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악수를 해 ‘꼿꼿 장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온 세상이 자비와 지혜의 등불을 밝히고 부처님이 이 땅에 나투신 참뜻을 새기던 부처님오신날, 이 ‘꼿꼿 장수’는 십 수 년 만에 천년고찰 은해사에서 불미스럽게 되살아났다. 이번에는 국방부의 수장이 아닌 제1야당의 수장, 황교안 대표. 황 대표는 이 날 봉축법요식 내내 그 수많은 불교의례에도 시종일관 꼿꼿하고 빳빳하게 합장(合掌)조차 거부하고 서 있기만 해 전국 불자(佛子)들의 분노와 빈축을 샀다. 환희심에 들떠 마냥 좋기만 하던 날, 기습적으로 조롱과 폄하를 당한 은해사는 천년의 이름이 무너져 내리는 굴욕을 느꼈을 것이다.

복수의 관계자들이 전하는 ‘은해사 습격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요 며칠 영남지역 장외투쟁에 주력했던 황교안 대표는 당초 부처님오신날 전날인 11일 김천에서 숙박하고 지근거리에 있는 직지사 봉축법요식에 참석하는 것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 부처님오신날이 일요일이라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 대표는 주일 교회일정을 소화해야만 했고, 결국 오후에 봉축법요식이 있는 은해사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근방의 또 다른 교구본사(조계종에서 전국 25개 교구에 둔 불교 본사(本寺)를 일컫는 말로, 본사에 예속된 절을 말사(末寺)라고 부른다)에서는 황교안 대표를 초청하려고까지 했으나 황 대표는 이런 저런 핑계로 거절한 후 경산의 한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자기 개인종교 일정을 챙기기 위해 이웃종교의 가장 축복스러운 날, 감히 교구본사 사찰들을 저울질 했다는 것은 불자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불쾌하지만, 우리나라는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또 사사로이 자기 개인종교와 이웃종교의 축일을 동시에 챙겼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공인의 자격으로 이웃종교의 최대명절날 왔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1야당의 대표로서, 국민의 공복(公僕)으로 이웃종교의 예법에 따를 최소한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는 법요식이 진행되는 동안 합장 대신 무심히 서있었고, 삼귀의와 반야심경, 사홍서원 등의 불교의례가 봉행될 때도 반배조차 하지 않아 은은한 목탁소리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특히, 법요식 마지막 순서로 아기 부처님을 씻기는 관불의식이 진행될 때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손을 격하게 휙휙 저으며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해 사부대중을 당황시켰다.

이 날 “부처님의 큰 뜻을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하겠다”는 황교안 대표의 축사는 참으로 공허했다. 황 대표는 입버릇처럼 “서로의 종교를 인정해주고 존중해 줘야한다”고 강조했는데, 기자가 생각하는 존중의 의미와 황 대표가 생각하는 존중의 의미가 다르지 않다면, 최소한 합장 정도는 했어야 했다. 대웅전 부처님 전에 108배나 삼배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봉축법요식이 봉행되는 동안 그저 두 손바닥을 합쳐 예를 다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그렇게 힘들었나.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던 대표적인 장로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적어도 ‘합장 논란’은 없었다. 이미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언제든 스님들을 만나고 사찰에 가면 합장을 했고, 특히 법정 큰 스님이 입적하셔서 조문을 갔을 때는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히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해 많은 불자들의 칭송을 받았다. 천주교 신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5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예정에 없이 조계사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해 지극정성 합장의 예로 아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3월 역시 천주교 신자로, 불교국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합장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은 그 나라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품격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황교안 대표는 도대체 합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마곡사에서 고시공부를 할 때도 주지 스님에게 합장하지 않았다는 황 대표는 최근 한 사석에서 합장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우리가 새벽기도 와달라고 하지 않지 않는가. 신앙은 마음으로 출발하는 건데 그런 틀을 강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로 내가 절에도 가고 스님들도 좀 아는 분들이 있는데, 강요하는 분들이 없었다. 왜 합장하지 않느냐, 왜 절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없었다. 내가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곱씹을수록 궤변이다. 합장은 가슴 앞에서 손바닥을 합쳐 좌우 열 손가락을 펴서 포개는 지극한 예법으로, 불교에서뿐만 아니라 예부터 행해진 인도의 일상적인 인사법이다. 다른 종교인이 불교의 성지에 와서 합장을 하는 것은 “불교를 믿고 따르겠습니다”가 아니라 “불교를 존중합니다”는 의미로, 기본적으로 이웃종교인들, 사람들을 고려해서 찾아간 것이라면 반드시 취해야할 최소한의 정성이다. 불자들이 기독교의 새벽기도에 가지 않는 것은 기독교의 신앙과 교리에 단지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결례를 하지 않기 위해 가지 않는 것이고, 황 대표의 아는 스님들이 합장과 절을 황 대표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은 얘기해 봤자 황 대표가 결코 듣지 않을 것임을 너무도 잘 알아서 일 것이다. 그리고 불교는 정상적인 사람이면 세상 누구나가 공식 인정하는 ‘종교’이다. 종교 운운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불경(不敬)이다.

