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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30여 년 전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합동 위령재가 화성 용주사에서 봉행됐습니다.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유가족이 어렵게 참석한 가운데,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 유족과 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자리였습니다.

권송희 기자가 위령재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 기자 >

관음전 한 켠, 신중단에는 열한 명의 영가 위패가 놓였습니다.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들입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합동위령재가 조계종 제2교구 본사 화성 용주사에서 봉행됐습니다.

합동위령재가 열린 것은 1차 사건이 발생한 지 33년 만에, 이번이 처음입니다.

<인서트1> 성법스님 / 화성 용주사 주지
“미제로 끝날 것을 다행하게도 범인을 밝혀내게 됐습니다. 특히 유가족의 가슴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습니다. 인연 있는 국민들이 가슴 아프게 생각한 것이 30년입니다. 그것이 오늘 위령제를 통해서 모두가 다 위로가 되고 또 영혼들이 한 맺힌 영혼들이 한을 다 풀어서 좋은 곳으로 왕생하기를”

위령재는 피해자들의 영혼을 법단으로 모셔오는 시련의식을 시작으로 영혼을 대접하고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는 대령과 관욕의식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어, 용주사 본말사 주지 스님들이 천도염불을 집전하고 추도사와 헌화, 살풀이, 봉송 등으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습니다.

위령재에는 현재 실종사건으로 분류돼 있지만, 이춘재가 살해했다고 자백한 초등학생 피해자의 유가족과 희생자들의 지인들이 참석해 경내가 더 숙연해졌습니다.

<인서트2> 현장음 (추모곡 ‘내 영혼 바람 되어 중’)

위령재가 진행되는 동안 꽃다운 스물세 살 억울하게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던 친구들의 얼굴에선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실종 당시 여덟 살이었던 자식을 끝내 찾지 못한 아버지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 울분을 터트렸습니다.

<인서트3> 화성 실종 초등생 김 모양 아버지
“30년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경찰들이 은폐 해가지고 시체까지 다 없애버렸어. 나는 지금 시체도 못 찾았어요. 어디에 감추고 숨겨놨는지, 말이 되는 일이에요? 경찰이 두 번 죽이는 거예요. 두 번”

김 양은 지난 1989년 학교에서 돌아오다 실종됐는데, 당시 경찰이 ‘단순 가출’로 결론을 내린 데다 실종 5개월 뒤 인근 야산에서 김 양의 유류품이 발견했다는 사실조차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경찰을 대표해 참석한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은 머리 숙여 사죄하고,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습니다.

<인서트4> 배용주 / 경기남부경찰청장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많은 희생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사과 함께 큰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고인들이 편안히 눈 감으실 수 있도록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고, 당시 수사 과정에 과오가 있었다면 그 역시 사실대로 숨김없이 밝히겠습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부터 6년간 화성 태안 등에서 발생했으며, 10대 초등학생부터 70대 할머니까지 모두 열한 명의 여성이 희생됐습니다.

<인서트5> 정옥자 / 경기도 화성시 진안 5통
“이렇게 위령재를 지내주니까 마음이 너무 좋고, 언짢았던 것 오늘로써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는 아이들도 잘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고 그런 심정이에요. 그동안은 불안했지요. 항상 또 무슨 사건이 날까. 이 범인 잡기 전에도 엄청 불안했어요.”

[스탠딩]
합동 위령재에 참석한 사부대중들은 지난 30여 년간 그리움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을 유가족을 위로하고 한 맺힌 피해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습니다.

화성 용주사에서 BBS 뉴스 권송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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