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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영천 역사문화박물관장 지봉 스님 (용화사 주지)

*앵커 : 양창욱 정치부장

*프로그램 : BBS 뉴스파노라마 [오늘 저녁, 우리 스님]

양 : 매일 저녁 한 분의 스님을 만나뵙니다. 오늘 저녁, 우리 스님. 오늘은 영천 역사문화박물관장님이신 지봉 스님 만나 뵙겠습니다. 스님, 나와 계시죠?

지 : 네 안녕하십니까.

양 : 네. 스님 조선시대 민간조보를 소장하고 계셔서, 특히 이것이 최근에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는 얘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민간조보라는 게 어떤 거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좀 설명해주십시오.

지 : 네. 민간조보가 굉장히 용어가 생소합니다. 잘 안 들어보던 용어인데, 조보는 신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옛날 신문이라고.

양 : 아, 옛날 신문.

지 : 네. 이 조보를 인쇄로 찍어내느냐, 아니면 조보를 손으로 필사해서 하는 것이냐, 이렇게 구분해 볼 수가 있고요. 필사조보는 손으로 직접 쓰는, 조선시대 관보 형태의 정부 문서라고 보시면 되고요. 이번에 최초로 발견돼 용화사에 소장이 돼 있는 조보는 손으로 적은 게 아니라 한 판의 큰 판에 250자 정도 나무활자와 금속활자를 사용해 하나하나 끼워 맞춘 겁니다. 요즘 신문으로 보자면 현대 신문보다는 좀 작은 타블로이드판, 쉽게 말해서 ‘교차로’ 정보지, 이 정도 되는, 6면 정도로 대량으로 인쇄를 했습니다.

양 : 아, 그렇군요. 지하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타블로이드판...

지 : 네, 그래서 좀 더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굉장히 과학적으로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신문을 만들어내려고 하면, 팔만대장경처럼 글자를 새겨서 신문을 찍어내려고 하면, 그 신문사는 며칠도 못가서 곧 망하게 됩니다.

양 : 아, 그렇죠.

지 : 왜냐하면 그날 인쇄한 신문의 내용은 그 날 밖에 못쓰기 때문에, 그 목판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며칠 못가서 경영난으로 신문사 문을 닫아야 하죠. 우리가 1960~70년대 초반에 인쇄소에 가보면 인쇄소 주인이 인쇄 활자를 딱딱 맞춰서 인쇄하는 게 기억나실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 인쇄하고 난 다음에 활자를 풀어서 다음날 또 신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1960~70년대 그렇게 활자를 만들어서 인쇄를 하듯이 그렇게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양 : 그렇군요.

지 : 무려 442년 전에. 1577년 조선시대에 그렇게 만들었던 거죠.

양 : 그럼 이게 440년 된 거군요. 그러면 이게 세계 최초, 가장 오래된 건가요?

지 : 네 가장 오래됐죠.

양 : 공인된 건가요?

지 : 네, 지금 현재로서는 100년 전에 우리나라 신문의 가장 선구자인 안재홍 선생이나 또 유길준, 최남선 선생도 이 신문을 찾기만 하면 우리나라가 세걔 최초의 활자조판 방식의 상업용 일간신문을 간행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들 기적이라고 할 만큼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양 : 그렇군요.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이군요 민간조보. 442년이나 됐고. 이걸 스님께서는 어떻게 얻게 되신 겁니까?

지 : 이것은 3년 전에 서지만 전문으로 하는 옥션회사가 있어서, 3개월 동안 안 팔리고 있길래 저게 세계 최초의 신문이라고 하는데 왜 안사가나 하고 제가 연구를 좀 해보니까, 조선왕조실록이나 선조실록, 율곡이이의 석담일기 등을 보니까, 그 내용들과 비교해보니까 정확하게 일치하는 겁니다. 그래서 진품이구나, 생각하고 구입하게 됐죠.

양 : 그렇군요. 스님이 사신 거네요. 얼마에 사셨어요?

지 : 그건 비밀입니다. 하하. 비싸게 주진 않았습니다.

양 : 네, 굳이 안 밝히셔도 됩니다 스님. 하하. 그러면 이 민간조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나요?

지 : 제 조금 전에 방송에 나왔듯이 구제역 이야기도 담겨 있었고요.

양 : 구제역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요?

지 : 네. 조선왕조실록이나 율곡 이이의 석담일기에 민간인쇄 조보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나옵니다. 원래 이 인쇄 조보는 난초체, 아주 어지러운 초서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대중들이 읽기 힘들었습니다. 소수의 인원이 볼 수 있는 자료, 필사로 된 조보는 아주 소수의 인원이 볼 수 있었다면, 민간인쇄 조보는 대중들이 돈만내면 볼 수 있는 신문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양 : 그렇군요. 스님, 이게 이제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았지만, 이 귀중한 문화재를 국가문화재로 만들고, 또 국제적으로 완전하게 공인받기 위해 앞으로 여러 가지 절차나 하실 일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설명해주시죠.

지 : 아마 이게 독일의 아이코멘데 차이퉁라고 하는 공인된 세계 신문보다도 82~3년 앞서고, 또 중국의 저보라고 하는 것보다도 61년이 앞섭니다. 그래서 현재와 비슷한 활자조판방식을 썼기 때문에 세계기록 문화유산이나 이런 데 등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우선 첫 번째는 국가지정문화재 신청을 하기 위해서 학술대회나 기초조사 연구를 많이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원형 복원이나 활자에 대한 연구도 좀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양 : 알겠습니다. 저희 BBS불교방송도 응원하겠습니다.

지 : 네, BBS에서도 많이 관심 가져주십시오.

양 : 물론이죠. 스님,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지 : 감사합니다.

양 : 영천역사문화박물관장이신 지봉 스님과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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