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 오늘의 이슈

● 출 연 : 정희복 전 제주도교원불자회장(제주여고 교장)

● 진 행 : 고영진 기자

● 2019년 5월 14일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 코너명 : 오늘의 이슈

[고영진] 날짜만 들어도 고마운 얼굴이 머릿속에 스치는 5월입니다. 이 시기면 은사님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내일이면 스승의 날이죠. 오늘 이슈에서는 지난해까지 제주여자고등학교 교장이셨고 제주도교원불자회 회장을 역임하신 정희복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정희복]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고영진] 우선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해도 될까요?

[정희복] 네, 괜찮습니다.

[고영진] 선생님께서는 30여년간 교직에 몸담아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해 8월에 퇴임하셨고요. 어떻습니까? 현직을 떠나 처음 맞이하는 스승의 날은 이전과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요. 감회가 어떻습니까?

[정희복] 현직에 있을 때면 일어나면 오직 학생생각 학생을 어떻게 챙겨야하나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서 벗어나서 퇴직하고 보니까 자유롭고 마음이 여유롭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해서 굉장히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고영진] 네, 그렇군요. 내일이 스승의 날이지 않습니까? 날이 날이니만큼 그동안 선생님께서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 할 제자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여전히 글도 쓰시고 여행도 많이 하고 계신가요?

[정희복] 저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생활신조가 행운은 준비와 기회의 만남이다. 이것을 가슴에 품고 실천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래서 퇴직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좋은 기회도 되고 해서 제주도 자연환경해설사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게 돼서 지금 성당에 있는 거문새미오름에 이틀 나가서 활동하고 협회임원이 돼서 활동하면서 또 남은 시간은 시낭송활동도 하고 수필도 쓰고 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고영진] 교직에 계실 때는 제자 분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면 지금은 자연을 벗 삼아 자연에서 자연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계시군요.

[정희복] 자연을 우리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알리는 소임을 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영진] 오랫동안 교직에 계셨으니까 제자 분들도 상당히 많으실 텐데 내일이 스승의 날이고 한데 혹시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시거나 만나는 제자 분들도 계신가요?

[정희복] 가끔은 그냥 그리움으로 또는 주위에서 가는 곳마다 반갑게 뵙니다. 동네에서 어디를 가나 참 반가운 얼굴들 보면은….

[고영진] 30년 동안 교직에 계셨으니까 어디를 가든 다 제자들이거나 각 동료들이거나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정희복] 특히 제자들이 곳곳에서 반갑게 인사할 때가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고영진] 아무래도 자연과 벗 삼아서 지금은 해설사일을 하고 계시니까 건강을 많이 좋아졌을 거라고 생각은 되는데 건강은 괜찮으시죠?

[정희복] 네, 좋습니다.

[고영진] 사실 지난해는 선생님께서는 특별한 한 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오랜 교직생활을 마무리 하신 것도 물론이고 그간에 지내오신 삶을 책으로도 출간하셨는데 여기 더해가지고 사랑하는 어머님을 부처님 곁으로 모시기도 하셨고 이런 이야기는 좀 그렇지만 어머님이 많이 그리우시겠습니다.

[정희복] 특별히 어머님 돌아가실 때 제가 다니는 한마음선원 주지스님께서 어머니 안부를 한 서너 달 전에 물었습니다. 상태가 안 좋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님을 위해서 정성을 드리세요. 그래서 한마음선원에서 정성을 매일 제가 백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선원에 들러서 이렇게 발언을 했습니다. ‘어머님 오늘도 편안하십서 좋은날 좋은 시에 새 옷 갈아입고 부처님 한마음자리에 함께 하십서’. 이렇게 백일동안 하다왔더니 백일을 며칠 앞두고 편안한 모습으로 영면하셨습니다.

