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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달 스님 “안봉려관 스님, 200년 무불시대 제주에서 불교 재건해”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 오늘의 이슈
이혜승 기자 | 승인 2018.10.23 12:09

● 출 연 : 관음정사 문화원장 혜달 스님

● 진 행 : 이선화 앵커

● 2018년 10월 23일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 코너명 : 오늘의 이슈

[이선화] 혹시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제주에 당이 오백 개, 절이 오백 개 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불교의 세력이 크다는 뜻이겠죠. 조선시대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 ‘혹세무민’이라고 불교를 폄하하며 그 많은 당과 절을 부숴 버렸습니다. 그 후 200년 동안 제주는 불교가 사라진 ‘무불시대’의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어둠에 묻혔던 제주근대불교가 부흥할 수 있는 씨앗을 뿌린 이가 있어요. 한 비구니 스님이었는데요, 바로 관음사와 법정사를 창건한 안봉려관 스님입니다. 오늘 안봉려관 스님에 대해 관음정사 문화원장 혜달 스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혜달 스님] 예, 반갑습니다.

[이선화] 어제 만공회 모연 방송에서도 스님이 안봉려관 스님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죠. 안봉려관 스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혜달 스님] 안봉려관 스님께서는요, 제주에 불교가 한 200년 동안 없었는데 관음사를 창건함으로 인해 제주도에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법화사 같은 경우는 창건이 아니고 중창이죠. 법화사가 폐허가 된 다음에 다시 중창을 하셨습니다. 제주도에 사찰만 창건하신 게 아니고 포교를 전격적으로 하시는데, 당신이 부족했던 부분은 육지에서 비구 스님들을 모시고 와서 포교를 할 수 있게끔 포교의 장을 열어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중앙로에 포교당도 창건해서, 거기에 제주 불교 부인회를 조직하시고 제주 불교 소녀회를 또 조직하셨습니다. 1925년에 조직을 하셨는데, 정말 지금 시대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이었죠. 여성 중심의 불교를 많이 전파하신 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선화] 종교의 확산은 생활 속에서 해야 하잖아요. 생활 현장에는 여성들의 대화방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925년에 부인회와 소녀회라는 여성 조직을 종교와 연결 지으셨네요.

[혜달 스님]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게, 제주의 지역적 특색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제주에 여성의 파워가 좀 세잖아요. 그래서 여성 중심으로 불교를 포교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이선화] 안봉려관 스님이 항일투쟁 하고도 관련된 부분이 있죠?

[혜달 스님] 봉려관 스님께서 법정사를 창건하시게 된 계기가, 저의 노스님께 들은 건데, 항일운동 하신 분들을 숨기면서 항일운동을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분들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게 그 지역을 선택해서 법정사를 창건하셨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이선화] 법정사는 언제 창건된 거예요?

[혜달 스님] 1911년에 법정사를 창건하십니다.

[이선화] 관음사도 창건하셨죠?

[혜달 스님] 관음사 창건은 1909년 봄에 하십니다.

[이선화] 제주 불교의 근대 사찰이라고 할 수 있는 관음사는 1909년 무렵, 법정사는 1911년에 창건하셨군요. 우리가 알고 있는 법정사 항일투쟁은 1918년 무렵이죠?

[혜달 스님] 법정사를 창건하시게 된 계기는 대흥사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흥사에서 1909년 7월에 항일운동이 있었습니다. 대흥사를 봉려관 스님께서 가셨어요. 아마 관음사 창건을 보고하러 가신 것 같아요, 대흥사가 본사니까. 거기에서 항일운동이 있었는데, 사전에 이 기밀이 새어 나간 겁니다. 그래서 일본 순사들이 산에 숨어 있다가, 항일운동이 저녁때였는데, 바로 총을 쏴서 70여 명이 그 자리에서 죽어버립니다. 그걸 봉려관 스님이 현장을 보셨다고 해요. 그래서 봉려관 스님이 그때 항일운동을 해야 되겠다는 의지를 다지신 것 같아요.

[이선화] 그래서 제주로 오신 거예요?

[혜달 스님] 제주로 오셔서 법정사를 창건하려고 그때 생각하신 거죠. 그래서 법정사 지역이, 한라산 뒤쪽 숨겨진 지역입니다.

[이선화] 저도 법정사에 다니는 분 얘기를 들어보니, 절이 산 속 깊숙이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혜달 스님] 왜냐하면 당신이 항일운동 하시는 분들이 한순간에 죽는 모습을 보셨잖아요. 그러니까 항일운동 하시는 분의 생명을 보존하면서 항일운동을 해야 겠구나, 해서 법정사 이 지역을 선택하셨다고 저의 노스님에게 들었습니다.

