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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역사에 깃든 만해 스님의 3.1 만세운동
류기완 기자 | 승인 2019.02.09 01:00

 

BBS NEWS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절을 앞두고 일제 강점기 불교계 독립운동의 얼과 자취가 서려있는 현장을 집중 탐방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동국대 전신 중앙학림 학생들과 주도했던 불교계 3.1 만세운동을 돌아봅니다.

류기완 기자입니다.

 

만해 스님, 용성 스님.

1919년 3.1 만세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불교계 대표입니다.

3.1운동이 전국 단위의 만세운동으로 확산되는데 불교계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중심에 종립 동국대학교의 전신 중앙학림이 있었습니다.

1915년 건립된 중앙학림은 당시 학인 스님들을 위한 불교계 고등교육기관이었습니다.

[인서트 1 고재석 / 동국대 만해연구소장] : "(만해 스님은) 이미 사회적으로 활동도 하고 있었고, 불교잡지도 발행하고, 학생들에게 존경도 받고 있었던 만큼 본인이 대표성을 가져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이기까지 수많은 고초와 역경을 겪었지만 이렇게 모여서 만세 삼창을 하게 돼서 정말 영광이고, 앞으로 어떠한 시련이 있더라도 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나갑시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3.1 만세 운동 전날인 1919년 2월 28일,

중앙학림 강사였던 만해 스님은 평소 가깝게 교류하며 지내던 학인 스님들을 자신의 자택으로 부릅니다.

그 자리에는 신상완 스님과 김상헌 스님, 동국대 총장을 지낸 백성욱 박사와 김법린 선생 등이 참여했습니다.

만해 스님은 이들에게 처음으로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며, 3천 장의 독립선언서를 골목마다 배포하고, 독립선언식에 참석할 것을 독려합니다.

또, 탑골공원 시위 후 각자 연고가 있는 지역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전국 규모로 확산시킬 것을 당부합니다.

[인서트 2 김광식 / 동국대 특임교수] : "학인 스님들은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후손, 자랑스러운 법손이기 때문에 민족적인 운동에 적극 동참을 하고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끝나면 각자 연고 있는 사찰로 돌아가서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파급을 시켜야 된다 이렇게 적극 당부를 했습니다."

중앙학림 학인 스님들은 만해 스님의 말에 따라 선언서 대부분을 서울 시내에 배포했고, 서울 인근 사찰 신도들의 동참을 이끌어냈습니다.

당시 중앙학림 학인 스님을 중심으로 한 불교계 청년층의 의식이 얼마나 깨어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정신이 남달랐다는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특히 만해 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지식인층과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호국불교 정신이 청년층 가슴에 자리 잡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서트 3 고재석 / 동국대 만해연구소장] : "(만해 스님이 말하길) 첫째, 불교는 지신주의다. 굉장히 지성적인 종교다. 일종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자유주의다. 모든 것은 자유인데, 불교만큼 자유를 숭상하는 종교가 어디 있느냐. 그다음 세 번째는 평등주의다. 어떻게 사람 밑에 사람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느냐, 어떻게 다른 민족이 우리를 압제하고 식민지로 만들 수 있느냐..."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불교계 청년들은 이후 상해 임시정부에 가담하고, 만주 군관학교 등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스탠딩]

3.1 만세운동 역사의 중심에는 만해 스님과 중앙학림 학인 스님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국대 전신 중앙학림의 항일운동에 관한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BBS 뉴스 류기완입니다.

류기완 기자  skysuperman@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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