[고영진] 어머님께서도 선생님의 간절한 바람처럼 편안하게 좋은 곳으로 영면하셨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혈육의 정과 인연의 소중함에 대한 성찰을 담긴 글을 많이 쓰셔서 많은 감동을 남기셨는데요. 아마 선생님의 그런 면에 제자 분들도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정희복] 저는 교직생활 34년 동안에 학생들과 교실에서 수업하며 즐겁게 지냈던 것이 28년 그리고 교감, 교장 3년, 3년 해서 6년 이렇게 생활했는데 평교사 때든 관리자가 될 때든 학생들에게 문학을 통해서 특히 시낭송을 통해서 훈화할 때도 시낭송으로 이렇게 했더니 그 많은 제자들 중에 영향을 받은 제자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영진] 시낭송을 평소에 학생들에게도 강조하시고 선생님께서도 열심히 하신 것 같은데 혹시 가장 감명 깊게 기억에 남는 시나 외우고 있는 시 혹시 있으시면 한 구절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희복]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줬던 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입니다.

[고영진] 아, 예. 저도 들어본 것 같습니다. 짧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정희복]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마침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영진]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시입니다. 삶의 지향이라고 해야 될까요? 두 자녀들에게도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꿈을 도전하라고 가르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말씀 실천의 한 예로 들어보자면 등단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현직 교사시절 50대에 등단하셨는데 그 때 이야기 좀 들려주시죠.

[정희복] 제가 등단하려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이것도 인연인가 봅니다. 저희 3학년 때 은사선생님과 은사선생님이 퇴직을 해서 우당도서관에 매일 나와서 글을 쓰고 하셨는데….

[고영진] 선생님의 은사선생님께서?

[정희복] 고3 때 담임선생님께서 선생님은 수필을 제주문인협회 회장도 했었고 그런데 우리 아이 막내를 중2 때 우당도서관에 태워다주고 나는 책을 빌리러 이렇게 가는데 현관에서 만났습니다. 그래서 너무 제자를 반갑게 여기시고 그 후에 학교로도 연락오고 우편으로 책을 보내주면서 아주 수필을 써보도록 진정 어리게 권유도 하고 해서 수필을 쓰기 시작했고 스승님의 추천으로 등단을 중앙문예제에 등단을 하고 그런 다음에 스승님께 이렇게 등단만 해서 각자 쓸 수 있지만은 도민을 선생님과 함께 몇 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작품을 낭독도 하고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했더니 스승님께서는 너무 좋은 생각이다 해서 여덟 분을 여기 창간호 가져왔습니다. 2007년에 여덟 분이 모여서 맥이라는 동인 맥을 발간해서 두 달에 한 번 여덟 분이 작품을 쓴 것을 두 달에 한 번 진지한 토론을 하면서 공유도 하고 그리고 제가 발간한 것도 70%가 그 때 토론에서 비판도 받고 지적도 받고 다시 생각해서 다듬은 책이 행운목이라는 수필집을 퇴직기념으로 발간했습니다. 지금도 내일이 스승의 날이지만 김길웅 선생님의 고마움과 은혜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수필, 시 평론 활동을 지금도 열성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영진] 고교시절 은사였었던 김길웅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시작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셨고 그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등단으로까지 이어졌고 이 후에는 동인지 맥을 발간하기까지 이르렀다는 말씀이시군요. 인연이 이래서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스승을 따라 제자가 이렇게 배운 것이지 않습니까?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다시 오래전 이야기로 돌아가서 처음 교단에 몸 담으셨을 때 혹시 기억나시나요? 그 때는 어땠습니까? 분위기나 전체적으로

[정희복] 제가 처음으로 부임한 해가 1984년도입니다. 그 때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교장선생님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김공천 교장선생님 별세하셨지만 일본에서 법학과를 전공하고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고 그 다음에 현대시조 시조시인으로 등단해서 활동하셨고 늘 학생들을 사랑하면서 선생님들과 서슴없이 어울리면서 오직 교직에 외길을 걸었던 그 때 처음 부임할 때 기억이 나고 또 하나는 그 때는 지금과 달리 소풍가서 게임도 하고 선생님 애창곡, 선배부터 내려오는 노래 가시리를 부르라고 다 합니다 애들이 그러면 가시리를 같이 부르면서 흥겹고 또 1박2일 야영 수학여행 지금보다 아주 그런 것들이 지금은 소풍도 없어지고 체험학습으로 바뀌었지만은 그립기도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고 있습니다.

