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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와 사람들>, 이번 시간은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과 함께합니다. 
권 전 장관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을 시작한 했습니다.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거쳐 건설교통부에서 기획예산담당관과  국토정책국장, 주택국장, 정책홍보관리실장을 역임하는 등 건설교통부의 요직을 맡았습니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8·31 부동산 대책에 기여한 공로로 황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이후 한국도로공사 13대 사장과 국토부 초대 제1차관을 지냈으며, 2008년 국토해양부 장관에 임명됐습니다. 

□ 출연 :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 진행 : 강동훈 방송본부장

[인터뷰 내용]

▷강동훈 :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권도엽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강동훈 : 그동안 잘 지내셨죠? 

▶권도엽 :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강동훈 : 전국의 BBS 애청자, 그리고 유투브로 시청하고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권도엽 : 전국에 계신 BBS 불교방송 시청자 여러분 지금 강 본부장님 앞서 말씀대로 정말 따뜻한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늘 가정에 좋은 일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강동훈 : 지금 직제로 보면 국토교통부 장관이시죠? 그전에 국토해양부, 그전이 건설교통부. 왜 국토해양부라고 그때 직제를 변경했을까요? 건설교통부에서?

▶권도엽 : 그때 정부조직을 축소를 해서 전반적으로 정부를 효율화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국토해양부 경우에는 물류 측면에서 볼 때 항공, 육상, 해운 이것을 통합해서 운영하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하겠다, 해서 그전에 해양수산부에 있던 기능 중에 해양하고 물류 관련되는 기능을 국토해양부로 해서 출범을 시켰었습니다.

▷강동훈 : 국토해양부가 상당히 범주도 넓어지고 그 다음에 어떤 부처 간의 합의가 잘 안 되는 부분도 국토해양부로 만들면서 굉장히 신속하게 행정처리가 되는 그런 장점도 있었겠네요?

▶권도엽 : 그렇죠. 대표적인 사례가 12년에 개최했던 여수 엑스포. 원래 물류라는 것이 금방 말씀드렸지만 해운으로, 또 항공으로도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국내 물류하고 연계가 되어있기 때문에 같이 보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효율적이고, 또 그것뿐만 아니라 육지하고 바다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연계가 되어 있거든요? 하천이 바로 바다로 나가기도 하고 토지 이용 측면에서도 그렇고 해서, 그런 면에서도 같이 계획을 하고 정책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그런 판단을 했고. 실제로 부산에 원래 있던, 신항만이 아니고, 북항 쪽의 개발 계획을 비롯해서 국토해양부 시절에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도시계획이 고려가 되어야 되는 것이고, 항만도 고려가 되어야 되는 것이고, 당연히 거기 도로나 철도 같은 항만에 인접한 시설들이 같이 고려되어서 검토가 되어야 하는 상황인데. 마침 그것이 국토해양부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런 계획들이 잘 이루어졌었습니다.

▷강동훈 : 저희가 부산 북항에 저희 부산 BBS 사옥을 신축하려고 땅을 매입했는데, 그때 바로 장관님께서 해서 저희가 한 2,000여 평 매입을 해서 지금 40여 층을 지으려고 돈을 납부하고 있는 중인데, 장관님께서 그때 국토해양부에서. 시너지 효과를 충분히 갖췄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군요?

▶권도엽 : 그 후에도 계속 일이 진척이 되고 있습니다만. 국토해양부로 있음으로서 그런 일들이 훨씬 더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런 말씀을 드릴 수가 있고. 또 물류대란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도 항만 물류하고 육상 물류하고 부산 신항의 같이 연계가 되어 있었고, 또 그것이 철도하고도 연계가 되거든요? 그것을 같은 부처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인적으로도 그렇고 계획상으로도 그렇고 훨씬 더 긴밀하게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고, 그래서 큰 부작용 없이 극복으로 할 수 있었고 그랬습니다.

