 불교는 그 중심에 서 있죠. 왜, 조선시대 대부분의 한지의 생산은 사찰에서 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김호석 : 그래서 스님들이 종이의 차출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절이 텅텅 빌 정도로, 때에 따라서는 절을 비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임진왜란 전 후로 엄청난 착취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 사실 전해지고 있는 문서, 대부분의 국가기록 문서들은 거의 다 절에 있는 스님들의 생산품이라고 해도,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한지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부터라고 제가 들었는데.

 

김호석 : 예. 그렇습니다. 신라의 석가탑에서 나온.

 

김봉래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김호석 : 그것이 벌써 종이 자체가 1,000년이 훨씬 뛰어 넘을 정도의 보존성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이제 증명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삼국시대인데, 제일 최초의 것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백지묵서 이 두 가지를 보면 벌써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사용했던 종이가 우수했다. 왜? 그 종이를 지금 만들지 못합니다. 그 정도의 내절도와 인장강도를 가진 종이를 만들지 못합니다.

 

김봉래 : 아. 그렇습니까. 그럼 한지를 만드는 그 기술, 전통 기술이 단절되었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김호석 : 일제시대 때 일본화 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김호석 : 왜냐하면 지금 일본화 되어있는 방식으로 종이를 만들었을 때 비교해 보면 조선시대 유물과 차이가 두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까 제조방식을 추적해서 우리 네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문화재급 사람들을 만나서 하나하나 채록을 해 본 결과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제조 방식이 옛날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찾았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럼 한지의 원료부터 제작 과정이라든가 물리화학적 특성이라든가 이런 다양한 부분으로 구체적으로 여쭤봐야 될 것 같은데요. 먼저 원료에 대해서 말씀하시거든요. 굉장히 궁금해요.

 

김호석 :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드는데, 이 닥나무 껍질을 이제 중요한 게 가장 중성도가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에요.

 

김봉래 : 중성도요. 알카리성이나 산성이 아닌.

 

김호석 : 예. 중성의 종이라야만 천 년의 세월을 견딜 수 있는데, 이게 지금 우리가 신문용지나 A4 용지는 거의 산성화되어 있는 종이가 많아서 20년이 가면 그냥 사그라지죠. 바스라지고. 이것은 산성화 때문에 종이가 변질되는 거죠. 그러나 한지는 천연 잿물로, 나무나 고춧대, 볏짚을 태워서 천연 잿물로 만들었을 때, 산성도나 알카리성이 없는 PH 중성도에 가장 적합한 농도가 되죠.

 

김봉래 ; 아니 그럼 이 닥나무는 우리 고유의 수종인가요.

 

김호석 : 고유의 수종은 아닙니다. 닥나무는 연구 결과 지금까지 우리가 처음으로 책에서 밝힌 건데, 꾸지나무라는 동남아산 꾸지뽕과는 조금 다릅니다. 인도나 베트남 가면 가로수 많이 있어요. 그리고 그것도 누에를 먹입니다. 꾸지나무와 한국의 자생인 애기닥나무가 서로 수분을 일으켜서 만든 1대 잡종입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다문화 나무네요.

 

김호석 : 국제적인 나무입니다.

 

김봉래 : 이것을 원료로 해서 기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작을 하는 그런 과정을 아까 조금씩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조금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호석 : 그러니까 아까 좀 전에 말씀하셨던 닥나무를 통해서 F1을 만들었는데, 이게 조선시대 중후기에 들어서면서 열매가 열리지 않는 여성, 그러니까 암컷의 나무가 있다 보니 이것이 조화롭지 못하는 나무가 생산된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갖고 있는 폐해가 종이의 품질에 영향을 미친 거죠.

 

김봉래 : 조선시대에도 이미 그랬다는 거죠.

 

김호석 : 조선시대 후반기에. 그것을 찾는 작업을 위해서 우리는 닥나무 씨앗 두 그루를 수컷을 찾아서 씨앗을 지금 여주 작업실 옆에 심어놨습니다. 한 3년 뒤가 되면 다시 그 때는 열매가 열리니, 그 열매를 통해 다시 이제 닥나무 F1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역 추적을 하는 건데, 지금 제작 과정에서 제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표면처리거든요. 그러니까 그림을 오래 그리셨기 때문에 표면 처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고 아마도 그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하시고 거의 뭐 한지 표면 처리 방법에 관해서는 세계의 유일한 전문가다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표면처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죠.

