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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 대표 "진상규명 없이 끝날 수 있다 걱정 앞서""특별법 통과되지 않으면 변죽만 울리다 공염불될 것"
박찬민 기자 | 승인 2019.01.14 19:00

● 출연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한종선 대표
● 진행 : 김상진 부산 BBS 보도부장

(앵커멘트)목요인터뷰, 오늘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모임 한종선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현재 진상규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생각들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종선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질문1)서울과 부산을 오고가는라 상당히 바쁘실 것 같습니다?

-농성장하고 부산 피해신고센터를 왔다갔다가 하는데 많은 일정이 부담되기 하죠.

질문2) 서울에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가시나요?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국회 앞 노숙 농성장에서 계속 있습니다.

질문3)국회 앞 농성 얼마나 되셨습니까?

-오늘로 따지면 430일차 정도 됐을 겁니다.

질문4) 현재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분들 몇 분 정도 계십니까?

-지금 연락 가능하신 분들이 320 여명 넘게 있습니다.

질문5) 전체 피해자 분들은 몇 명인지 파악이 되고 있습니까?

-1987년 기준으로 보면 4천 100명에서 500명 사이로 추산을 해 보면요. 살아계신 분 하면 천 500명 정도는 살아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6) 천 500명 중에 320명만 파악이 되고 있고, 나머지 분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네요?

-공식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진상규명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이상 숨죽여서 지켜보고 있겠죠.

질문7) 사건이 알려지면서 시민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부산시 사과, 문무일 검찰총장의 사과, 국가인권위에서 국가 폭력이 인정됨으로 빨리 특별법을 통과시키라는 권고가 나온 상황에서 일반인들의 시각이 좋아졌죠.

질문8) 조금 전에 말씀하셨듯이 지난해에는 어떤 때보다 의미있는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이 드는데요. 감회가 남다르셨죠?

-비상상고는 피해 당사자로써 그렇게 큰 희망이나 이런 거는 약해요. 다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봤을 때는 법치국가에서 잘못된 법리 적용한 것을 계속해서 간다면 불행한 거죠.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환영할 부분입니다. 바로 잡아야죠. 잘못된 것은.

질문9)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지 않았나 생각이 되는데요?

-덤덤하죠. 왜나면 31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차별과 배제 속에서 살아 왔었고요. 그리고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러다가 끝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먼저 앞서니까 덤덤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질문10) 혹시나 모르는 불안감은 가지고 계시네요?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는 이상은 모든 것이 변죽으로 끝날 수 있고 공염불이 될 수 있는 거죠.

질문11) 공감하고 있죠? 이 부분은 피해자 분들이?

-그렇죠.

질문12) 도움주신 분들이 많으셨나요? 기억에 남는 분들이 계신가요?

-일단 제일 먼저 은사님이라고 할 수 있는 정규찬 교수님이 있겠죠.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2012년 당시 국회에서 피켓팅을 할 때 그 때만 하더라도 국민들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상태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북한도 이렇게는 안 하겠다 얼굴에 침을 뱉고 그냥 제가 국가한테 생떼를 써서 보상받고 도망칠 놈이라고 몰아가셨죠. 그 때 정규찬 교수님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게 만약에 대한민국 역사에서 숨겨지고 가려진 어떤 핵심적인 부분이면 잘못된 부분이라도 성찰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각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러내는 게 옳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고 생존자로 거듭날 수 있게 해 준 분이 정규찬 교수님이시죠. 여러 시민단체. 장애와 인권 발바닥이라는 활동가도 계시고요. 내무부 훈령 410호 위헌적 사항을 짚어주신 강경선 대표, 변호사님들...제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나 말고 아픔이 있는데, 그것이 저를 보듬어주는 방법들을 일깨워주신 고문간첩 피해자 분들이 만든 진실의 힘이라는 재단이 있습니다. 회장님 등...

질문13)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군요. 진상규명을 위해서 정규찬 교수님하고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2012년 6월인가 7월인데요. 무더운 날에 피케팅을 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붙여놓은 대자보를들여다 보신 거에요. 거기에 저의 형제복지원 입소 자료, 9살 때 자료가 있는 거에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서 들여다보다가 알게 된거죠. 교수님께서 기억나는 그대로 써봐라 해서 ‘살아남은 아이’ 책으로 나올 수 있게끔 도움 주신 분이 정규찬 교수분입니다.

질문14) 그 전에는 혼자서 외롭게 싸워 오셨네요?

-딱 1년만 해보려고 했죠. 왜냐면, 아무리 억울한 일이라도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법치주의 국가인데, 억울한 일이 있으면 왜 그렇게 하나 그렇게 하잖아요. 근데 저의 원망과 분노는 아버지와 누나를 정신병원에서 찾으면서 부텁니다. 형제복지원에 끌여 가서 정신이상이 됐다면 최소한 국가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도록 지원해야 하는데요. 부양의무를 저한테 떠넘기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화 밖에 없었죠. 그러나 제가 다른 사람들을 헤코지 한다고 해서 분이 풀릴 일도 없고, 그러면 오히려 제가 잡혀들어간 게 합리적이 되어버리니까 최소한 1년만 참아보고 세상이 변화나 변화지 않나 보려고 했었죠.

