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창설 반백년을 맞은 통일부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남북정상회담의 문을 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였을 것이다. 이후 ‘통일부 무용론’까지 나왔던 이명박 정부의 엄혹함에 비하면 지금 문재인 정부 때도 나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재량권’ 차원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의 산파였던 임동원, 정세현 장관의 가공할 파괴력은 노무현 정부의 정동영, 이종석 장관에게 고스란히 계승됐고 대통령의 무한 신뢰는 물론, 간혹 정치적 지분까지 더해져 실세 장관으로서의 입지가 탄탄했다. 세월도 훈풍 자체였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북측에만 넘어가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내려왔다.

“사진만을 찍기 위해서는 북한도 미국도 가지 않겠다”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통일부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했다. 사전에 충분히 조율한 후 통일부를 통해 ‘원 보이스(one voice)’를 내게 하려고 애썼고, 실제로 당시 통일부와 외교부를 출입했던 기자는 ‘통일부발 보이스’의 수위와 의중을 청와대에 확인하지 않았다. 당시 정치부장은 “통일부에서 그렇게 얘기했으면 그렇게 쓰면 된다. 시간도 없는 데 왜 쓸데없이 청와대에 확인하느냐”고 늘 다그쳤다. 금강산과 개성, 그리고 가끔은 평양까지 지방출장 취재 가듯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고, 자주 만나는 북측 지인들에겐 가끔 ‘말보로 한 보루’도 슬며시 쥐어줬다. 북측의 용성맥주와 남측의 스카치 블루를 섞어 ‘남북화합주’라고 밤새 같이 마셨던 것도 이 시절이었다. 연일 방송과 지면은 남북관계 성과 기사로 넘쳐났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남북회담이 열렸던 서울 워커힐 호텔은 내 집처럼 익숙했다.

외교부도 눈부셨다. 공룡처럼 커 보이는 통일부의 위용에 주눅들만도 했지만, 북핵 문제 주무부처답게 ‘6자 회담’을 현란하게 견인했다. 마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실함으로 외교부의 위상과 역할을 매일 매일 새로 써내려갔다. 그 중심에는 반기문 장관과 송민순 6자 회담 대표가 있었다. 뒷날 벌어진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의 불화는 차치하고서라도, 송민순 대표는 이후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까지 역임하며 노무현 정부 북핵의 번다함을 노련하게 변주했다. 기자들은 6자 회담 의장국인 중국 베이징에 10번 이상 달려가 진을 쳤다. 방송기자들의 댜오위타이(조어대(釣魚臺), 당시 회담장소) 발음이 맛깔스러워질 무렵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공식 발표는, 당시 통일부의 위상에 걸맞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빼앗아가듯이 했지만, 알맹이를 채운 이가 송민순 대표임을 의심하는 기자는 없었다.

베이징 시내 한 호텔에 마련된 우리 기자들의 6자 회담 프레스센터에는 세계 각 국의 기자들이 상시 몰려와 장사진을 이뤘다. 유명 외신들은 물론, 특히 일본 기자들이 자주 찾아왔다. 북측 김계관 대표 취재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 회담 진행상황을 제대로 담으려면 미국 크리스토퍼 힐 대표와 우리 송민순 대표의 워딩(wording)이 필수적이었다. 기자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너를 인터뷰하고 싶다”던 한 외신기자의 요청이 지금도 생생하다. 매일 저녁 힐 대표의 숙소에도 기자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들었다. 송민순 대표와 폴란드에서 같이 근무를 했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힐 대표는 습관처럼 한국 기자들을 보며 이야기했다. “송민순 대표는 뭐라고 하던가? 나와 그의 생각은 별로 다르지 않다” 이에 우리 기자들이 “송 대표는 컵에 물이 반 차있으면, 이제 겨우 물이 반 차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벌써 물이 반이나 찼다고 생각할 수 있다. 좋게 생각하자고 말했다”고 전하면, 힐 대표는 껄껄 웃으면서 “나는 아직 미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티켓을 끊지 않았다”고 화답했다. ‘9.19 공동성명’은 이런 산통 끝에 나온 옥동자였다. 회담 결과가 좋든 나쁘든, 북핵 문제를 분명 우리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 이 자부심 하나가 외교부 당국자와 출입기자들 모두를 한없이 뿌듯하게 했다. 이수혁, 송민순, 천영우, 김숙, 위성락, 장호진... 기자가 아직도 ‘북핵 협상’하면 떠올리는 우리 외교관들이다. 훗날 이런 저런 정치적 진영논리로, 호불호와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감히 단언컨대, 외교부의 자긍심을 드높여준 빼어난 외교관들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적 치적 가운데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 유엔이 주는 빵을 먹으며 성장한 우리나라가 유엔의 수장을 배출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평소 가장 좋은 휴식 방법은 ‘일 하는 것’이라는 지독한 워커홀릭(workaholic) 반기문 장관의 출중한 자질과 능력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막바지 물심양면 지원까지 더해져 우리 외교사의 뚜렷한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 옆에 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모습이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미세먼지 문제는 이념도 정파도 국경도 없기에 국가를 위해 마지막으로 헌신하겠다는 노공무원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얼핏 노욕(老慾)으로도 비춰졌다. 아마도 꽃가마 태워 대통령 만들어줄 것으로 순진하게 믿었다가, 아예 발가벗겨버리는 정치권의 냉혹함에 못 견디고 중간에 도망가 버린 지난 대선 때의 반 전 총장 모습이 자꾸 오버랩 돼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외교안보 부처들은 몰락했다. 재량권은 물론, 존재감도 없이 청와대 심부름센터로 받아쓰기에만 급급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가장 큰 욕심이 남북관계에서 업적을 쌓는 것이다 보니 청와대 눈치를 보는 것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나 반복돼온 돌림노래였지만, 이 정부에선 특히나 더 심하다. 물론 청와대가 다 알아서 잘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무능한 주사파들이 무모한 실험정신으로 여기저기 다 똥칠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리운전만 하고 있다”는 악담이 시중에 횡행할 정도로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걸으니, 외교안보 부처들의 무능도 덩달아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역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가장 곤궁해 보인다. 트레이드 마크인 ‘은빛 머리’ 만큼이나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이 정부 들어 행해왔던 모든 비핵화 협상이 결국 다 헛발질로 파투(破鬪)가 날 지경인데도, 선봉에 서서 진두지휘해야할 주무 장관의 모습은 잘 보이질 않는다.