 

김호서 ; 예. 그러겠습니다. 한지는 질기고 희고 두껍게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입니다. 왜냐하면 A4 용지를 접었다 폈다 하는 내절강도를 측정하면 10번이면 찢어집니다. 한지는 1,000번이 갑니다. 그리고 A4 용지를 가지고 인장강도를, 잡아당기면 바로 찢어집니다. 10의 힘만 가하면, 그런데 한지는 1,000의 힘을 가해야 찢어집니다. 그러니까 알기 쉽게 이야기 했을 때 질기고 아주 말할 수 없이 오래간다고 하는 장점인데, 그런데 그것이 갖고 있는 단점이 있어요. 단점은 뭐냐 보풀이 많아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인쇄를 할 때 번짐이 많다는 점입니다. 번짐이 많은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도침(搗砧)이라고 하는 디딜방아로 찧었다라고 하는 이 과정이 조선시대 때 존재했었습니다.

 

김봉래 : 도침이라는 것이 하나의 디딜방아.

 

김호석 : 디딜방아로 툭툭 찧는 것.

 

김봉래 : 찧는 것을 도침한다고 해요.

 

김호석 : 예. 도침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도침을 그냥 두드리면 섬유가 파괴되죠. 그런데 섬유가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종이를 달래가며 찧는 방식이 조선 시대 때 기록에 보면 종이 만드는 지장의 숫자가 100명이면 도침을 하는 숫자도 1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일제시대 때 종이가 번지는 것을 중심으로 학습을 받다 보니 번지지 않는 종이가 필요 없게 되었고, 그것이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화 되어 있는 것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도침 기술이 사라졌죠. 그래서 한지가 지금 너무 어렵고, 사용하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한지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연구 성과가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것이 표면처리의 중요성입니다.

 

김봉래 : 그래서 이제 화백님께서 표면 처리 방법을 개발하신 거죠.

 

김호석 : 개발한 것보다도 항상 원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원형을 지금 시대에 어떻게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 시켰느냐의 문제인데. 제 방식대로 전통을 바탕으로 지금 시대에 맞도록 제가 개발을 한 겁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한지가 또 다른 종이에 비해서 물리화학적인 특성도 좀 다르다 그런 내용이 들어 있더라고요.

 

김호석 ; 그렇습니다. 한지는 세계에서 제일 질긴 종이죠. 그 질긴 이유가 제조 방식 중에 보통 일본식은 가두어서 섬유 입자를 두드리는데, 이것은 좌우로 물을 흘리고 앞뒤로 흘리게 되면서 이 어떤 방향성, 그러니까 그물 구조가 되는 거예요. 말할 수 없이 질기죠. 세계에서 한지만큼 질긴 종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종이를 우리는 우리시대에 새로운 전통이나 새로운 어떤 문화로 창출해야 하는데 그 문화 창출은커녕 과거에 있는 전통조차도 사문화시키고 있다. 그 하나의 예가요, 국가에서 인정하고 있는 국가주요무형문화재가 한 사람 있습니다. 이 분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끝 부분에 그런 말씀하시더라고요. 인간문화재 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15년 동안. 그런데 정부에서 종이 한 장 사가지 않아 서운했다.

 

김봉래 : 이 중요무형문화재가 한 분이라는 것이 어느 분야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거죠.

 

김호석 : 한지장(韓紙匠)입니다.

 

김봉래 : 한지장. 그럼 이 분이 그야말로 한지를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분이라고 국가에서 인정받은 분입니까.

 

김호석 : 그렇습니다. 국가에서 한 사람 인정해주고, 국가에서 유일하게 그 분을 최고라고 인정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의 종이조차 국가에서 단 한 장도 사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민낯을 지금 보는 거예요.

 

김봉래 : 그러면 이 분이 만든 이 전통 한지장이 만든 이 한지가 그러면 우리 고유의 원형과 거의 일치한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아니면 좀 더 뭐랄까 추적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김호석 : 추적이 필요하다고 본인도 인정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만든 종이가 최고야. 조선 전통이야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여러 번 만나면서 자료를 제시하고 그러니까 사실은 내가 알고 있는 이것이 어렸을 때 일제시대 때 배웠던 방식이다라고 본인이 실토를 합니다.

