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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을 밝히고] 부처님 발자취 따라 '화합과 상생' 모색
홍진호 기자 | 승인 2019.03.18 17:27

 

불교계 이슈가 되고 있는 다양한 뉴스들을 전해드리는 시간입니다.

키워드로 보는 불교 오늘은 BBS 보도국 문화부 홍진호 기자, 나와 있습니다.

홍 기자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키워드를 보면 ‘종교화합’ ‘성지순례’ ‘네팔 의료지원’ ‘인도불교’ 이렇게 꼽아주셨네요.

먼저 ‘종교화합’ 무엇이죠?

 

불교와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등 우리나라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지난 5일부터 13일까지 불교성지를 함께 순례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김희중 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 이정희 천도교 교령 등이 참가했는데요.

전 일정을 동행취재하게 됐습니다.

종지협은 그동안 1년에 한차례씩 이웃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며 각 종교간 이해 속에 상생과 화합을 모색해 왔는데요.

이번에 불교성지순례를 함께 가게 됐습니다.

예년에는 주로 초가을을 전후해서 성지순례를 갔었는데, 이번엔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불교성지 순례 제안을 현 종지협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 등이 수용하면서 조금은 빨리 갑작스럽게 이뤄졌습니다.

각 종교계를 대표하는 분들이기에 시간을 내기가 참 힘든데 함께 이웃종교의 성지를 둘러보는 것 자체가 종교간 화합과 상생의 큰 울림이 됐습니다.

 

불교기자들은 취재를 위해 불교성지를 다녀온다고 알고 있는데요. 불교성지가 대부분 오지에 있어서 힘이 많이 듭니다. 이번 순례 어떠했나요?

 

인도는 도로 등의 사정이 좋지 않은데다가, 성지 대부분이 국경지대 등 오지에 위치해 있어서 우선 이동거리가 많습니다.

이번 성지순례 기간에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를 거쳐 입멸지인 쿠시나가르와 성도지 부다가야,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 순으로 순례를 했는데요.

인도에서 거의 매일 새벽 4시부터 차를 타고 평균 10시간 씩 이동을 했는데도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 녹야원은 귀국하기 바로 직전에 방문을 했어야 했습니다.

쿠시나가르 등이 위치한 곳에서는 금주령이 시행되고 있고요.

호텔이라고는 하나 식사 도중 갑자기 정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네팔과 인도에서 군인과 경찰들이 전 일정을 함께 하며 교통정리 등을 해 준 것이 순례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론 취재를 위해서 네팔은 이번에 4번째 방문 했고요.

인도는 9년 전에 개인적으로 약 한달 간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배낭여행 때는 인도 현지인들이 타는 기차와 버스를 타고 현지식을 먹어서 몸무게가 4kg 정도 빠지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의 성지는 불자로서 신심이 샘솟는 곳이자, 역사적 현장이기도 한데요. 어떠했나요?

 

네, 불교성지는 아쇼카 대왕의 석주 등을 통해 성지가 입증되고 세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다행스럽고 신기에 가까운 일입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도 성지순례 기간 이같은 발언을 거듭 했는데요.

왜냐하면 중국과 달리 인도는 민족과 역사에 대한 자각이 덜한 편입니다.

중국이 한족에 의한 단일문명과 역사성이 사실상 지속돼 왔다면, 인도는 다양한 민족과 언어, 종교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갠지스강 주변 평야지역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민족의 침입도 잦았고요.

현재의 영토로 확정된 인도라는 국가는 영국이 식민지 지배를 위해 확정돼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인도는 예초부터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고요. 그냥 인도라는 대륙과 주변에서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인들이 영토 개념 없이 공존해 왔기 때문입니다.

천만다행으로 불교성지의 역사성은 아쇼카대왕의 석주로 기록됐고요.

원행스님은 4대 성지 곳곳에서 불교적 의미에 대해서 설명을 하며 이웃 종교 지도자들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함께 들어 보시죠.

[원행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달라이라마께서도 여기에서 해마다 설법을 하시고 사슴이 뛰어놀던 동산 여기에서 처음으로 다섯 비구를 향해서 사성제와 팔정도를 설하셨기 때문에 그 때부터 불법승 삼보가 갖춰졌다. 열반하신 이후로 우리가 나지기르 영축산을 못가서 그러는데 영축산 쪽에 가면 칠엽굴이라는 굴이 있습니다. 그 칠엽굴에서 거기서 첫 번째 승려대회를 한 겁니다. 결집대회를 한 겁니다.”

 

이번 성지순례 기간에는 또 종교지도자들이 부처님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 지역의 의료지원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고요?

 

네 네팔 룸비니는 세계 불자들의 순례와 참배가 이어지고 있고요.

160만 명의 현지인이 거주하는 있는데,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 한 군데도 없다고 합니다.

