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에 봄 꽃이 활짝 펴 만일염불회를 통해 서방극락 정토로 왕생한 수행자들을 태운 반야용선(般若龍船)이 연출됐다.

합장향서좌 (合掌向西坐)

응심념미타 (凝心念彌陀)

평생몽상사 (平生夢想事)

상재백련화 (常在白蓮花)

두 손 모아 서방 (극락정토) 향해 앉아

마음 다해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노라

한 평생, 꿈에서도 그리워 한 것은

(서방 극락정토에) 늘 피어 있는 흰 연꽃이네

- 서산 휴정(西山 休靜) 《청허당집(淸虛堂集)》

787년 7월 17일, 한국 불교 역사 상 가장 장엄하고 위대한 불사(佛事)가 아미타 정토 도량 건봉사에서 펼쳐진다. 신라 경덕왕 17년, 758년 고성 원각사(圓覺寺) 주지 발징(發徵) 화상은 정신(貞信)과 양순(良順) 등 31명의 스님들과 향도(香徒; 서원;誓願을 함께 하는 불자들의 결사;結社) 1,820명과 함께 (서방극락정토 교주이신 아미타부처님을 염송하는) 미타만일연회(彌陀萬日蓮會)를 시작했다. 발징 화상은 중국 “여산 혜원(廬山 慧遠)의 백련결사(白蓮結社)를 흠모해 건봉사 만일염불회를 개설했다.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던 31명의 스님들은 29년이 지나 건봉사에 현신하신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을 친견한다. 자줏빛 금으로 장엄된 연화대에 오르신 채 현신하신 불, 보살님께서는 염불하던 31명의 스님들을 반야용선(般若龍船)에 태워 서방극락 정토로 데려가셨다." - 〈대한국간성건봉사만일연회연기(大韓國杆城乾鳳寺萬日蓮會緣起)〉(홍문관학사 弘文館學士 조병필趙秉弼, 1904년) / 〈건봉사 연혁(沿革)과 만일회(萬日會)의 연기(緣起)〉(함동호咸東虎 조선불교총보朝鮮佛敎叢報, 1920년)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여러 보살님들과 스님들이 중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내려오셨다. (강진무위사 아미타 내영도)

발징 화상이 개설한 ‘만일염불회’는 건봉사 사적에 가장 상세하게 전한다. 그리고 “주인과 함께 염불 수행을 하던 하녀 ‘욱면(郁面)’이 서방극락정토로 왕생했다.”는 《삼국유사》 〈욱면비염불서승조(郁面婢念佛西昇條〉에도 팔징(八徵) 즉 발징(發徵) 화상의 기록이 전한다.

발징 화상이 건봉사 만일염불 결사를 시작했던 신라 경덕왕 대는 수 백 년을 이어 꽃을 피운 신라불교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이다.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 창건에 나선 때(경덕왕 10년,751년)도 이 무렵이다.

불국사는 유형의 사찰로 불국정토를 구현했다. 발징 화상은 불국정토의 장엄함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금강산에 자리한 건봉사에서 염불 수행으로써 불국정토를 구현했다. 우리가 발징 화상의 건봉사 만일 염불 법석(法席)에서 읽어 내야 하는 것은 올곧은 수행이야 말로 중생으로서, 불자로서 할 수 있는 ‘불사(佛事)의 정수(精髓)’이며, 불국정토를 일궈내는 참된 방편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적 목표는 스스로의 깨달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함께 행복과 평화를 누려야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발징 화상의 건봉사 만일염불결사는 일러주고 있다. 발징 화상은 동참했던 대중이 함께 왕생하기를 아미타 부처님께 간곡히 청해 올린다. 앞서 31명의 스님들이 아미타부처님을 따라 서방극락 정토로 왕생한 후의 일이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발징 화상에게 현신하여 스님들의 왕생 소식을 전하시고 제자 양무 등과 31명의 스님들을 위한 다비식을 봉행하니 1,820명의 향도 가운데 913명도 함께 왕생하고 907명이 남아 수행을 계속했다.

“발징 화상이 (대중들의 왕생 이후) 7일 만에 다시 아미타부처님을 뵙게 됐는데, 아미타부처님께서는 발징에게 반야용선을 타고 함께 가자 하셨다. 이에 발징은 향도들을 남겨두고 먼저 왕생하는 것은 본원(本願;아미타 부처님께서 전생에 법장(法藏) 비구로 수행하실 때 중생들을 제도하겠다고 세운 48가지 큰 서원)이 아니라 고하자, 다시 18명이 왕생했다.”