 

김봉래 :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한지가 아니었다 뭐 이런 말씀을 하는 건데, 제가 또 관심을 갖는 부분은 전통 한지의 활용 분야거든요. 책을 읽어보니까 뭐 단순히 그림 그리는 용도만이 아닌, 첨단 과학의 용도로도 쓰이는 것 같더라고요.

 

김호석 : 그렇습니다. 외국에서는 한지가 우주선에도 들어가고 또는 스피커용으로도 들어가고 그러면서 과학적으로 활용가치가 높은데,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요. 국가에서 원형이 무엇이고 한지의 장점이 무엇이고, 한지의 활용도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전에 한지 원형을 찾기 위해서 국가에서 그 프로젝트를 시행한 적이 있어요. 같이 참여한 사람이 박후근 서기관인데 96~97%의 원형을 찾아내서 그것이 독립유공자나 또는 국가에서 수여하는 대통령 포상에 사용하는 것을 법제화시켰어요. 그래서 이제는 민간에서 만든 한지를 국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활용처를 찾았다 했는데, 이게 정권이 바뀌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즉 한지의 수요처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예산을 만들어주고 거기에 따른 새로운 인원을 배치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활용처를 찾아야 계승, 발전되는 건데, 그렇지 않고 만들어 놓은 것조차도 사문화시킨다면 계속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족문화는 끊임없이 이제 널뛰기를 하는 경우가 되겠죠.

 

김봉래 : 네. 그래서 전통한지 진흥을 위한 실천방안 이런 것을 책에도 한 9가지 정도 제가 보니까 제시가 되어 있더라고요.

 

김호석 ; 박후근 서기관이 했는데요. KS마크 규격부터 다시 설정해라, 그리고 국가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국보나 보물급의 문화재를 수리할 때도 반드시 전통 한지와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한다는 것을 법제화해라. 그런 것들이 없으면 지금처럼 그냥 단가가 싼 것으로 문화재를 수리한다고 복원한다는 미명하에 자칫 잘못하면 파괴시키는 일이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국보를 수리하는 데 보니까 뒷부분에 한지를 쓰기는커녕 양지 벽지를 넣어서 수리한 경우를 보고 국정감사에서 밝혀졌지만 깜짝 놀란 일들이 발생합니다.

 

김봉래 : 네. 저도 그렇고 청취자들도 그렇고 이 전통 한지가 어떻게 국보를 수리하는 데 쓰이느냐 궁금하거든요. 잘 모르거든요. 그 부분을 좀 설명해주실까요. 예를 들어서.

 

김호석 : 제가 알고 있는 자료로서는 원래 그림의 유사한 성분을 가지고 인장강도 내질강도, 색깔을 가지고 수리를 해야 되요. 그런데 법제화 되어 있지 않다보니까 하나의 사업적 일환으로 싼 종이를 사서 쓰는 게 사업하는 사람들의 속성이겠죠.

 

김봉래 : 아니 그러니까 어떤 문화재를 수리하는 데 전통한지가 들어가느냐 그 부분을 물어보고 싶은 거죠.

 

김호석 :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현실입니다.

 

김봉래 : 그러면 원래는 어느 문화재를 수리하는 데 한지가 사용이 되어야 하는 겁니까. 예를 들면.

 

김호석 : 불화, 다음에 전적류, 모든 지류에 대한.

 

김봉래 : 아 지류. 종이류.

 

김호석 : 지류문화재는 전적으로 종이가 사용되어야 합니다.

 

김봉래 : 그런데 제가.

 

김호석 : 일본식으로 만든 종이가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김봉래 : 그렇군요. 아주 중요한 포인트 말씀해주셨습니다.

 

김호석 : 또 하나는요 석가탑에 나오는 무구정광다라니경 그것 수리를 일본에 가서 했잖아요. 그렇죠. 근데 바탕은 또 일본 종이인 화지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얼굴에 속은 일본 것들이 숨어 있는 거죠.

