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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최병오 회장 "한국의 ‘유니클로’, ‘듀퐁’ 만들 것"
최선호 기자 | 승인 2019.07.14 20:52

<BBS 뉴스와 사람들> 이번 시간은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과 함께합니다.
부산 출신의 최병오 회장은 부산고등기술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광장시장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1982년, 당시 동대문 시장 최초의 브랜드였던 '크라운'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본격적인 사업가로 업계에 뛰어었습니다.
지난 1998년에는 패션그룹형지를 설립해 현재 연매출 1조 2천억원, 19개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과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부회장도 맡으며 다양한 사회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 출연 :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 진행 : 강동훈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님 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병오 : 네. 안녕하십니까. 본부장님. 

△강동훈 : 저희 BBS 불교방송이 전국에 제주도까지 들리고 있고, 유튜브로 시청하시는 분들이 세계 곳곳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병오 : 대단히 영광입니다. 이렇게 초대해주시고 해서요. 평소에 우리 본부장님도 그러시지만 BBS 불교방송을 애청하고 좋아합니다. 저는 방금 아나운서님께서도 소개해주셨습니다만, 사업을 어렵게 시작해서 무척 힘들게 사업을 했죠. 그야말로 좀 불우한 가정에 태어났었습니다. 처음에는요.

△강동훈 : 흙수저는 아니네요.

▲최병오 :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아버지가 세상을 빨리 운명을 달리 하시면서 가세가 급속하게 기울어서 그야말로 극과 극의 삶을 어린 나이에 체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잘 살아봐야겠다 하는 남다른 항상 곧은 생각이랄까요. 또 좀 잘 살아야겠다는 그런 한이 좀 맺힌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업가로 지금 어느 정도 자리 잡았는데요. 뭐 지금도 매일 위기죠 위기고 긴장되는 삶을, 왜냐면 저는 삶을 좀 남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나중에 방송에 나오겠지만,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일 지금도 긴장을 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강동훈 : 패션그룹형지하면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분은 또 모를 거란 말이에요. 제가 조사를 해보니까. 올리비아 하슬러, 샤트렌, 라젤로, 형지 등등 여러 브랜드가 많고, 굉장히 브랜드가 많더라고요. 

▲최병오 : 네. 저는 어릴 때부터 장사 생활을 했었습니다. 외삼촌 밑에서 잠깐 했는데, 그게 전부인데요. 그때 학창 시절이고 감성이 예민할 때니까요. 그때 브랜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뭐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누구한테 배워서 그런 게 아니라, 

△강동훈 : 아까 졸업할 때 부산 기술고등학교 거기가 지금 현재 학교가 

▲최병오 : 사실 없어졌습니다. 확인을 해보니까 없어졌는데요. 거기는 옛날에 전자과나 통신과, 옛날에 50년 전이니까요. 그때는 우리나라가 정보화 시대 막 들어올 때니까. 전자과 이런 것을 알아줬었습니다. 

△강동훈 : 제가 왜 그것 여쭤보냐면, 그 당시에 혹시 패션디자인 이런 데가 별로 알려지지 않을 땐데, 그때부터 브랜드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나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최병오 : 네. 그래서 그때 통신과나 전자과는 공부를 못해서, 저는 본래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습니다. 

△강동훈 : 딱 어울리겠네요. 딱 거기에 마도로스 모자를 쓰면.

▲최병오 : 그런데 부산이 고향이다 보니, 그때 굉장히 살기 힘들고 고달플 때였습니다. 아까 좀 잘 살다가 힘들었다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국립해양고등학교라고, 전액 장학금으로..

△강동훈 : 지금은 한국해양대학교죠.

▲최병오 : 아니죠. 고등학교가 있었고, 대학은 또 있고요. 그 고등학교도 사실 또 없어진 것 같습니다. 요새 마도로스, 배 타는 사람 좋아하지 않고, 그 직업을 선호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된 것 같습니다만, 과거에는 어쨌든 장학금으로 저는 대학교는 아니고 고등학교 가서 항해사가 되어서 망망대로 저 태평양이나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뜻대로 안 되었습니다. 낙방을 하고 그랬는데요. 잠깐 고등기술학교 가서, 전자과, 그 하고는 저하고는 잘 안 맞아요. 적성이라는 게. 그래서 잠깐 군에 가기 전에 외삼촌 밑에 잠깐 있었습니다. 그 때 페인트 가게 있을 때, 브랜드와 브랜드 아닌 게 너무 차이가 나는 거예요. 가령 지금도 유명한 브랜드 있습니다, 방송에 말씀드리기 뭐합니다만, 가령 노루표 페인트니, 삼화 페인트니, 그런 페인트와 브랜드 아닌 브랜드 있는 브랜드와 이 여러 가지 시장에서 고객들한테 여러 반응이나, 회사에서 대리점이 하는 여러 행태나 이런 게 브랜드 아니면 안 되겠구나, 그때 그것을 알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근 60년 전에, 50년 전에 배웠던 것을 그 브랜드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가 한 18개 19개 있는데요. 

