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BBS 라디오 아침세상 - 파워 인터뷰] 김규환 국회의원

■ 대담 : 김규환 국회의원

■ 방송: BBS 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08:30∼09:00)

■ 진행: 대구BBS 박명한 방송부장

▷박명한: 제21대 총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자유한국당 대구 동구을 당협위원장에 임명된 김규환 국회의원이 최근 사무소 개소식을 갖고 지역민들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파워인터뷰, 오늘은 김규환 의원을 만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김규환 의원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김규환 국회의원: 네 안녕하세요.

▷박명한: 의원님 제가 행사장에서 여러번 뵈었을 때 항상 활기차다, 이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먼저 이렇게 젊게 사시는 비결부터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규환 국회의원: 옛날에 우리 어머니가 저한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아침이 즐거우면 하루종일 즐겁고, 월요일 즐거우면 일주일 내내 즐겁고, 정월 초하루가 즐거우면 1년 12달 즐겁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즐거운 노래를 한곡 불러라. 아침에 노래 한곡 부르죠.

▷박명한: 김규환 의원께서는 얼마전 자유한국당 대구 동구을 당협위원장에 임명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지역에서 갸우뚱 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고향이 강원도 평창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대구, 그리고 대구 동구와는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김규환 국회의원: 가슴 저린 인연이 있습니다. 10살 초반쯤 됐을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가 나를 5대 외동아들로 놓고 자식을 하나 더 놓기 위해서 낳았는데, 구정을 이틀 앞두고 배가 만삭이 됐는데 눈이 2m쯤 왔을 거에요. 그날이. 그래서 아버지가 눈을 치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같이 눈을 치우러 나가셨다가 힘을 쓰는 바람에 양수가 터졌어요. 조산을 하게 되죠. 아버지가 어머니 애기 머리만 나온 것을 애기를 낳게 했어요.

그리고 그 병이 걸린 모습을 보고 약값을 구하러 나가게 됩니다. 그때는 약이라고 해봐야 소화가 안될 때는 소다를 먹었고, 머리가 아플 때는 뇌신이라는 약을 먹었습니다. 그 것이 만병통치약이었어요. 그 것을 구하러 나가다가, 큰 길가에 까지 나갔는데 처음으로 차를 봤어요. 눈 속에 파묻혀 얼어죽을 뻔 했던 나를 그 아저씨가 태워서 싣고 가죠. 거기가 안흥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버스를 타라 그래서 무조건 올라 탔죠. 돈 주는 것도 몰랐죠. 깜빡 졸았는데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게 됩니다. 집과 점점 멀어지게 되죠. 어느 대문 앞에 쓰러져 있는 나를 어떤 아저씨가 나를 구해서 6.25 사변때, 1.4 후퇴때 피난 넘어오다 죽은 아들만 하다고 울면서 나를 살려서 보내 준 곳이 대구였습니다.

지금 방촌동의,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방촌동의 남선경금속, 남선알미늄, 일명 남선압출이라고 했습니다. 그 회사의 냄비공으로 상표 붙이는 아이로 들어가게 되죠. 그 것이 대구와의 인연이 됩니다. 상표 붙이는 어린아이 였습니다.

▷박명한: 그러니까 10대 초반에 남선알미늄에 다니실 때 대구 동구에 거주하셨군요. 제가 의원님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의원님 자료를 많이 찾아봤는데,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셨지만 진짜 60여 년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냄비공장에서 일하다가 대우에 입사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밖에 마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대우에 들어가셨습니까?

▶김규환 국회의원: 이 것도 드라마 같다고 생각해야 할까, 세상이 나를 구해줬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방촌동에 있는 남선 알미늄에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냄비에 상표를 붙이다가 냄비가 하나 땅에 떨어졌죠. 찌그러졌어요. 망치로 펴려고 하는데 그게 펴집니까. 탕 때렸는데 그게 곰보처럼 쏙 들어갔어요. 옆에 잘못 한번 더 쳤는데 또 곰보가 생겼어요.

너무 이뻐서 통통 때리면서 꽃을 한번 만들어봤죠.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냄비를 사러 온 사람이 너무 예쁘다고 2천개를 주문합니다. 우리나라에 곰보냄비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는 겁니다.

▷박명한: 의원님께서 처음 만드셨군요.

▶김규환 국회의원: 그렇죠. 그 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거죠. 그래서 손재주가 좋다고 회사에서 저를 금형 만드는 공무과로 보냅니다. 거기서 너무 열심히 하니까 회사에서 저를 기능인의 꽃으로 만들겠다고 해서 세계기능올림픽을 75년도에 나가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좋은 일이 있으면 마도 낀다고 이상하게 오른쪽 가슴에 혹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세계기능올림픽 선수증도 받았고 이제 모든게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가슴이 혹이 나면서 파티마병원 앞에서 쓰러지게 되죠. 파티마병원에 있는 수녀님들이 안고 들어가서 수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목숨을 건지죠.

정말로 대구 동구 방촌동 여기는 내가 국가품질 명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시발점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죽어서 눈을 감아도 잊지 못하는 곳이 대구 동구 방촌동입니다.

