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담 [BBS가 묻고 총무원장 후보가 답하다]

#진행/전경윤 BBS불교방송 보도국 문화부장

#패널/홍진호 BBS불교방송 보도국 문화부 기자(조계종 출입기자단 간사)

#출연/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 후보 기호 3번 정우 스님

※ 이번 특집은 BBS TV를 통해 18일부터 21일까지 매일 오전 7시 40분에 방송되며, 기호 1번 혜총 스님과 기호 2번 원행 스님, 기호 3번 정우 스님, 기호 4번 일면 스님의 순으로 시청자들을 찾아갑니다. 특집 대담은 18일부터 21일까지 저녁 6시 30분에 재방영되며, 한가위 연휴인 23일부터 26일 밤 9시 30분에도 다시 방영될 예정됩니다.

[전경윤 부장]

안녕하십니까. 한국 불교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 제36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오는 28일 실시됩니다. 종단 안팎의 여러 혼란과 내부 갈등이 이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어수선한 상황에서 치러지게 돼, 좀처럼 예측하기가 힘든 선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총무원장 당선자는 종단의 내분을 수습하고 미래 한국불교 중흥에 앞장서야 하는 큰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의 추락한 위상을 다시 세우고 승가 공동체 회복, 재가불자들의 수행 풍토 조성 등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BBS는 이번 총무원장 선거 각 후보들을 차례로 만나 선거에 임하는 각오, 주요 정책 공약 등을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기호 3번 정우 스님을 모셨습니다. 정우 스님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직접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 패널에는 보도국의 문화부 홍진호 기자, 나와 있습니다. 홍진호 기자, 안녕하십니까.

그러면 정우스님을 스튜디오에 직접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스튜디오에 직접 나오셨습니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전경윤 부장]

스님께서 드디어 이번에 나오셨는데, 총무원장으로 선거에 나오게 된 결심하게 된 배경을 먼저 말씀해주시죠

[정우 스님]

아마 종무행정에 관심 있고 종단에 참여했던 스님들 중에는 내가 총무원장이라면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들이 안 있겠습니까? 저도 오래 전부터 그런 말씀들이 있었는데 인연이 여의치 않고,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있어서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가, 종단의 어려움을 목전에서 겪으면서 종단이 좀 안정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번에 총무원장 후보로 이번에 등록을 했습니다.

[전경윤 부장]

스님께서는 이번에 종단에 여러 중요한 소임들을 많이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스님께서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여러 가지 각오를 다졌을 것 같아요. 결심한 게 많으시죠?

[정우 스님]

평소에 총무원장이 아니더라도 내가 늘상 3대 마음가짐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머무르고 있든지, 조계종의 종지를 따를 것, 그 다음에 소임자는 사유화하지 말고 공유화 할 것 삼보정재를, 세 번째는 내 머무르는 곳에서 그 곳에서 이바지 할 것,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0319

[홍진호]

스님 사실 스님이라면 늘 포교를 많이 하시고 불사를 많이 하셔서 그런 부분에서 불자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 94년 종단개혁도 참여하셨고 그 이후에 총무부장도 맡으셨고 중요 소임을 다 맡으셨다가, 98년 종단사태 이후에, 저는 기사에 ‘정치적 아픔을 겪으셨다’ 이렇게 썼는데요, 정치적 아픔을 오랜 기간 겪으셨습니다. 그 사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정치적 아픔을 겪는 기간 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겨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우 스님]

98년도에 양분된 견해가 대외적으로는 많은 아픔을 가지게 했고, 98년도 그 일이 있은 이후에 그러면서도 4년에 걸쳐서 일산 여래사 삼천 평 IMF때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해낼 수 있었고, 또 발로 참여하는 지도를 구룡사에서 하면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는 염원을 발원했고, 그러면서 7~8년 세월이 지나면서 통도사 주지 소임도 보게 되었고, 또 종단에서 말씀하는 군종 교구장도 4년간 하고, 그렇게 하면서 지금 한 20여년을 외곽에서 지냈다고 보여 집니다. 0459

