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그저 한 세월이지만, 촘촘히 헝클어진 그 망각의 씨줄과 날줄을 애써 걷어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니깐 그 시절, 기자는 이른바 ‘조찬 마와리’의 마지막 세대로서 정가의 현장을 취재했다. 새벽까지 먹은 술이 덜 깨 연신 헛구역질을 하며 당 총재나 대표, 대선후보 집으로 출근해 이미 모여 있던 당직자, 기자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온갖 정보와 수다를 챙긴 뒤 당사로 향하던 정치부 말진 기자였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기자 수가 많지 않았고, 기자실도 국회가 아닌 각 정당에 있었던 시절이었다. ‘조찬 마와리’ 취재문화가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인 ‘라디오 아침 시사프로그램’도 지금처럼 난립하지 않았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은 현장 기자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작가가 써주는 원고나 읽으면서 겉멋만 부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알고 떠들어야 청취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권의 입맛에만 맞으면 아무 자격 없는 무지렁이라도 공공재인 전파를 독점해 자기 멋대로 배설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고, 변호사나 교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려막기 하는 연예인들처럼 여기저기 나와 짜깁기로 외운 기사를 정치평론이랍시고 떠들던 시절도 아니었다. 아직은 각종 온라인 플랫폼에 점령당하지 않았던 ‘여의도 캐슬’의 모든 구성원들이 품격과 금도, 풍류와 낭만을 품었고 무엇보다 예의를 지킬 줄 알았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당사로 향할 때면 자주 이낙연 대선후보 대변인의 차를 얻어 탔다. 종로구 명륜동에서 여의도 당사까지의 거리는 가깝지 않았다. 천금 같은 복기와 확인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야마(기사나 방송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핵심을 뜻하는 일본 속어)를 놓친 병아리 기자의 세치 혀와 까만 손은 늘 분주했다. “오늘 거기는 가시는 거에요?” “내일쯤 만나는 거 아니에요?” “아까 후보님이 말씀하신 뉘앙스를 어떻게 봐야 해요?” 절집이 중히 여기는 하회탈 같은 미소를 머금고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던 이낙연 대변인은 마침내 그 특유의 바리톤 저음으로 나지막이 대답한다. “양 기자가 보는 대로 보지”.

모든 승부는 드라마틱했다. 그래서 당선된 대통령은 희대의 승부사가 됐다. 축하 인터뷰와 행사가 봇물을 이루던 그해 12월의 끝자락. 정말로 아무 기사거리가 없다고 해서, 기자들도 너무 고생해 그저 노는 자리 한 번 마련한 것이라 해서, 각 사의 막내기자들만 주축이 돼 갔던 세밑의 어떤 워크숍 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노무현 정부에서 부패하다 걸리면 패가망신 할 것이다”를 필두로 당선되고 나서 가장 많은 얘기를, 그것도 가장 강한 톤으로 쏟아냈다. 우리들은 절망했다. 어찌할 바를 몰랐고 보고 들었던 눈과 귀만 원망했다. 우리를 분명 놀게 해준다며 꼬드긴 부대변인(지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없이 미웠다. 이번에도 야마를 못 잡고 똥칠하며 헤매고 있는데, 이낙연 대변인이 브리핑을 해준다 해서 몰려 가보니 야마를 아예 불러 주었다. 받아치기만 하면 되었다. 중앙언론사 부장 출신다웠다. 경외감마저 들었다.

해가 바뀌어 서설(瑞雪)이 내리던 어느 날,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은 그날도 어김없이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고 대통령 당선인의 행사와 참석자들을 소개하는 데, 맨 마지막에 자신을 ‘소생’으로 표현했던 것이 기억난다. 참 재밌고 운치 있게 들렸다. 그리고 한참을 못 봤다. 몇 년 후 어느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 언론사 후배였던 당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을 평가해달라고 하자 “같이 10분만 있으면 우리가 같은 편이구나, 이렇게 느끼게 만드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라고 평했다. 수도 없이 사줬던 여의도 국회 앞의 쌈밥 점심과 물처럼 같이 퍼마셨던 소폭 얘기는 안하겠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데,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항상 부드럽고 따뜻하고 유머러스하진 않다. 신문기자 시절, 그 누구도 자기 원고에 손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칼같이 글자수를 지키고 마감에 완전히 임박해 낼 정도로 지독한 자존심의 완벽주의자다. 하여, 지금 이낙연 총리 밑의 공무원들은 날마다 곡소리가 날 것이다. 그 현미경 일처리의 까칠함에. 그 다혈질의 버럭 성질에.

