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지칭하는 명사다.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간섭이 지나쳐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 보다는 되려 귀찮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오지랖이 넓다’고 비꼬는 말이다. .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우리 정부를 향해 이렇게 비난했다. 친구 사이에서도 쓰기 어려운 용어를 시정연설에서 쓴 것을 그저 김정은 위원장의 언어 감각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북한의 '오지랖 연설'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평가를 낼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반응은 이 발언 자체를 외면하는 형태로 나왔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미·북 정상이 강경한 입장 속에서도 여전히 ‘톱다운’ 방식의 문제 해결 방법 유지와 대화재개 의지를 밝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애써 희망을 걸었다.

북한의 '오지랖 연설'에 대해 자세한 분석을 낸 건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었다. 국정원 산하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북한의 오지랖 연설’에 대해 "해석의 문제"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정부에 대한 서운함, 불만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이것은 오히려 중재자 역할을 더 강화하라는 역설적 어법"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15일 '최근 북한정세 및 한미 정상회담 평가' 기자간담회에서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은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자제해 왔고, 이번 시정 연설에서도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한이 당사자가 아닌 것으로 비춰지거나 그런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따라서 “북한은 우리정부가 적극적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하되 당사자의 입장에서 관점을 갖고 중재자, 촉진자 역할에 임하라는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바람직하다. 그렇게 본다면 북한의 그(오지랖) 표현은 우리에게 중재자 역할을 더 강화하라는 역설적 어법을 활용한 중재자 역할을 촉구한 쪽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에 대한 비아냥이 담긴 '오지랖'...이 비외교적 용어는 이렇게 포장됐다.

'통일의 희망에 들떠 현실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 시점에서 한번쯤 돌이켜봐야 할 필요성이 있어보인다.  북한이 중재자 역할을 역설적으로 촉구한 것이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의 편에서 미국을 설득해 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게 어디 가능할 수 있는 일인가. 북한은 여전히 우리의 ‘주적’ 이고, 지금 이 시간에도 대한의 아들들이 최전방 초소에서 북한군과 대치하며 밤낮으로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진보정권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어느 방송에 출연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무기 대량구매 결정을 한 것에 여러차례 감사 표시한 것은 이면에 비핵화 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는 카드를 받아든 것"이라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우리가 괜히 무기를 대량 구매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이 맞다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협상카드 내지는 보상조치를 받아내기 위해 우리 정부가 나서서 국민 혈세로 미국의 무기 수조원 어치를 구매한다는 얘기가 되는 셈인데, 이걸 그렇게 통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문제인가.

북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여론은 수구로 간주되고, 보수적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배척되는 상황에서 진보적 시각의 대북 전문가들이 내놓는 분석은 우려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요즘 가장 '핫'하게 잘 나가는 대북문제 분석 전문가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노 딜'로 끝났다고 했다가 불과 며칠 사이 이면에 반드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의견을 180도 뒤집는 대목에선 기자들 사이의 은어로 통하는 정권의 ‘맛사지’가 어느정도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이후, 조급하게는 4.27 판문점 선언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4월 개최설도 나온다. 이 시점에서 다시한번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

‘북한이 핵무기를 과연 폐기할 것인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것이라는 우리 정부의 전략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중간점검을 해보자. 4.27 판문점 선언 후 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전략은 성과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남한을 얕보게만 만든 측면이 없지 않은가.

결론은 어떤 식으로든 북한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지난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대를 이뤘다는 부분일 것이다.

최종적으로 ‘빅딜’에 도달하는 ‘스몰딜’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가. ‘스냅백’을 전제로 한 핵무기 폐기의 로드맵이 제시돼야 비로소 비핵화 여정이 시작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정부의 '오지랖'은 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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