거기서 기술을 배워서 돈을 모아서 강원도에 가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무슨 삶의 의미가 있겠냐며 약을 먹고 죽을 생각을 했었죠.

셋방사는 한 아줌마가 이놈아 정신차려라, 청춘이 구만리 같은 놈이 여기라도 찾아가봐라 하면서 벽에 있는 신문기사를 보여주는데, 대우가족 모집이라는 신문기사를 봤어요. 그 때 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게 뭐냐고 하니까 대우에서 사람 모집하는 거라고, 그 아주머니가 돈 500원 주는 것을 들고 걸어서 대우중공업을 찾아갑니다.

처음 대우중공업 앞에 갔을 때 그냥 취직되는 것이 아니고 몇 년 동안 머리도 깎지 않고 밥을 얻어먹으면서 거지생활하면서 찾아갔을 때, 야 이제 찾았 때 했지만 취직이 되겠습니까? 회사 앞에 짬밥 버리는 곳이 있었어요. 깡통에 밥을 퍼 담다 경비가 두들겨 팼습니다. 맞는 것을 차를 타고 나가던 그 회사의 사장, 김우중 회장의 동생 김성중 사장이 나가다가 저를 발견하고 왜 아이를 두들겨 패느냐, 거둬줘라.

그런데 대우중공업 경비는 경상도고, 사장님은 서울 사람인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장님 하신 말씀이 서울말로 거둬주라는 것은 밥을 한그릇 먹여서 보내라는 이야기고, 경상도말로 거둬주라는 것은 집안에 들이라는 얘기라는 겁니다. 뜻이 다른 것을 모르고 경비원이 나를 인사부장에게 데리고 가서 사장님이 특별리 거둬주라고 했다고 해서 거기 청소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새벽 5시부터 저는 마당을 쓸게 됩니다. 그 부지런한 것을 보고 사장님이 저를 기능사원 보조공으로 해서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기계 닦는 놈으로 보냈습니다. 새벽마다 매일 같이 기계를 닦게 되요. 하이타이 물로. 기계는 점점 더 깨끗지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반장도 보고, 조장도 보고, 차장도 보고, 이사님 보고, 사장님 다 봅니다. 공장기계가 점점 더 새 것으로 변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아 이놈 봐라. 이놈은 정말로 뭘 해낼 놈이다.

그런데 제가 뭘 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 전에 남선알미늄에서 기능올림픽을 준비했던 사람 아닙니까. 초정밀 분야에 보내요. 거기서 제 실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기능올림픽 금메달만 모여 있는 곳. 대우중공업 거기서 정밀기계 가공 분야에, 초정밀 분야에 들어갑니다. 그 형님들이 하나 하나 저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납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가품질명장 1호로 증서를 받게 되죠.

▷박명한: 그러니까 대우중공업 청소부로 처음에 들어가셨다가 33년을 대우에서 근무를 하셨고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 국가품질명장 1호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을 얻으셨습니다.

▶김규환 국회의원: 그런데 대통령이 주는 1호지, 그전에 명장이 몇 명 있었는데 그 것은 일반 산업명장이었고, 대통령께서 수여하는 명장은 제가 첫 번째로 받았습니다.

▷박명한: 그리고 앞서 말씀하신대로 초정밀 부품 국산화에 기여를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이 부분 좀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김규환 국회의원: 정밀 가공을 해놓고 시트지 촬영처럼 탁탁 끊어서 측정하는 것은 가능한데 전체가 어떻게 변했는가는 측정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바로 이 두 번째 손가락 이 것을 대고 쫙 긁어 나가면 머릿속에 영적으로 오는 느낌이 옵니다. 그런 능력, 감각이 있어야 초정밀이 가능합니다.

초정밀을 할 때도 일본사람은 하는데 왜 우리는 못할까. 일본사람은 하늘이 내린 신도 아닐텐데 왜 우린 못하냐. 2년 6개월 동안 공장바닥에 자리를 깔고 재질별로, 종류별로, 기종별로, 크기별로, 탄소함유량별로 쭉 만들어서 하나하나 체크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1도가 변할 때 쇠는 얼마씩 변한다. 그 것을 온도.치수 조견표, 삼각함수표, 계수표를 만듭니다. 그 것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 바로 저였죠. 그 것으로 명장이 된겁니다.

▷박명한: 초정밀부품 국산화를 하신 것이 몇 개나 됩니까?

▶김규환 국회의원: 특허는 다 회사 이름으로 올렸지만 제가 얼핏 행삭해도 60개가 조금 넘지 않나.

▷박명한: 얼마전 대구 동구에서 사무실 개소식을 하셨습니다. 제가 현장을 가보니까 사무실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뤘고, 제가 아는 스님도 한분 참석을 하셨는데요. 혹시 불교와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김규환 국회의원: 불교 하면 우리 어머니 이야기를 또 해야되는데, 제가 5대 외동 아들이거든요. 애기가 안 가져지는 거에요. 그래서 어머니가 매일 같이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에 가서 매일 같이 기도합니다.

