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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이번 시간은 이영석 고려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와 함께합니다. 
이영석 교수는 할아버지인 독립유공자 이기준 선생의 영향을 받아 독림운동가들의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특히 도산 안창호의 생애에 주목해 <안창호의 정치적 리더십>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고려대 불자교우회 회원이기도 한 이영석 교수는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 ‘아너소사이어티’에도 가입하며 보시 문화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창업리더십센터 대표를 맡아 강단 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출연 : 이영석 고려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 진행 : 강동훈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이영석 교수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영석 : 네, 안녕하십니까?

△강동훈 : 저희 BBS 불교방송 마포 스튜디오에 이렇게 직접 나오신 것은 처음이시죠?

▲이영석 : 네, 처음입니다.

△강동훈 : 유튜브로 시청하고 계시는 유튜버들 그리고 BBS 불교방송을 듣고 있는 전국의 애청자 분께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영석 : 제가 불교방송은 TV 화면에서 보기도 하고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이렇게 처음 와서 보니까 굉장히 좋은 일을 많이 하시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꼈고요. 특히 만공회라는 것. 먼저 부처님 곁으로 가신 우리 아버님도 모시고 지금 건강하신 우리 어머님도 모시고 저도 만공회에 가입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를 갖게 되어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동훈 : 사실은 제가 모신 것은 3.1 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특별하게 모셨는데, 오늘 BBS 불교방송 와서 만공회 이야기 듣고 그런 결심을 하셨네요?

▲이영석 :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강동훈 : 조금 전에 아나운서, 기자가 설명을 했지만 1억 기부하는 사랑의 열매,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신 그런 분이신데. 또 만공회와는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겠군요. 인사말씀은 그 정도로 하시고. 지금 갖고 나오신 책이, 한 번 보여주시죠. 화면에다.

▲이영석 : 이것이 “도산 안창호의 정치적 리더십” 제 박사학위 논문이 학술서적으로 박영사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강동훈 : 우리 도산 안창호 선생 하면 역사든 독립운동과 관련된 근대와의 빠질 수 없는 분이거든요? 안창호 선생에 대한 연구도 많았지만 최근 들어 좀 잊혀져가고 있는 그런 상황이 있어요. 이 논문을 쓰시게 된 배경이 어디 있습니까?

▲이영석 : 처음에 제가 박사학위 공부를 하면서 주제를 요즘 사회가 너무 분열과 갈등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좀 통합 리더십이 필요하겠다고 해서 보통 통합 리더십하면 링컨, 만델라 이 두 분을 떠올리는데 우리 국내의 위인 중에서 그런 분이 계시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들어서 여러 면을 찾다가 마침 저희 할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100년 전의 사회는 어땠을까, 했더니 100년 전에도 마찬가지로 이런 갈등이 많았었거든요? 그 당시 시대적인 목표는 독립이었고 지금은 통일 이런 시대적인 목표가 있는데 너무 분열과 갈등이 많아서 통합 리더십을 그때 찾으면 여기에 적용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도산 안창호 선생이 모든 이념 갈등이라든가 지역 갈등이라든가 독립운동 노선의 차이라든가 이런 것을 다 아우르면서 하신 큰 어른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그 분의 정치적 리더십을 주제로 삼아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동훈 : 교수님 실제로 교수님이 하시는 일은 어떤 겁니까?

▲이영석 : 저는 20여 년 전에 ERA & Century 21이라는 세계적인 부동산 회사, 세계 60여 개국에 진출해있는 회사인데 그것을 제가 한국에 들여와서 부동산 산업을 좀 선진화해야 되겠다, 라는 비즈니스적인 측면보다는 사명감 측면으로 들여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쭉 안정시키고 또 IMF때 어려움도 겪고 한 다음에 제가 공부를 다시 2008년에 시작을 하게 된 거죠.

△강동훈 :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연구가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치적 리더십.

▲이영석 : 네, 그렇습니다.

△강동훈 : 그 책을 잠깐 보니까 안창호 선생님은 비무장 카리스마, 변화의 리더십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셨던데. 흔히 저희가 이런 표현을 쓰신 분이 인도의 간디, 비폭력 무저항 그런 주의를 비교할 수 있는데. 안창호 선생의 이런 카리스마, 비무장 카리스마, 처음 듣는 용어인데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쓰시게 됐습니까?