△강동훈 : 그 중에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면요?

▲최병오 : 그것은 크로커다일 레이디입니다. 여성복 브랜드로

△강동훈 : 악어 모양으로 된 그게 크로커다일의 레이디.

▲최병오 : 네. 그게 아시아 브랜드인데 최초로 제가 여성복을 끄집어냈습니다. 없던 것을 만들어 낸 거죠. 제가 나중에 말씀도 주시고 드리겠습니다만, 동대문 시장에 있을 때, 여성복을 배웠거든요. 여성복 잘할 자신이 있고요. 그래서 크로커다일 브랜드를 여성복으로. 그래서 한국에서 꽤나 알아줍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여성들 정말 행복하게 했습니다. 품질 좋고, 디자인 좋고, 가격, 뭐 가성비가 아주 뛰어난 브랜드죠. 그래서 브랜드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그때 청년기에 제가 체험을 해서 알게 되었고, 지금도 브랜드, 브랜드 외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우리 지금 의류업이요, 과거에 보면 상당히 번성기를 누렸고, 지금 제품도 최우수하지만, 지금 대부분 공장들이 동남아 쪽으로 많이 이전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 남아 있는 지역도 있지만, 어떻습니까, 우리 섬유업계의 위기와 또 회장님께서 위기가 곧 기회다 이런 말씀 하셨는데, 우리 섬유업계 어떻게 지금 해야 하는지?

▲최병오 : 네. 뭐 전체적인 경제 상황이나 산업변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계시겠습니다만, 실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희가 옷을 안 입고는 살 수 없지 않습니까. 또 세계적인 부호들도 지금 패션업하는, 자라나, 유니클로나, 그런데 한국 상황은 어떠냐 하면 너무 전통산업에 또 사양산업이라고 그렇게 많이들 이야기하고는 하죠. 저는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강동훈 : 사양산업이 아니다. 

▲최병오 : 아니죠. 그 말씀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강동훈 : 과거 한 몇 년 전에 한 말인 것 같아요. 요즘은 오히려 뜨는 의류업계인데

▲최병오 : 물론 섬유라는 게 R&D나 우리 기업하는 사람도 많이 관심 가져야겠지만, 다른 산업이 발전되면서 전통 산업에 대한 등한시도 있죠. 그렇지만 이 섬유 산업이 창조산업입니다. 부가가치 산업이고요. 특히 패션산업이 더 그렇다고 보는데요. 덧붙여 한 말씀 드리면, 부산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잠깐 말씀 드리겠습니다. 

△강동훈 : 우리 부산의 애청자들이 굉장히 청취율이 높거든요. 

▲최병오 : 아 그렇습니까. 잘 됐습니다. 제 가족 중에서도 그랬고, 본부장님 아시겠습니다만, 과거에 신발 메카였었습니다. 

△강동훈 : 나이키, 뭐 유명한 브랜드는 다 부산이었죠. 