 

김봉래 : 그런데 또 제가 책을 보니까 이 전통 한지가 종이류에만 쓰이는 게 아니고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첨단 우주선에도 한지 내지는 한지 원료가 쓰인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다른 분야에서 한지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런 것이 좀 궁금해서요.

 

김호석 : 섬유나 옷 만들고 양말 만들고 그 다음에 닥나무를 가지고 여성분들에게 제일로 안정감 있다고 하는 화장품을 만들고.

 

김봉래 : 화장품까지도 종이로 만드나요.

 

김호석 : 그렇습니다. 닥나무 뿌리로 만듭니다.

 

김봉래 : 아. 닥나무 뿌리로.

 

김호석 : 그 다음에 병이 있는 사람들은 닥나무의 즙액을 먹고 그런 것들이 의학적으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데, 의학과 산업화학 이런 부분에 아직 원형이 무엇인가를 찾지 못하니 그게 진출하지 못하는 상황이죠.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그래서 이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국가 정책적으로 어떻게 한지를 활용하느냐 부분에 있어서 이러한 의견들이 많이 반영이 되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군요.

 

김호석 : 우리가 못산다 라고 생각하는 착각하는 네팔 같은데 가더라도 호텔에 가면 네팔 고유 종이로 이게 메뉴판이 설정되어 있고, 그 다음에 휴지도 고유종이로 호텔에서 이렇게 내놨어요. 그러면 엽서도 고유 종이로. 그것은 문화를 파는 거잖아요. 우리나라는 한지를 가지고 활용도 있게 사용한다는 것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김봉래 : 네. 그래서 아까 그 한지와 사찰과의 관련성을 조금 말씀하셨거든요. 용도가 또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단지 경을 이렇게 인경(印經)해서 복원하는 그런 것만이 아니고 사찰 건축에도 보면 다양하게 한지가 활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김호석 : 그렇기는 한데요. 사찰에서 만든 조선시대의 종이를 대부분 사용하는 것이 국가의 공식 문서, 외교문서, 그 다음에 국가에서 편찬하는 간행사업에 전적으로 사용되었죠. 사실 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굉장히 극소수입니다. 그러니까 절에서 사용한 이 한지가 대한민국의 역사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그만큼 종이의, 그러니까 밤하고 종이는 사찰이 아니었으면 거의 공급하는 데가 없었습니다.

 

김봉래 : 밤. 먹는 밤.

 

김호석 : 예. 그것은 국가에서 관리하죠. 밤나무와 한지. 그래서 대한민국의 문화의 여러 가지의 근본 중에 사찰이 담당했던 것들이 너무 큰데 사실 불교를 가까이 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 부분이 알려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어딘가에 사장되어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거죠. 우리는 자부심을 느끼고, 야 불교문화가 정말 한국문화의 근간을 이뤘고 세계문화유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구나 이 부분을 조금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김봉래 : 좋게 말하면 국가에 기여를 한 건데, 안 좋게 이야기하면 좀 착취를 당한 그런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김호석 : 착취를 당했죠.

 

김봉래 : 그러니까 아까 조선 시대를 많이 이야기했지만, 천민 이하의 대접을 받은 스님들 위상 아니었습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고려시대가 그리워질 수밖에 없는데, 선생님께서 동양화, 수묵화를 많이 그리셨지 않습니까. 그랬는데 제가 고려시대가 그립다고 한 것은 고려 불화가 세계적으로 정말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고려불화에 대해 해주실 말씀은 없으실까요.

 

김호석 : 그 조선시대 불화와 고려시대 불화는 많이 다릅니다. 고려불화는 보는 순간에 섬려함과 장엄함이 육박해 들어오는데 조선시대 불화는 오종종하고 작게 서사적인 구성이 중심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고려불화는 무늬와 장식이 말할 수 없이 그 대단한데 조선시대 불화는 다르죠. 그 이유는 아마 저는 고구려와 고려라고 하는 유목민족에 대한 어떤 특징이 그렇게 표현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들고요. 또는 고려의 문화를 찬란하게 만들었던 것 중 하나는 한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감지(紺紙)를 재현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김봉래 : 감지요.

 

김호석 : 감지 사경(寫經)인데. 감지의 금사경, 은사경이라는 고려시대 불교문화재 중에서 굉장히 핵심적인 부분에 해당합니다. 감지 사경을 현재 재현 못합니다.