[전경윤]

사실은 총무원장 선거가 조기에 치러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의 특징을 도덕성, 종교에 있어서 도덕은 가장 기본인데 도덕성을 가장 중시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우 스님]

그런데 근간에 내가 들었던 말 중에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고,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에 노출되어 있다는 그런 말을 듣곤 합니다. 도덕이라는 말은 종교라는 말입니다. 종교성과 도덕은 절대 둘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종교인에게 도덕적 가치를 질문한다는 것도 부끄럽고 쑥스럽네요.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삶을 제대로 살면 그런 말은 다 소멸될 거라고 봅니다.

[전경윤]

네. 사실 종단입장에서는 총무원이라는 조직이 여러 가지 사업들, 그런 걸 추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재정적 기반이 필요한데, 사실 각 사찰에서 하는 사업을 합쳐보면 꼭 많다 적다 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게 꼭 필요한 거고, 이런 걸 잘 생각해서 집행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스님께서도 총무원장이 되신다면 그런 부분을 관심 있게 보실 것 같은데요

[정우 스님]

쉽게 말을 들자면 하루에 천원도 일 년간 모으면 36만원 됩니다. 만원이면 360만원, 하루에 십 만원씩 모아도 복을 짓는 것이든 나눔을 가지는 것이든 간에, 그것도 연봉자만큼, 큰돈이 되는데, 지금 대한민국에는 많은 사찰에서 각자가 그 지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고 이바지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종단적으로 취합한다면 그 단위는 클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에서 하는 일에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총무원장 소임을 보게 된다면 전국 본말사에서 중앙 분담금으로 각출하는 그 재원을 어렵고 힘든 환경에 노출된 곳에 재투여할 수 있다면 각 사찰의 주지스님이나 소임자 스님이 기뻐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0745

[홍진호]

네 그런데 개인적으로 오늘 정우스님의 출마 기자회견 때 취재를 해왔는데요, 종책 자료집이 다른 후보도 다 있는데 제일 사실 잘 만드셨습니다. 문서 포교도 많이 해오셨고 특히 사진, 여행, 이런 잘 알려져 있는데요, 어떻게 또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우 스님]

평소에 종단관을 가슴속에 묻고 있었던 것을 문자로 표현을 해 봤고, 또 그다음에 30년 넘게 단일사찰에서 잡지를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은 잘 구성되어있지 않을까 싶은 데요 잘 만들었습니까? 고맙습니다.

[홍진호]

덧붙여서 질문드릴 게, 사실 축구나 야구 보면 이런 얘기 있습니다. ‘좋은 선수가 좋은 감독이 되기는 힘들다.’ 왜냐면 자기가 능력이 뛰어나니까, 능력이 모자라는 선수를 지도하고 육성하는 점에 있어서 좀 모자란다. 그런데 정우스님이 최근에 총무부장 소임을 맡으시면서 너무 강하다, 소통하기 힘들다, 이런 지적이 있습니다. 총무원장 소임 후보로 나오셨는데 이런 지적에 어떻게 답변하시고 소통하실지 궁금합니다.

[정우 스님]

그것은 아마 저도 그 얘기를 가까운 지인들한테 들었는데, 구룡사라고 하는 곳이 30여 년 전에 천막 법당에서부터 출발을 해서, 연수에 버금갈 만큼 많은 사찰이나 대사회적 활동 영역을 넓히고 지원을 했는데, 그것을 결정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혼자 몫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솔선수범을 해야 되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들이 좀 강하게 어필되고 진행하다 보니 그런 말씀을 들었다면, 앞으로는 종단에서 제가 소임을 6개월간 보면서 크게 느끼고 왔던 것은, 소임자들이 끊임없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총무원 10대 운영기조에도 그런 걸 본사 중심제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도 종헌에 명시되어 있는 교구본사 주지회의를 1년에 한두 번 정도, 그동안 제가 소임볼 때 보니까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던데, 분기별로라도 하고, 종단에는 어른들도 많이 계시지만 소임을 봤던 경험이 풍부한 스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자문위원회나 본사나 말사에서 운영위원회를 소집하는 것처럼 해서 회통, 서로가 모두 와서 통할 수 있는 그러한 장을 만들면,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는데 종단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경윤]