▷강동훈 : 그때는 장관님 산하에 1차관, 2차관이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 1차관이 국토 업무하고, 2차관이 해양 관련 업무였나요?

▶권도엽 : 해양하고 교통. 2차관 산하에서 물류 관련 일을 다 할 수 있었죠.

▷강동훈 : 그래서 큰 시너지 효과를 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일반적으로 봤을 때 장관님 같은 경우는 기본적인 이력을 아나운서가 아까 나레이션을 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주로 건교부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 해양 업무도 동시에 하는 장관이 됐네요?

▶권도엽 : 그렇죠. 제가 1차관할 때부터 국토해양부였었고. 그래서 옆에서 지원을 하는 입장에 있었고, 장관 때는 직접 관여하게 됐었죠.

▷강동훈 : 이왕 여수 엑스포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사실은 여수 엑스포가 지난 번 장관님이 앉아계셨던 그 자리에 관계자 분이 나와서 굉장히 권도엽 전 장관께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여수 엑스포 이후에 여수 방문객이 2018년 기준으로 한 1,400~1,500만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제주도를 능가할 정도로. 대부분 그 분이 말씀하신 것이 SOC사업을 잘 정비를 해줬고, 여러 가지 주변 여건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KTX하고 도로 관련인데. 그때 그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빨리 이뤄냈습니까?

▶권도엽 : 국가 정책 사업으로 추진한 사업이고, 마침 국토해양부에 같이 있었고. 또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물론 엑스포 시설이 잘 되어야 되지만 당연히 접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접근시설이 잘 구비가 되어야 하고. 그래서 철도, 도로를 앞당겨서 완료를 할 수 있었고. 좀 무리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엑스포 때 일시에 많은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그 분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 그것도 지금 LH공사죠, 당초에는 주택공사로 했다가 LH공사로 합쳐졌는데, 거기서 처음에는 정말 어려운 결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용시설을 다 완료를 해줬죠. 그래서 지나고 나서 생각입니다만 그때 그런 일들이 하나의 부서에서 같이 계획하고 관리되고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엑스포를 성공시키는데 큰 효과를 발휘했지 않았나, 그런 생각입니다.

▷강동훈 : 지금 이 시간에, 그 당시에는 여수 BBS가 없었거든요? 지금은 여수 BBS 무선 중계국이 두 곳이나 개국이 되어서 잘 듣고 있을 텐데. 그러면서 여수 KTX, 전라선을 하면서 추가로 마산, 포항, 포항은 또 신설을 잠깐 연장해서 했지 않습니까? 장관님을 섭외한 기자가 고향이 포항입니다. 최선호 기자. 굉장히 요즘 편하게 고향을 다니고 있다고 하는데. 포항까지도 연장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권도엽 : 그 후에 진척된 자세한 사항은 모릅니다만 국가의 원래 큰 계획상으로 철도도 그렇고 도로도 그렇고 전국을 격자형으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 있었고, 제가 나오고 나서 후배들이 또 열심히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관련 부처에서도 재정적으로 지원도 잘 됐던 것 같고요.

▷강동훈 : 지금 후배들 이야기를 하니까, 이번에 청문회 거치면 장관이 임명될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 후보가 되겠죠. 같이 근무를 하셨죠?  

▶권도엽 : 그때 본부장님 간사 하시면서 출입할 때 대변인 하지 않았습니까?

▷강동훈 : 그 분이 이번에 장관으로 임명됐는데, 제가 자료를 찾다 보니까 권도엽 장관님 이후 6년 만에 국토교통부 내부에서 장관으로 발탁됐다, 이런 기사가 있는데. 맞습니까?

▶권도엽 : 아마 그럴 겁니다. 

▷강동훈 : 그러면 그 전에, 장관님 떠나고 나서는 서승환 장관 등등 장관 분들은 아무래도 외부에서 오신 분들이죠?

