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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 “故 김대중 전 대통령, 1992년 정계은퇴 선언 당시 정계복귀 전략 추진…故 이희호 여사에게도 숨겨”[BBS 이상휘의 아침저널 - 파워 인터뷰] 장성민 세계화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김대중 전 대통령 재택근무 비서
아침저널 | 승인 2019.06.14 09:25

■ 대담 : 장성민 세계화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김대중 전 대통령 재택근무 비서
■ 방송 : BBS 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 FM 101.9 (07:00~09:00)
■ 진행 : 이상휘 앵커

▷이상휘: 우리 사회의 큰 어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 제1야당이라고 불렸던 故이희호 여사의 발인이 거행됐습니다.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오신 이희호 여사의 삶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는데 오늘 이를 위해서 기꺼이 오랜만에 인터뷰 승낙을 해 주셨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택 근무 비서로 정치생활을 시작하신 분이죠.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지켜봤던 분이시기도 합니다. 장성민 전 의원 연결해서 이야기 나눠보게 됐습니다. 의원님, 나와 계십니까? 

▶장성민: 네. 

▷이상휘: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장성민: 네. 감사합니다. 

▷이상휘: 방송 참 오랜만이시죠? 

▶장성민: 몇 년만에 한 것 같습니다. 

▷이상휘: 어려운 와중에 인터뷰 연결해서 감사드리고요. 먼저 누구보다 더 가까이 모셨던 분으로서 이희호 여사님의 마지막 작별 심경 어떻습니까? 

▶장성민: 착잡하고 슬픕니다. 아침에 이런 말씀을 시청자 분들에게 드려서 어떨지 모르지만 애통하죠. 

▷이상휘: 잠시 후에 거행이 됐습니다마는 이게 지금 어떤 식으로 영결식이 진행이 되고 있나요? 

▶장성민: 방금 전에 연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운구차가 고인이 55년 동안 다니셨던 신촌의 창천교회로 지금 막 출발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추도예배를 보고 동교동 자택을 들러서 아태평화센터 잠깐 들려서 현충원으로 가서 현충관에 도착하면 거기에서 잠깐 의식을 갖고 다시 김대중 대통령 묘역으로 가서 거기에서 추모 예배를 본 다음에 합장을 하는 것으로 지금 일정이 나와 있습니다. 

▷이상휘: 아무래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누구보다 더 가까이에서 두 분을 지켜봤기 때문에 오늘 그 영결식, 추모식이 착잡하시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북한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이 판문점을 통해서 조의문과 조화 전달했는데요. 이희호 여사께서 유언으로 국민과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 이런 말씀 남기셨다는 만큼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장성민: 이희호 사모님께서는 평소에 평생을 국민과 평화통일, 민주주의 또 한국의 차별 없는 사회 이런 것을 신념처럼 신앙처럼 갖고 살아오신 분이었기 때문에 저희들 가까이에서 같이 생활했었던 저희들 입장에서 보면 크게 남달라 보이는 특별한 그런 어떤 유언이라고는 생각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평상시에 생각하셨던 국민과 민주주의와 차별 없는 사회, 평화통일 이런 평소의 생각을 또 한번 강조하시고 남기신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상휘: 국민적 화합 통합 그리고 평화통일 이런 것들은 늘 하셨던 말씀이시니까 유언이라고는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북한 측에서는 조문단이 아니고 조의문과 조화 이런 것을 보냈는데 혹시 유족들이라든가 일각에서 서운하게 느껴지시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성민: 주변 분들이 다소 섭섭한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그런 거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고 국민들 입장에서는 무슨 김정은 조화를 가지고 그러냐 이런 쪽도 있을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래도 큰 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 예의범절을 지켜야지 저게 뭐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쪽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모든 대남 액션은 예의범절 이런 차원에서 해석을 하면 안 됩니다. 철저히 국민전략이고 체제선정과 선동의 이벤트로 국가 이익적인 전략 차원에서 항상 하는 것이지 예의를 찾고 국제적인 룰을 찾고 이런 걸 북한을 기대하거나 그런 생각, 감성적인 생각을 갖고 북한을 쳐다보면 100% 실패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전혀 서운하거나 그런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이상휘: 전략적 차원이니까 거기에 대해서 큰 의미 부여할 필요 없다

▶장성민: 둘 필요 없습니다, 그런 생각입니다. 

