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과 페로(로마인의 자비)'

젊은 여인이 노인에게 자신의 젖가슴을 내어주고 반라의 노인이 여인의 젖가슴에 키스를 하는 듯한 이 작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루벤스의 작품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다소 역했던 그 느낌을 기억한다. 미술에는 문외한 일 뿐더러, 외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스스로 위안 삼아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홀로 자괴감의 선을 넘나들고 있을 즈음, 조금 안도할 수 있던 건 이 작품을 처음 대하는 관람객들의 반응이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외설스럽다는 느낌을 넘어서 마치 포르노의 한 장면 같다는 불만 섞인 평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외설로 자주 오인 받는 이 작품은 알고보면 효심과 감동이 흘러넘치는 중세시대 명화로 평가받는다. 시몬이라는 이름의 이 노인은 여인의 아버지다. 역모죄로 아사형(餓死刑)의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굶어 죽게 된 아버지를 위해 딸 페로가 면회를 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젖을 물렸다는 절절한 효심을 담은 작품이다. 간수의 눈을 피해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시간동안 여인이 감수해야 하는 고통스럽고도 불안한 마음이 여인의 표정에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영락없는 '포르노'이지만 실상은 성화다.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게 아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법정에서 검찰의 수사와 공소사실을 ‘가공의 프레임’이라고 정면 비판하면서 루벤스의 작품 '시몬과 페로'에 빗대었다. 

임 전 차장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정식 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해 그간 수사를 받은 입장과 향후 재판에 임하는 자세를 10분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그는 “지난 시기 양승태 사법부가 재판거래와 재판 관여를 일삼는 터무니없는 사법 적폐의 온상으로 치부돼선 안 된다"며 "사법행정을 담당한 모든 법관을 인적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재판거래' 혐의에 대해 "지난 시기 사법부가 이른바 재판거래를 통해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닌 가공의 프레임"이라며 "검찰이 수사와 공소장을 통해 그려놓은 경계선은 너무 자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임 전 차장은 "그동안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펼친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일방적인 여론전은 이제 끝났다"며 재판부에 "공소장 켜켜이 쌓인 검찰발 미세먼지로 형성된 신기루에 매몰되지 말고 무엇이 진실인지 충실히 심리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대해 검찰은 임 전 차장이 '가공의 프레임'이나 '미세먼지가 만든 신기루'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검찰을 비판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유감을 표했다.

루벤스의 성화 이야기에 대해서도 "국가적 법익에 관련된 사건에서 다양한 비유를 두고 굳이 외설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며 "행정처 재직 당시 언론을 활용하려 시도한 전력을 보면 피고인이 이번에도 언론을 활용해 사건을 왜곡시키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농단을 청산하면 마치 개혁이 완수되는 것 마냥 칼자루를 쥔 자들의 의욕은 가히 저돌적이다.

하지만, 같은 문제도 어떤 잣대로 어떻게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선이 악으로 변질될 수도 있고, 악이 선으로 포장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모든 개혁의 목적은 정의의 실현으로 귀결돼야 하지만, 문제는 그 정의를 바라보는 시각이 진영의 논리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개혁의 결과는 결국 칼로 베어진 물이 다시 섞이듯 유야무야로 귀결되기 쉽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치 물을 가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라며 헛헛한 심정을 되뇌었던 것도 이런 개혁의 속성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진정한 개혁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위 1%로 구분되어지는 권력층을 청산하는데 그 목적을 둘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사회에 관행처럼 굳어져 온 적폐와 녹슨 정신을 개혁하는 것 부터가 우선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목도하는 입장에선 그 같은 개혁은 멀어 보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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