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BBS 라디오 아침세상 - 파워인터뷰] “의병·계몽운동 계열의 보수·진보가 손잡고 하나의 목소리를 낸 게 3.1운동”

▲ 김희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은 51년 한국 독립운동사를 보면 의병계열과 계몽운동계열, 지금의 보수와 진보가 나라를 잃고 완전히 손잡고 하나의 목소리를 낸 게 3.1운동이라고 말했다.

● 출연 : 김희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

● 진행 : 김종렬 기자

 

▷ 앵커멘트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경북인이 펼친 독립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에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남인의 불굴의 저항정신과 의리정신, 혼은 오롯이 3.1운동를 비롯한 다양한 항일운동에 그대로 옮겨져 독립국가 대한민국을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오늘은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김희곤 관장을 김종렬 기자가 만나 경북인의 의병투쟁, 3.1운동 등에 대해 말씀 나눠 보겠습니다.

 

▷ 파워인터뷰

[김종렬] 파워인터뷰, 오늘은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아 왔습니다. 이 자리에 김희곤 관장 나와 계시는데요, 관장님 안녕하십니까?

[김희곤 관장] 네, 반갑습니다.

 

[김종렬] 관장님,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안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설립목적과 배경, 소개 좀 해주십시오?

[김희곤 관장]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그러면서 안동에 있죠, 그런데 처음부터 경상북도라는 이름을 붙인 독립기념관은 아니었고요,

지금부터 12년 전에 2007년도 8월 달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니까 안동시에서 운영하는 기념관이었죠. 내용도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2014년에 와서 경상북도 차원의 기념관으로 키우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는 것이 그 당시 김관용 지사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확장 공사을 마치고 새로 문을 열게 된 것이죠.

안동사람들도 그랬지만 경상북도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실제로 독립운동사에서 안동문화권, 또는 경북이 얼마나 대단한 위상을 갖고 있는가 대부분 모르고 있는 거거든요.

독립운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에 기념관을 짓지 그렇게 해서 지은 것인데요, ‘나라사랑, 우리 차례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념관의 설립 모토입니다.

김희곤 관장은 경북북부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좌우 대결 구도가 없었고, 사상적 유연성, 민족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독립을 위해 모두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김종렬] 네, 3.1운동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각별한 이유는 대한민국 탄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데, 이것은 또 무엇 때문입니까?

[김희곤 관장] 아~ 네, 우리 독립운동사가 처음 일어난 것이 1894년이고요, 1945년까지 51년 간 전개가 되었습니다. 51년... 쉽게 50년이라고 보고요, 세대를 보면 2세대 또는 3세대에 걸쳐서 이뤄지는 것이 잖아요.

그 50년 독립운동사에 정확하게 중간에 있는 것이 3.1운동이예요. 그런데 그 3.1운동 이전의 독립운동사는 크게 두 개의 축이 있어요.

하나는 의병을 일으켰던 사람들, 주로 유림들이죠. 이 분들은 독립을 해도 꼭 군주국가를 꿈꾸고 있는 분들이예요.

그런데 여기 한 10년 후에 나오는 계몽운동이라는 독립운동은 독립을 하돼 공화주의 국가가 되기를 바래는 거예요.

그러면 두 세력은 얼핏 지금 유행하는 용어로 보면 어느 쪽이 보수고 어느 쪽이 진보인지 금방 드러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보수가 잘 못된 것은 아니잖아요. 의병을 일으키신 분들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분들인데 틀린 것은 아니거든요.

다만 이념과 방향이 다른 거예요. 그래... 나라 잃고 난 뒤에 처음으로 두 세력이 이래서는 안되겠다. 손 잡자고 하는 것이 교과서에 나오는 대한광복회가 1915년 대구에서 만들어 지는 거거든요.

이것이 전국적으로 커지는데, 요 두 계열, 다시 말해서 의병계열과 계몽운동 계열의 보수진보가 완전히 손잡고 하나의 목소리를 낸 게 3.1운동입니다.

그러니까 3.1운동에서 우리들은 독립국이라고 전 세계에 선포를 하잖아요, 독립국을 선포했으면 국가가 있어야죠. 그 국가이름을 무어라 지을래, 그래서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 대표들이 밤새 1919년 4월 10일날 모여서 회의를 해서 11일 날 아침 10시에 딱 끝을 내면서 정한 것이 국가이름을 대한민국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 헌법 제1조에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이렇게 돼 있습니다. 지금 헌법 제1조와 똑 같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그런데 1910년에 우리나라 망할 때 국가이름 기억 나십니까?(대한제국~) 대한제국이죠. 대한이라는 국가 이름인데 황제가 주권을 갖는 나라, 대한제국입니다.

그런데 1919년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대한이라는 나라이름은 같은데, 민(民)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입니다.

우리 5천년 역사에 최초로 민주공화제 만들어 지는 것이 거든요. 그래서 주권을 완전히 뒤찾을 때까지 누가 운영하느냐 임시정부가 임시라고 하는게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이라고 하는 의회가 대한민국을 꾸려나간다.

