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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

*앵커 : 양창욱 정치부장

*프로그램 : BBS 뉴스파노라마 [인터뷰, 오늘]

양 :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과 대변인을 지내신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님 전화연결 돼 있습니다. 박선숙 의원이 기억하는 고 이희호 여사님은 어떤 분이었을까요? 의원님, 나와 계시죠?

박 : 네, 박선숙입니다.

양 : 의원님, 요즘 좀처럼 뵙기가 힘듭니다. 요즘 뭐 하십니까?

박 : 요즘 국회에서 상임위가 열리진 않지만, 상임위 관련된 법안 또 그런 정책들, 최근에 원전사고, 이런 것들 분석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양 : 요즘도 의정활동 계속 열심히 하시고 계시는 군요. 저희들이, 좀처럼 기자들이 뵙기 힘들다고 해서 제가 여쭤봤습니다. 저도 어릴 때 김대중 대통령이 박선숙 의원님 칭찬하는 것을 여러 차례 많이 들었어요. 정말로. 그런데 의원님께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어젯밤 돌아가신 이희호 여사님하고도 인연을 맺고 계신데, 어떤 인연이 개인적으로 있으십니까?

박 : 김 대통령을 95년에 처음 뵀고요. 그때 이제 이희호 여사님도 뵀으니까, 한 25년 정도 그 뒤로 모시고, 또 보고 배울 기회가 있었죠.

양 : 이희호 여사님 하면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부인으로도 알려졌지만, 이 분 자체가 빼어난 여성운동가시고, 또 반독재.민주화 운동의 동지고 그러시잖아요. 그쵸?

박 :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여성운동가하면 굉장히 전투적인 성정을 떠올리기가 쉬운데, 여사님은 좀 다르세요. 저는 오랫동안 여사님을 뵈면서 큰 소리 내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굉장히 정직하고 올곧은 분인지만 소녀 같은 분이셨거든요. 그러면서도 용감하고 강인한 면을 가지고 계셨고요. 어쩌면 김 대통령께는 이희호 여사님이 누구보다도 강력한 첫 번째 동지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예가 있는데요, 김 대통령께서 95년도에 정계 복귀를 결심하는 과정에, 어떤 면에서 보면 첫 번째 반대자가 이희호 여사님이었다고 해요. ‘국민들하고 약속을, 정계은퇴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 그래서 나는 반대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거든요. 김 대통령은 ‘당신이 반대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 민족의 앞날이 중요한데, 정부와 여당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서, 책임을 피할 수가 없고, 내가 변명은 안 하겠다.’ 이렇게 설명하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김 대통령께는 이제 한편으로는 아주 믿을 수 있는 동지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강력한 비판자였었죠. 이런 면모는 사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양 : 저희 기자들은, 저희 기자들에게 보이시던 모습 그대로 그저 온화하게만 여기고, 실제 그 성격과 인품도 그대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이렇게 알고 있는데, 물론 그러신 면도 있겠지만 또 그렇게 저희들이 잘 모르는 강인한 모습도 갖고 계시는 군요. 그런데 이희호 여사님 자체가 굉장한 엘리트셨죠?

박 : 그렇죠. 김 대통령은 목포상고가 최종 학력이고, 나중에 박사나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셨지만, 목포상고가 최종 학력이지만 여사님은 이화여자전문을 거쳐서 서울 사대 나오시고, 그때 당시로는 굉장히 어려운 외국 유학길에 오르셨어요. 외국 유학도, 집안에서는 서울 사대까지는 보내주셨는데, 유학 가는 것은 반대하셔가지고 본인이 직접 유학의 길을 뚫어내신 거예요.

양 : 지금도 미국 유학 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박 : 네, 그래서 그때 유학 가셔가지고 스카릿대학에서 공부하실 때 장학금으로 학비는 대지만, 책 사볼 돈이 모자라서, 한 시간 넘게 버스 타고 시골까지 가가지고 아르바이트, 그런 공장에서 일하고 하는 거 이런 거 하셨습니다. 그렇게 학비 벌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유학이라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들은 엄두가 안 나는 일인 데다가, 대학에서 버스 타고 한참 시골까지 가서 책값 벌고, 이런 것을 보면 어릴 때부터 그 성정에 두려움이 없는 용감함이 있으세요.