최병오  : 네. 그랬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간산업이었죠. 의류와 신발산업이요. 그런데 사양산업이라는 이야기 나오자마자 말이죠. 과거의 기술 배울 때 우리가 일본한테 배웠습니다. 30년을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양산업이라고 말이 딱 떨어질 때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이런 다른 나라에 이전이 되면서 3년 만에 다 넘어간 거예요. 지금은 신발 산업이 다시 부흥을 하고 있습니다. 저 부산에 녹산공단에 가면서 세계적인 회사들도, R&D 센터를 가령 데상뜨나 이런 곳도 부산에 R&D 센터를 두고 있습니다. 그 인프라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패션섬유도 우리나라가 전통 산업이 굉장히 강한 산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면 제2의 유니클로 저는 한국에서 나오리라 보고요. 세계적인 섬유업체도, 듀퐁 이상 나오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강동훈 : 실제적으로 요즘은 패션의류업계의 젋은 친구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런 친구들이 이제 쑥쑥 자라나와서 우리 산업계를 또, 과거에 의류산업 한다 하면 조금 그 어떤 아래로 봤는데, 요즘은 굉장히 고급 인력들이 많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최병오 : 아 그렇습니다. 본부장님 잘 보셨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벤처 기업 장관하고 간담을 했었어요. 그때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 취업하기가 쉽지 않지 않습니까. 이럴 때 봉제공장에 취업을 해라, 저는 강연을 좀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젊은 사람한테 2,3년 후면 바로 사장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동대문 인근에 가면요 직원들 10명 데리고 사업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런데 다 연세든 분들이 옛날 방식으로 하니까 안돼요. 저 최병오처럼 40년 전에 동대문 시장 한 칸에 들어가서 사업을 했듯이, 좀 힘든 곳을 찾아가서 봉제 산업하면 젊은 사람들은 달라요. 어른들 하는 비즈니스하고 생각이, 그래서 훨씬 큰 기업가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하고 그런 이야기를 저는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때 장관께서 스타트업하는데, 우리 봉제산업, 전통산업도 젊은 사람들이 들어가면 지원을 좀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탁을 드리기에, 아 좋은 생각이라고 말이지, 요즘 또 온라인 이런 것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강동훈 : 지금 현재 박영선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최병오 : 네. 그렇습니다. 한 보름 전에 뵀는데요. 간담회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전통 산업에 취업을 시켜서 바로 스타트업이랑 창업을 할 수 있게끔 IT뿐만 아니라, 그런 말씀 저는 드리는데요. 저는 그런 쪽에 상당히 애정을 가지고 강연이나 사람들 볼 때 마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남 안하는 곳을 가면요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강동훈 : 실제로 그 창신동이나, 뭐 TV방송의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그쪽 지역에 우리 젊은 친구들이 회장님의 바람대로 그런 일 하고 있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속전속결 학교 다니면서 모든 걸 딱 해서, 한 방에 만들어서 그 다음날 제품이 출하되는.

▲최병오 : 네. 잘 아시는군요. 과거에 제가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할 때도 일본에서 이런 것 너무너무 놀랩니다. 왜냐면 일본에서 와서 오늘 주문하면, 한 이틀 뒤에 자기 회사에, 자기 도착을 해야 될 곳에, 딱 도착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뭐 오늘 아침에 만들어서 내일 포장해서 붙이는 거예요. 굉장히 그게 요즘 세계적인 브랜드들 많죠. 패스트 패션이라는 것인데, 그게 원조가 대한민국, 우리 동대문에서 나온 것입니다. 한국사람 성격이 급하지 않습니까. 본부장님. 

△강동훈 : 아니, 근데 아까 브랜드 말씀하시면서, 최초에 만든 것이 크라운이라는 상품권으로 등장했는데, 동대문이라는 패션 그런 것은 없습니까?

▲최병오 : 네. 동대문표 해서 제가 대표적입니다. 사실 제가 40년 전에 브랜드라고 뭐 크라운이라는 상품을 등록시켜서 했더니, 주위에서 비아냥거려요. 그때 장사가 참 잘 되었습니다. 뭐 굳이 상표에 대한 관심이 없고, 거기에 대한 무지함이 우리가 브랜드 뭐 산업화 된지가 얼마 됩니까. 그렇지만 그때 저는 어릴 때 페인트 가게에 삼촌 밑에 있을 때, 브랜드 있는 것 없는 것 하늘과 땅 차이이에요. 저는 무슨 사업을 해도 꼭 브랜드 사업을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그래서 상표 등록을 시키고, 그러니까 장사가 훨씬 잘 되는 거예요. 크라운 바지에서 파니까, 거기에 택을 세 개 달고, 뭐 라벨도 달고 섬유 표시도 정확하게 표명을 하니까 고객들한테 신뢰도 얻고, 그러니까 훨씬 더 비싸게 팔아도, 1000원 정도 한 장에, 바지 한 장에 받아도 더 잘 팔리고, 소매상에서는 한 3,4000원 정도 더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직원들도 브랜드 사업은 한다니까 꼼꼼하게 바느질도 잘하고, 그렇게 디자인도 잘하고 그래서 브랜드라는 게 있었는데요. 어쨌든 동대문 시장에서 브랜드 사업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을 때, 전 산업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럴 때 저는 브랜드를 만들어서 유일한 산업이죠. 

