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BBS 인터뷰 지방사 인터뷰
박연수 직지원정대장, "故 민준영, 박종성 대원 고향의 품 안겨"
김정하 기자 | 승인 2019.08.21 11:10
박연수 직지원정대 대장이 故민준영, 박종성 대원의 추모비 앞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 대담 : 박연수 직지원정대 대장
■ 진행 : 이호상 기자
 
 ▷이호상 : 직격인터뷰시간입니다. 여러분 혹시 직지원정대라고 들어보셨습니까? 10년 전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히운출리 직지루트를 개척하다 실종됐던 청주 출신의 직지원정대 소속 고 민준영, 박종성 대원의 유해가 1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우리 청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당시 직지원정대 대장이었죠, 산악인 박연수 대장을 저희가 연결했습니다. 박 대장님, 나와 계시죠, 안녕하십니까?

▶박연수 : 안녕하세요. 박연수입니다.

▷이호상 : 네 대장님,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후 이뤄진 귀향이었습니다. 고 민준영, 박종성 두 산악인 유족의 품, 우리 청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직접 현지에 가서 유해를 모시고 왔는데, 심정은 어떠셨나요?

▶박연수 : 다행이고 그렇긴 하지만 사실 가슴은 먹먹한 건 있죠. 머리로는 다행이고, 기쁘고, 가슴으로는 먹먹하고, 아프고, 두 가지가 공존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호상 : 두 분의 유해는 어디에 안치가 됐습니까?

▶박연수 : 저희들이 네팔에서 부검을 하고 화장을 했습니다. 화장을 한 다음에 국내에 들어와서 각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는데요. 한 친구, 민준영은 청주시 남일면 양촌리로 모셨고, 박종성이는 청주 가덕 요셉공원으로 모셨습니다. 

▷이호상 : 네, 두 분 이제 영면에 드셨군요. 많이 알려지긴 했습니다만, 고 박종성, 민준영 두 대원이 어쩌다가 히말라야에서 실종이 되신 건지, 아픈 기억이시겠지만 실종 당시 상황을 설명 좀 해주시죠.

▶박연수 : 네, 저희들이 다 추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겠습니다만, 잡아논 베이스캠프에서 23일에 서로 잘 갔다오라고 저랑 마지막 악수를 하고 등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4일 날 이 친구들이 바위에 매달려 비박을 했고요, 저는 4,700~4,800m되는, 그러니까 우리가 개척하려고 하는 직지루트가 바라보이는 그 곳에 저는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8월 25일, 8시 15분경 무전을 했는데요. 비박하고 나서 컨디션은 아주 양호하고 진행속도도 좋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바위벽에 매달려 무전을 하는 것이 좀 쉽지 않으니 등반이 끝나고 나서 저녁에 무전 드리면 어떻겠냐고 저한테 요구를 해서 저는 “아 괜찮다, 그렇게 해라.” “무전 계속 켜놓고 있을 테니, 필요하면 언제든 무전을 해라”라고 마지막 교신을 했습니다. 

▷이호상 : 그 때가 시간이 언제였죠? 아침이었나요?

▶박연수 : 아침 8시15분께요.

▷이호상 : 네, 그때부터 무전을 대장님께 하고 등반을 시작하겠다는 그런 취지였던 거죠?

▶박연수 : 네 그렇죠. 그리고 12시부터 안개가 끼기 시작하고, 제가 이제 오후 4시, 이때쯤 베이스캠프로 내려갔습니다. 그날 저희가 진행하려고 했던 속도가 약 6,000m 아래 정도에서 그 다음 정상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또 밑에서 준비할 것도 있고 해서 내려왔는데, 저녁 7시부터 계속 무전이 안와서 그 때부터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9시 넘어가면서 저희가 무전을 해도 안 받고 그래서 비상사태에 들어가게 된 거죠.

▷이호상 : 알겠습니다. 그러면 현지에서 두 대원이 주검으로 발견이 됐지만, 이 마저도 기적적인 일이다라고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발견이 됐는지도 설명 좀 해주시죠.

▶박연수 : 사실 10년 만에 발견이 되어서 우리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다는 자체가 기적이었었는데요. 아픔이 있지만 두 명이 얼음 속에 부검 결과 나란히 있었다는 게 나왔고요. 그리고 지상으로 도출된 게 얼마 안됐다 그리고 지금 못 찾았으면 바로 부패하고 사그러들어 없었을 거다 라고 얘기하는데요. 그렇게 발견됐던 요인은 저희들이 바위벽 출발한 데 150M나 이 정도 아랫부분에서 발견됐는데 지금 기후 변화를 빙하가 좀 녹고 그러다보니까 밑에서 빙하가 녹아 올라오고 경사진 빙하 부분이 내려가면서 목동이 거기로 갈 수 있는 조건이 형성이 된 거에요. 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작년에도 물론 갈 수 없었고 올해 갔는데 봤다고 하는 건데요. 목동이 갈 수 있는 조건이 형성이 됐고 그래서 발견이 됐고 또 저희들이 바로 처음에는 지난 7월 23일에 연락을 받았는데 산악연맹 산악협회 해서 급히 사람을 보냈거든요. 그 짧은 기간에 이제 수습을 할 수 있었던 게 더 녹아서 밑으로 유실이 안 되게 할 수 있는 조건. 이런 것들이 모든 게 맞물려서 두 분을 모시고 올 수 있는 조건이 됐습니다.

