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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서울 진관사에서 발견된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함께 발견된 옛 신문들의 사료적 가치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당시 태극기가 고이 감쌌던 독립신문과 신대한 등에 담긴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한층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류기완 기자가 보도합니다.

 

2009년 5월 27일 아침,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김주용 교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서울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해체 복원 공사 현장에서 한지로 둘둘 말린 뭉치 하나가 발견됐다는 내용.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직감한 김 교수는 부리나케 진관사로 달려갑니다.

진관사 사중 스님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뭉치의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누렇게 바랜 옛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사료가 '독립신문'임을 알게 됐을 때의 북받치는 감정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인서트 김주용 /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 : "(태극기를) 펼치자마자 100년 전 우리의 기록의 역사 그것을 정확하게 원본으로 볼 수 있었어요...원본 자료를 발굴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진관사에서 나왔을 때는 태극기 보 안에 쌓여있는 원본이었기 때문에 그 감동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독립신문' 원본하고, '신대한' 원본..."

보자기처럼 겉을 싸고 있던 것은 펼쳐 보니 귀퉁이가 불에 그을린 태극기.

그 안에 '독립신문', '신대한(新大韓) 1, 2, 3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와 같은 희귀 사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100년의 세월을 넘어 드러난 역사적 사실, 그것도 당시까지는 실물을 확인할 수 없던 신문 원본이 최초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인서트 계호 스님 / 서울 진관사 주지] : "처음 발견됐으니까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울컥한 마음에 넋을 놓았을 정도로 그렇게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우리는 태극기가 중요하다고 여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태극기보다 그 안에 있는 자료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

발견된 사료 가운데 국외 신문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과 단재 신채호 선생이 상하이에서 펴낸 '신대한'.

또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는 국내에서 비밀리에 발행한 신문.

1910년 한일합방 후 한반도에서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만이 유일한 언론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발행 신문들이 일제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인쇄 활자본이 아니라, 철필로 종이에 눌러쓴 것을 호외처럼 부정기적으로 배포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인서트 김주용 /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 : "특히 활자체가 아닌 철필로 써서 그대로 인쇄했는데 비밀신문이었거든요...생동감 있게 철필로 써서 그때그때 호외처럼 내보냈다는 것은 그 당시 3.1 독립선언의 의의와 효과를 100% 노렸던 것이고..."

신문의 내용 가운데는 조선이 자주국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주장이 눈에 띕니다.

또 깨어있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민주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홍보하고 선전했던 사실도 신문에서 파악됐습니다.

국내·외에서 발간된 신문들이 한자리에서 발견됐다는 점으로 미뤄, 진관사가 상해와 한반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을 거라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인서트 계호 스님 / 서울 진관사 주지] : "진관사가 독립운동의 거점사찰이라는 게 처음 발견했잖아요...(초월 스님이) 진관사에 계시면서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마포 포교당에 계시면서도 오롯이 군자금 모금을 위해서 활동하셨다는 게 저희들은 정말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독립신문과 신대한의 지면에 당시 활동했던 사람들의 인명이 다수 등장합니다.

이들 독립운동가 면면이 신문을 통해 세상에 공개되면서 이후 실제 독립유공자 포상에 일정 부분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발견 이후 1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신문 내용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연관성 있는 사실을 쫓아 추적하는 작업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습니다.

발견된 자료들이 당시 발간된 다른 신문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옛 신문들의 내용과 사료적 가치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시 조명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스탠딩]

공식 언론으로 인정받을 순 없었지만, 3.1운동을 알리며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 설립에 마중물이 됐던 당시 언론의 활약상은 후대 언론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BBS 뉴스 류기완입니다.

영상취재: 최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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