▷이상휘: 알겠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이희호 여사와 20대부터 아주 오랜 인연을 맺어오셨다고 들었는데 처음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장성민: 많은 분들이 여쭙기도 하던데요. 87년 대학생 때 제가 학생운동에 관심을 좀 갖다가 이건 아니다 돌 던지는 데모 가지고 독재체체로부터 민주화, 민주주의체체로 전환 체제를 이룰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이 곧 87년 평화민주당의 청년대학생이 입당을 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87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후보를 청년자원봉사자로 입당을 해서 돕게 된 것이 김대중 대통령한테 발탁이 된 것이고 그것이 신뢰가 쌓이고 연이 돼서 동교동의 첫 비서실에서 근무를 한 것이 동교동 자택에서 이희호 사모님을 만나게 된 20대 저의 청춘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상휘: 결국 재택근무가 웬만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사실 하기 힘든 근무거든요. 그래서 상당히 친밀하셨지 않나라는 생각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이사장님께서 기억하시는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장성민: 글쎄요 모셨던 분들의 개인적인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기억에 남는 일화들이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정치 거목을 만나서 정치를 진짜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항상 스승과 사제의 입장에서 그분을 돕고 모시고 정치를 배우는 정치 사도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희호 사모님은 항상 저에게 강조하시기로 김대중 대통령 당신의 남편은 사명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저 양반은 사명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고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는 나라를 구하려는 그를 돕는 것이다, 나의 역할은. 
그래서 그분을 잘 돕는 것이 결국 그분으로 하여금 나라를 구하게 만드는 길이다 이런 어떤 말씀을 자주 하신 것이 굉장히 인상에 남고요. 정계 은퇴 선언을 김대중 대통령이 92년에 할 때 동교동 자택에서 저 혼자 두 분을 모시고 남아 있을 때였는데 제가 곧장 정계 복귀 전략을 바로 세워서 대선 프로젝트 복귀 전략을 세워서 김대중 대통령한테 긴밀하게 이야기를 했더니 매우 당황해 하시면서 이 부분은 절대 이 사람한테 이야기하지 마세요. 그런 극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모님한테도 김대중 대통령의 명령대로 절대 알리지 않고 정계 복귀 전략을 극비리에 추진을 해 오고 그것이 영국 캠브리지로 가시고 돌아오셔서 밤섬 프로젝트를 다시 만들고 거기에서 저하고 단 둘이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비밀공간을 잡아서 정당 창당까지 대충 다 이렇게 계획을 해서 나오는데 그 당시 되니까 언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 복귀 기사 나오고 그런 기운을 차려서 기사들이 나오니까 급하게 저를 사모님께서 부르시더라고요. 지금 전 언론이 이 양반 정계 복귀할 것 같은 기사를 지금 말하고 있는데 이거 장 비서 알고 있어요, 모르고 있어요? 지금 정계 복귀하면 안 돼요. 강력하게 반대하셨던 것이 그래서 저는 전혀 모른척하고 정계 복귀 못하도록 막아라 지금 안 된다 지금 절대 안 된다

▷이상휘: 지금은 안 된다? 

▶장성민: 지금은 안 된다가 아니고 이건 안 된다 이런 말씀이시죠. 굉장히 도덕적이시니까. 그런데 사모님을 그때 저로서는 속이고 끝까지 비밀로 속이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극비리에 추진해서 밀어붙여서 정계 복귀를 시켜서 결국 정권 교체를 이룬 것이 그때 그렇게 호되게 야단친 것이 평생 야단을 그렇게 안 치시는 분인데 가장 추억의 일화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상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비상인 것 같은데요. 그러면 정계 복귀와 관련해서 위원장님 외에 다른 사람은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나요? 

▶장성민: 거의 없었죠. 그때는 92년 정계 은퇴 선언을 하셨을 때는 전 비서실, 경호실을 해체시켰어요. 스스로 당신이 정치를 하고 있다라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정치에 관련된 발언에 대해서는 이희호 사모님한테까지도 하지 않았어요. 

▷이상휘: 복귀에 대한 얘기는 사모님하고도 전혀 언급이 없었고 협의가 없었다는 얘기죠? 

▶장성민: 이야기할 수가 없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상휘: 그러면 영국으로 가시기 전에 이미 위원장님과 정계 복귀 시나리오 프로젝트를 만들었다는 거네요? 

▶장성민: 제가 정계 복귀 며칠 후에 바로 복귀 전략을 짜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하늘에 나는 참새 새끼 한 마리도 칠십이 넘은 김대중 대통령이 노고를 끌고 다시 대통령 선거에 3번 떨어졌는데 네 번째 도전하리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 나는 참새 새끼 한 마리도 그런 생각과 발설을 할 수 없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가 이제 정계 복귀를 하면 프로그램을 잘 짜면 이번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저는 그렇게 봤기 때문에 그때부터 사실상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있는 신뢰, 없는 신뢰 모든 것을 다 저한테 쏟아부었던 그런 어떤 기간이 아니었나 시기가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상휘: 이렇게 숨은 얘기 방송을 통해서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나중에 정계 복귀에 대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추진되면서 혹시 이희호 여사께서 화를 내시거나 이런 적은 없으셨습니까? 

