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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금강산 건봉사 ①조선(朝鮮) 제일가람(第一伽藍)① 조선(朝鮮) 제일가람(第一伽藍) 금강산 건봉사(金剛山 乾鳳寺)
김충현 기자 | 승인 2019.06.14 09:55

건봉사! 그 장엄한 영화(榮華)와 역사, 아픔

화전층루세욕상 의연봉익대조양 (畵殿層樓勢欲翔 依然鳳翼帶朝陽)

은상불용무량덕 보묵천루부진향 (銀床佛頌无量德 寶墨天慳不盡香)

십이대명산욕향 만천월인수생광 (十二碓鳴山辱響 萬千月印水生光)

봉래노객귀래로 우향동림일숙장 (蓬萊老客歸來路 又向東林一嘯長)       

           - '간성 건봉사 杆城 乾鳳寺' 박윤묵 朴允默 (1771 ~ 1849)

그림 같은 전각과 겹겹으로 들어선 누각 날아오르려 하고

봉황의 날개(전각과 누각 처마)에는 옛과 다름없이 아침햇살 드리운다

은(銀) 평상 위에 계신 부처님 모습 그 덕이 한량없고

보배로운 먹(墨), 하늘이 지극히 아끼니 그 향 다 함이 없다

열두 대의 방아 소리 산을 울리고

만 천 달 비추는 강물, 달 빛으로 살아난다

금강산 늙은 나그네, 돌아오는 길에

동쪽 숲 향해 길게 한 번 휘파람 분다

1920년대 금강산 건봉사 전경

“조선 고종 15년 무인년(1878년) 4월 3일, 산불이 나서 사찰과 암자 3,183칸이 모두 불에 탔다. 불이 났을 때 학림화상(鶴林和尙)이 불길을 무릅쓰고 팔상전(八相殿)에 있던 부처님 세 분(三尊佛像)과 검은 구리로 만들어진 향로(오동향로;烏銅香爐), 절함도(折檻圖;중국 한나라 때 충신 주운(朱雲)이 황제인 성제(成帝)에게 충언하는 장면을 그린 옛 그림) 등을 구했을 뿐이다...건봉사 중건을 위해 임금은 이름을 적지 않은 임명장 500장을 하사하였고, 8도에 권선문을 내려 보냈으며, 전국 대표 사찰 개운사, 중흥사, 봉은사, 봉선사, 용주사에 알려 동대문 밖 미타사에 모여 팔도(八道)의 화주(化主)를 정하였다.” - 《건봉사사적(乾鳳寺史蹟)》

건봉사는 고성군 오대면 냉천리(冷泉里), 1989년 이전에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던 민간인통제선 안쪽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신라 아도화상(我道和尙)이 법흥왕 7년(520년) 금강산 남쪽 기슭에 창건하여 원각사(圓覺寺)라 이름 지었다. 고려 태조 2년(945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가람 서쪽에 봉황의 모습을 한 바위가 있다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고, 공민왕 7년(1385년) 나옹화상(懶翁和尙)은 봉황 바위가 서북쪽(건방;乾方)에 있어 건봉사(乾鳳寺)가 맞다 하여 건봉사로 바꾸었다.

하늘에서 본 지금의 건봉사 전경

건봉사는 천 5백년을 훌쩍 넘는 세월동안 그 찬란한 영화(榮華)만큼이나 깊은 아픔을 간직한 도량이다. 사적(寺蹟)에 기록된 대로 1878년 화재로 3,183칸이 전소됐다 하니, 적지 않은 규모로 6칸씩만 어림잡아도 5백 채 이상의 전각과 암자가 있었던 대가람이다. 박윤묵의 시(詩)에서 보듯 전각과 누각이 겹겹으로 들어서 있었으며, 방아를 열두 대나 사용했을 만큼 많은 스님들이 수행했던 도량이다.

그러나 건봉사의 참된 영화는 가람 규모에 있지 않다. 건봉사는 그 장구함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오랜 역사 줄기마다 부처님 가르침을 펴고, 중생을 제도하며, 나라와 민족이 위급(危急)에 처할 때에는 호국의 기치(旗幟)아래 스님과 신도들이 한 마음으로 백척간두에서 뛰어 내려 누란(累卵)을 이겨냈다.

아미타부처님을 염송하며 만일(萬日) 동안 정진했던 만일염불회가 여러 차례 봉행돼 동참했던 대중은 극락정토로 왕생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호국 승군이 훈련하며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실천했다. 왜란 이후 사명대사는 전란을 수습하며 건봉사에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를 모셨다. 일제 강점기에는 봉명학교를 세워 민족 독립 운동을 펼쳤고, 6.25 전쟁 때는 국군이 집결해 북진(北進)을 준비하던 근거지였다.

금강산 건봉사의 1,500년 영화(榮華)와 역사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함께 묻혔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대한불교조계종 3교구 본사 설악산 신흥사와 교구 스님들, 신도들, 학자들에 의해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건봉사의 찬란한 영화를 간직한 보물 제 1336호 능파교(凌波橋)

건봉사는 지금 그 장엄한 역사와 영화를 깊이깊이 간직한 채 이 땅의 아픈 역사와 하나 되어 그 상처를 치유하고 봉황의 날개로 날아오르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정법 도량으로,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생명 도량으로, 홀로 일어서기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자비 도량으로 분단 시대를 사는 민족에게는 평화 도량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건봉사 사적과 비문, 다시 일으키기 위한 사부대중의 노고(勞苦), 건봉사를 노래한 한시(漢詩) 등을 통해 건봉사의 역사와 수행 가풍, 오늘 그리고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

김충현 기자  kang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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