△강동훈 : 사실은 뭐 우리 대기업이라하는 삼성그룹이라든지, LG그룹도 패션 쪽에 진출을 해서 ?? 했잖아요. 이런 부분들이 이제 결국은 어떤 그 기업 형태에 따라 변화되겠지만 이 패션만큼 오래된 산업이고, 미래 가치도 충분하고 그런 걸로 지금 볼 수 있겠네요. 

▲최병오 : 네. 그렇습니다. 

△강동훈 : 최근에 보니까 이제 베트남, 동남아에 대통령 모시고 가는 그 행사에 또 참석하셨던데, 한국경영자총협회 지금 부회장을 맡고 계시는 거죠.

▲최병오 : 네. 경총회.

△강동훈 : 경총이 우리가 이제 여러, 전경련이 있지만, 요즘 전경련은 사실 활동이 좀 그렇게 되었지만, 경총회가 하는 일이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그 중에 부회장은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느지?

▲최병오 : 뭐 손경식 회장님을 중심으로 뭐 아주 명망 있고 인품 빼어난 분이죠. 부회장은 대기업 분들이 많고요. 저는 2년 전에 들어갔는데, 중견 기업 지분으로 콜마나 넥센타이어, 저희들이 할 일이 많습니다. 지금 노사 문제가 심각하죠. 최저임금 등, 그래서 경총회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또 장관들한테 건의도 하고, 또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에 저희들한테 여러 가지 또 저희 경총회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의견도 제시하기도하고, 합의점에 이르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에서 못하는 일을 경총회에서 해야 된다. 그래서 지금 경총회에서 역할 굉장히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동훈 : 엊그제 뭐 최저임금제도 정리가 좀 되었고. 

▲최병오 : 그래서 최저임금 그것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한국에서 제조업은 안하지만, 전국에 2400, 2500개 대리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요. 대리점 사장님들 굉장히 힘들어 하세요. 요즘 뭐 불황이지 않습니까. 

△강동훈 : 그거 한번,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 한 번 들려주세요. 말로만 그런 것인지, 실제로 현장에 계시는 점주분들이 얼마나 불황인지를 실례를 하나 들려주십시오. 

▲최병오 : 과거에는요, 저희 브랜드 하나가지고도 자녀들 교육 충분히 시키고, 또 자기들 여러 가지 저축도 좀 하고요. 뭐 이렇게 했는데, 요즘 임대료 굉장히 비쌉니다. 또 인건비 비싸죠. 그리고 과거만큼 불황이니까 옷을 좀 덜 사 입습니다. 굉장히 힘들어하시는데, 그래도 잘 견디세요. 오랫동안 좋은 브랜드 가지고 하시는데, 어떤 분은 그런 분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 브랜드 쭉 해서 했는데, 요즘에는 두 가지를 한다든지, 두 브랜드를 해서 하고, 또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식구들 장사를 한다든지, 저희들은 마진을 좀 많이 드립니다. 이제 상생해야 되죠. 과거에는 30%를 줬는데요. 요즘에는 충분치는 않지만 그래도 그분들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도록, 그런데 그분들이 욕심을 조금 버렸습니다. 요즘 다른 산업, 우리 옷 장사는 그중 그래도 좋습니다. 프랜차이즈, 뭐 오픈했다가 바로 문 닫고 하는 경우가 너무 많지요. 

△강동훈 : 사실 인테리어 비용만 날리는 경우가 많지요. 

▲최병오 : 그래도 옷은요, 사회생활 많이 하시고 또 굉장히 행복을 주는 겁니다. 저도 오늘 아침에 오면서 어디 모임에 갔더니, 어떤 여성이 빨간 옷을 입어서 집사람한테 밝은 옷을 입으라, 빨간 이런 옷을 구매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저희들 옷만 하지 말고, 이게 힘들 때는요, 옷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강동훈 : 시각의 효과. 좋은 에너지.

▲최병오 : 네. 그래서 오히려 밝은 옷을, 그래서 끊임없이 옷이 잘 팔리는 것 같은데요. 어쨌든 과거에 비하면 대리점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온라인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강동훈 : 흔히 말하는 직구, 온라인 판매.

