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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진주사암연합회 사무총장이자 진주 송원사 주지 보광스님

*앵커 : 양창욱 정치부장

*프로그램 : BBS 뉴스파노라마 [오늘 저녁, 우리 스님]

양 : 매일 저녁 한 분의 스님을 만나뵙니다. 오늘 저녁, 우리 스님. 경남 진주사암연합회 사무총장이시죠, 진주 송원사 주지 보광스님 만나 뵙겠습니다. 스님, 나와 계시죠?

보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양 : 네. 스님,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이 7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소식부터 먼저 전해주셔야겠습니다.

보 : 네.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한 9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석탑은 탑 외면에 부조상이 새겨진 것으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상층 기단에는 무력으로 불법을 수호한 호법신인 8구의 신장상이 새겨져 있고, 또 1층 탑신에는 보살상 네 구가 정교한 수법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뛰어난 조각기술과 경남 지역의 불교미술 수준을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 : 음... 그렇군요. 아니 그런데, 이게 7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던데, 이 석탑의 고향이 어디죠?

보 : 고향이라고 하면 원래 산청군 산청읍인데, 경남이죠. 그런데 예전에 진주가 산청하고 같이 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진주도 고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양 : 그런데 어떤 경위로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왔던 겁니까?

보 : 이 석탑은 원래 1941년 이전에는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 둔찰산 자락에 있었습니다. 1941년에 조선총독부가 대구의 어느 골동품상이 이 석탑을 매수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조사해보니까 일본인이 진주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통해서 산청으로 옮겨와서 대구에 있는 제명공장부지에 보관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이 석탑을 압수해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옮겨왔고 해방 후인 1946에 미국 공병대의 지원으로 석탑을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서 1962년 국보 제 10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석탑이 50년 가까이 경복궁 내에 세워져 있었지만 1954년에 경복궁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석탑이 다시 해체가 돼서 경복궁 내에 있었던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해체된 상태로 보관돼 오다가 지난해 국립진주박물관으로 모셔오고, 현 시대 최고의 3D 스캔기술로 복원 계획을 검토하고, 암질 분석 등 다양한 작업을 거쳐서 이번에 재복원하게 된 겁니다.

양 : 그렇군요. 현재 석탑 상태는 어떻습니까?

보 : 현재 석탑상태는 부조상의 조각도 비교적 뚜렷하게 확인될 정도로, 부식이나 풍화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양호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몇몇 부재가 없어서 새로이 만들어야 했습니다. 1941년에 대구에서 이 석탑이 확인됐을 때부터 하대갑석 이하와 3층 옥괴석 이상의 부재는 없던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는데, 해방 후에 1946년에 복원될 때 하대갑석 이하는 시멘트로 만들어졌고요, 3층 옥괴석 위는 새로 만들어지지 않고 복원됐습니다. 이번에 복원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님하고 석탑연구자들의 자문을 받아서 진행했는데, 석탑하고 동일한 석재를 이용해서 보관하기로 결정이 돼 범학리 삼층석탑은 섬장암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유일의 석탑으로 밝혀져 있는데요, 이 암석은 우리나라에 많이 분포되지 않은 돌입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범학리 부근 팔공산에서 섬장암을 확인하였고 산청군의 도움으로 복원할 수 있는 석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양 : 네. 정말 다행입니다. 아니, 그런데 7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고향 얘기를 계속 여쭤보는데, 조금 전에 산청에 있는 어떤 사찰로 모셔지는 게 아니라 국립진주박물관으로 모셔진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보 : 네, 그렇습니다.

양 : 네, 왜 산청이 아닌 진주죠?

보 : 네, 이 석탑은 원래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에 있었습니다. 통일신라 때부터 사찰이 있었지만 조선시대 어느 시점에 폐사가 되고 석탑이 허물어진 상태로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찰의 명칭은 분명하지는 않은데 구전에 의하면, 범호사, 법허사 등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석탑은 여건만 된다면 당연히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현재 범학리 폐사지를 보면 사찰의 범위나 석탑의 위치도 불분명하고, 국보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높지만 주변의 보안이나 관람 등의 여건이 좋지 못한 실정입니다. 그렇다고 경남지역을 대표하고 국보로 지정될 성보문화재를 수장고에 소장하는 상태로 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서, 그래서 국립진주박물관은 진주를 대표하는 박물관인만큼 10년 전부터 석탑을 고향으로 모셔오려고 계획을 추진하다 이렇게 국립진주박물관으로 모셔오는 성과를 얻은 겁니다.

양 : 알겠습니다, 스님. 스님, 오늘 뉴스시간이라 여기서 말씀 줄여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스님, 또 모시겠습니다.

보 : 네,. 감사합니다.

양 : 네, 진주 송원사 주지 보광스님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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