그래서 헌법 제10조에 보면 국토를 회복하면 1년 안에 국회를 소집함. 이렇게 돼 있어요. 정부와 국회가 대한민국을 꾸려나간다.그것을 이미 1919년 4월에 헌법에 못을 막은 겁니다.

김희곤 관장은 경북사람들이 펼친 독립운동이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최고의 가치에 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종렬] 관장님, 경북을 한국독립운동의 발상지라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경북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경북인들이 어느 곳보다 구국 항일운동에 많이 참여했기 때문입니까?

[김희곤 관장] 네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 51년 역사의 발상지가 이 곳이고요. 그 다음에 독립유공자로 정부에서 포상을 한 인물이 만5천명을 돌파했는데, 여기에는 외국인도 있고, 그 다음에 출신지를 모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대구경북 전체의 독립유공자 숫자가 2천200명을 돌파했습니다.

그러면 다음 순서 2위 그룹은 경남, 전남, 경기, 평안남도 요런 4개 도는 인원이 천100명, 천명 요런 수준입니다.

아까 우리가 경북이 2천200명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1위와 2위 그룹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가.

그리고 안동이 전국에서 시·군으로 제일 많은데 지금 369명이예요. 대구가 달성을 합쳐서 지금 150명을 갓 지나가고 있는데,

그러니까 인구 16만명 살아가는 이 안동에 369명이라는 숫자는 서울이 이제 갓 400명을 돌파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를 짐작할 수 있고요, 안동문화권, 퇴계문화권 하는 이 북부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독립운동이 강했던 곳이다.

 

[김종렬] 독립운동하면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칭송하며 임청각 원형복원에 힘을 실어주셨는데요, 독립운동의 산실, 임청각과 석주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십시오?

[김희곤 관장] 네, 이 성리학적인 질서를 넘어서서 서양의 과학문명을 받아들이고 공화주의로 돌아선다라고 하는 것은 혁명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혁신유림이라고 하는데요, 석주 이상룡, 동산 류인식, 일송 김동삼 이 트로이카인데, 안동에서 이런 세 분이 혁신유림으로 확 전환하면서 계몽운동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안동의 강변에서 청년들 2천명을 모아놓고 ‘나라의 주인은 민이다. 민이 국가의 주인이다. 그래서 주인이 국가를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출 때에만 식민지로 떨어질 수 않을 수 있으니 우리가 정당 운동을 펼쳐야 된다.' 이런 강연을 하다 잡혀 들어가죠.

그래서 유치장에서 안동의 최고의 지도자가 통감부 유치장에 들어 앉아서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지난달 13일 대구 용천초등학교 교원 34명이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신흥무관학교 체험을 하고 있다.

나라는 무너진다. 그래서 나라를 살리려면 군대를 길러야 하고, 군대를 기르자면... 이미 우리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지 이미 2년이나 지났고, 그럼 방법은 군대를 기르자면 만주로 가야한다. 그래서 나라 망하자 말자 만주 망명을 계획하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죠.

그래서 최초의 경학사라고 하는 독립운동조직을 만들 때 첫 사장이 되고, 신흥강습소를 만들고 신흥무관학교를 꾸려 나가고, 그리고 그 곳에서 민정부와 군정부가 3.1운동 때 나타나게 되는데, 민정부인 한족회, 군정부인 서로군정서(서간도 무장 독립운동단체)를 이끌어 나가는데, 서로군정서의 최고 책임자가 독판인데, 그 독판이 바로 이상룡 선생이예요.

이 경북북부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좌우 대결 구도가 없어요. 그래서 그 휘하에 활동하고 있었던 (임하면)천전마을의 김동삼 선생 같은 경우는 아예 본인은 한번도 사회주의자가 아니면서도 프롤레타리아동맹의 간부로 들어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사상적인 유연성, 이 분은 민족을 최고의 가치로 뒀기 때문에 독립을 위해서는 그런 것까지 다 끌어안는 모습을 보입니다.

 

[김종렬] 과거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퇴계 학맥을 이은 남인 등 영남의 사림들이 중앙정치권에서 멀어져 정치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 있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구한말 의병활동 등을 보면 언제나 경북을 포함해 영남인들이 앞장을 선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 해야 됩니까?

[김희곤 관장] 네, 사실은 무엇이 옳은 것인가가 항상 최고의 가치거든요. 이육사란 인물이 대부분의 문인들이 다 변절할 때, 그죠,

1940년대를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의 한국 문인들이 변절할 때 이육사처럼 곧은 길로 딱 갈 수 있는 그 정신이 바로 이 퇴계 학맥을 계승하고 있는 그 정신...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는 그 정신과 근대문학, 시문학의 만남이라고 보면 되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정신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경북사람들이 펼친 독립운동이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희곤 관장은 3.1운동으로 나타난 민족정신은 바로 우리 역사는 우리가 주체자 되자는 요구였다며 우리가 주도하는 역사를 열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렬] 관장님께서 모 언론 기고문에서 ‘세계사 차원에서 3.1운동은 제국주의 침략 물결을 되돌리려는 투쟁의 선두였다’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도 4대 열강에 둘러싸인 각축장으로 100년 전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금의 국제정세를 보시면서 전하실 메시지 있으실 것 같은데요?