자, 지금 기호3번 정우스님에게 각 후보들에게 드리는 공통 질문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시대에 있어서 출가자 감소, 그리고 탈종교시대 이런 얘기를 많이 하고요. 종단도 계율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청정승가 문제라든지, 거기에 대해서 스님도 평소 생각하고 계신 게 있으시죠?

[정우 스님]

뭐 세상에 살다 보면 수십년 출가자의 길을 걸었지만, 스스로 되돌아보면 왜 잘못한 일이 없겠습니까? 왜 후회되지 않는 일이 없겠습니까? 부끄럽고 창피하고 쑥스러운 그런 일을 다반사로 가지고 있고, 또 그런 허물들이 보면, 청정해야 한다고 그러는데 생각으로도, 말로도, 행동으로도 당장에 제가 독단적이고 소통이 안 된다는 그런 표현을 이번에 출마하고 나서 걱정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래, 하심하고, 인욕하고’ 그게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교구본사를 순례하면서 제가 출가의 변도 말씀을 드리겠지만, 많이 듣고 메모하고, 만일 당선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남은 인생은 스님들이 말씀하신 그런 주문이나 이런 것들이 어디서 머무르고 있더라도 잘 될 수 있도록 모범이 되자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지고. 출가자 문제나 종교 인구수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추세, 어떻게 보면 그게 생활화 되어가지고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는데, 물질 만능시대, 산업화 시대에서는 물질적인 풍요가 배고픔은 면하게 해주었고, 그러다보니 허한 가슴을 종교적으로 다듬어갔다면 요즘은 밥 못 먹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많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종교가 보편화, 평준화되어가지고 종교가 있는 듯 없는 듯 요순시대처럼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군에도 제가 활동하면서 보니까 전체 군인들의 반절 이상이 무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황금어장이라고도 표현하던데, 제가 또 4년동안 교구장 소임을 보면서 1년에 12만 명 이상 수계에 참여하는 그런 병사들과 인연을 맺었거든요. 지금도 그런 일은 잘 되어지고 있다고 보이는데. 그런 게 어느 날 동쪽으로 기운 나무는 동쪽으로 쓰러진다고 하듯이 옷깃만 스쳐도 깊은 인연이라는데 그런 인연을 맺어놓으면 훗날 언젠가 함께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이 드네요. 1453

[홍진호]

네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의 역할이 굉장히 많은데요. 그 중의 하나가 대정부관계에서 협상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진행을 해야 합니다. 문화재의 입장료문재나, 문화재 관련된 정부와의 협상과 협의가 산적해있는데요, 이 부분 어떻게 풀어나가실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정우 스님]

제가 통도사 주지 소임을 볼 때, 제가 4년 가까이 문화재 관람료 위원장을 맡아서 요금 체계를 조율도 했었고, 또 종단 소임을 보거나 본사 주지 협의회에서 회의를 할 때 많은 주지스님들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말씀도 들으면서 함께 했었고,. 그런데 저는 종교에 사회에 윤활유적이고 비타민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종교는 있는 듯 없는 듯, 어쩌면 사회에 자양분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의 본분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문화재 70% 이상이 불교문화재로 되어 있고, 국보 보물 유형 무형 문화재가 산재해서 많이 있고, 또 유네스코에 등재된 사찰도 많이 ???겼고 앞으로 점점 더 그런 것들늘어날 거라고라고 생각하는데, 그러기위해서는 국가에서 지원도 받고 국가에서 살펴주는 일들에 대해서 많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되고, 그 다음에 지금 정부 행정부서에 명칭도 그렇잖아요? 문화 체육 관광. 그것을 한 부서로 잡혀있는 것을 보면 그 문화 속에 종교나 예술이나 다양한 장르가 함께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절대로 혼자서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경윤]

