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정사 주지 도륜스님이 템플스테이 호흡명상체험단에게 사찰의 유래와 국보인 대웅전과 극락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룻밤 눈 씻고 귀 씻고 마음도 씻어봤다.”

종치는 소리, 목탁 두드리는 소리, 겨울 밤 바람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꽉차는 시간이 됐다.

사찰이 도(道)를 얻고자 수행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도량(道場)이라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21일 오후 공양시간에 맞춰 봉정사를 찾았다. 경북도청·도의회 기자 15명과 함께 1박2일의 템플스테이를 위해서다.

땅거미 내려앉은 산사는 자연의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가진 호흡·명상체험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봉정사 주지 도륜스님은 “인생을 여유있게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는 호흡명상을 아침, 저녁으로 반복하라”고 이르셨다.

토착 신앙과 풍수, 명산 천등산을 품고 자리잡는 천년고찰 봉정사가 스님과 선비 간의 문사적 교류의 현장이었음은 한 때 덕휘루(德輝樓)로 불린 만세루(萬歲樓), 정자 명옥대(鳴玉臺)는 알려줬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시대 선비들이 스님과 정신적 교류를 이어갔다는 사실은 또 다른 깨달음이고 놀라움이다.

경북도청·경북도의회 기자단이 봉정사 템플스테이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상이 잠에 빠진 이른 새벽 산사의 적막은 목탁소리가 깨웠다. 은은히 경내의 구석구석으로 오가며 올리는 목탁소리는 새벽예불의 시작을 알렸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화두(話頭) 하나라도 던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 108배는 범부(凡夫)를 벗어나려는 몸짓이었다.

언론인으로 비수와 같은 질책만 쏟아냈던 시간들을 되돌아 보게 했다. 호기롭게 목소리를 높였지만 언행일치(言行一致)는 절반이나 지켰을까라고...

불상생(不殺生)·불투도(不偸盜)·불사음(不邪淫)·불망어(不妄語)·불음주(不飮酒) 오계를 서원했다. 올바른 삶의 길이다.

성리학적 이념 속에 살았던 조선의 선비, 특히 안동의 선비들이 '옳고 그름'을 수백년 근본으로 삼았던 그 사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 유불(濡佛) 상생의 맥을 확인할 수 있다.

수계의식 장면.

천등산 자락에 자리한 봉정사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봉황이 머문 자리에 터 잡은 봉정사의 새벽 공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땀 흘린 수고는 명산의 기(氣)로 보상을 받는 듯 했다.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갔고,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가장 한국적인 건축물'을 보고 싶다고 찾았고, 지난해 여름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도 들린 곳이 봉정사다.

세인의 관심이 이 곳 봉황이 머문 곳으로 오는 이유가 된다는 게 봉정사 주지 도륜스님의 설명이다.

수행합일(修行合一)을 실천하는 작은 절집 봉정사는 지난해 6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영주 부석사와 해남 대흥사, 양산 통도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와 함께다.

세계유산위원회가 불교가 종교 이상의 의미를 가진 문화 그 자체임을 인정함 셈이다.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봉정사 회주 호성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다. 호성스님은 “잘난 사람은 겸손하고 부족한 사람은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기자들에게 세상을 밝히는 언론인이 되어 주길 당부했다. BBS불교방송 김종렬기자

계단을 따라 오르고 높게 솟은 만세루로 시작되는 경내는 대웅전과 극락전, 몇 채의 요사채, 3층 석탑이 어우러져 있다.

고려시대 건립된 맞배지붕의 극락전은 국보 제15호로 우리나라 현존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오래됐다.

국보로 승격된 대웅전, 보물인 화엄강당, 고금당 등을 보면 한국건축 박물관 그 자체다.

부속암자는 서쪽에 지조암 동쪽에 영산암이 있다. 영산암(靈山庵)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6호다.

우화루(雨花樓)를 통해 들어선 영산암은 자연 친화적이며 유가적 생활공간과 닮은 특이한 불교암자로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탁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경북도청 이전과 함께 대구에서 안동으로 근무지를 옮겨온지도 4년차에 들어섰다.

동료 기자들과 함께 치열한 몸짓을 해도 반복된 일상이었다. 도청에서 근무하는 모든 공직자들이 매일 느끼는 모습과도 별반 다름이 없다.

이런 저런 생각은 1박 2일 내내 귓전을 맴돌았다. 보이지 않는 무엇, 앞으로 삶을 지배할 무엇을 찾기 위한 여정의 계속이었다.

봉정사 회주 호성스님과 주지 도륜스님, 기자들이 봉정사 템플스테이관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봉정사 템플스테이' 현수막을 펼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세계유산 봉정사가 내외국인이 찾는 관광명소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도 함께 생각해 봤다.

그 해답은 20년 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 목적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인에 보여줄 ‘가장 한국적인 것’을 잘 가꿔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북관광만이 아닌 한국관광 활성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단지, 관광객 몇 명이란 성과에만 매몰돼 전통의 가치를 도외시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해본다.

안동시는 오는 4월 17일부터 5일간 하회마을, 봉정사 등에서 영국 여왕 방문 20주년 기념행사를 마련한다고 한다. 내외국인들의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 있는 일시적이 아닌, 지속가능한 전통문화 프로그램의 운영을 기대해 본다.

1박 2일 호흡명상 체험은 느림의 미학, 화이부동(和而不同), 문화정체성을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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