질문15) 피해 당사자이신데요. 그 당시 어떻게 가게 됐습니까?

-그 때 이제 9살 때 초등학교 2학년 다니고 있었고요. 부산 봉래초등학교 부산역 앞에 있습니다. 누나는 4학년 때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집에 계셨어요. 가방을 내려놓고 아버지가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다녔죠. 동네 구경 하고 극장도 가고, 새 옷도 갈아입혀주고 저녁 8시 쯤 파출소 집 근처에 있는 곳에 잠시 있으라고 하면서 아버지가 우리를 의자에 앉혀놓고 나갔단 말이죠. 그리고 나서 형제복지원 차량이 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내린 분들이 순경들하고 악수하고 서류 주고받고 사인하고 저희들을 태우고 갔죠.

질문16) 기억하기는 싫지만, 그 당시 형제복지원을 어떤 일을 겪으셨습니까?

-새벽 4시에 기상을 합니다. 아침 6시 조식이 나오는데요. 그 조식을 받기 전에 군가를 부르면서 구보를 돌아요.

질문17) 군가요? 초등학교 2학년 때?

-거기에서 외워야하는 것은 군가, 찬송가, 기도문, 원훈 같은 것을 외웠죠. 새벽 4시에 기상을 해서 5시에 점호를 해요. 중대장에 문을 따고 해서요. 점호 받기 전에 세면을 다 해야 되고요. 굵은 소금에 칫솔이 없어서 손으로 하고 물 3 바가지 정도로 세면을 다 끝내야 해요. 끝나면 앞 열로 가서 앉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찬송가를 따라 불러야 되고, 점호 치고 군가를 부르면서 구보를 뛰는 거죠. 여섯 시에 식당가서 밥을 먹고요. 근데 아침 식사시간은 30분으로 했는데, 다 주어지지 않죠. 선착순을 언제나 시켜서요. 선착순에 못 들면 구타를 당해야 하니까요. 안 맞으려면 굶어야 되고 적게 먹어야 되고 그래야했죠.

질문18) 어릴 적 기억이라 모를 수 있지만, 그 때 기억은 생생하신가요?

-생생하죠. 왜냐면 일반 어린 학생들처럼 학교생활 끝나고 오락실도 가고 학원도 가고 바쁘게 생활하면 여러 기억들로 지워질 수 있겠지만, 형제복지원 3년 6개월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똑같은 패턴이거든요. 까먹을래야 까먹을 없죠.

질문19) 어떻게 벗어나게 됐나요?

-탈출하면 목숨 걸고 해야 되고요. 잡히면 중대장실, 원장실 가서 두들겨 맞고, 소대원 들어와서 맞고요. 꼴통소대라고 해서 거의 죽어나간다고 보고요. 탈출은 그 당시 제 나이로는 꿈을 못 꿨죠. 꿈은 꾸지만 탈출하기 위해서 발이 빨라야 하는데 9살 나이에 어떻게 뛰겠습니까? 자유시간 주어지면 혹독한 환경에서 기압을 받았더라도 운동장에서 달리기 연습을 합니다. 그림자가 못 좇아올 정도로 빨리 뛰면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래서 그림자가 떨어졌나 안 떨어졌나 확인하면서 뛰었는데 그대로 인거에요. 그래서 탈출은 포기해 버렸죠.

질문20) 그런데 문제는 당시 형제복지원장이 대통령으로부터 표창까지 받았다고도 하는데요. 지금 이 분들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일단 박인규 원장은 사망을 했고요. 횟수로는 3년이 됐죠. 전두환 씨라고 해야겠죠. 전두환 씨는 치매에 걸렸다고 하고 있지만, 그건 치매가 아니죠.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이라고 봅니다.

질문21) 그 당시 복지원 관계자는?

-잘 살고 있죠. 비공식제보를 보면 재산이 2천억원대라고 합니다.

질문22) 가해자들은 잘 살고 있네요. 형제복지원 원장과 부산시 유착관계 최근까지 계속되어 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것이 뿌리깊은 관계인 것 같습니다. 불과 2014년 2015년 때, 형제복지원 폐쇄결정하기로 했는데, 폐쇄시키면 안 된다고 저희가 했습니다. 그 이유는 눈가리고 아웅식이잖아요.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 터졌을 때 진상규명 할 수 있었지만 이 사람을 다 내 보낸거에요. 겉으로는 폐쇄시켰다고 하고 신문기사로도 나왔지만 형제복지지원재단은 2012년까지 한 번도 폐쇄한 흔적이 없었죠. 그러다보니 피해당사자가 나와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니까요. 이제야 돕기 위해서 복지재단 폐쇄 결정 내리고 은폐시키려 한 거죠. 폐쇄를 하더라도 이들이 왜 폐쇄를 당하는 기초조사를 해야한다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 남아있는 자료라도 보관시키고 발굴해서 증거를 남겨 놨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나서 이 재단에 대해 당신들은 운영할 자격이 없고 소생할 길이 없어서 폐쇄를 결정한다고 되어야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폐쇄결정을 미리하고 모든 자료가 사라지게 만들었죠.