네, 역시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조계종 총무원이 하는 일을 알리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언론과의 소통도 굉장히 중요하고 포교 활성화를 위해서도 언론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그 동안 껄끄러운 과정도 있었고, 여러 가지 과정 속에서. 스님께서는 언론과의 관계 어떻게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정우 스님]

긁어 부스럼 만드는 형태의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되고. 멀쩡한 사람 파가지고 긁어가지고 상처를 만드는 그런 것은 비난이죠.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론 방송은 건강한 비판을 통해서 건강하게 새살 차오르게 하고 장단점 보완하게 하고 이런 것들을 보여줘야 하는데 더러는 멀쩡한 새살을 후벼파는 듯 한 거. 문제를 문제 삼으면, 문제 아닌 것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구룡사에서 만드는 잡지의 경우나 다양한 문서에는 부처님 품안 따뜻한 가정을 슬로건으로 삼아가지고 절대적으로 종교적인 비난이나 이런 건 우리 잡지에다가 30년 동안 한 번도 수록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방송은 횃불이라고 안 합니까? 건강한 비판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난하는 언론은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궤도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경윤]

자 이제 공통질문을 마무리하고, 패널 질문으로, 좀 더 세부적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스님하면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장,. 조계종 총무부장을 거치셨고 다양한 주요 소임을 두루 거치면서 특히 도심 속에서 포교의 원력을 세우셔서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천막 법당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강남 구룡사, 일산 신도시 포교원 여래사, 이런 도심 포교당들을 세워서 많은 포교의 성과를 내셨는데 어떤 원력으로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 직접 듣고 싶습니다

[정우 스님] 

그것은 말하자고 하면, 신심, 원력, 정진, 회향, 이런 형태인데, 제가 10대 중반에 출가를 해서 서른 네 살 먹던 해에 어른 스님들의 뜻에 따라서 가회동 구룡사로 소임을 맡아서 오게 되었고, 그때 노스님께서 대중포교현장에서 웅진을 한번 활짝 펴봐라. 그래서 가회동에 있던 작은 절을 구룡산 자락 양재동으로 옮길 수 있었고, 허허벌판에 땅을 마련하고 건축허가가 나지 않던 시절이기에 천막 법당에서 한 2년, 가건물에서 2년 생활하면서 지금의 절을 이룩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거기에서 많은 불자들과 함께 했던 일들이 많죠. 그런데 나는 내가 능력과 역량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이 시대의 불자들의 목마름 소리가 컸다, 그리고 좋은 인연으로 신도시마다 상가건물 임대가 아니고 분양받아가지고 이 곳 저 곳에다가 포교당을 세울 수가 있었고. 또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해외 포교당도 전부다 제가 출발점을 다진 게 아니에요. 거기서 누군가 하고 있는데 환경이 여의치 못해서 내가 거기에 함께 했던 것이지. 지금은 뉴욕 원각사 30만평에 한국의 전통 가람 사찰을 지금 짓고 있고, 지금 현재는 선방을 다음 달에 상량식 하려고 목수들이 짜맞추기 하고 있습니다.

[전경윤]

네 스님이 인도 고려사 호주 정법사 뉴욕 원각사까지. 해외 우리 교민들이 굉장히 갈망했던 부분들 아니겠습니까.