▶권도엽 : 다 외부에서 오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동훈 : 아무래도 관료 출신 입장에서 보면, 후배들 이야기를 아까 하셨는데, 아무래도 많은 경험을 익히시고 얼굴도 낯가리지 않는 분이 오셔야 좀 편하게 진척할 텐데. 그동안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 라는 그런 의구심도 드는데. 어땠을까요?

▶권도엽 : 다 훌륭한 분들이 그동안에 다녀가셨고 그랬습니다만, 아무래도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구구하게 설명을 안 드려도 그 뜻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분들이 장관이나 지휘자로 오면 조직의 구성원들이 훨씬 더 편하겠죠. 그리고 최 장관 내정자는 아주 열정적이고 일을 아시다시피 아주 탁월하게 잘 할뿐만 아니라 특히 대인 관계가 아주 좋습니다. 상하를 불문하고 정말 스스럼없이 다들 대할 수 있는 그런 분이라고 직원들이 아마 특별히 많이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강동훈 : 저희가 사실은 이 자리를 빌어서 장관님을 모시고 기자단을 대표하는 국토해양부 간사, 국토교통부 간사를, 간판을 갈아타고 간사를 했었는데. 그때가 과천 시대였고, 과천 시대 하시면서 세종청사, 즉 행복청이 주도하는 세종청사를 만들 때 주무장관이셨어요. 지금 3단계까지 끝났습니다. 보람을 어떻게 느끼시는지, 아니면 아쉬움이 있는지?

▶권도엽 : 최근에 제가 세종시를 가보지 않아서 상황은 모르겠습니다만 나름대로 잘 정착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고요. 거기 행복청을 과장하던 행복청장들이 유능한 분들이 그동안 쭉 재임을 했었고, 지금 세종시장도 제가 잘 아는 분,

▷강동훈 : 이춘희 시장, 건설교통부 출신이죠.

▶권도엽 : 그렇죠. 원래 세종시 계획 때부터 관여했던 분이고 해서 잘 마무리되었고 계속 발전시켜나가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강동훈 : 요즘 상황을 보면 서울-세종 간 고속화도로도 예정 설계를 들어가고 있고, 철도 오송역에서 연계를 하느냐, 마느냐의 논란이 있고 한데. 사실 그때 초기 설계할 때 오송보다는 바로 서울에서 청사 밑으로 되는 구간으로 KTX가 지나가야 되지 않느냐, 라는 설계를 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변경이 된 겁니까?

▶권도엽 : 그 계획을 만들 때 제가 직접 관여하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고요. 다만 일반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도시는 교통이 편리해야 장기적으로 더 크게 발전을 할 수 있고, 도시가 크게 발전을 하면 주변 지역도 덩달아 발전하게 됩니다. 우리 세종시는 행정 중심지기 때문에 지금같이 전 세계가 하나의 사회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공항도 그렇고 공항에서 바로 행정 기능 중심지까지 바로 연결될 수 있는 대중교통 시설 이런 것들이, 고속시설이면 더 좋습니다만, 잘 갖춰지는 것이 우리 국가 전체 경쟁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저희가 1단계 때 내려가서 3단계 완공될 때 제가 서울 본사로 복귀했는데. 초기 때보다는 상당히 많은 인프라가 완성이 됐고 또 고용 인구들도 많이 주거하는 인력들이 늘어났더라고요? 그것이 원래 세종이 전체로 인구가 꽉 차면 얼마 정도 예상합니까?

▶권도엽 : 저희가 50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지금 장관님께서는 전에 한국도로공사 사장도 역임하셨어요. 지금 물론 교착상태에 빠졌지만,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지만 남북 간 경협,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도로 문제 같아요. 이것이 제가 알기로는 어떤 현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그 전전 정부부터 남북 간의 물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철도와 도로가 우선이다, 이렇게 알고 있는데. 사실은 이것이 계획된 것이 꽤 오래됐던 거죠?

