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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내용의 영화 ‘나랏말싸미’가 극장에서 선보인 것을 계기로 훈민정음 창제 과정과 불교의 역할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훈민정음과 불교와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는 책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가 출간돼 대중적 관심을 낳고 있습니다.

보도에 홍진호 기자입니다.

 

세종대왕의 둘째아들로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조선 최초의 한글 대장경 ‘월인석보’를 즉위 5년인 1459년에 간행합니다.

세종이 펴낸 ‘월인천강지곡'의 월인과, 자신이 지은 한글경전 ‘석보상절’의 석보를 합편한 월인석보는 아버지를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한 세조가 세종의 뜻을 이어받은 불교 서적입니다.

1446년 훈민정음 반포 후 12년 만에 나온 한글 대장경은 훈민정음 창조에는 세종이, 배포에는 세조가 앞장섰으며, 그 배경에는 불교가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냅니다.

[범종 스님/ 안동 광흥사 주지] 

“세조가 아니면 불교뿐만 아니라 훈민정음 내지는 한글을 이렇게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많은 역할을 했지만 한글을 배포 하는데는 세조가 가장 큰 역할을 한 분 중에 한명이라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의 저자 정진원 교수는 “석보상절 뒤에는 신미대사의 동생인 김수온의 그림자가, 월인석보 뒤에는 신미대사가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는 말로,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 집중된 한글역경사업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정 교수는 “세종과 세조 모두 불교학과 언어의 천재이지만 훈민정음 반포 후 불과 10개월 만에 24권의 석보상절이 완성이 되고, 곧바로 ‘월인천강지곡’이 편찬된 것은 당대 집단지성의 힘이며, 이 중 ‘월인석보’는 신미대사가 주도했을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정진원 교수/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훈민정음 반포한 지) 10개월 만에 석보상절 24권이 완성이 된다는 거 지금으로서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석보상절을 보고 아버지 세종이 600수에 가까운 월인천강지곡을 짓습니다. 그러니깐 이거는 정말 이분들이 불교학과 언어학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평생의 역작으로 하기에도 이 책 한권 내는데 3~40년 걸렸습니다. 대단한 거죠. 그렇다면 반드시 조력자가 있었을 것이다. 집단지성의 힘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에 이어 이번 신간 발간에도 큰 도움을 준 훈민정음 해례본 원소유처 안동 광흥사 주지 범종스님은 최근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두고 빚어진 역사왜곡 논란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 ‘나랏말싸미’의 내용 중 80%이상이 역사적 고증을 거쳤음에도, 대한제국 형성 후 만들어져 굳어진 잘못된 역사관이 논란을 불러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범종 스님/ 안동 광흥사 주지] 

“역사를 공부하면 다 알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역사를 모르는 지금에 있는 어떻게 보면 대한제국이 형성 된 이래로 한글에 대한 불교적으로 있던 내용들 다 배제를 시켰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한제국 형성을 했던 기독교 선교사적인 입장에서 오다 보니깐 모든 불교학자들이 서구적인 교육을 받아서 지금에 오다 보니 이런 형상들이 일어난 것으로 봅니다.”

[스탠딩] 훈민정음 반포 직후 간행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그리고 대를 이어 완성된 ‘월인석보’는 오늘날의 한글이 조선왕조의 전폭적인 지원과 당대 스님들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물임을 소리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BBS NEWS 홍진호입니다.

(영상취재=최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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