진보진영의 대선후보군 가운데 언젠가부터 이낙연 총리가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미투(Me Too)’로,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으로 주춤하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셀 수 없이 많은 추문과 의혹으로 넘어진 사이, 가장 막강한 영지를 10년 가까이 거느리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제치고 질주하고 있어 정가의 입방아에 쉼 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철저하게 대권과 선을 긋고 있지만 역시 급부상하고 있는 유시민 작가와 지금은 양강 구도라는 얘기도 많은데, 유 작가도 각종 예능프로그램과 SNS 활동을 통해 ‘정말 옳은 말도 정말 싸가지 없게 한다’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있다. 당장 동네 아저씨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유 작가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내가 가장 똑똑하고 옳으니 나를 따르라’ 프레임으로 유 작가를 가뒀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보게 됐다고 토로한다. 유 작가도 이제는 대중들에게 곁을 내줄 수 있음인가.

오랜 시간 이 바닥을 함께 서성거렸던 기자들이 모였다. 물어봤다. “이낙연 총리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누구도 “아니 본인은 하려고 하지도 않는데, 무슨 말이야?”라고 묻지 않았다. 정치란 어느 선을 넘게 되면,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고, 자기가 하기 싫다고 해서 안하고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터프(Tough)한 선거를 뛰어본 적이 없는, 고난의 행군을 해본 적이 없는, 그 옛날의 고건’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중앙무대에서 제대로 싸워본 적 없이 이 총리에게는 사실상 임명직이나 다름없는 호남 선거에서만 뛰었다는 얘기고, 총리 한 번 하면 끝날 늘공(늘 공무원)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지금의 이낙연 총리를 위해 목숨 걸고 선거 뛸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라는 대목에서는 서로의 침이 튀었다. 정치는 조직과 세력으로 하는 것이니 말만 많은 기자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조순 전 서울시장부터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까지 그냥 점잖아 보이는 고관대작들에게는 기본 점수라는 게 있었고 그렇게 한참 떠들썩하다가 이내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러나 정치입문 후 20년 동안, 분명 명대변인으로 출항했지만, 정치적 선택과 기로에 설 때 마다 대중정치인의 파괴력으로 각인될 그 어떤 명장면도 선명하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저 분들과 쉽사리 같이 묶어 버리면 본인은 몹시 억울할 수도 있겠다. 언론인에서 정치인까지 꽃길만 걸었든, 꽃가마만 탔든 우리나라에서 20년 만에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정치인이 몇 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껏 가장 잘 한 인사가 ‘이낙연 총리 임명’이라는 데는 여전히 이견이 없다.

정녕 뜻이 있어 도모하고자 한다면 준비해야한다. 일각에서는 이낙연 총리를 문재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바탕으로 인사권을 장악한 실세총리로 치켜세우며 후계자 운운하고 있던데,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이낙연 총리가 차지하고 있는 실질적인 위상은 누구보다 이 총리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다’ 보다는 ‘내가 왜 대통령이 되어야만 하느냐’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낙연’으로 상징되는 그 무엇인가가 이 도발적인 명제를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면서 지금의 시대정신을 견인해야한다. 무엇보다 핵심지지층을 형성해 유권자들의 변덕스러운 소구력을 끊임없이 충족시켜야하고, 서서히 파열음이 나고 있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체로 우호적이지 않을 친문 세력들의 저항과 반발에도 분연히 맞서야 할 것이다. 단 하나만 권하라고 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장점인 ‘맷집’부터 기르라고 조언하고 싶다. 허기사, 어쩌면 이 모든 얘기들이 너무 이른 얘기일 수도 있겠다. 기자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해 1월, 지지율 1위는 박찬종 씨였다. [정치부장] [2019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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