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 오늘의 이슈

● 출 연 : 이완국 행복한 쉼터 대표/ 전 초등학교 선생님

● 진 행 : 이선화 앵커

● 2019년 2월 19일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 코너명 : 오늘의 이슈

[이선화] 지금 스튜디오에 오늘의 게스트 나와 계신데요, 이분을 어떻게 소개를 해드려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타이틀이 많으시거든요. 이분을 일컬어 참교육자, 참불자, 웃음치료사다, 여러 타이틀이 따라 다니는 분이십니다. 폐교 직전의 더럭 분교를 전국의 명물 초등학교로 만든 주인공입니다. 또 웃음으로 온 세상에 행복을 전달하고 계시는 행복포교사죠. 행복한 쉼터 이완국 전 초등학교 선생님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완국] 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선화] 얼굴을 뵙는 것만으로도 제 얼굴에 웃음이 번지네요. 왜 행복포교사로 불리는지 알 것 같습니다. 본인 소개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완국] 초등학교 교사를 오래 했고요, 지금은 사람들이 행복한 관계를 맺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그런 강의라든가 이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선화] 대표님 여러 가지 자랑할 얘기들도 많지만, 더럭 분교를 폐교 위기까지 갔다가 살려낸 선생님이다, 그리고 제주도만이 아니라 전국에까지, 광고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더럭 분교와의 인연 먼저 얘기 보따리를 풀어갈까요?

[이완국] 2005년도에 작은 학교를 너무 가고 싶어서, 늘 출퇴근을 그 학교 울타리로 왔다 갔다 했는데, 제가 원하는 곳에 가게 됐습니다. 가보니까 학교가 인원이 점점 줄어들어서 통폐합, 폐교될 위기까지 가고 있더라고요. 제가 시골 출신이어서 제가 다니던 학교가 없어졌어요. 제 마을에 가면 학교 운동장을 보면 좀 짠해요. 내가 다니던 학교가 없어져서. 건물이 없어진 건 아닌데 아이들이 없고, 배움의 터라는 간판만 있어서, 학교가 없어질 거라는 생각에 우리 학교는 본교까지 아니어도 이 마을에서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이선화] 그 당시에는 더럭 분교면 어느 학교의 분교였던 거에요?

[이완국] 애월초등학교 더럭 분교장까지가 공식 명칭이었습니다.

[이선화] 몇 명의 학생들이 있었습니까?

[이완국] 스물세 명이요. 나누기 6하면 한 학년에 네 명이 안 되죠.

[이선화] 그러면 선생님은 몇 분 계셨나요?

[이완국] 선생님을 6명 다 보내주면 좋은데, 선생님 셋이 가서 두 학년 묶어서 수업을 하는 거죠.

[이선화] 그런데 그 스물세 명도 수가 줄어들었어요?

[이완국] 열여섯 명까지 갔었습니다.

[이선화] 보통 스무 명 정도면 학교가 사라지는 기준점이 되지 않나요?

[이완국] 각 시도마다 다르긴 한데 보통 스무 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선화] 어떻게 수가 늘었던 거죠?

[이완국] 어느 날 운동회 때 부모님, 할머니 다 왔는데 체조를 할 때 숫자를 세보니까 근 60명 가까이 되더라고요. 아이와 엄마아빠, 할머니를 다 합치니까. 그때 제가 했던 말이 생각나요. 아이들 숫자만 이 정도만 됐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게 이뤄지는데 6년이 걸리더라고요.

[이선화] 어떻게 늘어난 거에요?

[이완국] 더럭 분교 하면 자꾸 저를 거론하시는데, 제가 뭐 혼자 이렇게 된 건 아니고 마을 이장님들 도움이 컸고요, 아이들이 학교를 알리는 데에 가장 큰 몫을 했다고 봐요. 제가 했던 게, 우리 아침에 일어나면 일의 순서를 정하잖아요? 뭐 먼저 해야지. 아이들이 일어나면 제가 바라는 건 그거였어요, 학교 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끔 어떻게든 해보고 싶더라고요.