질문23) 형제복지원 신고센터입니다. 지난해 문을 열었죠?

-일단 모르는 전화번호로 새로 오신 분들이 연락을 주고 있습니다. 개소식과 함께 무언가 진행이 될지 알았지만, 아직 사무실은 상근할 인력조차 파견되지 않고 있어서 실망감이 크겠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농성장을 철거하지 못하고 버틸 수 밖에 없는 이유, 언제나 가식적이고 인위적인 눈에 보여 지는 것으로 끝이 났잖아요?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해선 안 된다.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서 남아야겠다고 해서 서울 국회 앞 농성장을 철거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질문24) 부산시 의지는 강한데, 실제 지원은 미약한 것 같습니다?

-공무원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이미 대한민국 역사의 공무원의 안 좋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자기네 방식으로 밀어붙이고, 이런 게 절차를 삐걱거리게 하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도 불편하게 하고 그런거죠. 찾아왔는데 문이 열려있지 않으면 그렇죠. 부산시가 처음하다보니 미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흡함과 실수가 계속 반복돼선 안된다는 게 제 생각이고요. 관계는 유지하면서 공무원의 문화를 바꿔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25) 진상규명 부산의료원 조사가 이뤄졌는데요. 관련 자료는요?

-거의 없을 겁니다. 국가가 관리하는 의료원이라면 더더욱 없을 겁니다. 왜냐면 행정기관에서 어느 정도 15년 지나면 문서 폐기 지시하면요. 실무진들은 할 수 밖에 없겠죠. 기록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요. 민간병원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질문26) 민간병원은 어느 정도로 보나요?

-형제복지원에 끌려가서 사망 직전에 이르거나 했을 때 사망진단서 끊어준 사람들이 산부의과 의사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국가신분의 공무원은 아니었을 겁니다.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고, 이 싸인 한 장으로 조작이 가능했었던 거고요. 그 당시 형제복지원에서 부상당한 분들이 인근 백병원으로 많이 갔었거든요. 전수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무조건 어떤 병원이나 기관이 지목당했다고 해도 지금 분들이 잘못한 건 아니고요. 이 분들의 자료가 있다면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게 도움주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질문27) 특별볍 제정 늦춰지고 있는데요?

-정당 사이의 당리당략에 밀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네들이 선거 결과에 도움 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겠죠. 서로 차일피일 미루는 게 있고요. 자유한국당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느냐 미루고 있는데, 충분히 논의할 시간을 드렸다고 봅니다. 2012년부터 보면 8년입니다. 충분히 논의했고, 법안이 왜 반대가 있고 해야하는데 이건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28)마지막으로 청취자 분들에게, 부산시나 정부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일단 시민분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게 된 책 제목이 ‘살아남은 아이’ 부제목이 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라는 제목이거든요. 몰라서 인권유린 사건에 침묵했었다 그 부분이 공모자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시설에서 일어난 형제복지원 유사사건이 많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잡히지 않은 것은 애초에 바로잡을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모든 분들이 시설문제를 대충은 알고 있지만요. 확실하게 왜 바로잡지 못했는가? 그러나 지금은 시민들이 동력을 실어주시고 있어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몰라서 잘못한 건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알면서도 방치한다면 범죄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것을 시민들이 연대해줘서 감사합니다.

정치권과 국가에 대해서 바라는 건요. 선배들이 저질러 놓은 것에 대해서는 후배들이 총대를 메려고 하지 마십시오. 국가는 국가답게 자국민을 보호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명분을 유지했으면 합니다. 국가는 국가다운 역할을 해 달라. 정치는 정치인답게, 시민들은 함께 고민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 줘야 되고요. 피해자는 증언자로 생존자로 거듭나야 하는 거죠. 또 다른 피해생존자들에게 지금이라도 31년이 지나서 이야기 되는 시점에 육체적으로 이미 망가졌을지언정 정신적으로 살아 남아서 역사에 기록자가 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찬민 기자  highha@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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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호 2019-01-29 22:35:57

    안타까운일입니다 ,내가족들에게도 일어난일 일진데 ㅠㅠ알려고 뚜벅뚜벅찾아갔지만,알수없다는소리만 하더군요..부디 특별법통과되어서 수많은 희생자들의사연이,빛을찾기를바라는맘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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