▲최병오 : 그런 것에도 영향을 받지요. 그래서 저희 회사에서도 온라인 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또 ?하는데, 어쨌든 과거에 그랬지만, 점주님들도 욕심을 좀 버리고 또 고객들도 이제 대리점에 와서 옷을 고르고 하는데, 굉장히 만족하고, 왜냐하면 우리 매니저들이 코디를 잘해줍니다. 온라인에서 그런 것은 좀 힘들지 않습니까. 또 연세든 사람들이요, 매장에 와서 뭐랄까 동네 여러 가지 소문도 듣고 옛날에 부동산에 가면 그쪽에 소문이 많이 나고 그랬잖아요. 편안하게 하세요. 또 트렌드가 과거에는 옷만 팔았지만 거기에 카페를 만든다거나 이래서 위기를 또 극복하고, 그렇게 합니다. 

△강동훈 : 이제 점포가 2450개 점주님들, 상당히 보니까 어떤 예를 들어서 A점포에 그 물건이 없으면, 바로 B점포 C점포에서 회전할 수 있는 기법도 많이 도입하신 것 같은데.

▲최병오 : 네. 소위 RT라는 것인데요. 이제 우리는 어쨌든 재고를 줄여야 하고,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는요. 어느 한 곳에서는 없어서 못 팔 물건도 어느 한 곳에는 많이 재고를 찾고, 그래서 RT를 하는데, 그래서 요즘은 빅데이터로 자동 RT, AI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서 효율을 내려고 합니다. RT를 해서 점주들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그래서 전국을 커버해 나가는 그런 게 있죠. 또 신발이나, 저희들이 교복도 있고, 본부장님 아시다시피 좀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대리점 사장님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드려야 되나, 또 많이 힘들 때 과거에 저희들이 교육도 받게 하고, 해외여행도 많이 보내고 했는데, 지난주에 우리 계열 회사 중에 학생복 회사 있습니다. 

△강동훈 : 옛날, 엘리트, 이런.

▲최병오 : 네. 그게 50주년이 되었어요.

△강동훈 : 저도 그거 입었는데. 

▲최병오 : 아 그렇습니까. 아주 최고 브랜드였죠. 그런데 천안 상록회라는 데서 1박 2일 했는데, 다녀왔습니다. 가니까 굉장히 얼굴이 밝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그런 행사를 많이 했는데, 가수도 부르고, 그동안 조금 저희들이 등한시 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런 것을 활성화시켜서, 우리 대리점들 힘들고 외로울 때 기 좀 살려야겠다는 다부진 생각을 좀 가지고, 마음을 굳게 갔고 돌아왔습니다. 

△강동훈 : 자. 우리 전국의 패션 형지 점주님들 오늘 방송 우리 최병오 회장님께서 오늘 공약 반드시 방송을 통해 하신 것 같습니다. 

▲최병오 : 네. 

△강동훈 : 아까 가수 이야기도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우리 그 안녕하세요, 부른 가수 장미화씨하고 인연이 많은 것 같습니다. 

▲최병오 : 네. 많습니다. 

△강동훈 : 어떤, 소개 좀 해주시죠. 

▲최병오 : 장미화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도 있고, 연세가 좀 들었지 않으셨습니까. 또 회장님이라고 할 때도. 제가 노래 잘하시는 것은 기본이고요. 굉장히 헌신적으로 불우이웃을 많이 도우세요. 뿐만 아니라 노인들, 특히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까 어머니가 미국에 계실 때 장미화 선생께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그 때 몇 번 여기 선배 연예인들께서 도와주셔서, 그 어머니를 잘 모셨다는 말씀을 몇 번 들었습니다. 그 노인들 노인들에 대한 극진한 마음은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정말 존경합니다. 그래서 바자회 같은 것 할 때, 

△강동훈 : 장미화 패션쇼 하면서, 바자회도 하시고 그 바자회에는 반드시 노인분들 초청해가지고 공연도 하시고. 

▲최병오 : 네. 그 때 저는 지원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지원하고요. 이제 오랫동안 했죠. 바자회 물품도 저희 재고 같은 게 어머니 좋아하는 브랜드 많이 있으니까. 십시일반 도와드리고, 그래서 장미화 선생님을 좋아하고, 그분도 저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인연입니다. 

△강동훈 : 죄송하지만, 우리 최병오 회장님 어머님 생존해 계시는데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최병오 : 이제 아흔 조금 넘으셨습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는 7남매를 키우기 위해서 참 고생하셨습니다. 

△강동훈 : 7남매 몇 째 십니까?