[이선화] 그게 가능합니까? 아이들이 눈을 뜨면 학교 가기 싫어할 텐데. 아침에 학교에 가야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하는 게 선생님 꿈이셨다고요?

[이완국] 어느 날 어떤 어머님이 학교에 오셔서, 눈만 뜨면 학교 도째 놉니다, 이러더라고요.

[이선화] 눈만 뜨면 학교로 뛰어 달려가려고 한다고요?

[이완국] 제가 학교를 좀 일찍 갔어요. 아이들보다 먼저 가서 오는 애들을 맞아줬죠.

[이선화] 그러면 그 비밀이 뭔지 알려주세요.

[이완국] 전교생이 할 수 있는, 사물놀이 이런 거는 다른 큰 학교랑 뭐가 안 되고요, 잘하는 애 못 하는 애 다 할 수 있는 게, 북 하나로 난타랑 비슷한 승무북 가락이었어요. 그거랑 월요일 아침 첫 교시를 차와 함께 하는 마음공부라고, 전교생이 둘러앉아서 차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이선화] 불심 깊은 선생님께서 아이들 마음에 불교 마음 접근을 하신 거네요. 드러나진 않지만.

[이완국] 드러나게 한 건 아니고요, 사실은 다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선화] 어쩌면 이 세상에 그 어느 학교에서도 할 수 없는 마음이라고 하는 교과목을 선생님이 이끌어내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완국] 수가 적다고 다 불편한 건 아니더라고요. 적어서 할 수 있는 것도 있더라고요.

[이선화] 열일곱 명이 북을 하나씩 가지고 다 치는 거예요?

[이완국] 네, 전교생이. 내가 못해도 옆에 사람이 해줘요.

[이선화] 연주도 하는 거죠?

[이완국] 제주도 대표로 육지에 공연고 가고요.

[이선화] 북 한 개 값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예산은요?

[이완국] 북 한 개가 50만원 정도 하더라고요. 그 예산이 잡혀 있는 게 아니어서 제가 거래하던 데에 외상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선화] 선생님 큰일나실 분이네요. 외상으로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신 거에요? 교육청이라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해보시지 그랬어요.

[이완국] 우리 말고도 다 그렇게 손 내미는 곳이 많아서요. 그래서 그냥 벌어서 갚았어요. 공연을 한번 가면 얼마씩 줘요. 북 하나 값은 줘요. 그래서 다 갚는 데에 1년이 반도 안 걸렸어요.

[이선화] 그렇게 해서 더럭 분교가 스물세 명이었던 학생들이 몇 명으로 늘어난 거죠?

[이완국] 6년 만에 60명 정도 되고, 지금 근 110명 가까이 돼서요.

[이선화] 1996년에 분교장으로 격하되었다가 우리 선생님의 노력으로 학생들이 늘면서 20년 만에 분교 꼬리표를 떼게 됐다고 기사를 본 게 있습니다.

[이완국] 네, 초등학교로.

[이선화] 또 TV광고로도 나온 적이 있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은 2013년에 대한민국 스승상도 수상하시고 그랬죠. 2015년에는 교직을 떠나셨어요.

[이완국] 네, 다른 일을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젊을 때 시작을 해야겠다고 해서요.

[이선화] 선생님의 다음이 또 궁금한데요, 부처님과의 인연이 참 깊으실 것 같아요.

[이완국] 제가 북을 하다 보니 절에 어느 스님께 제 얘기가 전해졌나 봐요. 그 절이, 우리 절이라는 절인데 어린이 법회를 하고 있던 절이었어요. 그런데 그 절에서 법회 2주째에 특별활동, 초등학교 특활처럼 하는데 그 부서가 나눠져 있는데 사물놀이 반 선생님을 저보고 해달라고, 그래서 한 달에 한번 가서 어린이 법회를 했는데 너무 신기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스님께 스님 공부 1년을 배우게 됐는데 절이라는 데를 오래 다녔지만 그 1년 다닌 게 저를 바꿔주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선화] 더럭 분교의 선생님에서, 우리 절에서 어린 불자들의 지도교사가 되신 거네요.

