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 오늘의 이슈

● 출 연 : 김성도 제주4.3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장

● 진 행 : 이선화 앵커

● 2018년 10월 15일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이선화입니다’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 코너명 : 오늘의 이슈

[이선화] 지난 10월 9일이었죠, 제주 4.3희생자 유족들이 또 다시 거리로 나섰습니다. 제주 4.3 특별법이 발의된 지 이제 1년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하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된 채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책임 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에 제주 4.3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기 위해서였죠. 이에 대한 이야기, 오늘 제주 4·3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 김성도 회장 모시고 나눠보겠습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김성도] 안녕하십니까.

[이선화] 잘 모르는 청취자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어떤 모임이고,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성도]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있고, 서귀포시에 7개 지회가 구성돼있고 제주시에는 8개 지회가 있습니다.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가 있는데 거기에 5개 위원회가 있습니다. 도 산하에 21개의 조직으로 구성돼있고, 3개 단체, 서귀포시지부, 제주시지부, 행불인협의회 단체가 각기 관장하고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선화] 제주4.3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은 4.3희생자유족들 뿐 아니라 전 제주도민이 간절히 바라는 일이잖아요. 제주 역사 바로 세우기와 관련된 일이니까요. 제주4.3특별법의 중요한 부분 다시 한 번 정리해주십시오.

[김성도] 2000년 1월에 4.3특별법이 제정됐는데, 그 법도 물론 소중하고 중요했지만, 거기에는 4.3평화재단이라는 틀 안에서 일을 하게끔 돼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유족회가 바라는 부분에서 상당히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결론을 갖게 됐습니다. 운영회를 거쳐 특별법 개정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고는 진전이 없다, 그래서 개정을 시작하게 됐고, 법률자문단을 두어서 초안을 만들고 여러 번 수정을 거쳐서 작년도 12월에 오영훈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 상정중입니다. 그 외에도 강창일 의원님, 권은희 의원님도 이 법을 냈는데, 저희는 법률자문단에 기초한 여러 의견을 집중해 종합해서 냈기 때문에 오영훈 의원이 발의한 이 법이 반드시 통과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계속 추진하고 있고 심지어는 거리로 나서게 됐습니다. 주요 내용은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우선 저희들 돌아가신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이 우선입니다. 지금도 그 부분이 걸리는 게 많습니다. 특히 군사재판 같은 경우는, 형을 받았기 때문에 수형자의 자식이 돼있단 말입니다. 당시 군사재판이라는 것은 형체도 없고 이름만 있을 뿐입니다. 어떤 판결문 하나도 없는데 한마디로 감옥에 보내놓고 나중에 ‘너는 징역 몇 년이다’ 하고 받았다는 거죠. 그래서 그걸 무효화해야만이 명예회복을 할 수 있겠다는 게 첫 번째 주장입니다. 또 하나는 국가권력이 사람을 죽여 놨으면, 어떤 배보상은 당연히 뒤따라야하고, 또 책임자 처벌도 해야 하는데,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대부분이니 형사처벌보다는 규명이라도 철저히 해줘야 한다는 그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그 외로도 지금 사실상 호적이 부모가 다 돌아가시면서 고아로 살다보니, 외가나 친척 그 밑으로 호적이 돼있다든가 하는 그런 불행한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4.3실무위원회가 이 사실을 확인해주면 법원이 재판절차 없이도 개정을 해줄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필요합니다. 또 일부 극소수지만, 4.3을 지금까지도 안 좋게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4.3을 폄훼하면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까지 개정법 안에 들어있습니다. 특히 정부가 평화재단에는 지원을 할 수 있으나 4.3유족회를 지원할 근거는 전혀 없거든요.

[이선화] 핵심은, 평화재단을 통해서만 4.3유족회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거죠? 국가나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유족회를 돕는 일은 근거가 없다는 거죠?

[김성도] 네, 그렇습니다. 단지 지방정부가 조금의 혜택을 줘서 저희가 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선화] 회장님께서는 4.3유족회의 일원이신데, 가족 중 어느 분이 희생되신 건가요?

[김성도] 제가 유복자입니다.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데, 저 같은 유복자가 210여 명 되더라고요. 49년생이 전부 유복자입니다.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아버지에 대한 단상도 별로 없고, 유품도 하나도 없고,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도 잘 못 듣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4.3의 실체를 조금씩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사태에 행방불명됐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고 ‘아, 그렇구나’ 했죠.

[이선화] 형제분은 혹시 있습니까?

[김성도] 독자입니다. 형제가 없습니다. 어머니 그늘이 컸기 때문에 그나마 아버지의 부재가 덜했죠.

[이선화] 서귀포시 어디가 고향이십니까?

[김성도] 서귀포시 동홍동이 본적지입니다.

[이선화] 정방폭포가 있는 그쪽입니까? 4.3의 큰 상처를 받은 곳이 정방폭포 학살터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요.

[김성도] 그걸 기억하고 계셔서 고맙습니다. 한라산 남쪽 최고 학살터가 정방폭포거든요. 그렇지만 행정당국은 일체 거기에 4.3학살터라는 표석이라도 하나 해놓지 않았습니다. 관광지로 미화할 뿐, 또 아니면 서복전시관이 있어서 서복 할아버지 땅이 돼버렸습니다. 4.3학살터에 대한 일체 거론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이선화] 그동안 우리가 4.3이라고 하는 역사의 진실 찾기보다는, 제주도는 관광이 더 우선인 시대를 살아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귀포시지회 회장님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아요.