대통령 뒤 따라 다니며 사진병풍이나 되고, 북한 가서 평양냉면 맛있다며 ‘엄지 하트’나 쏘려고 장관된 것은 아닐 터인데, 국회만 갔다 하면 말실수고 자신감 없이 늘 애매모호 하다. 슬하의 직계들은 황당한 표기 사고까지 일삼는다. 바로 이웃집 블루하우스에서도 눈만 뜨면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의전 사고가 남발하고 있는 데, 대통령 해외순방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과 외교부 의전장실이 협업한다는 점에서 외교부도 완전히 발뺌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어느 쪽도 무조건 남 탓에, 구질구질한 변명은 해도 아직까지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북핵과 미국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장관이라고 걱정들이 많았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에는 현 정부 들어 외교부의 위상이 가장 처절하게 추락했던 때는 지난해 8월, 검찰이 '강제징용 재판 개입' 의혹으로 외교부를 압수수색했을 때이다. 외교부가 법 위에 있다는 주장이 아니다. ‘양승태 사법부’는 철퇴를 맞아야 하고, 더할 나위 없이 맞고 있다. 다만, 오롯이 ‘국익의 보자기’에 싸여있는 외교부는 청와대처럼 함부로 압수수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국정농단의 참사(慘事)에도 청와대는 압수수색만큼은 피했다. 더욱이 외교적 사건도 아니고 정치적 배경과 목적이 다분한 사안으로 검찰 칼잡이들이 들이닥쳐 난도질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 국가의 품격이 무너지는 일이다. 기자들이 쓸 줄 몰라 외교부의 그 수많은 엠바고(embargo)를 두 손 모아 지켜주는 줄 아는가?

강경화 장관이 막았어야 했다. ‘강제징용 재판 거래’가 아니더라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시킬 증좌들은 이미 차고 넘쳤다. 청와대가 그저 시키는 대로, 현 정권의 입맛에만 맞게, 앞선 선배들의 고심과 흔적을 지우고 부정하면 언젠가는 그대로 똑같이 당하게 돼 있다. 유엔에서 입지를 다진 강 장관은 구테헤스 현 유엔 사무총장과도 친하다고 알려졌다. 혹여 강 장관의 다음 꿈이 장관 자리로 불린 몸집으로, 유엔 국제기구에 가서 한 자리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지금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 ‘장관 자리에 있었다’가 아니라 ‘장관으로서 무엇을 했다’로 기억돼야 한다. 이번 주 또 장관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에는 7명이나 검증한다고 한다. 이미 역대급 허물로 너덜너덜해진 후보들은 어금니 꽉 깨물고 굽실거리며 요 며칠만 버틸 것이다. 그러면 국민 눈높이나 여론, 야당의 공세에 상관없이 장관이 될 수 있다. 기자는 7명 다 장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오만과 불통의 청와대는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7명 다 임명을 강행하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을 것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누가 하면 어떤가.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는데.

정치부 기자들이 외교부를 보는 감정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우선 세상에 자기들만 잘난 것처럼 고압적이고 안하무인인 집단, 한마디로 ‘밉상 이미지’가 강하다. ‘밉상 이미지’는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은 좀 무너져 주길 은근히 바라는’ 국민정서 일단(一端)과 결합하기 쉽고 하여, 조금만 잘못해도 사생결단으로 물어 뜯긴다. 아직도 전 세계 공관 곳곳에서 근절되지 않고 아름 아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외교관들의 뻔한 갑질과 습관적인 성추문은 당연히 응징돼야겠지만, 별 것도 아닌 비위행위에도 지나칠 정도로 가혹한 언론의 태도는 여기서 기인한다. 기자들은 또 동시에, 외교관들을 국익의 마지노선으로 신봉하며 그들의 역량을 말없이 응원한다.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는 ‘떠돌이 공복(公僕)’들의 열정에 주목하고 그들의 성과를 흠모한다. 그 어떤 정부 부처 공무원보다도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가는 것도 이런 묘한 이중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턱시도에 와인을 즐기며 왈츠만 출 것 같던 인사가 어느 날 갑자기 파전에 막걸리를 퍼마시며 유행가 한 소절을 읊는 모습을 목도했을 때의 친근감이라고나 할까. 로마시대, 둘로 접은 금속 통행권(diploma)이 ‘공문서’로 뜻이 확장됐고, 여기에서 18세기 ‘외교(diplomacy)’라는 단어가 탄생됐다. 즉, 전통적인 외교는 정부 간 공식적인 관계를 의미하고 외교관(diplomat)만이 외교를 독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최선두에 서서 주도하지 못하고 견인하지 못하면 외교관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외교관들만이 모여 있는 곳은 외교부가 아니다. 분발해야한다. 지금까지 세월만으로도 충분히 흑역사였다. [정치부장] [2019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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