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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한국 영화 “말모이”가 최근 흥행몰이를 하면서 당시 조선어학회의 대표적인 불자 지식인이었던 범산 김법린 선생에게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조선불교 청년회 활동 등을 통해 수많은 항일의 자취를 남긴 김법린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구자준 아나운서가 짚어봤습니다.

영화 '말모이' 포스터(왼쪽)와 조선어학회 33인 중 한 명인 범산 김법린 선생(오른쪽)

 

-영화 ‘말모이’ 중

“말과 글이란게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인데, 그렇게 사라지는 우리 조선말이 한 두 개가 아니거든요.”

“우리는 반드시 우리말 사전을 완성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한글로 민족의 정신을 지켰던 조선어학회를 다룬 우리 영화 말모이.

300만 관객의 선택을 받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1942년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한글 연구를 한 학자들을 탄압하고 투옥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 조선어학회 33인에는 불교 철학자 범산 김법린 선생이 있었습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김법린 선생은 14살때 인근 사찰 은해사로 출가했습니다.

이후 범어사 명정학교와 강원 사교과를 마치고 서울 휘문고보에 들어갔다가 지금의 동국대인 불교중앙학림에 편입하는데, 이때 만해 한용운 스님과의 역사적 만남이 이뤄집니다.

당시 강사였던 만해 스님의 영향을 받아 3.1운동 때 범어사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한 달 뒤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하며 김법린은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섭니다.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1회 세계 피압박민족 반제국주의대회에 조선대표로 참석해 일제 침탈의 부당함을 역설했습니다.

 

-인터뷰- 고영섭 / 한국불교사연구소 소장

“(일제의 조선침탈은) 일개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고유문화의 기본 틀을 깨는, 악영향 이런 것들이 얼마나 큰가를 호소하는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1927년 3월 23일자 동아일보 기사. "파리대학 출신 김법린씨의 약력"이라는 제목으로 김법린을 소개하고 있다.

김법린과 대표단의 당시 활약은 국내 언론에도 보도됐습니다.

특히 ‘동아일보’는 “파리대학 출신 김법린씨의 약력”이란 제목으로 그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김법린은 이후 1932년 4월 조선어학회에 가입하고 조선어 사전편찬 운동에 참여합니다.

 

-인터뷰- 김순석 /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조선어학회 구성 멤버를 가만히 살펴보면, 외솔 최현배 선생은 일본 유학을 하셨고, 정태진 선생은 미국 유학을 하셨으며 범산 김법린 선생은 프랑스 유학을 하신, 외국 유학생들이 조선어학회에 많이 가담을 해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살펴보니까, 이분들이 외국에서 유학을 하시면서 조선에 대한 애착과 조국에 대한 애정이 훨씬 더 강했다고 생각이 되요.”

 

외국 유학과 불교 공부는 김법린 선생에게 언어의 중요성을 심어준 바탕이었습니다.

김법린 선생은 다솔사와 범어사 강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 “조선어의 쇠퇴는 곧 조선 민족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 이라며 우리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김법린 선생은 1942년 구속돼 1945년 출옥했습니다.

8.15 해방 직후 김법린 선생은 일본인 승려들이 거주했던 사찰을 종단이 인수할 수 있도록 미 군정을 설득하는 외교력도 발휘했습니다.

이후에 정치에 입문해 제3대 문교부 장관, 초대 한국 원자력 원장을 지낸뒤, 1963년에는 제4대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인터뷰- 고영섭 / 한국불교사연구소 소장

“불교 지성인으로서 역할을 잃지 않고 살았던 것 같고요. 그게 독립운동과 불교 혁신운동으로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도 불교를 혁신운동화 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적 활동, 정치적 배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남다르게 자각한 인물로 보입니다.”

 

-인터뷰- 김순석 /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범산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 운동으로 치열한 삶을 사셨고,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 건국에 초석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교계 독립운동가로, 정치가이자 학자로 대한민국을 지켰던 범산 김법린 선생의 생애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오래된 명작 영화 처럼 다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BBS NEWS 구자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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