▲이영석 : 간디도 위대한 인물이시죠. 그런데 그 외에 그 당시에 강대국에 의해서 약소국들이 식민지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에 독립운동을 한 위대한 각 나라 지도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 분들의 공통점과 또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하신 독립운동가들의 공통점이 그 당시에 나라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선거에 의해서 지도자가 될 수도 없고, 본인의 자질과 능력에 의해서 지도자가 되는 것, 그것을 막스 베버가 카리스마라고 명명을 했고요. 또 하나는 그 당시 나라가 없으니까 군대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비무장이라 그랬어요. 그러나 그 당시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도 그렇고 다른 독립운동가들도 그렇고 그때 목표는 나라를 독립시키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고 또 새로운 나라를 독립 후에 설립을 하려고 그렇게 목표들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이런 분들을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서 정치가, 혁명가라고 볼 수가 있죠.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현대적 의미에서 변환의 리더십, 맥그리거 번스가 제안한 것이고요. 그래서 이런 세 가지 이론을 가지고서 한 모델을 만든 것이 비무장 카리스마 변환의 리더십인데. 이 모델을 가지고 도산 안창호 선생뿐만 아니라 그 당시 각 국의 독립운동가들을 연구할 수 있는 그런 모델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강동훈 : 우리가 안창호 선생님 하면 근대화의 어떤 언론, 독립, 여러 가지 모델을 갖고 있잖아요? 실력양성론, 과거 조선시대 때의 이이의 10만 양병설, 또 나라가 어렵고 나라를 빼앗겼을 때 이런 실력양성론을 폈다, 좀 교육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영석 :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동안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 대한 연구가 역사학계하고 교육학계에서는 상당히 연구가 많이 됐었습니다. 그런데 역사, 교육학 쪽에서 하다 보니까 교육적인 측면이 강하다 보니까, 이 분의 훌륭하신 인품과 인격과 여러 가지 교육업적이 많지 않습니까? 그것을 부각을 하다 보니까 인격자, 교육자로서 인식이 됐고. 그것도 맞는 거죠. 그런데 정치학 쪽에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 대한 연구가 전무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인격자, 교육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까 잠깐 말씀드렸지만 정치가이면서 혁명가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도산의 정치적인 리더십 측면에서 한 번 연구를 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해서 이 연구를 하게 된 것이고, 이것이 정치학에서는 도산에 관한 정치 논문으로는 최초 논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강동훈 : 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 책 한 번 줘보시죠. 제가 이 책을 보니까 거기에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임시정부에 있을 때 국무총리를 역임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그때 대통령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죠? 그런데 요즘 들어, 지금 보고 계신 내용인데, 이 분들의 연구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구를 흥사단 아카데미, 이 분들도 연구를 많이 하셨는데. 정치적 리더십에 관한 부분을 왜 전혀 언급을 안했을까요?

▲이영석 : 본래 정치학 쪽에서 리더십을 연구를 한다면 그 나라의 대통령이라든가 최정상까지 오른 분들이 주로 연구대상이 되거든요? 링컨이라든가 처칠이라든가 이렇듯이. 그런데 안타깝게도 도산 선생님은 해방되기 전에 돌아가셔가지고 해방된 이후에 해방정국에서 어떤 역할을 하실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정치학에서는 연구대상으로서 안타깝게도 배제가 되었던 것이죠.

△강동훈 : 실제적으로 최근에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하와이라든지 미국이라든지 상해 이 분야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하고 거기를 연구하시는 관계자 분들이 현장 가서 나오는 것을 요즘 종합해보면 승자의 역사 쓰기,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기록이 남아있고 그 전에 많은 독립투사들이 했던 기록이나 그 분들의 활동상황은 많이 왜곡되거나 빠져있는 그런 것을 이번에 많이 발견했어요. 이런 부분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연구하면서 그런 부분도 좀 나오던가요?