[고영진] 당시는 물질적으로나 시설적으로 지금보다는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멋이라고 해야 되나요? 낭만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되겠군요. 참 재밌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을 대할 때 가르침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것만은 꼭 지켜라 가르치거나 아니면 이런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강조하신 사항이 있나요?

[정희복] 저는 첫째로 바른 인성을 첫째로 교육관으로 늘 바른 인성이 추상적으로만 들리기 쉽지만 인사 하나라도 잘해야 된다. 그래서 한 20년 전쯤에 학생들이 중학교에서부터 습관이 인사를 잘 안하고 선생님 봐도 담임선생님이나 학년단 선생님들한테만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신입생을 인성수련으로 교장선생님께 건의를 해서 1박2일 그리고 거기 지도 수녀님께 인사 잘하는 것만 중요성만 잘 위탁 수련이기 때문에 일관되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더니 그렇게 해서 갔다 오더니 아이들이 밝고 환하게 인사하는 것이 점점 20년 동안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3월 개학해서 첫 째 주는 인성수련을 다녀오는 것을 굉장히 보람으로 느끼고 제주지역을 찾아오는 모든 분들이 학생들이 밝고 인사를 잘한다는 말이 이제는 회자되고 있습니다.

[고영진] 인성교육 특히 인사하기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사에서 모든 예절이 시작하니까요. 이 길었던 교직생활만큼 도중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그리고 혼자 극복이 힘들면 옆에서 도움 주셨던 분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혹시 기억에 남는 분들이 계신지 좀 여쭙겠습니다.

[정희복] 저는 건강이 안 좋을 때가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특별히 수술하거나 할 병이 아니고 원인이 스트레스였습니다. 어쩌면 제가 너무 열성적으로 하려고 좋게 말하면 그렇게 하고 어떻게 하면 잘 적응이 안 된 면도 일부는 있어서 갈등을 겪었을 때 불교신앙이 저의 구원자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니는 한마음선원 주지 스님 그리고 이 길을 밝혀주신 대행 선사님 정말 지금도 30년째입니다. 일관되게 소임을 맡으면서 그것을 극복하고 많은 공덕을 얻어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고영진] 네,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다보니 스트레스로 인해서 살짝 아픈 부분도 있었는데 불교를 믿으면서 극복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도 있으실 거고 보람된 순간도 많았을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나요?

[정희복] 가장 기억나는 일은 제가 교직 5년 후에 고3 담임을 했었습니다. 그 때 어려운 학생들이 특히 다 읍면지역에서 통학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아이들이 그래도 잘 따라서 한 아이는 가정이 어려워서 취업을 하겠다고 상담할 때 마침 은행에서 처음으로 실업계 여상이라든지 추천받아서 하다가 인문계 학생을 추천받을 때 마침 저희 반 학생을 추천했더니 면접하고 합격돼서 지금은 어느 모 은행 최초 여성지점장하고 나머지 5명들도 교직에 초등에 또는 중등에 서귀포 장학사로 한 분 있기도 하고 그 5명이 모임을 해서 가끔 초대도 하고 해서 가장 오래도록 제자와 스승과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잊지 못한 제자들이 보람도 되고 기억에 남고 있습니다.

[고영진] 교직에 대한 시선도 예전하고 많이 달라지면서 스승의 날을 좀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이런 추세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희복] 스승의 날 물론 불편하게 느끼는 선생님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서 선물을 받는 것도 부담이고 주는 학생도 부담인데 지금은 개선돼서 과거에 비해서는 스승의 날 부담이 덜한 것이 아닌가. 제가 작년에 있을 때도 2~3년 사이에 그런 부담이 많이 줄었고 카네이션 한 송이만 달아주는 것이 너무 편하고 학생들이 고마움 마음으로 해서 한 마디 해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습니다.

[고영진] 오늘 함께해주신 정희복 선생님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좋은 소식으로 찾아뵙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희복]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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