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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처음 선보인 한글 불교 경전 해설서, 바로 월인석보인데요.

한글 창제와 보급 과정에서의 불교의 역할과 월인석보 간행의 의미를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돼 관심을 모았습니다.

류기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한글 창제의 역사적 배경과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는 개봉과 동시에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신미대사가 세종을 도와 한글 창제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영화 내용을 둘러싼 갑론을박 속에 영화는 개봉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한글 창제 과정의 역사적 진실과 당시 불교계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규명은 불교계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겨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불교계를 대표하는 학술 계간지 불교평론은 '나랏말싸미와 신미대사'를 주제로 열린논단을 열어, 세종이 창제한 한글의 보급 과정과 불경 언해서인 월인석보 간행의 의미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정진원 /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 "훈민정음과 월인석보는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지금 말하는 윈윈전략, 불교에서 말하는 상생의 원리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조선시대에서 지금 시대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걸작품이다..."

세종의 둘째 아들인 세조에 의해 1459년 간행된 조선 최초의 한글 대장경 '월인석보',

훈민정음 반포된 지 1년도 안 돼 간행된 책으로 부처님의 생애를 다룬 '석보상절'과 부처님의 진리를 찬탄하는 '월인천강지곡'을 합편해 탄생한 책입니다.

당시 한글은 유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장될 운명에 놓였고, 이에 왕실과 불교계는 손을 잡고 한글을 사용해 부처님 생애를 정리한 '월인석보'를 펴내 보급했습니다.

왕실과 불교계의 이러한 상생의 움직임은 세조 때 불경편찬기구인 간경도감에서 많은 불교 경전 언해본과 해설서가 쏟아져 나온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진원 /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 "조선 건국 초기의 기틀을 어떻게 하면 다질까, 그리고 불교의 가피를 입어서 어떻게 하면 튼튼하게 토대를 마련할까...이런 모든 염원을 담은 일종의 발원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월인석보 서문에 나오는 편찬위원 명단을 보면 모두 11명 가운데 신미대사를 포함한 10명이 스님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훈민정음에는 신미대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등장하지 않지만, 월인석보에는 자문단으로 신미대사에 대한 기록이 분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이는 한글 보급과 대중화에 당시 불교계가 많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됩니다.

[정진원 /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 "자문단의 이름은 처음에 혜각존자 신미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냅니다. 판선종사 수미 쭉 나오다가 마지막에 김수온...훈민정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월인석보에는 이렇게 아주 명백하게 자문단으로..."

훈민정음으로 된 간행본의 결정판인 월인석보는 우리 한글의 우수성과 조선 초기 불교문화의 진수를 잘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 유산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입니다.

월인석보가 편찬되면서 한글은 진화와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고, 이는 조선 초 왕실과 불교계의 협력과 상생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귀중한 자료로 그 가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BBS 뉴스 류기완입니다.

영상취재: 장준호 기자

영상편집: 최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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