[이완국] 예, 그래서 일요일마다 절에 가서 아이들 만납니다.

[이선화] 절이라는 곳이 워낙 근엄하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스님들도 조용조용 걸으시고 어른들도 조용히 걸으시는데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 뛰어 다니는 생동감이 있다면 절이라고 하는 공간이 더 열린 공간으로 느껴질 것 같거든요.

[이완국] 그 우리 절의 일요일 어린이 법회에 오는 아이들을 보면 학교에서와는 좀 다르게, 학교는 가야 하기 때문에 가지만 절 법회에 오는 아이들은 아침에 오고 싶어서 오는 애들이 많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절 마당에서 뛰고, 아이들 법회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은 천진불, 정말 웃음이 천진난만한 부처님이 모셔져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닮아가는 것 같아요.

[이선화] 이완국 선생님의 성공비결은 가르치는 제자들로 하여금 잠잘 때부터 눈을 뜨자마자 선생님이 가르치는 열정의 공간에 가야겠다고 하는 끌림이 있는 교육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완국] 제가 하고싶은 게 그런 거였어요. 저를 보는 사람이 좀 더 편안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침에 절을 가든 어디를 갈 때 나설 때 나를 보는 사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정말 예뻐요 아이들이.

[이선화] 아이들도 즐겁겠지만 선생님 자신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배움이라고 할까요, 느낀 부분이 있으실 것 같아요.

[이완국] 아이들이라는 게 가르치려고 해서 뭔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하다 보면 아이들 스스로 배워가는 게 되더라고요. 가르쳐서 느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배움의 뭔가를 찾을 수 있도록. 제 제자 중에 마흔 넘은 제자들이 있는데 선생님 차 한 잔 하러 가도 될까요 하는 전화를 받을 때, 내가 차를 잘 주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선화] 차 한 잔 하러 갈까요 할 때 그 장소는 어디죠?

[이완국] 더럭 초등학교 옆에 보면 제 작은 공간 하나가 있습니다.

[이선화] 우리 선생님 비밀의 공간이 있군요.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공간이. 어린이 법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이완국] 30년이 넘게 어린이 법회를 쭉 이어왔습니다. 한 번도 안 끊기고요. 스님께서 원 세우기를 어린이 포교 법당에 원을 세우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15년째 되고 있는데 정말 다채롭게 진행이 돼요. 주마다 같은 내용을 하는 게 아니라 첫 주는 기도법회를 하고 두 번째 주는 특별활동 법회를 하고요 세 번째 주는 생일 맞은 아이들을 불러서 축원해주고, 네 번째 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우고 확인받고 도장 받으면서 불자 테스트를 하고요. 5주가 있는 주가 정말 특별한 주죠, 아주 특별한 법회라고 해서 그날은 그야말로 신나게 노는 법회를 해요. 좀 안타까운 게 100명 선까지 갔던 아이들이 줄어드는 추세가 있어서 아이들이 좀 많이 왔으면...그런데 제가 오라고 해서 오는 게 아니고 제가 마음을 내야 하죠.

[이선화] 그 아이들이 또 홍보대사가 되어야 하죠.

[이완국] 지금 법회 선생님하시는 분들이요 10여 년 전에 네다섯 살에 법회에 왔던 아이들이 지금 선생님을 하고 있어요.

[이선화] 아닌 게 아니라 선생님이 밝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감동을 안 받을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은 은퇴를 좀 일찍 하신 거잖아요 교직에서. 요즘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과감히 접으시고 행복한 쉼터 대표로 인생 2막을 여셨어요. 행복한 쉼터 소개를 잠깐 해주세요.

[이완국] 저를 보는 사람들이 서로가 분노가 안 일어나도록 하는, 마음공부 쪽을 하다 보니 이런 게 상당히 중요하더라고요. 오시는 분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하고 조금 가까이 갈 수 있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이선화] 행복한 쉼터, 아이들에게 행복한 마음공부를 가르쳐주시는 이완국 선생님 저도 말씀 나누면서 선생님의 밝은 에너지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유쾌한 시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행복한 쉼터의 이완국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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