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청와대 풀기자로 취재차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GP’에 갔을 때다. 당일 문재인 대통령의 일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경기도 연천의 신병교육대 장병들 격려행사였고, 두 번째 일정이 내가 취재를 맡은 ‘화살머리고지 GP’ 시찰이었다. 버스와 ‘민정 경찰’이라고 쓰인 트럭을 타고 3시간, 해당 GP엔 평소 병력이 주둔하지 않기 때문에 건물 안은 냉랭했다. 대기 중이던 취재진 사이에선 문득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문 대통령이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많아지는, 알아주는 ‘밀덕(밀리터리 덕후)’이기 때문에 대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예감이었다.

  소설가 성석제는 “남자들은 양로원에 가서도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하고, 여자들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면 양로원에서도 이를 간다”고 했다. 군대 이야기는 남자들 사이에선 초면에 낯선 분위기를 풀어주고,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는 반면, 대체로 여느 자리에선 하면 할수록 혼자가 되는, 일종의 ‘독’이다. 그런데 군대 이야기를 좋아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병훈련소로 갔으니, 물 만난 고기인 셈. 아니나 다를까 일정은 조금씩 뒤로 밀렸다. 문 대통령은 신병교육대 장병들과의 만남, 또 생활관 내 곳곳을 둘러보며 40년 전 공수부대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같은 시각, 화살머리고지 GP에 있던 나 역시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 근무자를 기다렸던 군 초병 시절을 떠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군대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제3특전대대 근무 시절, 자신이 강하훈련을 할 순서가 아닌데도 몸이 안 좋은 사람을 대신해 훈련에 참가했다는 이야기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종종 들려준다고 한다. 신병교육대 장병들 앞에서도 문 대통령은 “옛날에 제가 원하지 않았을 때에 마음의 준비도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입대하게 돼 막막했다”면서 혼자가 됐다는 고립감, 단절감 때문에 매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문 대통령의 생각 때문일까. 지금 군대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장병들 월급이 최고 40만 원대로 올랐고, 일과 후 핸드폰 사용이 가능해진다. 다음 달부터는 한 달에 두 번 평일 외출이 허용되고, 이동제한을 뒀던 이른바 ‘위수지역’도 폐지된다. 10년 전 전역한 예비역으로선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부대에 있을 때만 해도… 앗. 군대 이야기가 나올 뻔 했다.

 그런데 바뀌는 건 군 생활뿐만이 아닌 듯 싶다. 특히 남북 간 화해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안보에 대한 개념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근 국방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전력을 일컫는 ‘3축 체계’라는 용어를 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3축 체계에 포함된 ‘킬체인’과 ‘대량응징보복’은 각각 ‘전략목표 타격’과 ‘압도적 대응’으로 변경된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완화 등 정세변화로 서슬 퍼런 군사용어들도 조금씩 순화되는 분위기다. 이 밖에도 국방부가 연초 발간할 문재인 정부의 첫 국방백서엔 북한을 적으로 명확히 규정했던 ‘주적 개념’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은 적’이란 표현으로 바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내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내가 부대에 있을 때만 해도 총검술과 제식훈련을 하면, 연병장엔 북한 인민군 형상이 그려진 플라스틱 모형을 꺼내놓고 일제히 목덜미를 향해 총검을 휘둘렀다. 간부들 중에는 “오줌도 북쪽으로 싸라”며 강도 높은 정훈교육을 하던 이들도 있었다. 문득 지금의 병영이 궁금해진다. 우리 장병들의 총검은 허공을 찌르고 있을까. 여하튼, 격세지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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