▲이영석 : 저는 이것이 그냥 일반교양서적이나 위인전이 아니라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학술논문이기 때문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훌륭한 분이시지만 사실에 근거해서 연구를 하려 했고 혹시 너무나 훌륭한 분이시니까 내가 선입견에 의해서 이 분을 미화를 시키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혹시 들까봐 그런 것을 상당히 절제를 하면서 연구를 했는데, 그렇게 하고서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의 너무나 많은 부분들이 아직 연구가 덜 되어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고요. 그러나 역사학하고 교육학 쪽에서는 연구가 상당히 많이 되어 있는데, 거기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기 그것을 분석하고 하는 것은 정치학하고 다르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이것을 연구하면서 역사학하고 교육학 쪽의 연구 실적이 저한테는 큰 자료가 되어서 이것이 또한 정치학과 역사학의 학제 간 연구 논문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강동훈 :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책에 보면 헌정 메시지라는 것이 써져 있는데, 애국심이라는 영원한 사명감을 남겨주신 건국훈장독립유공자 이기준 조부님께, 이 분이 1891년부터 1927년까지 생존했던 기록이 남아 있네요. 이기준 조부님, 이 분이 독립유공자인데 이 분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할아버지의 취지를 받아서 아까 이것을 연구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기준 선생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영석 : 저 어렸을 적부터 아버님으로부터 할아버님이 독립운동 하신 말씀을 많이 들었고요. 또 아버님의 친구 분들한테도 그런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할아버님이 어떤 역할을 하셨냐면 고향이 평안북도 운산이신데, 그래서 군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내셨고요. 그러니까 지금 표현으로 하면 독립자금이 되겠죠. 그렇게 하시고 할아버님뿐만 아니라 또 독립자금을 모금을 하셔서 하시다가 일경에 잡히셔서 평양감옥에서 복역을 하셨어요. 그리고 출소를 하신 다음에 중국으로 가셔서 해외독립운동을 하셨는데, 그러다가 안타깝게 톈진 감옥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서 결국 고문당해서 순국을 하시게 됐습니다.

△강동훈 : 대단하신 분이네요.

▲이영석 : 그런 할아버님의 뜻을 어렸을 때부터 우리 할아버님은 몸과 재산을 다 바치신 분 아닙니까? 그래서 증손자인 저도 할아버님의 뜻을 이어받아서 항상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잊지 않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애국심이라는 유산을 저한테 남겨주셨다고 그렇게 제가 느끼고 표현했습니다.

△강동훈 : 항간에 말이죠. 독립유공자의 자손은 빈곤하게 살고 소위 말하는 친일했던 행위자들은 정권에 계속 빌붙어서 배부르게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독립 후손들의 현실이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기준 할아버님의 손자이신 이 교수님께서는 좀 빈티나게 살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 분이 언제 혜택을 받으셨나요?

▲이영석 : 전혀 혜택을 안 받았죠.

△강동훈 : 왜 건국훈장까지 받으신 분인데?

▲이영석 : 저희 아버님께서 어릴 때부터 하시는 말씀이 독립운동 하신 것을 말씀하시면서, 저는 그때 독립유공자고 그런 보상이 있는 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이러시는 거예요. 독립운동 하신 그런 공훈으로 후대들이 보상을 받으면 안 된다.

△강동훈 : 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나요? 규정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죠?

▲이영석 :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어리지만 아버님 말씀이 훌륭하다고 동감을 했었는데. 제가 스무 살 넘어가고 하다 보니까 나도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할 텐데 그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님의 업적을 우리 자손들한테 이렇게 알려주면 상당히 귀감이 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버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것은 의미가 있겠다, 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저도 젊을 때 사회에 나가서 바쁘고 아버님도 은퇴하시고 그래서 그런 공적을 찾을 수가 없었죠. 그때는 자료가 전산화도 안 되고. 그러다가 제가 박사 공부하면서 할아버님 자료를 찾게 됐고요. 또 결정적인 계기가 아까 초반에 저 소개하시면서 아너 소사이어티 말씀 잠깐 나오던데요. 그 아너 소사이어티에 제가 기부를 했더니 그쪽에서 어떻게 해서 이렇게 기부를 하게 됐느냐고 물어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할아버님 말씀을 했더니 독립유공자시냐, 그래서 아버님이 이러이러하셔서 안했다고 했더니 그러면 독립기념관에 독립유공자 업적을 발굴하는 파트가 있대요. 거기에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한 달 만에 연락이 왔는데 저희 할아버님의 평양감옥 수감기록이 할아버님 지문까지 찍혀 있으면서 발굴이 된 겁니다.

△강동훈 : 그러니까 구전으로 들었던 톈진 감옥에서 옥사하셨다는 것을 국가가 확인해준 거죠?