[정우 스님]

한 여덟 곳에 있습니다. 히말라야에도 있어요. 북인도 히말라야에도, 스노우마운틴 템플이라고, 설산사. 이름 예쁘죠? 그 쪽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티베트 난민이나 오지사람을 위해 의료봉사도 하고 있고,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데, 절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그 곳에서 무엇인가 어렵고 힘든 이들과 어울림을 가질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경윤]

사실 근데 요즘 불교계 현실은 양분됐다고 말합니다. 지난 달에도 교권 수호대회와 전국 승려결의대회가 조계사에서 같이 열렸는데, 총무원장은 양분된 현실을 봉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우 스님]

그런데 사바세계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은, 모든 게 다 흑백논리처럼, 음양의 이치처럼, 낮과 밤이 있는 것처럼, 춘하추동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시사철도 24절기로 나눠져 있는 것처럼 24시간이 있고 오대양 육대주가 있는 것처럼 오장육부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그런 현실 속에서 양분된 의견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거기서 조율을 해가지고 의견을 개진해서 최고를 찾아내지 못하면 차선책이라고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방법이 화합의 방법이 아닌가, 승가의 도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전경윤]

네. 전임원장 같은, 과거에 보면 탕평책을 쓰겠다든지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게 앞으로 과제가 되지 않을까..

[정우 스님]

저도 이번에 10대 운영기조를 정리하면서 여기에다가 표기를 해두었지만, 지금 보니까 소임 보면서 승적부를 열람해보니까 호법부에 요청해보니까, 해방 이후에 지금까지 승적이 완전히 말소되다시피 하신 분들이 230분되시더라고요. 그 중에는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고 환속하신 분도 있고 타 종단으로 가신 분도 있고. 그런데 그 내용을 검색해보니까 어떤 분들은 참 그렇게까지 안 겪어도 될 일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참 그게 당연한 귀결점으로 징계를 받은 분도 있고, 그런데 대다수가 돌아가셨고, 그래서 세상을 떠났더라도 정치적인 논리 속에서 구성된 거라면 우리 종단에서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살펴서 그분들이 자유로움을 드릴 수 있고, 그 제자들이 생존해있으니까 제자들에게도 자긍심을 줄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전경윤]

네 알겠습니다. 정우 스님께서 종책 자료집을 내셨는데, 10대 종단 운영기조라고 내셨습니다. 수행가풍 진작이나, 교구본사 중심으로 활동해야 된다 이런 내용이 있는데 핵심 내용을 소개해주시죠.

[정우 스님]

지금도 엄격히 말하면 교구본사 중심입니다. 종무행정이. 다만 총무원에서 통괄하고 있을 뿐이지. 그러나 지금은 인사권, 재산처분권은 종단에서 유지되어야 하지 본사에서 그것을 각개 한다면 문화재보호법이나 또는 옛날처럼 사찰대상 관리법이 발현되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본사주지스님을 못 믿는다는 게 아닙니다. 출가하신지가 벌써 30여년 되신 스님이고 나이가 50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그런 위치인데, 그렇지만 지금은 본사에서 올린 말사 주지스님 같은 경우를 총무원장 스님이 임명장을 주고 있는데 그런 것 까지라도 본사 주지스님이 임명할 수 있는 종법개정안 같은걸 마련한다면 큰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그 다음에 이제 상설화된 회의 주최가 되어서 행정을 포괄적으로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죠.

[전경윤]

여러 가지 종무 운영기조를 내놓으셨습니다만, 화제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스님은 극단 ‘신시’를 창단하셔가지고 문화포교에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오셨고 극단 신시는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문화포교가 현대 새로운 포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하게 되는데 스님께서도 앞으로 많은 복안을 갖고 계실 것 같은데요.

[정우 스님]

지금도 봉은사나 조계사나 큰 사찰에서는 합창단이나 국악 박범훈 총장을 통해서 그런 일이 이뤄지고 있고, 사물놀이나, 우리 사월 초파일에 제등행렬 할 때 보면 절절히 풍물패가 나와서 이끌어가고 그런 것 아닙니까? 이번에도 사월초파일 제등행렬 할 때 비가 와서 다른 데는 모두 순백색으로 보호를 하고 했는데 어느 사찰에선가 꽹과리, 징, 북하고 비닐에 싸가지고 나와서 하는데 꽃이었어요. 꽃. 그 정도로 우리의 혼과 얼과 넋을 다스릴 수 있는 좋은 일들이 불교를 통해서 다 이뤄진거라고 생각을 하고. 꼭 연극 뿐만이 아니고, 저는 84년도에 조계종 교무국장 소임을 볼 때 님의 침묵을 세실극장, 덕수궁 있는데 가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런 방법도 있구나. 그래가지고 삼개월 동안을 낮에는 소임자로 서울 근교에 사찰에다가 할인권을 극단하고 말해서 만들어서 돌리고, 저녁에는 어른스님이 혹여 오시면 자리마련해 드리려고 거기서 살다시피, 어떻게 보면 기도 본 것처럼 그렇게 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서 신시 극단이 87년도에 세워지게 됐는데, 지금 신시컴퍼니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극단이 되었고, 활발한 극단이기도 하고. 또 구룡사에서 함께하고 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홍진호]