 

김봉래 : 아하. 감지는 뭘로 만드는 겁니까.

 

김호석 ; 감지는 쪽으로 만드는 건데, 우리가 일본시대 때 곤색, 곤색, 그렇게 이야기 하죠. 이게 감을 일본어로는 곤색이라고 합니다. 사실 곤색이라는 말이 일본화 되어있는 일본식 표기죠.

 

김봉래 : 감색이라고 표현해야 되는군요.

 

김호석 : 감색이라고 잘못 표현하면 먹는 감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유명사가 감지고 또는 쪽색, 쪽빛, 감청색 이렇게 이야기 하죠. 불교에서 그것을 염색을 해서 그 위에 금이나 은으로 사경했던 것들이 화엄경변상도 이런 것들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그것을 재현조차 못하는 것을 보면 고려시대 때에 고려 한지 고려시대 때 한지를 재현하는 것이 한지 연구자의 숙제입니다.

 

김봉래 : 아. 그렇겠네요.

 

김호석 : 그 정도까지 과학이 발달하고 사람이 발달하고 우주시대가 열렸는데도 아직 우리는 고려 때의 종이를 생산 못합니다.

 

김봉래 : 예를 들어서 우리가 신라시대 때 성덕대왕 신종, 그 뭐라고 하죠. 고리를 거는 막대 있지 않습니까.

 

김호석 : 막대가 아니고, 용 모양으로 된 고리.

 

김봉래: 예. 용뉴(龍鈕)를 통과하는 고리. 그것을 재생을 못해서 예전 것을 끼워놨다고 하지 않습니까.

 

김호석 : 부러진다고 해요. 그러니까 접철(楪鐵)의 기술이 사라진 거죠.

 

김봉래 : 이렇게 보면 정말로 우리가 우리의 어떤 우수한 전통문화를 다 잃어버리고 자꾸 밖으로 밖으로만 찾았던 것 같아요. 안에 충분히 갖춰져 있는데, 그것을 다 발견하지 못하고.

 

김호석 : 문제는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안에 있는 전통문화의 우수성이 너무 많은데 알지도 못하면서 외국 것을 너무나 빨리 받아들이고, 실용성이라는 측면으로 민족문화를 말살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잘 모르면서 한지의 원형을 모르면서 외국에 가서 팔러만 다니거나 한지를 자랑하면서도 지자체에서는 한지를 자기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우리 문화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하는 요소다라고 생각하고요. 절집에서도 전통 한지를 제대로 발굴하여 만약에 국가에서 만들지 못하면 우리 절집에서라도 만들겠다고 생각을 바꿔야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최고의 종이를 써서 천년 뒤에 불교문화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면 저는 전통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 종단의 역할도 중요한데요. 조계종에 백년대계본부가 있지 않습니까. 백년을 내다보면서 우리가 뭘 할지 계획을 세우고 하는 곳인데, 거기에 또 문화창달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거기서는 동향이 좀 어떻고 거기서 우리 화백님의 역할이 궁금해요.

 

김호석 : 제가 부족함이 많지만, 문화창달위원회에 위원으로 들어와서 할 요소가 있다고 해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불교문화에 대한 근본, 그리고 불화나 전적류에 대한 것이 한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발언을 이제 해달라고 저를 불렀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문화창달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현재는 오대산에서 한 번 했습니다만 그 때도 제가 그 이야기를 했는데, 긍정적입니다. 즉 불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역할 이것이 지금 시대에 우리는 21세기를 대비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한지 분야만 보더라도 불교에서 적극적으로 관심 가지고 새롭게 종이를 만드는 기술자를 양성하거나 종이를 만들 수밖에 없는 실험을 갖추어서 최고의 종이를 사용하는데 앞장서겠다, 이런 점을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고 그렇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문화가 그 속에 깃든 어떤 문화 정신, 그 정신이 중요하죠. 그 정신을 잘 가꾸고 선양할 때 그것이 곧바로 또 국부(國富)하고도 연관이 될 것 같아요.

 

김호석 : 그렇습니다. 정신이 빠진 껍데기는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한지가 왜 필요하느냐에 대한 문제, 불교가 이 시대에 왜 필요하냐는 문제는 그 근본정신을 망각했을 때 근본이 떠나면 형해화되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이 안 됩니다.