▲이영석 : 예, 그래서 이것은 국가자료기 때문에 바로 공훈 심사 신청을 하라고 해서 신청을 받은 것이 그것이 2013년인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때는 저희가 다 성장을 했기 때문에 하나도 장학금이고 뭐고 아파트 연금이고 모든 혜택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아버님 뜻대로 그렇게 됐고요. 지금 나오는 것이 매달 백 몇 십만 원이 보상금으로 나와요. 그것도 저희 어머님하고 저희 형제들하고 다 상의를 해서 한 푼도 안 쓰고 그것을 가지고 통일정책을 연구하는 한국지정학연구원이라는 연구원을 만들고 또 창업리더십센터를 만들어서 오히려 제가 돈을 더 보태서 그것을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앞서 딱 말씀하셨지만 보시를 사랑의 열매에 어떤 동기로 해서 1억 원을 기부했고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고. 그러다 보니까 할아버지의 공식적인 기록을 찾는 하나의 동기가 됐네요?

▲이영석 : 네, 그래서 좋은 일을 하면, 선행을 하면 부처님이 도와주신다는 말씀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있는데 이번에 그것을 느끼면서 정말 전율을 느꼈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님이 불교신자이시고 아버님도 불교신자시거든요? 그래서 부처님 곁에 계신 아버님께서 할아버님, 아버님의 아버님이시죠. 그것을 기리고 하니까 정말 부처님께 말씀을 하셔서 그런 공적을 찾게끔 해주셨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전율을 느꼈습니다. 

△강동훈 : 그것은 정말 종교적 법열입니다. 아무나 그것을 인식은 못하고 정말 체험하는 분만이 가능한 부분 같은데. 어쨌든 이 박사님 같은 경우야 외 손 치더라도 많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지금도 어렵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선대에 모은 재산을 국가, 군자금 이런 부분으로 다 주다 보니까 그 밑에 있는 후손들은 정말 빈하게 살 수밖에 없었고. 친일파들은 거기서 계속 유지해서 그 돈을 불리고 불려서 지금의 많은 돈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대표적으로 이완용 후손을 말할 수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부분 가지고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앞으로 독립 후손들이 제대로 평가받고 제대로 보상받게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그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또는 정부한테 하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이영석 : 일단 저희 아버님 성함을 제가 잠깐 말씀드리면요, 저희 아버님이 사실 유복자세요. 저희 할아버님이 톈진 감옥에 갇혀 계실 때 저희 할머님이 옥바라지를 하시러 톈진 감옥 옆으로 가신 거예요. 그렇게 하시면서 만삭이 되셨죠. 그러고 순국하시고서 조금 있다가 태어나셨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고생을 하셨겠습니까. 그리고 45년 해방이 되어서 저희 할머님하고 저희 아버님하고 월남을 하셔서 완전히 자수성가를 하신 거죠. 그리고 저도 자수성가를 어릴 때부터 했고요. 

△강동훈 : 이 박사님도 자수성가를 하신.

▲이영석 : 그럼요. 아버님이 그런 정신으로 성장을 했고. 그 다음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처우 인식 이것은 아주 상당히 훌륭하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이 꼭 독립유공자만 계시진 않지 않습니까? 군인이라든가 경찰이라든가 소방관이라든가 여러 분야의 큰, 목숨을 바친 분들이 계신데. 그런 분들한테도 좀 포괄적으로 그런 예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동훈 : 관련해서 말이죠. 요즘 한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과거 소속은 더불어민주당이고 지금은 무소속인데 손혜원 의원의 아버지, 독립유공자 지정과 관련해서 논란이 좀 있었습니다. 또 한편 의열단 김원봉 선생의 독립유공자 지정 움직임에 대해서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십니까?

▲이영석 : 글쎄요. 저는 이 분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업적을 모르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 말씀드리기는 참 어렵지만, 그러나 같은 독립운동을 하신 저희 할아버님과 했을 때 분명히 어떤 공적은 있으실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당연히 그런 업적을 예우를 해야 되겠죠. 그러나 아직 우리가 남북통일을 지향을 하고 있고 반드시 해야 되지만 아직은 이념적으로나 영토적으로 분열이 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안 돼서 이런 반대여론도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만일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면 아마도 그런 반대여론이라든가 이런 것도 이해를 하고 설득을 구하고 그렇게는 하셨겠죠. 그러나 이 분들에 대한 법적인 예우라든가 이런 것은 아마 통일 이후에, 통일 정부가 생기고 그런 새로운 시대에 다시 이 분들을 통합하는 의미에서 하면 더 멋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저 나름대로 해봤습니다.

