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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와우정사 주지 해곡 스님 "누워계신 부처님을 모신 지 50년, 용성 스님의 유지도 받듭니다"
양창욱 | 승인 2019.02.21 17:13

*용인 와우정사 주지 해곡 스님

*앵커 : 양창욱 정치부장

*프로그램 : BBS 뉴스파노라마 [오늘 저녁, 우리 스님]

양 : 매일 저녁 한 분의 스님을 만나봅니다. 오늘 저녁, 우리 스님. 오늘은 용인 와우정사 주지 해곡 스님 만나 뵙겠습니다. 스님, 나와 계시죠?

해 : 네, 안녕하세요.

양 : 네 스님, 와우정사라는 사찰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어떤 사찰인지, 어떤 도량인지 먼저 소개해주시지요.

해 : 네. 와우정사는요, 부처님 열반상이 계신다고 해서, 누워계신 부처님이기 때문에 와우정사라고 합니다. 열반사상을 펴는 절이라서, 와우는 소가 누워있다는 뜻인데, 한문으로 보면 누울 와 자, 소 우 자니까, 부처님이 누워계신다는 뜻입니다.

양 : 네.

해 : 그래서 누워계신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누워계신 부처님의 사상이 열반사상 아닙니까?그래서 저희는 열반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수행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누워계신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양 : 네, 누워계신 부처님을 모시고 계신다... 그런데 우리 스님께서 여기 주지로 주석하신 지는 얼마나 되신 겁니까 와우정사에?

해 : 이 절을 1970년부터 창건했습니다.

양 : 스님께서 직접요?

해 : 네, 그래서 올해로 49년이 됐습니다.

양 : 그럼 반세기동안 계신 거에요? 약 50년 동안?

해 : 네.

양 : 네 그러셨군요. 스님, 제가 이것 안 여쭤봤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반세기, 50년 가까이 와우정사를 지키고 계시는, 주석하고 계신 주지 해곡 스님과 지금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스님, 방금 말씀하신 누운 부처님 모습, 와불은 사실 동남아에서 많이 있잖아요? 거기서 익숙한 불상이고 탑 등과 어우러져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 와우정사는 우리나라 보다 동남아에서 더 유명한 것 같아요.

해 : 저희 사찰이 누워계신 부처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성해서 모셔놨죠. 그리고 동남아에서는 열반사상을 가지고 많이 수행정진하기 때문에, 교종이 많거든요 선종보다. 그래서 누워계신 부처님이 많이 모셔져 있습니다.

양 : 네, 동남아에서는. 그래서 우리 와우정사는 특히 해외관광객 분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고요?

해 : 네, 그것은 누워계신 부처님이 모셔져있는 덕도 있습니다만, 세계 각국의 성보가 우리 사찰에 많이 모셔져 있습니다.

양 : 와우정사에? 아, 성보문화재들이 많이 모셔져 있군요?

해 : 네, 그래서 많이 알려져 있고, 특히 부처님 사리탑이라든지, 중요한 성보들이 많이 와우정사에 봉안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소문이 나가지고, 세계 각국에서 많이 오고 계십니다.

양 : 그렇군요. 스님께서 최근에 또...

해 : 그리고 이제 한 50년 동안을 동남아 각국하고 불교 교류를 오랫동안 했거든요. 다른 절에서도 교류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하다가 그만두고 그러는 경우가 많은 데, 저희는 꾸준히 교류를 많이 했고, 특히 과거에는 동남아 불교국가들이 우리와 인연이 많았습니다. 태국이라든지 이런 나라들은 6.25에 참전해서 우리나라를 도와준 그런 나라거든요. 우리 우방국이고. 그래서 6.25때 6,300명이나 한국에 파견을 했었요. 129명이 전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그래서 그 분들을 위해 기도도 하고 있고, 그쪽과 교류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년에 태국에서 몇 십만 명씩 이렇게 오고 계시고, 베트남도 그렇고 미얀마, 스리랑카 각 나라에서, 또 유럽에서도 많이 오십니다, 요즘에는 용인하고 평택하고 가깝거든요. 그래서 미8군이 평택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들도 많이 오시고, 유럽에서 많이 오시네요.

양 : 네, 그런 인연으로 동남아와 유럽에서 많이 오신다는 말씀을 해주시고 계시고요.

해 : 네.

양 : 네 그런데 스님, 최근 독립운동가 용성 스님의 옥중 저술, 한글 팔상록 출판본을 공개하셨어요. 옥상에서 저술하셨다는... 이 귀한 것을 어떤 경위로 입수하고 공개하게 되신 거죠?

해 네, 우리 은사 스님이 고암 스님이라고, 해인사 용탑선원에 계시던 스님이시거든요. 그리고 대각사에서도 계시고 그랬는데, 대각사는 이동헌 스님이라고 계셨어요, 구룡 화엄사 조실도 하신 분인데 용성 스님의 상좌 스님 되십니다. 두 분이 다. 그래서 용성 스님이 일제시대 독립운동 할 적에, 독립운동 하시다가 구금되셨을 적에,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돼 계실 적에 종이하고 철필을 동헌 스님이 가져다 주셔가지고, 용성스님이 한글로 된 팔상록을 쓰셨어요.

양 : 네, 팔상록을 그렇게 쓰셨군요.

해 일제치하 때는 한글을 못 쓰시는데도 감옥에서 모르게 쓰셔가지고, 이후 출소해서 3년 형기를 마치고, 그걸 인쇄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 서간본을 가지고 계셨는데, 제가 일찍부터 불교 포교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양 : 네, 스님. 지금 생방송 뉴스 시간이라 조금 더 짧게 줄여주십시오.

해 : 네, 그래서 고암 스님이 저희 은사 스님이고 하다보니깐 말씀을 주시면서 포교하는 데 잘 이용하도록 하라고 하시면서 저한테 주셨고, 이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자료도 많이 주셨어요.

양 : 네, 그래서 그렇게 문헌을 이제 입수하셔서 공개하게 되신 거군요?

해 : 네.

양 : 알겠습니다. 스님,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사실 우리 스님이 KBS 엔지니어로 일하시다 출가하신 분인데, 이 얘기는 나중에 제가 한 번 더 모시고 듣겠습니다.

해 : 감사합니다.

양 :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용인 와우정사 주지 해곡 스님과 말씀을 나눠봤습니다.

양창욱  wook14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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