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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오늘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572주년이 되는 한글날인데요.

우리의 글 ‘한글’이 만들어지고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되는 과정에서 불교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글 창제가 불교 발전에 미친 영향을 전경윤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 기자 >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 평가받고 있는 한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은 왕실 연구기관인 집현전의 학사들을 동원해 한글, 즉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한글 창제는 집현전의 내노라하는 학사들이 아니라 당시 뛰어난 고승이었던 신미 대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게 당시 기록과 문헌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신미 대사는 부처님 당시 언어인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즉 범어와 티베트어 등 6개 나라의 언어와 문자에 능통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에 크게 기여한 신미 대사가 주석하던 법주사 복천암 불사를 후원하고 스님에게 혜각존자라는 법호를 내렸습니다.

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는데도 불교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 부처님의 일대기를 한글로 소개한 석보상절 등 세종 때부터 연산군 때까지 한글로 발간된 문헌의 65% 이상이 불교 경전이며, 유교 서적은 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박해진/혜각존자 신미 평전 저자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지주는 불교였고 그 불교를 통해서 빨리 신속하게 이해하기 쉽게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불경이 훈민정음 지금 얘기하고 있는 한글의 보급과 확산에 절대적으로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한글 자음과 모음의 원리와 발음 등을 설명해놓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하나인 상주본은 지난 1990년대말 천년 고찰 안동 광흥사 복장 유물로 발견됐습니다.

안동 광흥사는 신미 대사와 함께 훈민정음 창제 이후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 즉 불경언해에 공을 세운 학조 대사가 있었던 곳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우 모두 33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불교의 우주관인 33천을 상징하며 ‘나라 말싸미 듕귁과 달라’로 시작되는 문장은 정확히 108자로 돼있는 등 불교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김무봉 /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훈민정음 초기인 15세기에는 (불경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글자를 만들어놓고 이 글자가 어떻게 정착되야 하는가를 고민한 것 같습니다 당시 슬로우 앤드 스테디 베스트셀러는 불경이었습니다 불경 읽는 독자를 대상으로 우리 글자 확산을 도모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BBS 뉴스 전경윤입니다.

영상 편집 최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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