[김성도] 제주가 천혜의 관광지이고 아름다운 곳이기는 하나, 4.3 당시에는 관광지마다 다 4.3의 아픈 상흔이 서린 곳이거든요. 정방폭포가 관광지만은 아니다 하고 한쪽 구역에다가 그 표시를 해줌으로써 후대나 관광객이 오더라도 ‘아픈 상흔이 있는 곳이구나’ 이걸 알릴 의무가 있는데도,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해 너무 소홀히 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선화] 앞으로 그 부분도 잘되길 바란다는 말씀 함께 드리겠습니다. 지난 9월 초에 4.3수형 생존인들이 제기한 재심 청구가 제주지방법원에서 받아들여져서 모두들 참 기뻐하셨는데데, 희생 당사자는 물론 유족 분들에게도 그 의미가 더 클 수밖에 없죠?

[김성도] 당연하죠. 사실상 4.3은 반세기 이상 지하에 묻혀서 4.3이란 말 한마디 못하고 그 시대를 지났습니다. 그것은 독재정권 하에서 4.3을 폭도다, 빨갱이다, 하는 단어를 쓰면서 4.3을 입에 못 꺼내게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재판은 4.3 유족이나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다른 판결까지 기간이 남아있다고 봅니다만, 4.3은 명실 공히 법적으로도 명예회복이 될 수 있다는 큰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선화] 4.3의 억울한 부분에 대해 사법적으로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지난 4.3 추념식에서 문재인대통령이 제주 4.3의 조속하고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국가 차원의 정부 약속이 잘 지켜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성도] 당연합니다. 추념식은 정말 70년 만에 저희들의 한을 풀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대열에 끼어서, 애국가를 참 힘차게 부른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대통령께서는 제주에 봄이 오고 있다고 선언을 하셨고, 4.3의 완전한 해결에, 저희 유족이 그만해도 된다고 말할 때까지 일을 추진해주시겠다고 눈물겨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혼자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삼권분립 체제 하에서 국회가 그 법을 통과해줘야 정부가 일을 추진할 텐데...그래서 저희들이 거리에 나섰던 겁니다. 국회가 개정안을 지금도 심의조차 안하고 잠재우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선화] 일단은 지난해 12월에 발의된 4.3특별법 개정안이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당사자 분들이 뜻을 모아주셔야 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또 지금 회장님께서는 서귀포시 봉림사 신도회장직을 함께 맡고 계신데, 봉림사 역시 4.3당시 피해를 봤던 사찰 아닙니까?

[김성도] 봉림사도 4.3 당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만 사찰이 전소됐습니다. 봉림사 뿐이겠습니까? 90여 개 사찰 중에 거의 90% 이상이 다 피해를 봤습니다. 더 말씀드리자면 열여섯 분의 스님이 순교했는데도 저희 불자들이 순교비 하나 세워드리지 못하고, 70년을 끌었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디.

[이선화] 70년이 되는 동안에 그 피해 사찰에 추념비 같은 게 건립이 안됐던 겁니까?

[김성도] 한마디로 무관심이겠죠. 관심이 이제 시작됐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랍니다.

[이선화] 그 관심의 시작이라고 하는 게, 지난해에 처음으로 세미나 한번을 한 게 단초의 물꼬를 튼 거죠. 종교적으로는 90% 이상의 피해를 불교가 받았고, 한국 근대불교의 시작을 도와주셨던 지식인 스님들이 많이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추념비 하나 없고, 관련한 세미나도 70주년이 돼서야 있었다는 것은 저를 포함한 불교계가 좀 더 자성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회장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김성도] 같은 생각입니다. 사실 4.3 당시 다 아시다시피 해발 5km를 벗어난 곳은 전부 다 쑥대밭이 됐거든요. 그중에 산중에 있는 사찰은 같이 화마에 다 휩쓸렸고. 또 식자층들이 거의 4.3으로 인해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세진 스님 같은 분은 사실상 무장대에서 같이 활동을 했던 스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스님의 사고가 좌파여서가 아니라,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지는 것을 가슴 아파했고, 바른 길로 가자고 해서 합류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관음사가 우리 불교의 중심지였는데 같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이니까 열여섯 분의 숭고하신 마음을 읽어서, 불자들이 앞장서서, 불교방송처럼 단체가 앞장서서 순교비를 빨리 세워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이선화] 불교방송도 시대정신의 사명감을 안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셔야 할 텐데, 어떤 계획들 가지고 계십니까?

[김성도] 4.3은 사실상 완전한 해결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특별법 개정을 해서 저희들의 명예도 회복 받고, 배보상도 받고, 앞으로 나아갈 진로가 다 그쪽에 있거든요. 두 번째가 미국의 책임입니다. 아시다시피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4.3 발발이 시작됐는데, 48년 당시 4월 3일 날 무장봉기할 때만 해도 미국이 묵인 내지 방조했죠. 이 부분 때문에 제주도민 30만 명 중 3만 명이 죽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히 요청하고, 해마다 대사관 앞에 가서 시위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책임에 대한 서명 10만 명을 목표로 해서 지금 거의 다 됐습니다.

[이선화] 앞으로 국내만이 아닌 국외 활동까지 하실 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회장님 오늘 감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제주4·3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 김성도 회장님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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