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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뉴스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절을 앞두고 일제시대 불교계 독립 운동의 얼과 자취가 서려있는 현장을 집중 탐방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백범 김구 선생이 출가해 스님으로 수행 정진하면서 우국충정의 한을 달랬던 도량 공주 마곡사를 조명합니다. 청주BBS 이호상 기자입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상징 백범 김구.

김구 선생을 빼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논할 수 없습니다.

‘불교’를 빼고 김구 선생을 논할 수도 없습니다.

투철한 애국정신으로 근‧현대 최고의 지도자로 추앙받는 김구.

1896년.

그는 21살 피 끓는 나이에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에 분노해 일본군 장교를 맨 주먹으로 때려 숨지게 합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 탈옥한 그는 일본군을 피해 전국을 떠돌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1898년 2월 김구는 마곡사에 은신합니다.

마곡사 스님들은 김구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하은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스님이 됩니다.

법명은 원종(圓宗).
그는 원종 스님으로 다시 태어나 마곡사에 은거하며 수행 정진, 애국충정의 의지를 다집니다.

김구 선생과 불교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Stand Up]
바로 이 바위가 백범 김구 선생이 스님이 되기 위해 삭발을 했던 곳입니다.
지금도 그의 우국충정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다시 환속한 그는 3·1 운동 직후 중국으로 망명했다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 당시 이시영 부통령과 함께 승려생활을 하던 마곡사를 다시 찾아 향나무를 심습니다.

그 향나무는 73년이 흐른 지금도 김구 선생의 기개를 양분삼아 오롯이 마곡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 인서트
호선 스님 / 마곡사 교무국장
“전국을 떠돌다 마곡사에 오셨습니다. 여기서 숨어 지내시면서 그때 1년 간 출가를 하시고 여기서 생활을 하게 되십니다. 그때 원종 스님이라는 신분으로 스님들과 똑같이 경 공부도 하시고…김구 선생님께서 광복이후에 마곡사를 다시 방문 하셔서 기념으로 심은 나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1949년 6월 26일 암살을 당해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게 됩니다.

마곡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출가해 지게로 땔감을 나르고 명상을 하던 ‘백범 명상의 길’이 보존돼 있습니다. 

마곡사는 또 원종 스님, 백범 김구 선생을 기려 해마다 추모 다례제를 봉해하고 있습니다. 

원종 스님의 우국충정의 한이 서려 있는 마곡사.

김구 선생과 불교와의 인연이 없었더라면
아마 대한독립은 멀고도 먼 험로였을 수도 있습니다.
 
BBS 뉴스 이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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