▶장성민: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기정사실화됐고 이렇게 해서 이렇게 갈 수밖에 없고 이번에 가면 이러 이러한 전략적으로 대권이 가능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게 불가능한 미션을 가지고 사명을 가지고 가는 게 아니고 이건 가능한 사명을 지금 현실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이후에 DJP 전략까지 JP까지 박정희의 오른팔인 김종필 총리까지 끌어들여서 연합을 맺어서 세력 확장을 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는데 그런 그림을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시고 

▷이상휘: 이희호 여사께서요? 

▶장성민: 우리가 제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대통령도 이번에 나오면 마지막인데 기회가 있을 것 같다 하니까 어차피 물은 엎질러졌는데 당신이 막을 수 있다고 해서 막을 수 있고 반대한다고 해서 할 수 상황이 아니고 그리고 야당이 당시 이기태 총재인데 너무 약해서 대여 견제가 안 되기 때문에 민주주의 축이 무너지는 것도 민주화 투쟁의 신념을 불태웠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불꽃을 한번 불태우자라고 하는데 그때는 동의하시고 침묵으로 동의하시고 그 이후에는 차가 달리니까 이제는 할 수 없이 올라타야죠. 그런 상황에서 적극 지원하고 후원을 하셨습니다. 

▷이상휘: 그러셨군요. 가까이에서 지켜보셨기 때문에 두 분의 관계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실 텐데 지금 김대중 대통령도 생전에 오늘의 나는 아내 덕분이다 이런 취지의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실제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 어떤 의미였다고 보십니까? 

▶장성민: 많은 분들은 내조자 아내로 이렇게 생각을 하시겠지만 가까이서 본 저는 두 분은 정치적 동지였고 그래서 이희호 사모님은 항상 김대중 대통령의 아내라는 생각보다는 내조라고 하는 말을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동력자라고 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동력자라고 하는 것은 서로 돕는 관계라는 거죠. 그래서 어디까지나 국가적 사명에 남편이 나서는 일에 자기가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 자체가 곧 국가를 구원시키는 길이다 이래서 서로 간에는 동지이자 협력자이자 또 김대중 대통령이 여론수렴을 잘 못한 것 같다 그러면 철저한 반대를 하고 그러니까 동교동 내의 저와 함께 강력한 반대자셨죠. 그래서 제 기억에 두 분이 부부라고하는 어떤 개념으로 관계 설정을 하기에는 상당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입니다. 

▷이상휘: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이사낭께서 방송인이고 또 정치인이시니까 이 질문 드려봐야 될 것 같은데 다른 얘기입니다. 국회 정상화 막판 전통 겪고 있는데 한국당이 경제 청문회를 요구하면서 또 다른 변수 등장했습니다. 현재 상황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장성민: 저는 국회 들어가야 된다고 봅니다. 국회 들어가서 경제 청문회를 요청하고 경제 청문회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부분들을 국회 상임위에서 야당이 국민 앞에 어떤 경제 정책이 실패한 것인지 낱낱이 국민 앞에 알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러면서 국회 원내 들어서 원내투쟁을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또 원외투쟁을 병행해 나가는 그런 어떤 투트랙 전략으로 가야지 국민의 혈세를 받아먹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번번이 무슨 길거리 정치 흉내나 내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장외투쟁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만은 능사가 아니다 해서 의원은 어디까지나 의회 내에 들어가서 제도적인 투쟁을 하면서 국민에게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의 실정을 보다 폭넓게 구체적으로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러고 나서 다른 한편으로 그것 가지고 부족하면 원외 병행 투쟁을 하는 그런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좋다 절대 국회의원은 원내를 제도를 포기하거나 나와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저의 의회 정치 내지는 민주주의 철학입니다. 

▷이상휘: 의회 정치와 민주주의 철학. 화합과 통합 지금 투트랙으로 가야 된다라는 그런 말씀이셨는데 고맙습니다. 오늘 어렵게 여러 말씀해 주셨는데 모처럼 방송에 나와서 고맙다는 말씀 다시 한번 전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장성민 세계화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이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장성민: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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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짐 2019-06-15 11:14:57

    인동초도 떠나고 그의 곁을 지키던 또 다른 거목이
    떠났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은 남아있고 그것을 확대 계승하는 것이 남은 이들의 몫이 아닐런지..
    새로운 변화 화합과 용서의 정치가 그리워지는 요즈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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