네팔 룸비니개발신탁 위원회의 메테야 사키야푸타 부위원장이 의료시설이 없다고 말하자, 원행스님이 한국종교지도협의회 차원의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이러한 제안에 따라 즉석에서 각 종교 지도자들이 논의를 거듭해 병원건립과 의료인 양성에 힘을 모으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와 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의 발언 함께 들어 보시죠.

[김희중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와서 조금 더 교육을 발달된 공부를 하고 여기 와서 정부하고 종교계하고 협력을 해서 조그마한 병원이라도 하나 세우면...”

[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

“선발해서 보내주면 장학혜택을 주고 가르쳐서 보내주는 게 훨씬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네 그리고 종교지도자협의회 위원으로 오랜시간 활동했던 양덕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전국위원회 부장은 아주 오래 전에 이라크 지역의 현지 의료인들을 국내로 초청해서 교육을 시킨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무래도 보다 근본적인 지원은 의료인 양성인데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현지 의료인을 국내로 초청한 교육이어야 지역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네팔 정부 관계자에게 강조했습니다.

관련 발언 들어 보시죠.

[원행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지금부터 대학교 졸업해서 인턴하고 레지던트 다 거쳐가지고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깐 그런 결정을 이분이 할 수 있는 거야 아니면 다른 분하고 상의해야 하는 거야 (상의해야 합니다.) 장관급이 카트만두에 가있다며...”

 

종교지도자들 외에도 어떤 분들이 참가를 했나요?

 

네 조계종 사회부장 덕조스님과 양덕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전국위원회 부장, 여운영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국장, 이공현 원불교 문화사회부 부장, 정정숙 천도교 사회문화관장, 조계종 사서국장 덕엄스님, 허종화 원불교 부속실장 등이 동행 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이우성 종무실장과 이성선 종무 1담당관도 함께 했고요.

언론사에서는 BBS 불교방송과 가톨리평화방송신문사에서 취재단을 꾸려 동행취재를 했습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성지를 순례하면서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요.

종교인으로서의 책무도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30여 년 전에 사회부장 덕조스님은 약 25년 전에 불교성지순례를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덕조스님은 그 때보다 조금 더 무거운 발걸음으로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겠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조계종 사회부장 덕조스님의 관련 발언 함께 들어 보시죠.

[덕조스님/ 조계종 사회부장]

“아마 2500년 전 부처님께서 성도를 하시고 여기 와서 최초의 설법을 하셨던 그 길까지 당신께서 걸어오셨고 또 그 이후로 45년간을 설법하셨던 그 길을 생각하면 오늘 저희가 왔던 이 길이 바로 부처님이 가셨던 그 길 한 걸음 한 걸음 헛 되이지 않는 걸음, 남에게 모범되는 걸음, 진리의 걸음이지 않나 싶습니다.”

 

끝으로 꼽아준 키워드는 인도불교인데요. 다시 찾은 인도와 불교성지에서 어떠한 점을 느꼈나요?

 

인도 곳곳에 남아있는 거대한 불교유적들을 보면서, 이렇게 찬란했던 불교가 왜 현재 인도에서 약화되었나 하는 것이 화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국내외 많은 불교학자들이 인도에서 왜 불교가 약화 되었나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논문과 책으로 발표를 했는데요. 

일반적으로 인도에서 불교가 주류 종교에서 벗어난 것은 이슬람교의 침입에 의해서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하지만 불교가 힌두교화 되고 힌두교가 불교를 흡수를 하는 등의 내부적 요인이 가장 크다는 게 요즘 학계의 공통된 인식인 것 같습니다. 

물론 불교는 비폭력과 불살생의 종교이고, 왕조의 지원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했기에, 이슬람교 약탈의 표적이 된 점은 분명하고요.

카스트 제도를 거부하고 불자로 남은 불교신도들의 대부분은 이슬람교도가 되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자이나교가 이슬람의 침입이후에도 특수성을 유지하며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점 등을 돌아보면, 불교가 불교만의 색깔을 잃었던 게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무명을 밝히고의 세계불교 시간에 자세히 다뤄졌는데요. 인도에 다녀와서 동국대 황순일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관련 발언 함께 들어 보시죠.

[황순일 교수/ 동국대학교]

“자이나교는 살아남은 이유가 자이나의 수행자는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됩니다. 불살생에 비폭력이기 때문에 음식을 아주 가려서 먹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들한테 가려서 음식을 준비해 줄 수 있어야 하니깐 자이나교는 재가신도들을 철저히 관리합니다. 점조직같이. 이슬람이 와서 파괴를 했어도 재가신도 조직이 남아 있어서 다시 복원이 돼요.”

 

네 홍진호 기자 잘 들었습니다.

홍진호 기자  jino41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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