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아들 양육 문제로 다툼을 벌여온 전 남편을 제주의 한 펜션에서 무참히 살해한 뒤 시신을 잔인한 방법으로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 사건 이야기다. 사건이 발생한지 2달이 넘었지만 지금도 범행 수법과 동기 등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평범한 30대 주부로 알려진 고유정이 도대체 무슨 사연 때문에 엽기적인 범행의 장본인이 됐는지도 현재로서는 알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방법으로 범행을 꾸며 완전 범죄를 꿈꿨다는 말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자신이 낳은 아들의 친부이자 한때는 사랑했던 전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모자라 시신까지 훼손했다면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을뿐 아니라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노릇이다. 오죽하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인 배우 김상중 씨도 고유정 편 녹화를 마치고 지금까지 다뤘던 사건 중 가장 충격적이라며 한동안 대기실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에 대한 재판은 오는 12일부터 본격 시작된다. 고유정측은 아들 양육 문제로 제주에서 만난 전 남편이 성폭행을 하려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누가봐도 형량을 줄이려는 의도가 다분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범행 이전에 마트 등에서 각종 범행 도구를 미리 구입한데다 시신 유기 등 범행 관련 단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점 등 계획적인 범행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한둘이 아니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고유정의 범행 동기 등이 어떻게 드러날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필자는 고유정의 범행 동기를 밝혀줄 단서 가운데 하나로 고유정과 아버지와의 관계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유정 아버지는 제주에서 렌트카 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고유정은 아버지 회사의 회계 책임자로 근무했다. 그러나 고유정은 업무 처리가 원활하지 못해 회사 대표인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는 일이 많았다는게 거래 업체 관계자 등의 전언이다. 아버지와의 갈등이나 불만이 남성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발전돼 결국 끔찍한 범행으로까지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하는 분석도 가능해 보인다. 물론 고유정의 가족 관계나 성장 환경 등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나친 비약이나 억측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과도하게 표출시키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혐오와 증오의 대상에 대해 위해를 가하는 여지가 많아지면서 해당 범죄의 발생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욕구 불만과 좌절감이 극에 달하면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갖게 되고 이것이 약자를 겨냥한 혐오 표현으로 이어지거나 나아가 범죄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 5명 가운데 1명은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강한 울분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고유정 사건 이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무사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한 중년 남성의 말이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화쟁(和諍)정신이 사라진 사회는 건강을 잃은 중증 환자와 다를 바 없다. 약 처방으로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평생 약으로 조절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셈이다. 혐오와 분노가 차고 넘치는 우리 사회는 배에 복수가 가득 찬 암 환자나 마찬가지이다. 수술비가 많이 들어도 이제는 수술대에 올라야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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