제가 듣기로는 신시가 처음에는 구룡사 지하 연습실을 마련해서 연습을 하고 했다던데, 지금은 뮤지컬이 굉장히 일반화되었지만 그때당시만 해도 뮤지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굉장히 낮았는데요 어떻게 딱 보시고 나서 뮤지컬이 지금처럼 활성화될 거라고 확신이 드셨나요? 궁금합니다.

[정우 스님]

그게 아니고 삼사십년 전에는 악극, 연극, 신파, 그러다가 뮤지컬화되고 앞으로 우리 국민소득이 더 높아지면 오페라가 주종을 이루지 않겠는가, 지금은 오페라보다는 뮤지컬인구가 훨씬 더 많은데, 지금도 우리는 두 작품이나, 시카고라는 작품은 전국투어 순회하고 있고, 마틸다라고 하는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은 강남 LG에서 하고 있고.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 저는 님의 침묵만 이렇게 감격스럽게 본 게 아니고 아이다라고 하는 뮤지컬도 서양 작품인데 전생이 있고, 현세가 있고, 내생으로 이어지는 삼생이 그 작품 속에 나온다고요. 마치 영화 갓 오브 이집트 보면 서양영화인데 육도, 윤회하는 세상이 이뤄지는 것처럼. 그건 굉장히 불교적이기 때문에 많은 제작비를 들이지 않고 극단과 인연이 되어가지고 그런 인과 윤회가 있는 작품을 수많은 이들에게 고급스럽게 보여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큰 포교의 장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전경윤]

문화포교는 황금어장이군요. 군 포교와 마찬가지로.

[정우 스님]

어쩌면 다 소중하죠.

[전경윤]

사실 스님하면 제3대 군종교구장도 하시면서 최근에는 푸에노토리코 돕기도하셨고 판문점 공동구역 내에 군법당 무량수전을 지으셔서 새로운 이정표도 세우셨는데, 군포교에 대해서도 할 말이 참 많으실 것 같아요.

[정우 스님]