다시 7일 후 아미타부처님께서 발징에게 왕생을 권하시는데, 발징은 “만일 향도들이 중한 죄가 있어 왕생의 인연이 없다면 제가 대신 지옥에 가 영원히 그 죄를 없애고 다같이 왕생하겠다.”고 고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31명을 왕생하게 하셨다. 그리고 발징에게 먼저 왕생을 하면 다음에 남은 향도들을 왕생하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발징은 그 때에야 반야용선에 올라 서방극락 정토에 왕생하였다.〈대한국간성건봉사만일연회연기(大韓國杆城乾鳳寺萬日蓮會緣起)〉

건봉사 등공대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스님과 불자들

발징 화상의 원(願)은 이처럼 분명하게 중생을 향해 있었다. 건봉사 만일염불회 결사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체득하고, 실천하는 근본 까닭은 중생 제도이다. 그것을 발징 화상은 만일염불회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발징 화상이 이끈 건봉사 만일염불회는 천 년의 세월이 흐른 1802년 다시 개설된다. 이번에는 정조 대왕이 승하(昇遐)한 후 당시 건봉사 스님(석민;碩旻, 錫旻 또는 복인;福仁- 제 2차 만일회 주관자에 대한 가장 최근의 연구는 순천대학교 이종수 교수의 〈건봉사 제 2차 만일염불회 재검토〉이다.)이 꿈에서 정조 대왕을 만났는데, 대왕은 새 임금 즉 순조(純祖)를 위한 기도를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스님은 건봉사로 돌아와 대중 스님들과 의논 한 후 제 2차 건봉사 만일염불회 결사를 추진한다.

제 2차 만일염불회 결사는 이처럼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추진됐다는 면에서 그 의미를 평가 절하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당시 임금의 안녕(安寧)은 곧 만백성의 안녕이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의 가장 큰 토대라는 점에서 2차 만일염불 결사의 서원은 1차 결사와 다름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사실은 2차 결사를 주관한 스님의 결사 취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만일(一萬日) 30년 기한으로 날마다 임금님의 만세와 만수무강을 빌며, 아울러 날마다 아미타부처님을 만 번 소리 내어 외우는데 어려운 일이다. 30년이 지나 우리와 함께 법계(法界)의 생명들이 다 함께 보배로 장엄한 반야용선을 타고 모두 깨달음의 언덕으로 오르리니, 하늘과 땅 사이 이 같은 경사가 어찌 자주 있겠는가!”〈신창만일회사적일기(新創萬日會事蹟日記)〉

결국 건봉사 2차 만일염불 결사 또한 중생 제도라는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수행자로서 따르고 실천하기 위한 수행 방편이었던 것이다. 건봉사 만일염불회 결사는 이후 1851년, 1881년, 1908년에도 개설된다. 홍문관학사 조병필은 〈대한국간성건봉사만일연회연기〉를 통해 그 공덕과 회향에 대해 이렇게 찬탄했다. “중생으로 태어나 하늘로 올라 부처를 이루었으니, 아미타부처님께서 서방극락 정토 왕생을 하도록 하시었네. (생천성불 불명왕생;生天成佛 佛命往生)”

1915년 건봉사 만일염불 결사를 통해 왕생한 분들을 기리는 불사가 이뤄진다. 한국 불교 역사를 통틀어도, 오늘날에도 오직 금강산 건봉사에만 있는 등공대(騰空臺)가 세워진 것이다. 등공대는 당연히 1차 만일염불 결사 당시 왕생한 수행자들의 다비를 했던 터에 자리한다. 이에 대해 운고 김일우(雲皐 金日宇)는 《조선불교총보(朝鮮佛敎叢報) 제 5호》(1917년) 〈건봉사소신대석탑신축기(乾鳳寺燒身臺石塔新築記)〉를 통해 감로봉(甘露峰) 정상에 등공대를 세웠음을 알리고 “백옥같이 흰 탑(등공대) 우뚝 솟아 있으니, 거북 비석의 찬란함을 어느 누가 기뻐 따르지 않으리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이처럼 모두가 기꺼이 따르고 본받아야 하는 만일염불 결사를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담을 수 있는 왕생의 현장, 등공대는 지금은 시대의 아픔을 반영하듯 군 작전 지역에 있어, 허락을 받아야 제한적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언제 어느 때라도 누구라도 발심(發心)이 되면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건봉사 사부대중과 온 불자들의 바람이다. 

등공대로 오르는 길. 군 작전 지역에 위치해 평상 시에는 철조망 문에 막힌다. 누구나 언제든지 찾을 수 있기를 불자들은 바라고 있다.

금강산 건봉사는 아미타부처님께서 현신하시고 상주하는 미타 정토 도량이다. 돌이켜보면 금강산 건봉사에서 만일염불 결사가 여러 차례 이뤄지고, 많은 이들이 그대로 왕생한 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신 근본이 되는 대발원(大發願)이 현실에서 이뤄진 가장 역사적이고 장엄한 불사(佛事)라고 하겠다. 중생과 함께 수행하고 먼저 왕생하게 하니, 이 보다 더 지극히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이 있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 지옥에 있어 모든 생명을 다 제도하겠다는 그 큰 원력은 모든 이들과 같이 하지 않는다면, 깨달음도 극락왕생도 결코 이루지 않겠다는 대 자비의 실천이요, 대 자비의 구현이 아니겠는가.

남과 북을 아우르는 곳에 자리한 금강산 건봉사에 남과 북의 평화를 발원하고, 민족이 함께 행복을 향해 가기를 서원하는 만일염불 결사가 지금 우리 시대에 다시 펼쳐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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