양 : 그렇군요. 그런데 굉장히 유복한 가정으로 알려졌는데...

박 : 그러니까 유학을 집안에서 보내준 게 아니기 때문에 고생을 하신 거죠. 개척을 하신 거죠. 본인 스스로가. 실제로 또 김 대통령하고 결혼하실 때에도 집안이 반대해서, 집안만이 아니라 함께 YWCA하시던 후배 분들도 다 울고불고 반대를 했다고 해요. 그것도 용감한 결정하신 거예요. 내가 이 사람 하나 보고 간다 이렇게. 그런 강인함이 있으신 분이에요.

양 : 아니, 의원님 말씀을 들으니까 더욱 더 공감이 되는데... 사실 저희들이 어젯밤에 돌아가시고 여사님의 인생 역정과 이력들을 주욱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한 인간으로서 참 완전한 삶을 사셨다, 그런 느낌이 자꾸 들어요. 어떻게 이렇게 사실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박 : 용기와 책임, 헌신,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지극한 정성, 이런 것들이 그 분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또 아주 작은 예지만 혹시 여사님과 악수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양 : 저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박 : 아깝네... 하하. 왜냐하면 한 번 그 분하고 손을 잡아보면, 그 손이 얼마나 따뜻하고, 얼마나 정성을 다해 손을 꼭 잡는지를 느낄 수가 있거든요. 근데 그게 60대, 70대, 그리고 90이 넘은 얼마 전까지도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도 그렇게 항상 악수를 두 손으로 꼭 잡고 그렇게 하셨어요.

양 : 아, 정말 지극정성으로 사람을 대하셨군요.

박 : 정성과 그 힘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저께,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일요일 밤에 병실로 찾아뵀고 손을 잡았는데, 그 손의 온기와 기운이 있어서 조금 더 계시지 않을까, 조금 더 견뎌주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참 아쉽습니다.

양 : 병상에 주욱 계셨지만 의식을 놓으신 적은 한 번도 없으셨데요. 오늘 발표를 보니까. 얼마나 강인하셨으면...

박 : 듣고 계신다고, 귀에다 대고 말씀드리면, 실제로 잡고있는 손의 느낌도 달라지고, 많이 힘드신데도 말씀드리면 느낌이 오고 그러더라고요. 가셨네요, 이제 정말...

양 : 네... 아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얼핏 제가 또 궁금해지는데 여사님께서 사석에서 의원님을 뭐라고 부르셨습니까?

박 : 저는 박 대변인, 박 의원님, 그러셨죠. 저한테 25년 동안 말을 놓으신 적이 없으세요. 항상 존댓말로 말씀하시고, 제가 청와대에서 5년 동안 여사님 가시는 행사는 거의 다 수행했었거든요. 청와대 첫 해, 1998년에 굉장히 어려운 때였고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처지였고, 또 버려진 아이들도 많고, 결식아동... 그런 어려운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사랑의 친구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여사님이. 그래가지고 진짜 어려운 사람들이, 여사님식 표현으로 하면 ‘지독하니 많은데’ 자기가 다 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98년 12월에 봉천동으로 떡국 나누기 행사를 갔습니다. 떡국하고, 고기 조금 넣고 그거 하나로 떡국 상자 하나 드리면 떡국은 끓여 드실 수 있게, 1월 1일 날. 그걸 가져다 드리는데, 대통령 부인 행사고 경호팀이 사전에 또 동선도 다 확인해야 하니까 봉천동 비탈길에 있는 집 가운데서 초입에 있는 집 몇 군데만 들리기로 계획이 돼 있었어요. 정말 엄청 추운 날이었어요. 정말 삭풍이 부는 그런 추운 날이었는데, 근데 여사님이 계획돼 있는 몇 집을 지나쳐서 계속 올라가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는 당황해서 ‘어디 가시냐고, 이제 가셔야 한다고’. 그랬더니 '아니 내가 여기 언제 또 다시 올지 알 수 없고, 여기 많은 분들이 계시는데, 그 분들 안 보고 가면 어떻게 하냐고’... 저희도 끝까지 따라 올라갔어요, 여사님 따라서. 그래서 20분 예정돼 있던 행사를 한 시간 넘게 하고, 아이들이나 어르신들 또 만나서 손잡고 이야기하시고, 그런데 그게 여사님이 가지고 있는 여사님의 성정이에요. ‘내가 그냥 가면 얼마나 섭섭하시겠냐, 의전이나 경호보다 어려운 분들 만나는 게 더 중요하고 한 분이라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런 책임감이신 거죠. 어떤 일이나 사람도 허투루 하지 않고 대하지 않는 그런 분이어서, 그런 게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귀한 분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고요. 한 가지 더 말씀드려도 되나요?

