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 이슈 따라잡기

● 출 연 : 조수진 뉴시스 기자

● 진 행 : 이선화 앵커

● 2018년 12월 26일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 코너명 : 이슈 따라잡기

[이선화] 매주 수요일 한 주 동안 제주도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를 알아보는 ‘조수진 기자의 이슈 따라잡기’. 뉴시스 제주본부 조수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수진] 안녕하세요.

[이선화] 오늘은 어떤 이슈 준비해오셨나요?

[조수진] 오늘은 좀 무거운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9년 전 발생했던 일명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입니다.

[이선화]아. 그 사건 장기 미제 사건으로도 유명하죠. 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리기도 하죠. 얼마 전에 피의자가 다시 잡혔죠?

[조수진]네. 그렇습니다. 21일이었죠. 지난 주 금요일 법원은 사건 피의자인 박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박씨는 지난 2009년 2월1일 제주시 내에서 자신의 택시에 탄 보육교사 이모씨를 성폭행하려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5월에 박씨의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과연 구속이 될까 관심이 모아졌었는데요.

이 사건은 피해자 이씨가 지난 2009년 2월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오름 인근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이씨는 이로부터 9일 전인 1월31일 저녁 친구들과 만난다며 집을 나갔구요. 친구들과 다음날인 1일 새벽까지 자리를 함께 한 뒤 남자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남긴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월요일이었던 2일 아침까지 이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이씨가 실종 당일 새벽 납치돼 피살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 이씨의 시신에 별다른 외상이 없는 점을 미뤄 저항없이 누군가의 차에 타 이동했을 거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탔을 거라 짐작한 거죠.

경찰은 이 정황을 바탕으로 모든 제주도 택시를 조사했는데요. 범행 시간대 사건 차량 예상 이동 경로 주변 CCTV와 택시 운행일지 등을 분석해서 용의자를 특정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씨가 택시를 탔을 거라 추정되던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해 진술을 번복한 박씨를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박씨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거짓으로 진술한다는 반응이 나와 피의자라는 심증을 굳히는 계기가 됐죠.

[이선화] 9년 전 수사 당시 이미 박씨가 유력한 용의자였다면. 왜 바로 잡아들이지 못한 건가요?

[조수진] 바로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찰은 박씨에 대한 심증은 있었지만 살해 혐의를 증명할 만한 물증을 찾지 못했습니다. 범죄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주 미세한 증거로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장면 많이 보셨을 텐데요. 과학수사라고 하죠. 지금이야 DNA이나 지문은 물론 범행 현장에 남겨진 다양한 증거를 찾아내 분석하는 장비와 기법이 많이 발달됐습니다만. 9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국 뚜렷한 지문이 범행 도구에 남겨져 있거나 하는 등 명확한 증거나 범행을 직접 본 목격자나 피의자의 진술 없이는 범행을 밝혀내기가 매우 힘든 때였죠.

또 이씨의 사망 시점에 대한 분석 결과도 박씨를 풀어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부검 결과 시신이 사망한 시점은 발견된 날 즉 2월8일로부터 24시간 이내라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이선화] 아까 경찰은 이씨가 실종된 직후에 범행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벌였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그날 위주로 예상 이동 경로를 파악해서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고...

[조수진] 네. 맞습니다. 보통 사망 시점은 시신이 건조되거나 부패한 상태, 체온, 피부 반점, 위 안에 남아있는 음식물의 소화 정도 등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부검의는 이런 상황을 종합해 시신이 발견되기 하루 전인 2월7일쯤에 숨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구요.

경찰은 이씨가 실종된 2월1일에 살해당했다는 데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사망 시점이 갑자기 2월7일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수사에 혼선을 빚게 된 거죠. 그동안 수집했던 증거들도 물거품이 됐구요. 용의자를 특정하게 된 CCTV 자료나 택시 운행일지도 2월7일에 맞춰 다시 수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됐고요.

게다가 박씨는 2월7일에 알리바이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범행을 입증할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수사는 미궁에 빠졌죠. 결국 경찰은 지난 2012년 6월, 수사를 시작한 지 3년4개월 만에 수사본부를 해체하게 됐구요.

[이선화] 그래서 이 사건이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겨졌군요. 수사본부가 해체된 지 6년이 지난 건가요. 짧지 않은 기간인데 다시 수사가 시작이 됐네요?

[조수진] 네. 일명 태완이법이라고 하죠. 지난 2015년 살인죄의 공소 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기존엔 법정 최고형이 사형인 살인 사건의 경우 공소 시효 기간이 25년이었습니다. 25년동안 살인범이 잡히지 않으면 그대로 사건이 끝나게 되는 거죠.

[이선화] 이 사건은 공소 시효가 끝나가는 건 아니었잖아요? 이게 어떻게 재수사 계기가 된 거죠?

[조수진]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전국 각 지역 경찰청에 중요 미제사건을 전담하는 수사팀이 신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지방경찰청에는 지난 2016년 2월 미제사건 전담팀이 생겼고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수사에도 다시 불이 붙게 됐습니다.