 

김봉래 : 예. 우리 김호석 화백님은 조선시대 전통 초상화 기법을 오랫동안 또 연구하시고 현대적으로 계승한 분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국내 인물 초상화분야에서 아주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그래서 성철 큰스님이나 법정 스님 비롯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그린 인물화로도 유명한데, 고려불화처럼 뒤에서 그리는 배채법(背彩法) 그게 어떤 건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김호석 : 사람은 그림을 그릴 때 전신사조(傳神寫照), 전신을 그리는 게 최곱니다. 전신을 그리지 않는 그림은 그것은 가짜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눈썹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조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전신을 담지 않은 그림은 누가 내가 전신을 그리지 못하는데 누가 그 스님을 보고 존경하고 절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안 되거든요. 그런데 고려불화에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뒤에서 그림을 그려서 앞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기법입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유지된 것 중에서 가장 꽃을 피웠던 고려불화 중에서 찬란하게 아주 드러낸 거죠. 그 기법으로 스님들의 진영을 제가 재현하고 활용한 거죠.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러니까 그림을 몇 번 그리고, 그 위에 또 그리고, 그려서 뭐 6겹, 7겹이 되는데, 첫 번에 그렸던 게 다 살아나서 그것이 조화를 이룬다 그런 기법입니까?

 

김호석 : 아닙니다. 뒤에서 물감을 뒤에서 칠해서 앞으로 우러나오게 한다는 거예요.

 

김봉래 : 아 뒤에서.

 

김호석 : 그게 고려불화의 핵심입니다.

 

김봉래 : 아. 그렇습니까. 그것은 처음 알았네요.

 

김호석 : 그러니까 뒷면에서 백번 이백 번을 발라서 앞으로 은은하게 드러나는 피부 질감을 드러내는 거죠.

 

김봉래 : 송구합니다. 제가 정말 무식합니다.

 

김호석 : 저는 스님들 그리면서 스님의 겉모습은 물론이고 그 스님이 일궈냈던 정신적인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 부족하지만 온 힘을 기울인 것은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종정하셨던 혜암 큰스님을 모셨는데요, 그림을 그리면서 제가 존경하는 마음이 없이 그림을 그릴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주로 비단이 아니라 오직 전통 한지로만 스님들 그림을 그리고 또는 앞에서 그리는 게 아니라 고려시대 고려불화의 전통을 채택하여 뒤에서 그리는 배채법을 꾸준히 사용하고, 스님들의 올곧은 수행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최대한 연구해서 그려보려고 하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김봉래 : 어느덧 시간이 다 돼서 오늘 시간을 좀 아쉽게 마무리해야되는데요. 오늘 혹시 전통 한지 관련해서 우리 전통 문화 관련해서 못다 한 말씀 계시면 한 말씀 주실까요.

 

김호석 : 우리 것은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남이 지켜주지 않습니다. 이 한지 속에는 흐르는 물속에서 흘려보내고 인간이 고통을 감내하면서 찌어서 만들었던 아주 순결한 정신들이 남겨있는데, 이 정신을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은 귀하게 여겼고 거기에 인간의 인격도야와 인격을 완성시킨 그런 글들이 쓰여 있는 거잖아요. 그것을 통하여 과거의 거울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사는 것인데, 우리가 우리를 지키지 못하고 우리를 모르고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구가할 수 있겠느냐. 그런 점에서 한지에 대해서 이렇게 한지를 가지고 불교방송에서 관심을 가지고 밀도 있게 인터뷰를 해주신 것에 대해서 정말로 연구자로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더 열심히 연구를 진행하고 원형을 찾는데 노력하겠습니다.

 

김봉래 : 네. 김호석 화백님 오늘 방송 출연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김호석 : 네. 고맙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오늘 김호석 화백님과 함께한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오늘 김화백님과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가 얼마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지 통절하게 깨달았습니다. 한지는 요즘처럼 추운 계절에만 만들 수 있다고 하네요. 추위를 이긴 매화향이 강렬하듯이 한지가 담고 있는 끈질기고 강렬한 문화 정신을 우리가 잘 계승해야만 우리의 밝은 미래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김봉래 기자  kbrbu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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