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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산사에 이어 올해 서원이 연이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민족과 함께 해온 불교와 유교간 공존의 역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9개 서원 가운데는 2곳이 사찰 터에 세워진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조선시대 유불선 일치 사상 속에서 불교와 유교가 공존한 역사를 돌아봅니다.

홍진호 기자입니다.

 

조선 최초의 서원 영주 ‘소수서원’은 ‘숙수사’ 절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사찰로서의 옛 영광은 당간지주 등 유물로서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에 둘러본 경주 옥산서원도 ‘정혜사’ 터를 기반으로 합니다.

폐사지에는 정혜사지 13층 석탑만이 쓸쓸히 남아있습니다.

사찰 터에 세워진 서원은 유구한 역사 속 한국불교의 성쇠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고영섭 교수/ 동국대학교] 

“고대 이래 현재 까지 보면 종교적 성소라고 하는 천신신앙, 산신신앙, 무속신앙의 성소들은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교로 대체된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도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또 약화 되었을 때는 성리학의 서원으로 대체 되거나 도교도 마찬가집니다.”

고영섭 동국대 교수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건국 이전 고구려와 백제, 신라, 가야는 불교를 국교차원에서 숭상 했다고 밝혔습니다.

신라의 대표 유학자 최치원 등 당대 지식인들과 스님들의 폭넓은 교류는 불교와 유교가 통치이념의 두 축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왕자가 출가를 해서 직접 교단을 이끄는 등, 불교는 통치 철학이자 국민의 삶 자체였습니다.

[고영섭 교수/ 동국대학교] 

“태자가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된다는 것은 불교교단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입니다. 일종의 출가를 한 왕자 스님이라는 의미에서 문종의 경우에는 셋째 아들인 의천 스님이 교단을 통솔하는 직책을 13세에 맡을 정도로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죠.”

연구실 한편 원효스님과 퇴계의 진영을 나란히 둔 고 교수는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는 불교와 유교가 전통문화의 동반자임을 각인시키면서 아울러 불교의 지속성과 확장성도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고영섭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는 역시 살아있는 종교와 문화로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가 유교보다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키워오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산사의 유네스코 등재와 서원의 등재는 우리 전통문화의 동반자로서 유교가 불교와 함께 하게 되었다는 계기가 되고...“

[스탠딩]

한반도 전래 이후 불교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 민족의 종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번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절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해 보입니다.

서울 동국대에서 BBS NEWS 홍진호입니다.

(영상취재=최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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