[이선화] 봉려관 스님의 지혜에 감동을 하게 됩니다. 여성 조직을 만들어서 포교당은 중앙로라는 생활 중심지에 만들고, 신도들의 목숨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는 한라산 그 깊숙이에 법정사를 창건하셨네요.

[혜달 스님] 관음사도 선택을 하신 게, 수행중심의 도량을 만들 수 있는 장소가 관음사다, 이렇게 생각하신 걸로 저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독립자금을 봉려관 스님이 전달하시는데요, 봉려관 스님이 독립자금을 만든 건 탁발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탁발을 하고 불사를 일으키셨다고요. 예를 들어 종 불사를 한다고 해서 불사금을 받잖아요? 그럼 종은 자그맣게 만드시는 거예요. 본인 목적은 독립자금, 군자금을 대주는 게 목적이니까. 그러면 이걸 모아서 누구한테 전달하시냐면, 제가 들은 건 수보 스님 아버님이라고 들었는데, 그분이 방동화 스님입니다. 제주 불교의 독립운동을 하신 대표적인 분이죠 그분이. 방동화 스님이 그 돈을 가지고 바닷가에 가서 낚시를 하신다고 그래요. 그럼 저녁에 독립군이 배를 타고 온대요. 시간적인 약속을 하는 거죠. 그래서 “고기 낚았냐?” 하고 물어본대요. 그럼 고기를 낚았다고 하면, 고기를 사는 척 하고 고기값으로 그 맹탱이에 돈을 담아서 전달을 했다고 이번에 증언을 들었습니다. 봉려관 스님이 독립자금을 방동화 스님에게만 전달한 게 아니고, 독립자금을 모아서 대흥사에도 여러 번 전달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대흥사에 전달을 할 때는 배를 타고 목포를 거쳐서 대흥사까지 가시는 거죠.

[이선화] 안봉려관 스님에 대한 이런 역사적 고증, 이야기에 대해 매진하고 관심가지고 있는 연유가 있으신가요?

[혜달 스님] 이렇게 하게 된 이유가 저희 노스님께서, 사수께서, 집안 어른 스님들께서, 한 지역의 불교를 재건한 스님인데 너무나 모르고 있다 사람들이. 문중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래서 한번 연구를 해야 하지 않겠냐, 정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또 관음사 주지 허운 스님께서 봉려관 스님에 대한 일대기가 정리가 안 돼 있고, 행적에 대해서도 상세한 행적이 정리가 안 돼 있다, 그래서 이걸 우리가 한번 정리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하는 말씀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 문중에 요청이 왔었습니다. 같이 연구할 사람을 문중에서 추천해 달라, 그래서 제가 같이 하게 됐죠.

[이선화] 안봉려관 스님이 가장 중점적으로 했던 과제는 무엇입니까?

[혜달 스님] 안봉려관 스님이 제주에 불교를 다시 재건하신 건, 광도중생이라 하죠? 모든 사람에게 부처님의 자비, 부처님의 자비라고 하면 우리가 그 뜻을 잘 모르잖아요. 자비의 자는 즐거움을 상대에게 나누어 주는 거고, 비는 슬픔을 나눠 갖는 겁니다. 그 시대는 제주도가 시대적으로도 굉장히 생활에서 궁핍했어요. 궁핍하면서 정신적인 자산은 없었잖아요.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분들에게 펼쳐서 이분들이 생활상에서 조금이라도 부처님 가르침으로 인해 위안을 받고, 사람들이 어려우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잖아요. 그 의지하는 종교가 사이비가 아닌, 정통의 종교로서 이분들이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의지처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불교를 재건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선화] 200년 동안 억불정책 때문에 불교가 정통성을 가지기가 제주에서는 힘들었죠. 앞으로 안봉려관 스님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말씀해주세요.

[혜달 스님] 봉려관 스님의 그동안의 업적을 정리해서 세상에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봉려관 스님을 스님으로서만 볼 게 아니고, 제주 여성들이 가진 특성이 있잖아요? 강인함. 여성의 시각에서 봉려관 스님을 볼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선화] 중요한 얘기입니다. 21세기 여성의 시대에 제주 근대 불교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비구니 스님, 여성 종교인이죠. 안봉려관 스님에 대한 제대로 된 조명을 관음정사 문화원장인 혜달 스님이 잘 짚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BBS도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 스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혜승 기자  hyehye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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