▶권도엽 : 예, 구상은 훨씬 전부터 있었고요. 벌써 그것이 1980년대 그 무렵부터 국토 계획을 하면서 나중에 통일에 대비해서 우리가 국토 전체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많은 고민을 했었고. 구체적으로 연결 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부터였던 것으로 알고 있고. 그때 그래서 이미 상당한 성과가 있었죠. 그래서 금강산도 다녀올 수 있었고, 한 동안, 개성까지 철도, 도로가 연결이 되고 그랬죠.

▷강동훈 : 앞으로 향후 우리가 실무진들이 가서, 실사단도 가서 철도도 점검하고, 도로 상태고 점검하는 그런 보도가 많이 나왔었는데. 아무래도 보완할 부분은 좀 많겠죠? 저희하고 교통 상황이 너무 그쪽은 열악하잖아요?

▶권도엽 : 철도도 그렇고 도로도 그렇고 우리 수준하고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행속도도 철도가 한 3~40km. 도로도 고속도로라는 것이 우리 지방도보다도 질이 훨씬 떨어지는 상황인데. 여건이 되면 대대적인 투자가 있어야 될 겁니다. 그래야지 아마 이용하는데 별 지장이 없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동훈 : 저희가 BBS 뉴스와 사람들이 권도엽 전 장관님을 이 자리에 모신 것은 제가 뭘 찾다 보니까, 장관님께서 2015년에 국토교통정책의 역사적 변동과 전망이라는 책을 쓰셨어요. 이런 내용들이 그동안의, 미래의 한국의 변화된 인프라, 교통망, 여러 가지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 아닌가요?

▶권도엽 : 그 책은 제가 혼자 쓴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같이 쓴 책인데, 저는 총론 쪽에 조금 손을 댔습니다만. 지금까지 어떻게 우리 관련 인프라나 계획이나 제도가 형성이 되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더 보완, 발전시켜야 될 부분은 무엇인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강동훈 : 관련해서 지금 현재 우리가 교통정책에 보면 철도는 어떻게, 도로는 어떻게 해서 한반도 지도를 놓고 어느 정도 선을 그은 상황에서 진행이 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큰 프로젝트를 보면 현재까지 잘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까?

▶권도엽 : 그런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 구체화되는 세부 부문별 계획은 인프라 측면에서는 나름대로 잘 되어가고 있고요. 우리가 균형발전이라고 하면 보통 각 지역에 있는 것과 비슷하게 배분되어 있는 상태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개인이 한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인프라 같은 것이 지역 간에 별 차이 없이 배분이 되어 있는가,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어쨌든 전자의 시각에서 보면 국제 경쟁하고 연계해서 전국이 고르게 인구가 살기에는 쉽지 않는 상황이고. 그래서 후자적인 입장에서 보면 많이, 지금 시골에 농어촌에 살아도 대도시에 사는 것과 별 차이 없이 관련된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나 기반시설을 다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는 많이 좋아졌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강동훈 : 그렇게 하는 것은 역시 교통이죠?

▶권도엽 : 교통이 중요하고. 지금은 사실은 의료. 중소도시 농어촌으로 갈수록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사시기 때문에 그런 의료나 문화나 교육 이런 쪽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강동훈 : 국토균형발전계획이라는 것은 정권이 바뀌면 일부는 수정될 수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흐름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거죠? 장관님은 어떻게 보세요?

▶권도엽 : 그렇습니다.

▷강동훈 : 정부가 지난 1월 말 한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냈어요. 어느 지역에서는 미소가 나오고 어느 지역은 왜 우리는 제외했느냐, 이런 것인데. 물론 우리 경제 상황과 또 건설업계의 여러 가지를 감안해서 대통령께서 결정을 한 것 같은 느낌인데. 이런 예비타당성 면제, 장점고 단점도 있을 텐데?