△강동훈 : 사실 그때 독립운동을 하셨던 그 분들은 조선이라는, 즉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두 동강이 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 사상이 어떻고 공산주의니 민족주의니 민주주의니 이런 것을 구별하지 않고 했고 그 평가 잣대를 지금 우리 시각으로 보다 보니까 그런 일들이 나오겠죠. 이 박사님 말씀대로 이런 평가는, 아무튼 이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는 다시 한 번 조명이 돼야 되겠네요. 북한 문제까지 포함한다면.

▲이영석 : 그러나 시기, 타이밍의 문제겠죠. 점차적으로 하면서 통일 이후에도 무언가 큰 화합 차원에서 하는 그런 것을 남겨두는 것도 더 멋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강동훈 : 이영석 박사님 모시고 3.1 운동, 임시정부 출범 100주년 기념해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특집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박사님의 개인에 대한 문제를 좀 여쭤볼까 합니다. 뉴스와 사람들 특징이 여러 가지 휴먼 스토리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아까 창업리더십센터 대표로 계신다고 했습니다. 거기가 창업에 관한 리더십, 정치도 리더십, 리더십이 꼭 붙어요. 창업리더십센터는 뭐 하는 데입니까?

▲이영석 : 제가 아까 잠깐 앞서 말씀드린 할아버님에 대한 보상금 그것을 종자돈으로 해서 아까 한국지정학연구원이라는 것을 만들었잖아요? 그것은 통일정책을 연구하는 신진학자들을 후원하고 있고. 그 다음에 창업리더십센터는 지금 청년 실업, 또 시니어 실업이 문제 아닙니까? 그것을 창업으로 전환을 하자. 그런데 저도 사업을 해왔고, 또 공부를 리더십 분야로 해봤기 때문에 그것을 접목을 시키면 창업을 하면 창업 리더십이고 또 기존의 사업을 잘 관리하면 수성 리더십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창업을 지원하고 창업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리더십 공부한 것을 접목을 시켜서 사회에 역할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됐습니다.

△강동훈 : 그 과정에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겁니까? 창업의 꿈을 꾸는 분이라면?

▲이영석 :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제가 공부 끝나고 나서 시작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규모가 작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제가 아는 젊은 후배라든가 또는 추천하는 분들을 통해서 저희 회사에 인큐베이팅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교육도 하고 또 자기 책상 하나 가지고 업무도 보고. 교육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무료 대관도 하는 그런 공간을 지금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서울시가 젊은이들을 위해서 창업 공간을 저가로 대여해주고 아이디어도 같이 연구하고 실험도 할 수 있는 그런 건데, 개인으로서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텐데?

▲이영석 : 쉽지 않지만 국가에서 하고 시에서 하는 것은 규모가 크지 않습니까? 저는 저 나름대로 저에게 맞게 해서 점차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강동훈 : 이 방송을 듣고 또 유튜브를 통해서 시청하고 계신 분들이 나도 지금 창업에 대해서 관심이 좀 많은데 이것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문의를 해야 되는지 궁금할 텐데. 어떤 방식으로 문의를 하면 될까요?

▲이영석 : 그러면 아마 창업리더십센터 이렇게 검색을 해보면 제가 시작한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많이 드러나 있지 않지만 페이스북이라든가 그런 데 보면 좀 나와 있을 겁니다. 거기 그렇게 문의하시면 안내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동훈 : 아직 규모는 크지 않다고 합니다. 이제 시작이고 또 무엇보다도 종자돈이 독립유공자에서 받은 뜻 있는 돈 가지고 지금 이 박사님이 준비하신 것 같은데. 포탈에 한 번 연결해서 관심을 가진 분들은 연락을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리더라는 부분을 자꾸 강조하셨는데, 좋은 리더, 어떤 분이 좋은 리더가 됩니까?

