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각종 시상식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각 방송사들은 한해 동안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 연기자와 MC,개그맨,가수 등 연예인들에게 상을 수여한다. 수상자들은 무대 위에 올라 감격과 기쁨으로 가득찬 수상 소감을 밝힌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떠올랐는지 눈물을 글썽이거나 펑펑 소리내서 우는 수상자들도 적지 않다. 각고의 노력 끝에 영광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는 동료 연예인들과 TV로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 모두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선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은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동료 선후배, 제작진, 그리고 가족들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식이다. 혹시 이름을 빼먹을까봐 종이에 적어 오기도 하고 빠진 이름이 있으면 객석에서 큰 소리로 알려주기도 한다. 수상자들의 감사 표시가 길어지면 시상식을 진행하는 MC들은 전전긍긍한다. 지난 22일 열린 한 방송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은 무려 4시간 가량 진행돼 다음달 새벽 2시가 넘어 끝나기도 했다.

수상자들의 이런 발언들이 전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수상자로서 갖춰야할 기본 태도이자 인간적인 예의로 여겨지는게 우리 사회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수상 소감때 자기 이름이 불려지지 않으면 당사자는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되고 심한 경우 배신감까지 들 수도 있다. 수상자 입장에서는 도움을 준 사람들의 명단을 읽지 않으면 기본 예의가 없는 수상자, 자기 자신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는 시선을 받지 않을까 두렵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수상자들의 이런 구태의연한 수상 소감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름들을 들으면서 시청자들은 그들만의 잔치라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에서는 몇년전부터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수상 소감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필자도 연말 시상식을 즐겨보는 시청자의 한명으로서 간결하면서도 진지하고 그러면서 촌철살인과도 같은 수상 소감을 보고 싶다.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울림이 있는 멘트, 진정성이 한가득 느껴지는 발언을 만나고 싶다. 소신 발언, 개념 발언도 좋지만 선동적인 구호 형태가 아니라 은유와 해학을 담아 메시지를 전하면 참 좋겠다.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 같지만 만약 큰 상을 받아 무대 위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동안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저와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과 이 영광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그 분들 이름은 가능하다면 영상 자막으로 띄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운좋게 앉아 맛있게 먹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밥상에서 밥먹을 기회조차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수저와 젓가락이 없어 눈 앞의 밥과 반찬을 구경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정성껏 밥상을 차려 많은 분들에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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