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 뜨지 않는경우 여기를 클릭하여주세요.

 

573돌 한글날을 맞아 '불교계 한글 창제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올해 상영된 영화 '나랏말싸미'를 계기로 한글 창제 과정의 역사적 진실과 당시 불교계의 역할을 올바르게 규명하고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한껏 높아졌는데요.

BBS 뉴스의 한글날 기획보도 '한글 창제의 진실을 찾아서' 두 번째 리포트입니다.

류기완 기자입니다.

 

영화 '나랏말싸미' 개봉 직후.

한글 창제 과정을 둘러싼 여러 가설이 고개를 듭니다.

특히 신미대사 역할론이 논쟁의 한가운데 서게 됩니다.

현존하는 어떤 역사 기록에도 신미대사와 한글 창제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님들이 한글 창제 과정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했음은 당시 시대 상황과 정치적 역학 구조를 미루어 볼 때,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불교계와 학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자현 스님 /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 "불교 조력설이고요. 문자를 만드는 데 있어서 판단자, 그러니까 왕이라든지 이런 사람이 판단하고 그다음에 진행시키지 않으면 그것은 절대 작업이 진행될 수 없어요...불교가 언어나 문자를 만들어서 새롭게 판을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래서 언어나 문자를 창제한다고 하는 것은 세종이 기획한 게 맞고..."

조선의 개국 과정부터 이어져 온 왕권과 신권의 대립,

이로 인해 문자 개혁을 통해 왕권 강화를 꿰했던 세종은 신권 강화를 위해 한글 창제를 반대한 사대부들과 함께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세종은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자신의 혈족, 범어, 파스파 문자 등 언어 능력이 탁월한 불교계 학승들과 손을 잡고 비밀리에 한글 창제 작업에 돌입하게 됩니다.

한글 창제의 배경에는 세종의 애민, 위민 정신뿐 아니라 평민들을 성장시켜 한자를 기반으로 권력을 극대화한 사대부들을 견제하려 했던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종이 음운에 아무리 뛰어난 왕일지라도,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는 작업에는 그 일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집단 지성'이 존재했을 것이고, 그 역할을 담당했던 한 축이 불교계였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는 이유입니다.

[자현 스님 /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 "그 정도의 위치나 능력이 되는 군주가 세종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A부터 Z까지 할 수는 없어요...연구팀이 집단 지성이고, 집단 지성을 이끄는 사람이 신미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람 아니면 세조와의 역학관계나 그 당시 불교계의 위치 등을 고려해 봤을 때 그 사람 아니면 사람이 없어요."

불교계는 세종의 이런 뜻을 받들어 한글 창제에 핵심 조력자로 나섭니다.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급격히 위축된데다 귀족 종교 이미지로 잃어버린 민중의 신뢰를 회복할 계기가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훈민정음 반포 후 가장 먼저 부처님의 생애를 다룬 '석보상절', 부처님을 찬탄하는 '월인천강지곡'이 제작됐고, 세조 때 간경도감에서 많은 불교 경전 언해본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고영섭 /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 "불교인들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아주 약합니다. 고려에 비해서. 특히 조선 건국 초, 전기에만 하더라도 사실은 불교의 모습이 제법 있었다고 보이는데요..."

하지만 한글 창제의 핵심 조력자였던 당대 학승들이 기록 한 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이른바 '불교계 한글 창제설'로까지 역할론을 확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불교계가 한글 창제의 핵심 조력자로 활약한 사실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는 영화 '나랏말싸미' 역사왜곡 논란 후 불교계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졌습니다.

BBS 뉴스 류기완입니다.

영상취재: 최동경 기자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