지난 2009년 히말라야 안나프루나에서 실종된 故민준영, 박종성 대원 생전 모습.

▷이호상 : 그야말로 기적적 이었던 거군요. 양치기 목동에 의해서 처음 발견됐다는 소식이고... 지금 두 분께서 故민준영 박종성 대원이 원래 히말라야 파티스탄 차라쿠사 지역인가요? 이름 없는 히말라야 한 봉우리를 이미 정복을 해서 우리가 한글 이름으로 직지봉 이라는 이름을 새겨놓은 두 분이었죠?

▶박연수 : 그렇죠. 저희들이 2008년도 6월 16일 날 현지 시간 4시 50분에 대원들이 정상에 오르고요. 저희들이 등반이 끝나고 나서 마을에서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이런 분들이 직지봉으로 불렀으면 좋겠다 라는 탄원서를 받아서 파키스탄 산악연맹에 가서 계속 서로 협의를 해서 직지봉으로 하기로 협의를 한 다음에 그 다음에 7월 27일 날 1시부터 5시까지 파키스탄 국가지명위원회가 열려서 최종으로 'JIKJI Peak'으로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호상 : 지금도 한글 이름이 분명하게 히말라야 한 봉우리에 새겨진 거고요?

▶박연수 : 그렇죠. 영어로 JIKJI Peak 이고요. 우리가 부르는 건 직지봉 이렇습니다.

▷이호상 : 이렇게 훌륭한 산악인이었고 정말로 등반 과정이 뛰어난 산악인이었는데 두 대원들이 개척한 곳이 그렇게 험악한 직각에 가까운 루트였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박연수 : 저희들이 알파인 등반에 입각한 등반 하자고 서로 협의해서 만들어진 등반대거든요. 그래서 더욱 험난하고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쪽으로 그리고 셀파나 조력자의 도움 없이 대원들의 힘으로만 하자 그래서 대원들 스스로 자연의 어려움 고난 이런 걸 스스로 겪어내고 정상에 오르자 라는 거였었거든요. 정상에 무조건 오르는 결과 보다는 과정. 등반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할까 하는 과정을 충실하자는 등반대였기 때문에 저희들이 선택한 건 거의 바위벽 1000M가 바위벽으로 깎아지는 이런 바위벽의 새로운 곳을 개척한 곳이라 난이도나 이런 부분이 대단히 어려웠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호상 : 정말 대단하십니다. 앞서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주검으로 돌아온 것 자체만으로도 사실 기적이라고 하고 있는데 현재 히말라야에서 실종 되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우리 산악인들이 100여명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박연수 : 네. 대사관에 의하면 아직 실종되어 있는 우리 100명이 있다고 하는데요. 사실 잘 아시다시피 히말라야에서 처음에 사고가 났을 때 그 순간에 발견한 다음에 그 다음에 발견 되서 모시고 오는 경우는 사실은 저희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대통령께서도 다른 산악인들의 유예가 발굴 되서 국내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고요. 그리고 저희들이 월요일에 가서 금요일에 모시고 토요일에 입국할 수 있었던 건 네팔 대사관의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주셨고요. 저희들이 이렇게 기적이 일어났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고 행정당국 대사관이 열심히 해서 희망이 싹텄으면 좋겠습니다.

▷이호상 : 알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히말라야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국 산악인 100여명... 가족과 동료들 이번 두 분의 기적이 마지막이 아니길 저희도 간절하게 발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장님 오늘 여기서 인터뷰 마무리하는데요. 정말 고생하셨고 다시 한 번 그 노고를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박연수 : 네. 감사합니다.

▷이호상 : 다시 한 번 故민준영 박종성 대원의 영원한 안식, 극락왕생을 저희가 발원해야겠습니다. 세계 산악역사를 새로 쓴 두 분이죠? 두 대원의 등반가 정신 우리 산악계는 물론이고 특히 청주시민들 청주 지역에 영원히 기억되길 저희가 다시 한 번 기려야 할 것 같습니다.

김정하 기자  gizau@naver.com

<저작권자 © BBS불교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이 기사가 마음에 드세요?
1
0
이 기사를 공유하실래요? KakaoStory Facebook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