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 오늘의 이슈

●출연 : 이병철 기자

●진행 : 고영진 기자

●2019년 6월 3일(월)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앵커] 현충일과 6.25 전쟁기념일이 있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이면 어김없이 호국의 숨결이 불어옵니다.

지금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위해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위한 추모 행렬이 이어질 예정인데요.

불교계도 호국영령들을 위한 어떤 추모행렬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매주 월요일 교계소식을 전하는 이병철 기자 나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철] 네 안녕하세요. 오는 6월 6일은 제64회 현충일입니다.

이날 추념식에는 국가 유공자와 유족, 보훈단체, 군인, 기관ㆍ단체장 등이 참석해 국가를 위해 헌신ㆍ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넋을 기릴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불교계도 호국영령들을 위한 법회를 봉행합니다.

[고영진] 어제, 제주지역단 호국영령들을 위한 기도를 봉행했다면서요?

[이병철]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광명진언입니다.

제주지역 포교사들이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어제 나라를 위해 산화하신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는데요.

제주지역단 제주시총괄팀과 서귀포시총괄팀은 ‘현충일 위령법회’를 어제 새벽 6시에 봉행했습니다.

충혼묘지에서 예비포교사와 포교사들은 간단한 법회속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삼귀의, 반야심경, 아미타불정근, 발원문 낭독, 사홍서원으로 봉행했습니다.

이날 동참한 포교사들은 법회 후 각 묘비를 돌면서 광명모래를 뿌리고 애국선열들이 아미타부처님 품안에서 다시 태어나길 기원했습니다.

[고영진] 왜 묘비 앞에 모래를 뿌리는 건가요?

[이병철]묘비에 광명모래를 뿌리는 이유는 애국선열들이 지혜와 자비광명으로 무명과 업장을 걷어내고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모래는 포교사들이 해년마다 깨끗이 씻고 말려서 정성스럽게 준비합니다.

현충일 위령법회를 위해 그제였죠. 포교사들은 제주시 관음사 교육관에서 광명진언 모래법회를 봉행하며 점안의식처럼 모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포교사들은 지난 2006년부터 매년 현충일을 맞아 이른 새벽에 충혼묘지를 참배하고 위령법회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신라시대 호국불교의 참뜻을 받들어, 호국영령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되살리고자 위령법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영진] 또, 태고종 제주교구 종무원도 현충일 날 충혼묘지 앞에서 법회를 봉행한다면서요?

[이병철] 태고종 제주교구 종무원도 6일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에서 ‘호국영령들을 위한 위령제’를 봉행합니다.

이날 위령제는 태고종단 스님과 강규진 태고종 제주교구 신도회장 등 종단 신행단체장과 불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반야심경·나무아미타불 독송 등으로 진행됩니다.

위령제 참석자들은 아미타불을 부르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호국영령들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광명으로 무명의 실타래를 걷어내 피안의 언덕에 이르길 기원하게 됩니다.

[고영진] 호국 영령들이 안식처인 사찰이 있다면서요?

[이병철] 네, 제주시 충혼묘지 인근에 자리한 충혼각입니다.

충혼각은 제주도에서 1956년 6월, 한국전쟁 이후 제주시 사라봉현 모충사 근처에 전몰군경 위패와 유골을 임시 봉안하기 위해 지은 게 시초입니다.

지금은 입적하신 설봉스님이 부임하기 이전에는 관리자가 없어 비가 새는 등 관리가 허술했다고 합니다.

그럴 즈음 당시 보림사 신도였던 백치선 보살이 1966년 사라봉 사라사에서 기도 중이던 설봉스님에게 부탁하자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설봉스님이 그 해부터 부처님을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 18일 입재하고 20일 회향하는 ‘제주 전몰군경 합동위령대제’를 봉행하기 시작합니다.

관리가 엉망이던 이곳에 여법한 부처님이 모셔지고 호국영령들의 안식처를 찾아주는 위령제는 전몰군경 유족을 비롯해 미망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고영진] 유족들 가운데는 이웃종교를 가진 이들도 있었을 텐데요?

[이병철] 맞습니다. 타 종교 유족들도 있었기에 부처님을 봉안하는 것은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은 영가들이 극락세계든, 천당에든 편안하게 잠들길 바랄 뿐이라고 설득했고, 종교를 초월해서 위령제를 지내드려야 하지 않냐고 하자 타 종교인들도 수긍했다고 합니다.

초창기 충혼각은 그야말로 허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변변한 화장실 하나 부엌 한 칸 조차 없이 스님은 법당 귀퉁이에서 잠을 청해야 했을 만큼 장소가 협소했다고 합니다.

신도들은 늘어나고 유족들이 편이 쉴 공간조차 없어 충혼각을 중창불사를 하려 했으나 사라봉이 공원부지로 묶여, 그 계획은 전부 물거품처럼 꺼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충혼묘지가 근처에 있고 납골당이 자리한 현 한라산 아흔아홉골에 대웅전을 옮기게 됩니다.

현 대웅전은 1990년 1월에 완공되어 사라봉에서 모든 것을 옮겨왔습니다. 한라산 자락에 터를 잡은 지도 어느덧 29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올해로 ‘제54회 전몰군경 합동 위령제’도 여법하게 봉행했습니다.

예전에 스님이 인터뷰에서는 출가해서 보람이라면 전몰군경 인연으로 해서 매년 호국영령들을 위해 위령제를 모실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영진] 설봉 스님은 6.25 참전 용사였다면서요?

[이병철] 네, 설봉스님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딱 1년이 지난 1951년 6월 25일 강원도 전투에서 중공군이 쏜 탄알이 다리를 관통하는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당시 스님은 ‘우리 부대가 전멸하다시피 했는데 온 산이 불바다였다’며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습니다.

총상 입은 다리를 지혈하기 위해 분대장이 헝겊탄띠로 스님의 다리를 감는 순간, 적의 탄알이 분대장을 관통했던 겁니다.

분대장은 바로 30m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위생병…’하는 소리가 적의 포탄소리에도 선명하게 들렸다고 합니다. 스님은 분대장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한이 맺혔습니다.

분대장님의 이름이라도 알았다면 위패를 모시기라도 할 것을…, 단지 계급과 고향정도만 알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던 설봉 스님도 지난 2013년 4월 법납 71세, 세수 85세로 입적하십니다.

분대장님 곁으로 가신겁니다.

[고영진] 충혼각에는 납골당도 있다면서요?

[이병철] 네 맞습니다. 충혼각의 대웅전 왼쪽에는 일반인들 1천명의 납골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충혼각에서는 이들을 위해 매년 음력 9월 9일이면 ‘납골당 합동 위령제’를 봉행합니다.

음력 9월 9일은 중국 민간의 중요한 전통명절인 중양절(重陽節)로 유주무주 영가들의 제사를 지내면 좋다는 날입니다.

특히 이곳 납골당은 제주시에서 도시구역개발로 인해 화장된 무주고혼 영혼들이 절반가량 모셔져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님은 이곳의 관리인에 지나지 않다고 합니다. 법당은 시청, 납골당은 양지공원에서 관리감독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지역은 한라산국립공원지역으로 중창불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호국불교의 성지로 일반인들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원처럼 충혼각이 꾸며지길 스님뿐만 아니라 호국영령과 유족들도 모두가 발원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지금까지 한주간 불교계 소식이었습니다.

[고영진] 수고하셨습니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