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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불교 사상가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용성 스님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불교 대중화를 결심하고 이후 경전의 한글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대한승려연합회' 이름으로 1919년 11월에 발표된 선언서가 사실상 불교계 독립 운동의 상징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정영석 기자가 전합니다.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던 용성 스님.

조국 잃은 슬픔에 비할 것이 없었던 스님은 또 한번 큰 슬픔에 잠깁니다.

당시 종교 서적 가운데 한문으로 된 것은 불교 경전뿐이란 사실을 감옥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용성 스님은 불교 대중화를 위해 경전의 한글 번역을 결심하게 됩니다.

역사학자들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용성 스님의 이같은 옥중 생활을 주목했습니다.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 그 당시 우리 불교는 99%가 한문(경전) 아닙니까. 그래서 자기(용성 스님)가 충격을 받고 내가 출옥을 하면 동지들을 모아서 경을 (한글로) 번역하는데 전력을 하겠다. 그래서 이것을 진리 연구의 나침반으로 지으리라 이렇게 결심을 했습니다.]

용성 스님과 만해 스님 등이 앞장선 불교계 독립운동은 3.1운동 후에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1919년 11월 15일 대한민국 독립의 당위성을 천명하는 선언문이 '대한승려연합회' 이름으로 발표됩니다.

[방영준 성신여대 교수: 이 발표자가 12분이십니다. 그 당시 사회의 여러 가지 억압적 분위기에서 가명을 사용한 분들도 많고 범어사, 해인사, 통도사 등의 주지 스님들이 대찰의 주지 스님들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백초월 스님 주도로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 근거지를 두고 젊은 학인 스님들의 만세운동도 들불처럼 번져갔습니다.

[지민 스님/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 불교계 내에 만세운동과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결집시키고 지지하는 움직임이 크게 있었으며 특히 지방학림의 젊은 승려들은 지역주민들과 만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전국 각지에 걸쳐 지역민들과 함께 3.1정신을 계승하는 크고 작은 불교계의 활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1 독립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아 화합과 통일의 새날을 열어가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각자 종교의 개혁과 이웃 종교간 화합을 고민하는 종교인들이 모여 만든 '종교개혁연대'는 33인의 이름으로 한반도 독립선언서를 발표했습니다.

[박광서 공동대표/3.1운동 100주년 종교개혁연대: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치유하고 갈라진 한반도를 다시 이을 주인공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특히 자비와 평화를 앞세우는 종교인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100년 전 3·1운동을 주도했던 종교계가 숨겨진 역사를 발굴하고 새롭게 조명하면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BBS NEWS 정영석입니다.

(영상취재/장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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