그래서 어느날 스님 한분이 왜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느냐고 그래서, 남편이 4대 독자인데 아이를 못 갖습니다 그랬더니, 지금도 법흥사 가면 600년 묵은 밤나무가 있습니다. 거기서 밤이 이만큼 주더랍니다. 그 것을 갖고 내려가서 푹 삶아 먹으면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제가 태어났고 지금도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박명한: 또 제가 알기로 불필스님의 유발상좌로 들었습니다.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김규환 국회의원: 제가 인공위성에 들어가는 부품을 정밀한 것을 만들 때인데 도저히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는거에요. 회사 내 형님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어이 김 반장 저기 해인사에 가면 성철이라는 도가 높은 그 분을 찾아가봐라. 그래서 제가 찾아갑니다. 3천배를 해야 만나주고 그런 것도 잘 몰랐어요. 어디 계시냐 했더니 백련암에 계신데요. 그래서 무조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여보세요 아무도 안계세요 소리 지르니 안에서 어험 소리가 나요. 문을 무조건 열었죠.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어른 한 분이 계세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여기 도가 높은 성철이라는 분이 계신다는데 그런 할아버지 안계세요 하니까, 그런 사람 없다, 문 닫아라, 찬 바람 들어온다. 그 분이 성철스님이었어요. 들어오든지 나가든지, 그래서 들어가다가 미닫이 문지방에 발이 걸려서 그대로 넘어지면서 성철스님 가슴을 한번 들이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 것이 인연이 되어가지고 그 때 성철스님께서 저 밑에 내려가서 큰 화강암 거기에 물단지가 있는데 그 걸 휘휘 저어서 한사발 퍼서 마시면 정신이 번쩍나서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물 바가지에 물을 떠먹다가 물바가지가 가에 돌항아리 큰 항아리 옆으로 도는 모습을 보고 큰 원통형 아대를, 물바가지 도는 것처럼 아대를 대서 찌그러지지 않게 만들어서 성공했던 계기가 있습니다.

그 것이 인연이 돼서 몇십년 지난 뒤에 불필스님께서 저를 찾았어요. 찾아가보니 큰스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얘기를 하시면서, 만나서 반갑다고 큰 스님께서 불명을 지어주라고 해서 내가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서 자네를 불렀네 그러면서, 네 그럼 말씀하시죠 그랬더니 해인사에서 큰 일을 해서 불교하고 인연이 됐으니까 큰스님 말씀따라 자네의 불명을 해인이라고 내리겠네. 그래서 불필스님이 유발상좌로 저를 삼으시고 해인이라는 불명도 주시고, 그래서 제 불명이 해인입니다.

▷박명한: 각별한 인연을 갖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김규환 국회의원: 그러믄요.

▷박명한: 이제 오랜만에 대구로 돌아오셨는데요, 대구 동구의 현주소, 어떻게 보고 느끼셨습니까? 또 대구 동구의 발전을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십니까?

▶김규환 국회의원: 참 안타까운게 많아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여러 갈래로 다 갈라져 있는거 같아요. 우선은 거기 계시는 어른들, 정말 고마운 것은 지금까지 그 동네를 많이 지켰다. 고맙다는 마음으로 한분 한분을 다 찾았죠. 너무 많은 분들이 저를 아는 분들이 계셨고, 저를 안아주셨어요.

그런데 마을이 발전하려면 큰 회사가 하나 있어야 됩니다. 내가 다닐 때 남선알미늄이 있었기에 제가 거기 갔잖아요. 거기도 없어지고 거기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첫째 공장을 유치하는데 우선 먼저 주력을 해야 되겠다.

그리고 마을에 융합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마련해야 하겠다. 쉽게 말하면 요즘 군청에 가봐도 다 체육관이 있는데, 여기는 그 인구 많은데 체육관 하나 없었어요. 또 거기 가보면 다른 데도 다 유명한 데 많이 있더만 어떤 조각공원이나 미술촌이나 이런 것도 찾아보기 어렵고.

그래서 지금 참 많은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이번에 비행장이 다간다고 그러잖아요. 비행장이 나가면 대구 권영진 시장 한번 찾아뵜어요 얼마전에 인사하러. 참 훌륭한 구상을 하고 계셨어요. 남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시장님이 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도와서 그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힘껏 돕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동구에서 우리 고향에서 정치를 하지 않겠습니다. 국회의원만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동구가 아직까지도 발전되지 않은 곳에서 살아납니다. 더 이상은 거기가 정치의 경쟁의 장이 돼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만 하려고 철저하게 캔들차트 그리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명한: 끝으로 청취자와 대구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말씀 듣고,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김규환 국회의원: 우리 고향 대구 동구 시민 가족여러분, 저 자유한국당 동구을 당협위원장 김규환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것 혼자만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저한테 얘기해서 함께 손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 생각보다는 열사람, 열사람보다는 백사람이 훨씬 낫습니다. 함께 손잡고 우리 동구를 발전시키고 우리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데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시고 이렇게 초청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명한: 아무쪼록 제2의 고향 대구 발전을 위해서 큰 역할을 부탁드리구요. 의원님 의정활동 중에 바쁘신데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규환 국회의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명한: 파워인터뷰, 자유한국당 대구 동구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규환 국회의원을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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