▶권도엽 : 장단점이 분명히 있겠죠. 가능하면 사업의 성과, 예상되는 성과, 그 다음에 부작용 그것이 베네피트-코스트 이렇게 되는 것인데. 그런 부분들을 다 분석해서 우선순위가 높은 데서부터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바람직한 것이고요. 다만 기준이 조금씩 달라져야 되지 않느냐는, 저는 현직에 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가 살기가 좋아진다는 것은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뜻이 하나가 있고, 어떤 분들도 소위 말하는 최소의 필요, 아주 기본적인 수요는 다 충족이 되어야 된다고 하는 그런 면도 고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예비타당성조사라는 것은 그냥 경제적인 측면에서 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균형발전이나 복지 이런 측면에서도 고려를 하면서 사업을 결정하는 것이, 그렇게 결정해갈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입니다.

▷강동훈 : 권도엽 전 장관님께서는 아무래도 관료생활을 오래하셨고, 후배들이 현재 그것을 맡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답변을 해주시는 것으로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BBS 뉴스와 사람들,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국토 분야가 부동산 문제를 빠트리고는 갈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만큼 부동산 하면 실생활에 연결이 되어 있고 또 여러 생활에도 다 연결이 되어 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 굉장히 강력한 폭탄 정책으로 지금 현재 지난주에 보니까 서울 쪽 부동산이 많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돈줄만 막아서 가능한 것인지, 또 이렇게 부동산이 계속 이런 식으로 하강세, 폭락하면 이것이 서민들한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어떻게 보십니까?

▶권도엽 :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자기가 환자의 데이터를 정확히 보지 않고는 뭐라 이야기하기가 어렵죠. 제가 지금 현재 시장의 상황이라든지 거기에 관련된 정책이라든지 데이터라든지 이런 부분에 요새 크게 관심을 안 갖고 있어서 그 부분은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그렇고요. 일반적으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주택시장을 조금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서울하고 수도권,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생활권이거든요? 이것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봐서 모든 지역이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이 교육이나 의료나 접근성 문제나 다른 생활 편의시설 문제 이런 점에서 큰 차이가 없게 만들어주면 우리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여건도 훨씬 나아지고 시장을 안정시키는데 훨씬 도움이 되고. 주택 정책의 목표는 결국 주거안정에 있는데, 서민들 주거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 지역으로 보기보다는 광역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가 이런 말씀을 따로 안 드려도 후배들이 워낙 유능하기 때문에 다 잘 알아서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강동훈 : 부동산은 안정이라는 표현보다는 수요 공급에 정치적 논리까지 잘 해야 만점 정도 되는데, 그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정책이. 이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거의 정리할 시간인데. 제가 알기로는 권도엽 전 장관께서는 경북 의성 출신입니다. 서울로 유학을 오셨어요. 그 당시 나이 연배에서 시골에서 서울까지 유학 온다면 집이 잘 살거나 아니면 부모님들이 어떻게든 간에 우리 아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을 텐데. 어떤 경우입니까? 

▶권도엽 : 저는 6남매의 둘째인데요. 제 작고하신 아버님께서 삼대 독자셨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 위로 형이 하나 있고 해서 형님하고 저하고는 교육을 시키겠다고 생각을 하셨는데.

▷강동훈 : 솔직히 말해서 위아래를 가지고 선별되셨구나.

▶권도엽 : 형편이 그때는 다 어려웠지만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국민학교는 의성 옥산이라는 면 단위에서 나오고, 중학교를 대구에서 다녔습니다. 집에서는 제가 가정형편을 감안해서 상고를 갔으면 하고 기대를 했습니다.

▷강동훈 : 그때는 상고 인기가 많았잖아요?

▶권도엽 : 그렇죠. 그때 상고, 공고가 아주 인기가 있었죠. 그런데 제가 어떻게 하다가 용기를 내서 밤차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강동훈 : 부모님이 그냥 보내주신 것이 아니고 밤차타고 와서 공부를, 시험을 보신 거네요?