경찰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수사가 미궁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죠. 이씨의 사망 시점에 대해서도 새로운 추정이 나왔습니다. 경찰은 올 초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교수팀에게 사망 시점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이정빈 교수팀은 개나 돼지 사체 등을 이용해 사건 당시와 비슷한 환경을 주고 부패 정도 등을 다섯 차례에 걸쳐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이씨의 사망 시점이 실종일과 가깝다는 결과를 도출했고요. 9년 전 경찰이 추정했던 사망 시점이 옳았다는 것이고. 이는 당시 경찰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정황 증거들이 유효하게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선화] 사망 시점은 수사 방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인데요. 9년 전 부검 결과와 최근 밝혀진 시점이 6일이나 차이가 나는 거잖아요. 그 땐 왜 그렇게 추정을 한 거죠?

[조수진] 시신이 발견된 때가 2월이지 않습니까. 한겨울이라 기온이 많이 낮았고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볕이 잘 들지 않는 배수로 안이었구요. 이런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시신의 부패가 일반적인 상황과 비교해 늦게 진행됐을 겁니다. 9년 전엔 이런 요인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도 감식을 의뢰했는데요. 박씨의 옷에서 발견된 작은 섬유 조각이 이씨의 옷의 섬유와 유사하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압력 이상의 접촉이 있지 않고서는 상대방이 입고 있던 옷의 섬유가 피의자의 옷에 묻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이 섬유 조각도 박씨의 범행 혐의에 대한 주요 증거로 제시했죠.

경찰은 새롭게 밝혀진 사망 시점과 섬유 증거 등을 들며 법원으로부터 박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드디어 경북 영주시에 있는 집에서 박씨를 검거했습니다. 이어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지만 기각됐습니다. 법원은 국과수의 섬유 감식 결과가 ‘동일’이 아닌 ‘유사’로 나타나 다른 사람의 옷에서 나온 섬유인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피해자가 입었던 옷과 같은 종류의 기성복을 입은 사람 옷에서 나온 섬유일 수도 있다는 거죠. 한마디로 피해자의 옷에서 나왔다는 것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CCTV 같은 증거도 정황증거에 불과하고 DNA와 같은 범행을 확증할만한 물증이 없다는 점도 기각 사유에 포함됐습니다. 박씨가 일관되게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기도 했고요. 결국 박씨는 체포된 지 3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이선화]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가 싶더니 안타깝게 됐네요. 물론 박씨의 유죄가 확정된 게 아니니까 아직까지 단정지을 순 없지만요. 어쨌든 그렇게 풀려난 박씨가 이번에 다시 잡혔군요.

[조수진] 네. 지난 5월 박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나서 경찰은 수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확보했던 증거들이 범행 증거로써의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보강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아까 섬유 증거를 말씀드렸는데요. 이번엔 피해자의 신체와 가방, 치마에서도 피의자 박씨의 섬유 조직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특히 시신 어깨 부분에서 발견된 섬유에 대해 주목했는데요. 시신은 발견 당시 무스탕 자켓을 입고 있어 어깨가 노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겨울이라 평상시 어깨를 노출시킬 경우도 드물고요.

또 박씨의 차량 내 운전석, 뒷좌석, 트렁크 등에서도 이씨가 입었던 옷의 섬유가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이렇게 유사한 섬유가 군집을 이루면서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두 사람 간 상당 정도의 접촉 없이는 극히 드문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또 섬유 증거 하나만은 정황증거에 불과하지만 CCTV 자료와 진술 증거 등 여러 정황 증거들이 모여 유죄 증거로써의 증거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재수사를 하며 전국의 경찰 프로파일러도 투입했습니다. 이들은 박씨가 체포됐을 당시 대면조사 과정에서 한 진술과 거짓말탐지기 기록 등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8명 모두 “박씨가 유력한 범인”이라는 입장을 냈다고 합니다.

법원은 이번에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지난 5월 영장 기각 이후 범죄 혐의를 소명할 증거가 추가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죠.

[이선화] 과학기술이 발달한 덕분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경찰의 끈질긴 노력으로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미제 사건이 빛을 보게 된 거네요. 박씨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조수진] 박씨는 지금까지도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구속영장실질심사가 끝나고 동부경찰서로 입감되면서 ‘무죄를 확신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네”라도 답하더군요.

현재 심경을 묻자 “예전하고 같은 증거를 가지고 사실이 아닌 것을 그렇다고 자꾸 의심해서 굉장히 답답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통보를 하자 박씨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경찰에게 “구속적부심을 빨리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다고도 합니다. 구속적부심은 피의자의 요구에 따라 구속이 합당한지를 법원이 다시 심사하는 제도입니다. 자신이 구속된 상황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경찰은 검찰과 논의를 거쳐 빠른 시일 내 사건을 송치할 계획입니다. 검찰이 기소를 결정하면 박씨는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선화] 9년이나 끌어온 만큼 피해자의 유가족이 겪은 고통도 크겠습니다.

[조수진] 네. 경찰은 이번에 박씨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마자 이씨의 어머니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그 누구보다 오랜 기간 마음 아파했을 가족에게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겠죠. 경찰의 연락을 받고 어머니는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선화] 하루빨리 사건이 해결돼서 유가족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조수진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조수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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