▲최병오 : 저는 셋째입니다. 셋째인데요. 남자들만 6명이고 막내딸인데요. 어머니 속 많이 썩여드렸죠. 공부도 안하고, 형제들이 많으니까요.  

△강동훈 : 셋째라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우리 최 회장님이 공부를 안 하신 겁니까? 전체가 다 안 하신 겁니까?

▲최병오 : 유일하게 뭐 대학 나온 분이 한 분 있는데, 형님 중에. 그 형님한테도 좀 영향을 받았습니다만, 집안이 그 하고 하니까 이제 맏며느리로 어린 나이에 왔는데. 어머니가 중간에 큰 병도 몇 번 앓으셨어요. 하여튼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나 공경심은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유독 제 어머니는 고생을 더 많이 하시고. 특히 제가 자랄 때 어릴 때 사업을 한다고 장사를 한다고, 애를 많이 먹였습니다. 돈 구해 달라, 뭐 해 달라,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나 그 참 여러 가지 애틋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래서 어머니한테 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보통 우리 어머니들 하면 커서 뭐 되어라, 뭐가 될 것이다 격려도 해주시고 하는데. 평상시에 어머니께서 너 패션해라, 섬유산업해라 이런 말씀은 안 하셨을 거란 말이에요. 어머니가 바라던 최병오 아드님의 꿈은 뭐였나요?

▲최병오 : 항상 저한테 힘들 때는 나이 들어서 사업이 힘들 때는, 최사장 너는 잘될 수 있어, 스님한테 물어봤더니 너는 50 넘어가면 무조건 사업이 잘 된다고, 그렇게 용기를 주셨어요. 실제 그런지 안 그런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힘이 되었습니다. 내내 어머니께서, 한 번도 아니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어릴 때는, 왜 공부 안 하니, 정말 속 많이 썩혀 드렸거든요. 그리고 저는 성격적으로 뭐랄까 저는 인정이 좀 있는 편입니다. 

△강동훈 : 얼굴이 인정이 그득합니다. 

▲최병오 : 그런데 항상 좀 독해야 된다. 그리고 좀 이 사투리입니다만, 뒤집어 쪼으면 안 된다? 바른 길로 가야 된다. 우리가 옛날에 보면, 그런 게 있죠. 뒤집어 쪼으면 그것이 좀 그렇게 화투 칠 때 그런 게 있지 않습니까. 그게 경상도 사투리에요. 뒤집어 쪼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항상 바른 길로 가야 된다. 그리고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또 방송에 뭐 합니다만, 밥 팔아가지고 뭐뭐 사먹는 사람 되지 마라. 또 빌어먹어서는 안 된다. 

△강동훈 : 돈을 어떻게 벌더라도, 좋은, 정당한 곳에 써라 이런 말씀이시죠. 

▲최병오 : 네 그렇죠. 그리고 제대로 해서 장사하면 장사꾼답게 그렇게 해야지, 돈도 못 벌고 그러면 안 된다, 궁극적으로는 좋은 일에 쓰라는 것도 함축되어 있습니다만. 어머니한테 좋은 말씀 많이 듣고 어머니가 저 때문에 굉장히 힘들고 그런 적이 있어서, 지금은 그에 대한 효도랄까요. 계시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강동훈 : 그래서 이제 부산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이런 잔치도 많이 열어주신 것 저도 들었습니다. 

▲최병오 : 네. 앞으로 좀 많이 도와주십시오. 불교방송에서요. 

△강동훈 : 부산 사하구인가요?

▲최병오 : 네 사하구입니다. 

△강동훈 : 자. 사하구에 계신 어르신들, 우리 최병오 회장님께서 올 가을이든, 내년 봄이든 모시는 그런 기회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최병오 : 약속하겠습니다. 

△강동훈 : 그 또 회장님, 또 다른 부업, 알바를 하나 하신다고 들었는데, 강의료를 많이 받으신다고. 

▲최병오 : 아까 잠깐 언급해드렸습니다만, 강연이 쇄도를 합니다. 뭐 젊은 학생들, 소상공인들 인기 좋습니다요. 대학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가령 한국은행이나 이런 쪽에서도. 그리고 대학에서, 전남대학교는 5~6년 째 부산대학교.

△강동훈 : 국립대들도 많이 하시네요.