▶권도엽 : 좀 서울 올라올 때까지는 부모님 말씀을 거역을 한 셈입니다. 그때 제가 시험을 봐서 되면 학교를, 서울이 아무래도 대구보다는 여러 가지 경제적인 사정이 나으니까. 그때는 가정교사라고 그랬는데요. 학생들 집에 가서 돌보면서 학교를 다니겠다. 떨어지면 남대문시장에 가서 점원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올라왔었습니다.

▷강동훈 : 그러니까 소위 말해서 대구상고 졸업생이 될 뻔 했었는데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셨군요.

▶권도엽 : 모르겠습니다. 대구상고도 됐을지 알 수가 없죠.

▷강동훈 : 그런 과정을 거쳐서 행시, 기시가 있는데 어느 파트를 선택하신 거죠?

▶권도엽 : 행정고시입니다.

▷강동훈 : 행정고시를 통해서 들어오셔서. 쉽지 않을 텐데. 그러면서 그때는 기재부도 있고 상공부도 있었고 여러 가지가 있었을 텐데 여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권도엽 : 행시는 대학교 때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제가 공대를 나왔는데, 그 안한 상태에서 우연하게 행정대학원 시험을 보게 됐고, 실력이 모자랐는데도 어떻게 됐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 같고. 그때는 처음에 발령은 국세청으로 받았습니다. 그때 국세청 분위기를 바꾼다고 해서 제 동기가 130여 명 됐었는데, 한 40여 명 가까이가 국세청으로 갔었습니다. 국세청 갔다가 부처이동하면서 원래 희망을 건설부로 했던 것은 아닌데 건설부로 이동이 됐었습니다.

▷강동훈 : 지금 모친께서는 생존해 계신가요?

▶권도엽 : 16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강동훈 : 제가 알기로는 아무래도 유교적 가정 분위기지만 불교하고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어머니를 어디에다 모셨을까요?

▶권도엽 : 어머니는 지금 집 뒤에 선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에 모셨고요. 49재를 직지사에서 올렸고. 원래 저희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죠. 그때는 불교 집안이 많았으니까요. 어머님도 절에 가서 자식들 위해서 기도 열심히 드리셨고, 그랬습니다.

▷강동훈 : 지금 생각하면 어머님의 불공에 대해서 저도 사실 어릴 때 어머니가 부처님 전에 저를 위해서 기도를 드리면 좀 반발했거든요? 그게 미신이지, 기도한다고 부처님이 들어줄 것 같습니까? 그랬는데.

▶권도엽 : 젊을 때는 똑같죠.

▷강동훈 : 그렇게 했는데. 지금 제가 가족을 형성하다 보니까 아이들을 보면 그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가신 어머님한테 죄송한데, 지금 장관님께서 어머니가 앞에 계신다면 짧게 어머님께 어떤 감사의 말씀 하나 할 만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그걸 듣고 오늘 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권도엽 : 제 어머님은 나쁜 말을 절대 안하셨습니다. 항상 저한테도 좋은 말 하세요, 그러시고. 그리고 본인은 정말 어려운 생활을 하셨습니다. 아랫목에 한 번 누워보시지 못하고 밥을 하면 보리밥만 맨 마지막에 드시고. 나중에 편찮으시고 하실 때 자주 찾아뵙고 하려고 노력은 했습니다만 정말 제가 불효한 것 같습니다. 제대로 잘 못 모셔서 대단히 죄송하고, 어머니 좋은 곳에서 쉬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편히 잘 쉬시고 그래도 어머님 늘 지성으로, 지극정성으로 살아가고 남들한테 좋은 말 해라, 그런 말씀 주셨는데. 그 덕에 그래도 사회에서 나름대로 이렇게 잘 살아오지 않았나,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동훈 : 더불어서 시청자, 청취자 분들께 인사말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권도엽 : BBS 불교방송 시청자 여러분, 여러 가지 요새 미세먼지도 많고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더욱 힘내서 금년 한 해도 멋지게 열정적으로 마무리 일구어가시고, 또 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고, 또 평안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강동훈 :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장시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권도엽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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