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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능대사 기획 1] 목숨 건 호법(護法) 8000자 ‘간폐석교소’
홍진호 기자 | 승인 2019.01.06 11:29

 

숭유억불이 극에 달했던 조선 후기 죽음을 무릅쓰고 불교 말살 정책에 맞섰던 백곡 처능대사의 행적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처능대사는 8천자에 이르는 조선시대 최고 길이의 상소문 ‘간폐석교소’를 왕실에 올려 봉은사, 봉선사 등을 지켜냈는데요..

BBS NEWS는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 처능대사 ‘간폐석교소’의 의미와 ‘조선후기 훼불’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홍진호 기자입니다.

 

‘간폐석교소’ (諫廢釋敎疏)

불교를 뜻하는 ‘석교’를 폐하려는 국가 정책의 부당함을 지적한 ‘상소’입니다.

조선 현종 2년인 1661년, 백곡 처능스님은 ‘폐불’의 6가지 문제점을 들면서 수많은 사례와 경전 등을 근거해 8천여 글자로 논파했습니다.

조선 500년 조정에 올라온 상소문 가운데 가장 긴 내용입니다.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스님은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스님이 임금을 향해 상소를 올렸다는 자체가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고 말합니다.

[자현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8천 1백 50자, 금강경이 한 5천 자 정도 되요. 노자 도덕경도 5천 자정도 되거든요. 그런데 8천 1백 50자면 상소문으로서는 책 한 권이예요. 그렇게 하는데 스님이 참 의기가 있는 게 임금을 직접 겨냥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씁니다. ”

‘간폐석교소’에서는 “봉은사, 봉선사 두 절을 쇠망시켜서는 안 되며, 자수원, 인수원 두원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문장이 거듭 나옵니다.

현종이 아들을 갖지 못한 후궁들이 비구니 스님이 돼 거주했던 자수원과 인수원을 폐지한데 이어 봉은사와 봉선사 까지 혁파하려 하자 당당하게 붓을 든 겁니다.

불과 수십년 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교는 승병으로 나라를 지키는데 일조했지만, 이후 조정은 오히려 더 가혹한 불교 말살정책을 폈고 이에 처능스님은 홀로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자현스님/ 중앙승가대교수]

그래서 봉은사 봉선사 같은 데가 지금같이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만약에 그때 그 어른이 안 나섰다면 봉은사 봉선사 까지 폐지가 이미 조정에서는 결정돼 있었어요. 그걸 비판적으로 하고 반론을 일으키고 웅성웅성하니깐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이건 안 되겠다.”

처능스님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고승이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벽암 각성스님의 제자입니다.

하지만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에 가려져 있었던 각성스님과 제자 처능스님은 지난해 서울 봉은사에서 열린 관련 학술대회를 통해 새롭게 조명받았습니다.

[자현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작년에 봉은사에서 가을에 지금 총무원장 스님께서 이런 어른이 주목이 잘 안 되었는데 너무 안타깝다. 지금 이 시대의 상황에서 보면 불교가 자꾸 위축되고 있는데 떨치고 일어나는데 있어서 이런 어른이야말로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될 그런 분이다...”

선과 교는 물론 신익성의 집에서 유학까지 공부하며 내외전을 겸비한 처능스님은 1680년 김제 금산사에서 5일간의 대법회를 치르고는 입적했습니다.

처능스님의 행적과 사상에 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로 관련 논문이 몇 차례 나온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간폐석교소'에 담긴 호법의 정신과 불자로서의 기개는 이 시대에 되살려야 할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BBS NEWS 홍진호입니다.

(영상취재=최동경/ 영상편집=남창오)

홍진호 기자  jino41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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