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 오늘의 이슈

● 출 연 : 박나정 사랑나눔적십자봉사회장

● 진 행 : 이선화 앵커

● 2019년 02월 12일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 코너명 : 오늘의 이슈

[이선화] 2019년, 한반도에 평화의 봄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오는 27일과 28일 이틀 동안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게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 진전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남을 기대한다”면서 더 나아가 “북한은 김정은의 지도력 아래 대단한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1차 회담과는 다른 기대감을 내비쳤는데요,

누구보다 이 소식을 반가워하는 이들이 있죠, 바로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온 새터민들인데요, 오늘 스튜디오에는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박나정 사랑나눔적십자봉사회장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박나정] 안녕하세요.

[이선화] 오는 27일과 28일 양일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새터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박나정] 저도 그렇고 새터민들도 그렇고 대한민국에 사는 새터민들은 한결같이 다 똑 같으리라 봅니다. 통일의 문과 길이 빨리 열려서 고향으로 가는 길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항상 기다려지고요. 이번 회담이 통일의 물꼬는 트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선화]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박나정] 15년 전에 북한을 탈출했는데요. 처음 계기는 북한을 탈출보다는 먼저 중국으로 건너온 동생을 찾으러 갔어요. 동생이 중국으로 가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편지를 달랑 남긴 겁니다. 행방을 수소문하던 중에 동생을 중국으로 떠나게 했던 브로커를 만나게 됐어요.

브로커가 “동생이 중국에 있는데 언니가 같이 가야 한다”는 말에 속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회령에서 큰 행사가 있어서 제가 그날 나가서 참석해야 했어요.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도 중국으로 떠났거든요. 제가 중국으로 건널 때는 다행히도 1월 달이라서 두만강이 얼어 있었어요. 위험하지는 않았거든요. 무턱대도 여름에 두만강을 건너다가 물살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어요. 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위험하지 않고 넘어왔어요. 브로커와 경비대에 돈을 주고 그러면 위험하지 않고 넘어올 수도 있습니다.

새터민 70~80%가 중국으로 가서 3국인 태국, 몽골, 베트남 등을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입국을 하는데요. 브로커 비용이 보통 300만원정도 하는데 요즘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접경선 비용이 500만원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현재 오는 분들은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는 분들은 10명 중 2명 정도입니다. 3국을 경유하는 분들은 3~5년 정도 걸려서 오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 단둥항에서 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왔는데 제가 올 때가 13년 전이니까. 중국에서 몇 년을 살다가, 북한에 잡혀 가기도 했고요. 저는 동생을 먼저 한국에 보냈어요. 동생이 대한민국이 너무 살기 좋으니까. 중국에서 붙잡히지 말고 빨리 오라고 했어요. 브로커 비용 900만원을 주고 배를 타고 왔습니다.

[이선화] 탈북하고 한국에 와서 문화적, 정서적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으시던데, 회장님께서는 어떠셨어요?

[박나정] 우선은 언어의 차이입니다. 말투부터 다르니까요. 택시를 타고 어디까지 가 주세요 하면 기사님이 조선족이냐고 물어요. 그럴 때 가슴이 제일 아파요. 이전에는 북한사람이에요. 라고 하면 남한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보거든요. 조선족은 많으니까 인식은 별로없는데 북한사람이라고 하면 다시 봐요. 그럼 우리가 동물원에서 왔나, 외계인가 그래서 조선족이라고 말하는 게 편해요.

저는 예술단 공연을 하다보니 북한 말을 자주 쓰다보니 아직도 어투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빨리 언어 습관을 고치려면 남한 사람들과 회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 언어 교류를 하는 게 빨리 배우는 거라 봅니다.

[이선화] 한국에 오셔서 가장 놀랐던 건 뭐예요?

[박나정] 경제가 발전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 남한의 드라마를 봤을 때 건물, 옷도 잘 입고 등을 보며 큰 충격은 없었지만 큰 충격은 남한의 언어의 자유였어요.

북한에서는 김일성 뒤에 수령님을 호칭을 붙여야 하지만 여기서는 대통령도 자기 하고 싶은말을 하고, 비난도 하고, 인터넷에도 올리고 잡아가지는 않으니까요. 북한에서는 이름 한마디만 잘못 불러도 잡혀가니까요.

[이선화] 제주에 정착하신지도 11년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제주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박나정] 보통 제주도라고 하면 새터민들은 제주도는 유배지구나. 옛날에도 죄를 지으면 섬에 유배를 보냈던 것을 알고 있거든요.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교육을 받는데 그때 주거지를 해야 하거든요. 제주도에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동생이랑 먼저 살았는데 제주에 공연을 왔는데 생각보다 너무 예쁜거예요.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고...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예요. 공연을 자주 왔다 갔다 하다가 제가 먼저 내려오고 동생들도 다 내려오게 됐어요. 4년 후에는 우리 아빠까지 모셔왔어요.

아빠가 북한에 계실 때 무조건 제주도로 오시라고...하나원에 오면 제주도에 집을 배정받으라고 했는데 지금 신제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선화]지금은 제주에서 평양한라민족예술단 단장을 맡아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예술단 활동을 했던 건가요?

[박나정] 북한에 있을 때 기동예술선동대 소속 1급기업소라고 하는데. 기업소는 큰 회사와 같아요. 뭔 일이 있을 때 선전하는 모임이 있어요. 방송원을 하다가 왔어요. 그때는 말도 엄청 빠르게 하고 격정적으로 했지요.

[이선화]평양한라민족예술단은 어떤 단체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나정] 북에서 가수, 무용 등을 활동하다가 내려온 연예인들로 꾸려진 팀입니다. 북한 문화의 예술을 이해하고 남북한의 이질감을 해소하는 등 평화통일의 선구자가 되고자 문화예술과 봉사활동을 통해 10명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선화]현재 한국에는 새터민이 몇 명 정도 있죠?

[박나정] 한국에는 3만여명이 있고, 제주도는 300여명이 있어요.

[이선화] 예술단 활동 외에 사랑나눔적십자봉사회 회장도 맡고 계신데 어떤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자랑을 좀 해 주시죠.

[박나정] 3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 와서도 받아만 왔잖아요. 우리도 그 누군가에 사랑의 손길을 전하고자 만든 봉사단체입니다. 그래서 지역사회에 어려운 이웃을 돕고, 제주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새터민들이 어려운 난관, 새터민들이 브로커 비용을 전달하기도 하고 바자회를 해서 새터민들의 장학금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 정기적으로 성심요양원과 삼화노인주간센터 등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텃밭관리와 북한노래, 남한 노래 등을 불러드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표노래는 ‘반갑습니다’ ‘휘파람’ ‘축배를 들자’ 등이 있습니다.

[이선화]북한 이탈주민으로 바라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의 만남을 지켜보면서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오는 27일과 28일 베트남에서 열리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혹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박나정] 말로만 듣던 현실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 같습니다.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민족의 숙원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판문점에서 악수를 건네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보면서 한반도의 봄이 오는구나. 하루빨리 통일이되서 금강산과 백두산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통일이 되면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며 회포를 풀고 싶다는 말씀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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