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만에 해인사로 돌아온 경순대왕 어진, 사찰 봉안 어진제도 연구의 소중한 자료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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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마지막 임금인 제 56대 경순왕을 그린 어진이 천년만에 법보종찰 해인사로 돌아왔습니다.

새로 봉안된 어진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박물관 소재 경순왕 어진의 모사본으로 사찰에 봉안된 어진제도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입니다.

대구bbs 정한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신라 마지막 왕인 제 56대 경순왕 어진입니다.

이 어진은 전통서화공예 대명장인 백미자 화백이 그린 것으로 범공선사숭선연구회와 해인사가 뜻을 모아 만든것입니다.

법보종찰 해인사는 경내 대적광전에서 경순대왕 어진 봉안식과 어진을 제작해 해인사에 봉안한 경순왕의 둘째아들, 범공선사를 기리는 다례재를 열었습니다.

해인총림 방장 원각스님은 “신라 천년사직을 고려에 양국한 경순대왕의 큰 뜻과 아버지 경순왕을 향한 범공선사의 효심이 천년의 시공을 초월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설했습니다.

인서트/원각스님/해인총림방장/ 범공선사의 출가는 불속에서 핀 연꽃과 같습니다. 게다가 효심까지 갖췄습니다. 그 큰 복덕이 천년후에 발복해 오늘 이렇게 사부대중이 모여 찬탄하는 법석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국립 경주박물관 소장 경순왕 어진

경순왕 어진은 고려초기, 해인사 영당에 봉안됐다가 큰 화재로 영당이 소실되며, 영천 은해사 상용암에 이안됐다가 조선 정조때 경주 숭혜전으로 다시 옮겨집니다.

 비록 원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소실됐지만 현재 조선시대에 모사한 5본이 전해지고 있는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어진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왕의 상상화가 범람하는것과 달리 실사화(實寫畵)인 어진이 드문것은 조선초 숭유억불 정책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어진 제작과 이를 모신 어진각은 사찰, 나아가 불교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해인사 주지 향적스님은 국태민안을 염원하며 해인사에서 입적한 범공선사의 화엄사상을 이어 국태민안의 원력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길 발원했습니다.

인서트/향적스님/해인사 주지/ 해인사에 봉안되었던 경순대왕의 어진이 이제 대시 해인사에 봉안하게 된 것은 해인사가 다시금 국태민안을 발원하는 상징이 될 것입니다.

해인사는 경순왕 어진을 성보박물관에 소장중인 해인사존상도(傳세조대왕어진)와 함께 전시할 예정입니다.

해인사로 돌아온 경순왕 어진은 사찰봉안 어진 연구의 소중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비비에스 뉴스 정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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