그건 아니고, 제가 70년대 초에 사병으로 군에 전방에 배치되었는데, 저녁마다 종교활동은 기독교만 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법사님들이 68년도에 다섯 명이 최초로 임관했으니 몇 명 안됐고. 사단에는 법사님들이 전혀 계시지 않을 때인데. 그래서 제 신상표에 보면 스님이라고 되어있고 승복 입은 사진이 붙어 있는데, 나보고 저녁마다 교회에 종교 활동하는 데 내무반에 가서 앉아 있다가 궁금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중대장님하고 소대장님이 마침 육사출신인데, 사관생도 때 불교반에 들어있어 가지고 나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찬불가 한 편 알지 못할 때에요. 그래도 불교활동 시작하면서부터 그 소대장이 찬불가는 가르치고, 나는 불교 포교 활동하고 그래서 중대를 했고. 또 연대가서 호국 황룡사라는 절을 세우고. 사단으로 불려가서 호국일월사라는 절을 세웠는데 지금도 26사단에 그 사찰이 있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오다보니까, 사병 시절에 어렵고 힘든 환경에 노출되어 있던 한병사가 시간이 수십년 지난 다음에, 그 쪽에 일을 하게 되니까 그때의 심정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짜장면이나 면장갑, 겨울에는 핫팩을 수십만개씩 해서 전달하고, 그다음에 판문점은 1사단 지역에 갔다가, 거기 옛날 오래전에 가보기는 했었지만 법당이 너무 낙후되어가지고 거기에 법당을 한번 세울까 싶어서 판문점에 가봤는데, 내가 볼 땐 그 법당이 법회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겠어요, 법사님들 안계시고 하는 곳이니까, 그런데 불현 듯 거기 유엔군이 관장하고 있는 곳이고 판문점이니까. 16개국 참전용사들이 불현 듯 떠올랐고, 6.25전쟁이 생각되니까. 그래서 돌아와서 자료를 살펴보다 보니까 푸에노토리코가 미국령이에요. 카리브 해안에 있는. 그런데 6.25때 6만 천 명이 참전했으니까, 미국 이름으로 오지 않았으면 영국보다 캐나다보다 터키보다 많은 용사가 온거에요. 미국 다음으로. 그 속에 6만 천명이 들어 있었고. 그다음에 흥남부대에서 마지막 철수병력이 올 때에도 무기 다 버리고, 우리나라 대통령 아버님께서도 그 배를 타셨다고 하더만. 그런 것처럼 자료를 보다가, 판문점 16개국 참전 용사들의 위령비를 위패로 모시게 되었고, 거기 가보면 아름답게 고려건축으로 잘 지었고, 평화의 종을 600관으로 해서 달아 모셨는데, 그러다가 작년 9월에 허리케인이 그 쪽으로 휩쓸고 갔는데 우리나라에서 어느 나라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지원하고 성금 모으고 하는데 전혀 누구도 미동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은 6.25에 참전한 병력이 있었다는 그 사실만 알기만 해도 그러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총무원장 스님께 보고 드리고 구룡사에서 먼저 성금을 내면서 시작해서 30만 불이라고 하는 재원을 모아서 직접 현장에 가가지고 2천 명 생존해 계시는 분들 중에서 3백여 분이 어렵게 산다고 해서 그 분들에게 천 불씩, 군종교구에서 아름다운 동행을 통해서 전달한 것, 그런 것도 인연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경윤]

자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게 있습니다. 스님이 일상에서 지표로 삼고 있는 경구나 가르침이 있다면 어떤 게 있는지 소개해주시죠.

[정우 스님]

늘 내 염원은, 부처님 품안에서 따뜻한 가정을 발원하는. 부처님 품안과 따뜻한 가정이 결코 둘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생활 불교. 그 다음에 열반하신 종정 월하 노스님께서 저한테 써주신 글 중에 그런 게 있습니다, 일체만물무비통이라는 말씀. 일체 모든 생명은 통하지 아니함이 없다. 전부다 인연 연기되어서 결속되어 있다, 그런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호 보완작용을 통해서 그런 일들이 잘 아우러질 수 있는 현장에서 살았으면 합니다.

[전경윤]

네. 제 36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기호 3번 정우 스님과 여러 가지 말씀 나눠봤습니다. 끝으로 스님께서 시청자와 불자 여러분들에게 한 말씀, 당부의 말씀 해 주시죠

[정우 스님] 

따로 드릴 당부는 없고, 2600년 불교사 가운데 세속적으로 표현하면 흥망성쇠가 왜 없었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생로병사도 겪게 되는 것이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늘 존치되어 있는 현상계에서 이런 일 저런 일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내 서있는 자리에서 전후좌우를 살피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면 앞만 보고 살지 말고, 앞뒤도 살피고 전후도 살피면서 관심과 배려 속에 친절한 어울림으로 인연들을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전경윤]

네. 제 36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한 기호 3번 정우 스님과 오늘 순서 진행해봤습니다. 시청자와 불자 분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순서 여기서 줄이고요 또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정우스님 오늘 긴 시간 대단히 고맙습니다.

[정우 스님]

성불하십시오.

[전경윤]

네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기서 모두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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