▲이영석 : 제가 그동안에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겪고 극복하고 그랬는데. 또 여러 가지 제 주변에서 성공하신 분들 성공에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장 큰 요인이 with good people이라고 하죠,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것. 그래서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리고 자기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상대방을 나보다 더, win-win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win 상대방은 more win 하게 하는 그런 자질과 덕목이 상당히 성공의 요인이겠다, 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그것이 바로 결국은 리더십을 공부하다 보니까 리더십의 덕목이고 자질이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좋은 리더들이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차세대 리더들을 키우기 위한 젊은 인재들을 많이 발굴하고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같은 그런 훌륭한 리더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가만 보니까 안창호 선생님의 젊었을 때 사진인데 이미지도 약간 비슷한 부분이 없잖아 있네요. 사실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다 보면 그 분의 사상, 행동, 그 다음에 그 분이 갖고 있는 어떤 인간적 문화까지도 푹 빠져야 하나의 논문을 만드는데. 이 책을 쓰시면서 많이 안창호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더해졌겠어요.

▲이영석 : 맞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여러 가지 훌륭하신 그런 사상이 깊은 사상도 많고 한데. 그냥 한 가지만 대표적으로 말씀드리면 애기애타. 애기애타가 아까 win-more win 그런 개념하고 비슷하다고 느꼈고. 그 다음에 그것을 한 마디로 하면 이 분이 정말 사심이 없는 분이에요. 정말 사심이 없는 분이고. 그래서 저도 공부할 때도 그렇고 무엇을 할 때도 그렇고 무엇을 판단해야 될 그런 경우에 도산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또 어떻게 하셨던가, 라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저 분이 그러셨는데 내가 도산 리더십을 연구하는 사람이 도산이 그렇게 하신 것을 못 따라하면 내가 연구 자질이 없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따라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강동훈 : 고려대 불자교우회라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 활동도 하고 계시죠? 거기가 굉장히 유명하고 저희 뉴스에도 많이 나왔는데. 거기서 어떤 활동을 하십니까?

▲이영석 : 제가 특별한 활동을 한다기보다도 저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버님도 그렇고 어머님도 불교 신자신데 저는 특별한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부모님의 영향으로 항상 불교에 친숙한 면은 있죠. 또 4월 초파일 때 어머님이 항상 저희들을 위해서 해주시고 하는데. 저는 고대 불자교우회는 불교 신도만이 아니라 그냥 불교에 관심이 있거나 또 불교의 철학적인 것에 공부를 하려는 분, 또 이런 분들도 다 대상이 되요. 저는 불교신자만 되는 줄 알았는데 회장님이 최평규 회장님이라는 분이신데 참 아주 훌륭한 분이세요. 이 분이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이시고 해서 저보고 권유를 하셔서. 저는 불교신자 아닌데요, 했더니 조금 아까 말씀드린 그런 취지로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아 그렇다면 제가 기꺼이 하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가서 보니까 정말 좋은 분들도 많이 뵙고 그리고 이 분들이 한 마음으로 사회봉사활동을 많이 하세요. 그래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강동훈 : 이제 만공회 회원도 되셨고 그 다음에 불교에 대한 인연도 맺었고, 무엇보다도 부모님께서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해마다, 이제 내일 모레 부처님 오신 날인데 등불을 빈자일등의 정신으로 켜주는 덕분으로 아마 이 박사님의 오늘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와 동시에 이렇게 리더십 공부를 많이 하셨고 했는데, 요즘 또 경기가 어렵고 특히 청년 실업률이 높다 보니까 굉장히 사회적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끝으로 인사말과 함께, 시간이 거의 다 됐습니다.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영석 : 제가 인사말씀이라기보다도 불교방송이 이렇게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시는지를 사실 오늘에서야 깊이 알게 됐습니다. 보니까 불교방송의 목적이 사회의 정토화, 민족 통일, 조국의 참된 발전, 또 새로운 인류 문명을 창조하는데 기여하는데 목적이 있고. 또 지표로는 참된 소식을 치우침 없이 전하고 기쁨을 나누며 온 겨레를 하나로 묶어주는 방송이라는 그것을 보고 제가 참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BBS 불교방송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통합 리더십을 실현할 수 있는 참된 언론 역할을 해주시고 불교방송의 좋은 소리와 부처님의 자비로우심이 북녘 땅에서 전파 되어서 평화 통일의 선구자가 되어주시기를 바라면서 이번 부처님오신 날을 계기로, 또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불교방송이 그 역할을 해주셨으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동훈 :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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