양 : 네, 얼마든지요.

박 : 대통령 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청와대로 입양아들을 초청하자고 그러셨어요. 그래가지고 청와대로 입양아들을 초청해서 위로하는 그런 자리를 만드셨어요. 해외 순방, 미국을 가거나 프랑스를 가거나,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해외 순방 갈 때마다 그 지역의 입양아들을 만나려고 항상 일정을 만들려고 노력을 하셨거든요. ‘여러분들을 그렇게 해외로 보낸 게 부끄럽고, 여러분들에게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죠.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것이고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 책임이라는 것은, 그래서 저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옆에는 준비된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계셨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양 : 그렇군요. 입양아 문제에도 그렇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셨군요.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님으로부터 태어나셨다는 말씀이 있군요.

박 : 이희호 여사님이 어떤 든든한 언덕이고, 신념의 동지이면서, 그런 버팀목이었다... 이희호 여사님 없는 김 대통령은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양 : 그렇군요. 저희 불교계 입장에서는 여사님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셨지만, 불교계에 대해서도 늘 각별한 애정과 존경을 표해주시고, 인연이 깊었습니다.

박 : 그럼요. 이제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김 대통령께서는 카톨릭, 이희호 여사는 크리스찬, 그렇게 종교가 다른 두 분도 서로를 존중하듯이, 다른 종교를 늘 존중하고, 종교의 본래의 취지와 뜻은 다 같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래서 다른 종교도 특히, 불교를 포함해서, 불교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것들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양 : 정말 두 분이 존중하고 존경하셨던 것 같아요. 두 분의 입장에서는 이웃 종교였지만. 저희가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교계도 지금 추모하는 마음이 대단합니다.

박 : 네 감사합니다.

양 : 이런 날은, 요런 소프트한 이야기만 하면서 고인을 추모해야하는데, 또 질문은 질문인지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하셨을 때는 북한에서 조문단이 왔었는데, 이번에도 올 것인가 많이들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뭐 저는, 과정과 절차는 잘 알 수가 없고요. 그러나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님에 대해서 각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에 비추어 본다면, 어떠한 형식으로라도 그런 뜻을 표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양 : 어떤 식으로라도...

박 : 김 대통령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이희호 여사님께서 단신으로 평양을 가신 적도 있잖아요.

양 : 그렇죠. 그럼요. 저희도 다 기억을 하죠. 의원님 시간이 다 돼서 끝으로 이거 하나만 더 여쭤보고 오늘 마무리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김홍일 전 의원님도 돌아가시고, 이희호 여사님까지 이렇게 별세하셨는데, 그럼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한 시대가 저무는 그런 느낌도 있습니다. 우리 정치가 김대중 전 대통령, 또 그리고 어제 별세하신 이희호 여사님께 배워야 할 가르침, 정치적 유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 : 저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래로, 97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36년 동안 상당한 고초를 겪으셨는데 두 분이 포기하지 않으신 것들이 있어요. 인간에 대한 믿음, 역사에 대한 믿음, 우리 민족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그런 책임감,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대한 그분들의 소명의식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고 정말 김 대통령을 지극하게 사랑하셨던 이희호 여사님께서 10년 간 견뎌내셨던 힘도, 못다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대한 소명의식을 남은 이희호 여사께서 실천하시면서 견뎌주시고 버텨주신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 분이 남겨 놓은 자리가 워낙 커서 누가 감히 그것을 채울 수 있을까, 그런 마음도 들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온전히 그 짐을 감당해야 될 때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양 : 지금의 정치권이 좀 더 많이 새겨듣고 배워야겠습니다. 고인에 대해서 좀 더 가깝게, 또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의원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박 : 네, 고맙습니다.

양 :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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