▲최병오 : 에이엠피, 최고경영자 과정, 이런 곳에서 제가 살아온 이야기들 하면요, 오늘 아침에도 제가 강연을 듣고 왔습니다만, 상당히 관심 있게 듣고는 합니다. 제가 살아온 것이 순탄치 않았잖아요. 뭐 힘들고 어려울 때는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죠. 

△강동훈 : 그러니까 책으로 듣고 이런 지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체험한 그런 생생한 이야기를 해드리기 때문에 이제 더..

▲최병오 : 좀 그런 것은 있습니다. 

△강동훈 : 그런데 요즘 젊은 우리 후배들이 주변 교육 여건이라든지 생활환경이 과거보다는 좋아졌지만, 실제로 도전의식이라든지 어려운 일을 기피한다든지 이런 분들이 눈에 많이 띄거든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병오 : 네. 맞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참 힘들죠. 그러나 이해해야 됩니다. 그 젊은이의 마음이란 그런 젊은 세계의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도 그렇고, 뭐 어른들 입장에서도요. 우리 입장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어른 대우를 저렇게 하나, 뭐 참 옛날에는 공경도 많이 하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좀 부족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월등히 실력이 있습니다. 저도 해보니까요.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우수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좀 나약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죠. 우리는 헝그리 정신만 배웠지 않습니까. 남보다 좀 더 열심히 하고 노력해야만 하는데, 요즘은 상상력과 창조력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젊은 사람들이 나는 충분히 이해된다고 봅니다. 그래도 조금 상상력, 창조력도 어떻게 보면 노력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젊었을 때 그런 고통과 힘든 일을 체험 안 해보고는 언제 해보겠습니까. 훌륭한 사람 되려면요, 젊었을 때 고생을 해라, 저는 대놓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 직원들한테도 이야기 하고요. 

△강동훈 : 직원이 지금 한 어느 정도 됩니까?

▲최병오 : 한 900여명 됩니다. 저희 그룹에서요. 

△강동훈 : 그게 젊은 층이?

▲최병오 : 네. 젊은 층. 제가 강연 많이 합니다. 

△강동훈 : 젊은 층들이 한 7~80% 차지하겠네요? 

▲최병오 : 그럼요. 나이든 사람이 과거에는 많았는데,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로 많이 교체가 되고는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빠릅니다. 빠르고, 그런데 오랫동안 회사 안 다니죠. 저희 회사뿐만 아니라요. 

△강동훈 : 이직이 자꾸..

▲최병오 : 이직률이요. 네 저희 친구들 중견회사, 좋은 회사 많은데 물어보죠. 어떨 때 답답하면요. 그런데 옛날만큼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강동훈 : 아니에요. 굉장히 이런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말씀을 해주시고, 여러분들이 들음으로써, 이직하면, 너 왜 자꾸 이직하냐 그게 좋냐 그러는데, 실질적으로 이런 일을 해주시면 젊은 친구들이 이직을 하는 것에도 조금 인정을 해주는 거니까.

▲최병오 : 좋은 회사를 또 만들어야 되겠죠. 젊은 사람들이 볼 때는요. 아주 장래가 촉망되고, 여러 가지 좋은 회사로 다른 회사와 비교했을 때 여러 가지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직원도 오래 다닐 수 있게끔 또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그런 문화도 굉장히 중요하리라 봅니다. 그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동훈 : 최병오 회장님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마감할 시간이 되었네요. 끝으로 우리 애청자, 우리 시청자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병오 : 아이고 참 이렇게 초대해주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만, 불교방송을 통해서 또유튜브를 통해서 알려주시고 해서 참으로 영광인데요. 요즘은 나이도 어느 정도 되고 하니까 기업가 정신이 뭔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는 합니다. 이럴수록 기업가가 정신을 차리고, 중심을 지키고 더 건강한 모습으로 사업을 잘 끌어가야겠다, 모범된 생활을 해야 되겠다, 또 저 같은 경우는 소상공인들이 좋아하는데요. 어떻게 보면 롤모델이랄까요. 그래서 더 잘해야 겠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매일 다짐합니다. 그래서 좀 집중합니다. 업에. 잘하는 것에, 부족하고 힘든 것은 빨리 정리하고요. 그래서 성공한 기업가로 거듭나야겠다, 그래서 사회에 공헌해야 되겠다, 뭐 그런 것이죠. 

△강동훈 : 네. 그 바쁜 시간 가운데 우리 BBS 뉴스와 사람들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최병오 : 네. 본부장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최선호 기자  shchoi269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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