[김희곤 관장] 네네~~ 1차 세계대전이 끝이나면 식민지 출신들이 우리를 독립시켜 다오. (프랑스)파리에 강화회의가 열릴 때 그 강화회의장 근처로 전 세계의 식민지 대표들이 마구 몰려들어요. 우리는 김교식이란 인물이 갑니다만, 그 당시 미국이 처음으로 전세계에 주도권 선두권 앞으로 나오는 시대거든요.

그러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결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스스로 결정한다’는 건데, 그래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들이 독립국임을 선언하고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그러니까 우리를 독립시켜다오 요구를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전 민족이 일어나서 열강들의 회의에 그 목소리를 내는 그 물결은 전 세계에서 제일 선두를 치고 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진게 지금도 열강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를 요리하거나 우리를 들여다 보고 압력을 가하고 그러잖아요.

항상 우리들이 중심이 되어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국주의 열강이 주도하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하는 역사를 열어갈 필요가 있겠는데,

이 3.1운동으로 나타난 민족의 정신은 바로 우리 역사는 우리가 주체가 되자는 요구였고, 그것이 전 세계의 식민지들에게 준 메시지는 컸고, 그러한 정신은 지금도 다시 살아나야 하지 않느냐 이런 생각해 봅니다.(현재에도 민족자결이란 부분들 한번쯤 더 강조되어야 된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까?) 네,

 

[김종렬] 내일이 3.1만세운동을 기념하는 3.1절입니다. 전국에서 기념행사가 다양하게 열린텐데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도 기념 문화행사를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행사가 열립니까?

[김희곤 관장] 네, 저희들의 자체 행사로 문화행사가 독립선언서 낭독을 한다거나, 후손들이 와서 또 시낭송을 한다거나, 그 다음에 이육사를 주제로 삼은 갈라쇼가 있다거나, 또는 사격체험, 만들기 체험 이런것도 있고요.

여기 안동 무궁화선양회 단체가 와서 학명이 ‘안동’이라고 붙은 무궁화가 있어요. 그 군락지에 심기하는 행사가 있고, 다양하게 전개될 겁니다.

김희곤 관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 번 이벤트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까지는 아니라도 나라를 위해서 조금만 일이라도 무엇을 이어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그런 계기가 되자고 강조했다.

[김종렬] 관장님,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이 것 만큼은 꼭 둘러보고 확인하시고 가시라고 권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죠?

[김희곤 관장] 네, 크게 저희들은 전시관이 있고, 그 다음에 여기는 연수원, 120명이 숙박하면서 1박2일, 2박3일 이렇게 연수하는 연수원을 갖고 있고, 그 다음에 산속에는 신흥무관학교라고 하는 만주에서 만들어진 신흥무관학교 이름을 그대로 한 독립전쟁 체험 서바이벌 전투장이 있어요.

가족단위로 와서 연수도 할 수 있겠고요. 그런데 돌면서 여기 추모벽(경북 사람들 광야에 서다)이라고 해서 메모리얼월(memorial wall)해서 추모벽이 인는데요,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신 분을 시·군 단위로 새겨뒀습니다.

한 번은 어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했던 유명한 교수님이, 신학자이고 목사님이기도 하죠. 할아버지 성함이 독립유공자로 새겨져 있어요.

그 앞에 오셔서 신발 벗고 딱 두 번 절하고서 우시는 것을 보고 제가 깜짝 놀랬어요. 아니 목사님이 어떻게 저렇게 절을 하는가.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제 때문에 마음 고생 너무 많이 하셨다고요, 그런데 나라 위해서 살다가신 것을 생각하면 정말 제 마음 속으로 존경과 그리고 죄스러움을 늘 느낌니다.’

그 제가 장면보고 정말 놀랐는데요, 시·군별로 다 성함들이 새겨져 있으니 와서 한 번 참배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김종렬] 관장님, 벌써 주어진 시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대구·경북 시·도민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듣고 인터뷰 마무리 하겠습니다?

[김희곤 관장] 네, 3.1운동이나 이런 100주년 맞을 때 대부분 우리는 한 번 이벤트로 지나가는 가능성도 큽니다. 그런게 아니라 이럴 때 돌아보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독립운동까지는 아니라도 나라를 위해서 내가 조그만 일이라도 무엇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저는 그래서 기념관의 모토가 ‘자랑하기 보다는 나라사랑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네,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종렬] 네, 자유와 독립을 외친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선양하는데 관장님께서 더욱 애써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관장님 바쁘신데 오늘 인터뷰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희곤 관장] 네, 고맙습니다.

[김종렬] 지금까지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김희곤 관장을 만나봤습니다.

 

● 코너명 : BBS 대구불교방송 ‘라디오 아침세상’ 08:30∼09:00 (2019년 2월 28일)

(대구 FM 94.5Mhz, 안동 FM 97.7Mhz, 포항 105.5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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