어릴 적부터 불자인 기자의 가장 친한 친구와 지인들은 대부분 기독교 신자였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종교를 가지고 싸워 본 적이 없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믿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해주고 그 차이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심지어 우리나라에 불교가 먼저 들어오고 기독교가 나중에 들어왔기 때문에 기독교가 정착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기독교가 먼저 들어왔으면 이 땅에 불교는 정착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들에게 물어봤다. 유독 황교안 대표만 왜 저렇게 유난을 떠는지. 황 대표는 ‘개신교 근본주의자’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순교를 할지언정 자신의 믿음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일관된 답변이 나왔다. 순간, 지난 세월 검사와 법무부 장관, 총리 등을 역임하며 오직 ‘복음화(비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일)’를 위해 황 대표가 자행했던 온갖 종교편향 의혹들이 쉼 없이 떠올랐다. 그래서 몇 달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뵙고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하는 손이 먼저 나올 수 있었구나...

기자가 지금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런 황교안 대표를 대하는 우리 불교계의 자세이다. 황교안 대표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개신교 정치인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적어도 종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얘기를 해서 알아듣고, 대화를 해서 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극단적인 개신교 교조주의자에 가깝다는 것이 종교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 불자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황교안 대표 앞에 줄서기에만 바쁘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괜찮습니다. 상황이 별로 안 좋긴 해도 뒤로 큰 스님들 몇 명만 뵈면 불교는 다 정리되고 조용하게 돼 있습니다.” 이렇게 부추기고 훈수를 두며 자리 만들기에만 급급하다. 총무원과 사찰, 스님들도 현 사태를 차갑게 직시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기자가 지금껏 피를 토하듯이 언급한 정치인은 그저 그런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입문 두 달 만에 제1야당의 수장으로 선출됐고, 현재 차기 대통령 후보 1위, 2위를 다투고 있는 유력 대권주자이다. 혹여 허허실실 마치 무슨 고물이나 떨어지길 바라는 것처럼 눈치나 보며 미온적으로 안일하게 임했다간 언제나 그랬듯이 또 무시를 당한다. 역대 정권 마다 불교가 늘 우습게 보이고 쉽게 여겨졌던 것은 이런 상황에서 일사불란한 단일대오를 유지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으로 먼지만 피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황교안 대표는 절집에 오지 말라. 어찌 보면 자기 신앙을 저토록 집요하게 지키는 자세, 존경스럽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병적으로 독실하다 하여 나쁘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가치가 수용되고 유지되는 영역에서만 머물렀으면 좋겠다. 의도된 목적으로 다른 영역에 기웃거리지 말라. 이런 사달을 내놓고 절집에 와봤자 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고, 전 종단 차원에서 황교안 대표에 대해 산문을 폐쇄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기 전에 이쯤에서 결별했으면 싶다. 이것으로 충분하고 넉넉하다. [정치부장] [2019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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